ⓒ 권나무 정규앨범 '사랑은 높은 곳에서 흐르지' 표지

[문화뉴스 MHN 박소연 기자] 가을이다. 공원에서, 카페에서, 어느 오후 작은 내 방에서 얇은 시 집 한권 읽기 좋은 날들이다.

'가을에 읽는 시' 같은 뮤지션이 있다. 권나무가 그 주인공이다. 

싱어송라이터 권나무는 2014년 '그림'으로 데뷔한 후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지난 2015년, 2016년에는 2년 연속으로 '최우수 포크 노래' 부문을 수상하기도 했다. 2016년 발표한 정규앨범 '사랑은 높은 곳에서 흐르지'는 리스너들 사이에서 '명반'으로 회자되며 꾸준히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시 같은 노래'를 만드는 일은 녹록지 않아 보인다. 한정된 구절안에  내용과 감정을 같이 다루어야 하고, '노래'라는 특성상 단어가 발화될 때의 느낌도 고려해야 한다. 종종 영화나 책을 모티프로 한 곡들을 만나기도 한다. 영상이나 서사로 존재하는 창작물을 노래로 다룰 때, '원본만 못 하다'라는 생각이 들지 않게 하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다. 

권나무의 '화분'은 유진목 시인의 시집 '연애의 책'에 실린 시 '식물의 방'을 모티브로 한 곡이다. 시인 유진목은 2013년 도서출판 삼인이 등단하고 싶은 시인들을 대상으로 원고를 투고받아 출간한 '삼인 시집선'의 첫 주자로 발탁되며 시집 '연애의 책'을 발표했다.

시 '식물의 방' 에서는 건조한 통찰이 보인다. 또 화분과 화자 사이의 '관계'에 대해서 생각하게 된다. 이 시가 음을 입어  '화분'이라는 곡이 되었을 때, 화자와 화분 사이에서는 '동질감' 같은 것이 느껴진다. 

"화분을 적시고 남은 목을 축일 때  햇빛을 쬐이고 남은 그늘에 쉴 때엔  꽃은 피고 나는 지고  꽃은 피고 나는 지고" (권나무 - 화분 中)

"누군가 구둣발로 우줌을 누었다 창문을 두드리는 오줌 줄기 어떤 노래를 들으며 지린내가 나는 일 귀를  막고 숨을 참는 일 죽는다 안 죽는다 산다 못 산다 병든 잎을 떼어내면서 낮에는 화분을 들고 산책을 한다" (유진목 - 식물의 방 中)

누군가가 누고 간 오줌처럼 '지린내가 나는 일'들을 겪으며 귀를 막고 숨을 참았을 화자는 '죽은 화분'의 병든 잎을 떼어낸다. 사람도 화분도, 지린내나는 생의 순간들을 견뎌야 했으리라. 또, 견뎌야 하리라.

사람마다 느끼는 바는 다르겠지만, 우리는 권나무의 노래를 통해 시 속으로 한 걸음 더 들어가볼 수 있는 귀한 경험을 제공 받는다. 권나무의 해석은 과하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식물의 방'을 더 찬란하게 비춘다.

한편, 권나무는 오는 24일 오후 5시, 서울시 영등포구 문래동에 위치한 '재미공작소'에서 '가까이서 듣는 음악'이라는 제목으로 공연을 진행한다. 

soyeon0213@mhn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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