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가 있는 날·예술이 있는 삶을 빛냅니다…문화뉴스] "이 한 몸 찢기고 상해도 마지막 힘이 다할 때까지 가네 저 별을 향하여"

누구나 꿈은 있다. 사람들은 저마다 소소한 것부터 거창한 것까지 각양각색의 꿈을 가지고 살아간다. 누군가에게만 몰래 속삭이며 꿈을 나만의 것이 아닌 다른 이와 공유한 것으로 만들기도 하고, 나 혼자에게만 되뇌며 소중하게 간직하기도 한다.

하지만 조금 냉정한 시선으로 현실을 바라보자. 갈수록 경제가 어려워지고 있다는 요즘, 꿈을 물었을 때 눈을 반짝이며 대답하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비단 젊은 세대뿐 아니다. 은퇴 후의 삶을 장밋빛 미래로 꿈꾸던 이가 분명 있을 텐데 돌아오는 답은 비슷하다. 그저 자식이 취업 잘하고, 결혼 잘하길. 아니면 은퇴하고 나서 생활이 어려워지지 않길.

   
 

이 같은 상황에서 꿈은 종종 허상, 이상 심지어 망상으로 여겨진다. 어쩌면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이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 바로 조건만 따져보면 당신보다 나을 것이 하나도 없을, 현세대를 보면 혀를 끌끌 찰 백발의 '돈키호테'의 이야기다. 창이 무거워 제대로 들지도 못하고 주막집을 성이라 칭하는 이 노인의 이야기에 주목해보자.

"그 꿈, 이룰 수 없어도
싸움, 이길 수 없어도
슬픔, 견딜 수 없다 해도
길은 험하고 험해도

정의를 위해 싸우리라
사랑을 믿고 따르리라
잡을 수 없는 별일지라도
힘껏 팔을 뻗으리라"

알론조는 자신을 돈키호테라 칭하며 진정한 기사가 되기 위해 여러 가지 노력한다. 비록 남들이 미쳤다고 손가락질해도, 너무 멀리 있어 손에 닿지 않아도 절대 꿈을 포기하지 않는다. 돈키호테에게 꿈은 이루는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그를 향해 나아가는 과정도 더없이 소중하고 순수한 여정이다. 그리고 그 여정을 함께하는 관객들은 어느새 귀여운 '할배'의 매력에 푹 빠지게 된다.

돈키호테는 상대가 누가 됐건 함부로 평가하려 하지 않는다. 자신의 돈을 노리는 집시도 그 나름대로 사연을 부여하며 '자기 좋을 대로' 해석한다. 결국 돈을 모두 뺏겨 빈털터리가 된 돈키호테. 하지만 과연 관객들을 그를 바보라고 비웃을까? 개인적인 생각일 수도 있지만 아마 관객들은 그의 행동이 지극히 그답다고 생각할 것이다. 더없이 고결한 존재인 기사를 좇는 그를 미치광이라 손가락질하기에 너무나도 순수하게 꿈을 향해 나아가는 모습이 슬며시 미소 짓게 하기 때문이다.

   
 

이 작품은 뮤지컬이라기보다 구연동화를 보는 기분이 더 강하게 든다. 전반적으로 세르반테스가 이야기를 들려주는 형식이기도 하고, 넘버(노래)로 극을 전개하는 보통의 뮤지컬보다 그 비중이 덜하다. 그래서인지 '라만차의 기사', '이룰 수 없는 꿈' 정도를 제외하면 관객 귀에 콕 박히는 넘버는 별로 없다. 그래서 작품에 대한 호불호가 명확할지도 모른다. 관객을 압도하는 넘버를 기대했다면 살짝 실망할 수도 있겠지만, 뮤지컬 '맨 오브 라만차'는 음악보다 이야기에 초점을 맞춰 오히려 더 뚜렷한 색채의 뮤지컬이라 할 수 있다. 뮤지컬은 본래 연극, 즉 이야기가 먼저인 장르다. 철저히 기본을 중시한 작품이기에 간결하고 담백하며 묵직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마냥 관객들에게 극에 담긴 메시지를 이해하라고 윽박지르지는 않는다. 귀여운 할배의 모습에 웃고 울며 자연스레 그 메시지를 느낄 수 있도록 유도할 뿐이다.

다시 돈키호테의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돈키호테가 전하는 희망의 메시지는 임시방편일 수도 있다. 아니 그럴 확률이 높다. 그렇다고 해서 세 시간 남짓한 공연을 본 후 회의감이 드는가? 오히려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것을 느끼게 해준 돈키호테에게 감사함이 더 크다면 당신은 이미 꿈을 꿀 준비가 돼 있는 건지도 모른다. 현실이 각박해 그를 잠시 내려놓고 있었을 뿐이지 사실 언제나 꿈을 꾸고 그를 좇아가고 싶어 했던 것이다. 조금은 허무맹랑할지라도, 남들이 수군거려도 꿈을 꾸는 것이 어떠한가? 손을 힘껏 뻗어도 닿을 듯 말듯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이 본디 꿈이거늘.

문화뉴스 전주연 기자 jy@mhn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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