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브로드웨이 42번가' 인터뷰 ①

 

[문화뉴스 MHN 서정준·장기영 기자] 지난 25일 오후 디큐브아트센터에서 뮤지컬 '브로드웨이 42번가'의 새로운 '페기 소여' 오소연과 인터뷰를 가졌다.

뮤지컬 '브로드웨이 42번가'는 시골에서 온 코러스걸 페기 소여가 우연한 기회를 계기로 브로드웨이 스타로 거듭나는 과정을 그렸다. 다른 작품에선 보기 힘든 시원한 탭댄스와 1930년대 브로드웨이를 즐길 수 있는 쇼뮤지컬이다. 김석훈, 이종혁, 최정원, 배해선, 전수경, 김경선, 오소연, 전예지, 에녹, 전재홍, 이호성 등이 출연하며 10월 8일까지 신도림 디큐브아트센터에서 공연된다.

오소연은 시골에서 온 22세의 밝고 명랑하며 굳은 심지를 지닌 코러스걸 '페기 소여'를 연기한다. 그녀와 페기는 여러모로 유사하며 또 유사하지 않다.

페기는 이미 완성된 탭댄스를 들고 브로드웨이를 찾는다. "지금까지 나온 모든 탭댄스를 다 출 수 있다"고 자부하는 그녀는 브로드웨이의 준비된 스타다. 반면 오소연은 배우 생활 통틀어 첫 탭댄스다. 댄스를 전문적으로 배워 온 '몸 쓰는' 배우도 아니다.

하지만 그녀 역시 어릴적 '레미제라블'의 아역으로 데뷔했던 준비된 스타다. 이후 성인 연기를 한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넥스트 투 노멀', '레베카', '인 더 하이츠', '페스트' 등 어떤 의미로든 뚜렷한 족적을 남긴 작품들에 출연하며 규모 있는 작품에서 흔치 않은 '성장하는 여성 캐릭터'의 서사를 잘 보여줬다.

'브로드웨이 42번가' 역시 빌리 롤러나 줄리안 마쉬와의 로맨스는 가볍게 다뤄지고 '페기 소여'가 브로드웨이라는 냉혹한 곳과 맞닥뜨리며 겪는 시련과 꿈, 무대에 떠다니는 작은 먼지같은 코러스걸에서 본격적인 한 명의 배우로서 성장하는 과정을 그린다.

안정을 찾을 수도 있는 데뷔 13년차 배우가 계속해서 성장하는 이야기는 어떤 작품일까.

 

탭댄스를 처음 배웠는데 그동안 댄스와의 인연이 없었는지?

ㄴ 제가 흥이 많은 스타일이다(웃음). 기술은 많지 않은데, 춤을 제대로 배웠으면 즐겁게 배웠을 성격이다. 성격 자체가 좀 활발한 면이 있고 음악 나오면 몸이 바로 반응한다. 배우들 거의 다 그렇지 않나. 춤을 잘 못 춰도 어느 정도 기본 흥이 있다. 근데 무대 위에서는 관객들이 돈을 내고 수준급의 춤을 보셔야 하고 이미 훌륭한 댄서 분들이 많기에 제가 춤을 보여드릴 기회가 별로 많지 않았다. '인 더 하이츠'도 끼 정도만 발산하는 역이었고 '헤어스프레이'도 흥이 넘쳤지만, 이렇게 전문적으로 댄스 배우기는 처음이다.

페기 소여를 보면 오디션 보러 다니던 시절이 생각날 것 같다. 데뷔 과정이 어땠는지.

ㄴ 초 5때 '레미제라블'에서 처음 아역으로 데뷔했다. 내한 공연에서 어린 코제트 역을 맡아 영어로 공연했다. 그때 처음 뮤지컬 알게 됐고 이후 대학 진로 결정할 때 콕 집어 뮤지컬과를 가게 됐다. 졸업하고 서울 와서 다들 똑같이 시작하듯이 오디션 보고 2005년에 운 좋게 바로 데뷔했지만, 신인생활 다들 똑같듯이 레슨 받고 오디션 보고 알바하고 그렇게 열심히 하다 보니 지금까지 오게 됐다.

상당히 데뷔가 빠른 편이던데 페기 소여와 데뷔한 나이 비슷하지 않나.

ㄴ 페기 나이 때 처음 시작을 했다. 21살에 데뷔했으니 얼추 비슷하다.

페기를 보면서 과거의 본인을 떠올리게 되는지?

ㄴ 이 작품이 배우들 이야기다. 우리들의 이야기라 공감 가는 부분 굉장히 많다. 페기가 처음 브로드웨이 올라와서 오디션 보며 배우를 꿈꾸는 마음도 너무 이해가 가고, 짧지만 페기가 앙상블 생활 경험하고 집에 돌아가고자 한 아픔도 겪는다. 그런 것도 저도 집이 서울이 아니라 너무 이해 가고 안쓰러운 부분이다. 또 작품 중 앙상블이 부르는 가사가 있다. '일이 없으면 휴가라고 생각해, 차 없으면 주차비 안 들잖아'. 생활고에 시달리면서도 긍정적으로 무대를 사랑하는 마음들이 공감이 된다. 더 나아가 도로시 브룩이 가진 몇십 년차 배우의 고뇌, 회의감도 지금 10년 넘으니까 어느 정도는 상상이 가고 이해가 가는 부분이다. 그리고 늘 우리가 연습실에서 겪는 그 상황들이 무대에 그려지니 어느 한 구석 낯설고, 이게 뭘까 대립해서 생각한 부분들이 없는 것 같다.

 

앞서 이야기와 달리 춤이 주가 되는 이 작품 선택한 이유는?

ㄴ 이 작품이 롱런했음에도 불구하고 기회가 오지 않았던 건 제가 엄두를 내지 못했던 것도 있다. 저보다 더 좋은 배우들 쓰느라 차례가 안 왔을 수도 있긴 하겠지만. 두려웠다. 탭댄스라는 게 아무나 하는 게 아니라고 생각했다. 잘하는 사람이 페기소여 맡아서 더 잘하는 게 이 내용에 맞고 정석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내 역할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우연치 않게 오디션 기회가 왔는데 제 마인드에서는 용납이 안 됐지만, 염치없게 오디션에 응했다. 하고자 하는 욕심을 낸 거다. 어쨌든 반신반의하며 안무 감독님을 만났는데 페기 소여 오디션에서 예스하신 배우가 제가 처음이셨다고 하더라.  많이 칭찬해주셨다.

탭댄스는 그럼 언제 배워서 갔나?

ㄴ 학교 수업에 탭댄스가 있어서 기초만 배운 상태였다. 근데 그것도 10년 전이다. 그때 탭 슈즈도 안 버린게 다행이었다. 그거 꺼내서 신고 오디션 봤다. 사실 이사 갈 때마다 애물단지였는데 찾아보니 있어서 그걸 신고 준비하다가 연습 중에 장렬히 두 동강 났다. 이 작품을 위해 기다려준 것 같다(웃음).

꿈꾸던 작품을 겉으로 볼 때와 안에 들어가 겪는 건 다를 것 같다.

ㄴ 일단 작품 자체가 익숙한 작품이다. 이미 몇 년 걸쳐서 총 세 번 봤다. 너무 재밌고 볼거리도 많지만, 이미 내게 너무 익숙한 작품이었다. 내용 자체에 대해 크게 새롭게 제가 흥미를 느낄 부분이 없다고 생각했다. 근데 하면서 오히려 더 탄탄한 작품이라 롱런한다는 걸 느꼈다. 그리고 배역 자체도 빈틈없이 잘 구성됐고 내용도 그렇다. 그리고 객석에서 보는 탭댄스가 생각보다 훨씬 더 힘들구나 느꼈다. 객석에서는 그냥 즐기면 됐는데, 무대에서는 '딱' 죽기 전에 끝낸다. 포기하고 모든 걸 떠나고 싶을 때 끝난다. 볼때는 즐겁고 잘한다 싶은 군무들이, 실제로는 얼마나 힘들게 하고 있는가를 몸소 느꼈다. 탭이라는 것 자체가 연습 때 하루하루가 굉장히 전투적이었다. 생각보다 내가 어마어마한 것을 하겠다고 덤볐구나 싶었다. 전투적이고 긴장하고 열심히 했던 것 같다.

연습 때도 독하게 열심히 이 악물고 한 것 같은데.

ㄴ 시간은 정해져 있고 언제까지 만들어놔야 하지 않나. 탭 선생님이 "노력한 만큼 탭은 실력이 비례한다"고 하셨다. 다른 춤은 어떤 동작의 모양만 따라해도 잘해 보일 수 있지만, 탭은 바로 소리가 들리고 소리 빠지면 티가 나고 눈에 바로 보이기도 하는 춤이다. 숨을 구멍도 없었다. 열심히 한 것과 능력이 비례한다고 하셨는데, 나중에 제가 못하면 열심히 안한 게 된다. 그 얘기가 너무 듣기 싫었다. 그리고 열심히 하면 잘하게 된다는 말을 믿었다. 그래서 열심히 하는 것밖에 없었다.

 

관절을 많이 쓰는 춤은 연습할 때 초보자들이 무리하게 하다 다치기 쉽다. 부상은 없었나?

ㄴ 많았다. 처음에는 신발 자체를 너무 오래 신고 하다 보니까 여자들 구두 신으면 까지듯이, 그랬다. 근데 계속 신어야 하니까 터진데 또 터지고 터진데 또 터졌다. 아파서 못 움직일 것 같은데도 참고 하다 보니 발바닥에 굳은살 생기더라. 그리고 의욕이 앞서니 열심히 힘을 줘서 하는데 그러다 보면 쇠로 된 탭댄스 밑창에 내 발을 찍기도 한다. 내 발을 내가 찍으니 누구한테 뭐라할 수도 없고(웃음). 한번은 너무 심하게 찍었는데 너무 부어서 걱정했는데 다행히 실금은 안 갔다고 하더라. 실금 생기면 쉴 수밖에 없어서 피하고 싶었다. 공연 중에도 보여주는 셔플이라는 동작이 있다. 그걸 빨리 하면 속칭 다리를 '턴다'고 하는데 그 때 관절에 무리가 온다. 저도 평소 연습 때는 오른쪽 무릎이 늘 아파서 무릎보호대 늘 하고 있다. 저 뿐만 아니라 저희 작품 앙상블 모두 똑같이 겪는 일이다.

오소연만의 페기 소여는 어떤 모습인가?

ㄴ 늘 그렇듯이 '정석'인 것 같다. 대본 안에 있는 페기의 성장과정. 제일 단순하다. 재능 있는 소녀가 배우를 꿈꾸고 시련 겪었다가, 자기 일을 이겨내는 과정을 통해 스타가 되는 전형적인 신데렐라 스토리. 그 안에 그 친구의 열정과 무대에 대한 갈망과 그런 것들을 표현하고자 했다. 저도 배우니까 그 부분이 가장 이해가 갔다. 무대 위에서 화려한 쇼 씬에서 페기가 예뻐 보이고 잘해 보이고 그게 작품의 당위성을 위해 가장 중요하지만, 이 친구가 처음에 얼마나 배우를 꿈꾸고 싶어 하고, 어떤 마음으로 여기에 왔고 그런 마음들, 그리고 이걸 다 포기하고 돌아가고자 할 때의 심정을 집중적으로 연기를 더 실어서 하려고 노력했다. 근데 저희 (김미혜)대표님도 페기 소여를 연기하셨던 배우다. 그런데 제가 하는 해석 몇 가지들이 너무 맘에 들고 신선했다고 하시더라. 21년 동안 단 한 명의 페기도 그렇게 한 적 없고, 직접 연기한 자기가 봐도 새로웠다고 해주셨을 때 굉장히 뿌듯했다..

예를 들면 어떤 장면들일지.

ㄴ 기차 씬을 예로 들면 집에 가려는 페기를 데리러 줄리안 마쉬가 온다. 집으로 돌아가려 한다는 그 대사를 대본으로 봤을 때 너무 슬펐다. 이 친구가 배우를 얼마나 갈망해서 왔는데, 너무 하고 싶었던 일을 포기하고 귀향한다는 게 얼마나 마음 아프고 자존심 상할까. 어린 나이에 인생의 패배자라 생각할 수 있는 씬이다. 실제로도 주변에서 같이 배우를 꿈꿨던 친구들이, 졸업생 중 한 두 명만 살아남는 것. 끝까지 포기 못하다 어쩔 수 없이 포기하는 사람도 보니, 저는 그냥 페기가 '돌아갈래요'라고 하지 않았다 생각한다. 슬프고 아픈 상처였을 거다. 그 부분에서 대표님이 (저만의 해석이)느껴지셨다고 하더라.

'도로시의 마음이 이해가 갔다'는 것은 어떤 건지.

ㄴ 여러 부분이다. 일단 제 배우 인생으로 봤을 때도 몇 번의 회의감이 있었다. 저는 한참 열심히 해서 이제 겨우 뭔가 맡았고 감사합니다 했는데, 아이돌 출신 배우가 와서 기존의 배우들을 힘들게 만들거나. 물론 그렇지 않은 아이돌도 많다. 우리 안에서의 룰과 마인드를 배우려고 하는 사람 많지만, 몇 년 전만 해도 그렇지 않고 너무 얄미운 경우도 있었다. 그런 걸 보면 저뿐만 아니라 지금 제가 맡은 이 역할을 꿈꾸는 후배들도 얼마나 회의감이 들까 했었다. 또 점점 내가 소모된다고 느꼈을 때가 있다. 경력이 오래됐고 가진 건 한계가 있으니 한계를 느낄 때가 있다. 그건 너무 자연스러운 일인 거 같다. 그러다 또 이렇게 새로운 도전을 하고 수고했다, 잘했다는 소리 듣고. 다 좋았다 나빴다 하지 않겠나. 도로시가 엄청 히스테릭하다. 진짜 사랑하는 사람을 두고 돈 때문에 나이 많은 졸부와 사랑하는 척 해야 한다. 그리고 배우로서도 위기감을 느끼는데 어느 사람이 마음이 행복하겠나. 그런 부분이 이해가 간다. 도로시 가사 중에 '수많은 사람들 이렇게 나와 함께해도 내 마음 속에 오직 그대' 라는 게 있다. 스타들의 삶이 화려해보이고 모든 걸 가진 것 같지만, 안으로 들어가 보면 오히려 더 외롭게 살고 있는 경우가 더 많다. 사랑 하나에 무너지는 여자의 마음도 굉장히 보기엔 아름다워 보였다.

 

개인적으로 '넥스트 투 노멀'에서 보여준 섬세하고 예민한 '나탈리'도 인상 깊었다. 무척 다양한 작품을 했는데 '넥스트 투 노멀'처럼 계속 출연하는 경우도 있고 한 번 했던 작품도 있는데, 작품 고르는 기준이 어떤지.

ㄴ 하고 싶은 작품은 많다. 사실 때를 놓치면 안 되더라. 제 손에 쥐어지는 게 제 작품이 된다. 아무리 하고 싶어도 떨어지는 경우도 있고, 이미 누구와 하기로 한 경우도 있고. 일단 저를 믿고 선택해주는 것에 감사하게 응한다. 출연했던 작품 또 하는 경우는 거의 제 뜻이다. '넥스트 투 노멀'은 삼연을 못할 뻔 했다. 그 당시 박용호 대표님을 만났는데 "삼연 올라갔는데 제게 어떻게 말씀도 안 하셨냐, 서운하다"고 했는데 나중에 보니 제가 그만두고자 한 것처럼 오해가 있으셨다. 그래서 모든 오해 풀고 마지막으로 삼연하겠다고 했다. '인 더 하이츠'도 '바네사'로 연기하는 게 즐거웠다. '브로드웨이 42번가'도 물론 그렇다. 또 하고 싶다.

[문화 人] 오소연 "딱 죽기 전까지 춤추는 작품"으로 이어집니다. <-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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