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님, 억울하게 지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어요."

▲ 7회까지 정확히 130개 투구수를 기록하고 마운드에서 내려 온 하준영(사진 맨 좌측). 하준영이 더그아웃에 오자마자 누구랄 것 없이 그와 얼써안기 바빴다. 사진ⓒ김현희 기자

[문화뉴스 MHN 김현희 기자] 지난 19일 종료된 제45회 봉황대기 전국 고교야구대회 마지막 경기는 연장 승부치기까지 가는 접전이 펼쳐졌다. 성남고가 3점을 선취하면서 신승하는 듯 싶었지만, 청소년 대표팀 하준영을 효과적으로 공략한 충암고도 두 점을 쫓아가는 등 경기 막판까지 알 수 없는 승부를 펼쳤다. 그리고 9회 말 2사 이후 충암고가 기어이 동점 적시타를 만들면서 승부는 연장으로 이어졌다. 이어 맞이한 10회 초 승부치기에서 성남고가 무득점으로 물러나자 충암고는 10회 말 반격서 기회를 놓치지 않고 1번 박수종이 좌익선상 적시타를 터뜨리면서 경기를 끝냈다. 3-0으로 시작된 경기가 4-3으로 끝난 이 경기는 왠만한 프로야구 경기에서도 볼 수 없었던 명장면이기도 했다.

그런데, 경기 직후 기운이 심상치 않았다. 일부 선수들이 인사를 하는 과정에서 맞부딪힐 수 있는 상황이 연출됐기 때문이었다. 이에 당시 현장에서 사진 촬영을 하던 본 기자를 비롯하여 심판 위원과 코칭스태프들이 "어이 두 사람! 떨어져 떨어져!"라며 말리고 난 이후에야 각자 더그아웃으로 돌아갔다. 역전에 성공한 충암고 선수들은 승리에 기쁨에 취해 있었지만, 다 이겼다고 생각했던 경기를 놓친 성남고 선수들은 주저앉아 좀처럼 일어날 줄 몰랐다.

또 다시 꺼내게 될 '판정'에 대한 이야기,
그 기획 의도와 전제 조건에 대하여

일단 본 기자는 충암고 이영복 감독부터 먼저 만났다. 이 감독은 "올해 정말 우리 학교 전력이 약하다. 그런데, 해 볼 만하다 싶을 때도 있었던 반면 너무 쉽게 패하는 경기도 많았다. 말 그대로 도깨비 팀이다. 오늘도 그러한 도깨비같은 모습을 보여 줬다. 경기 후반까지 '그래, 져도 좋다. 너희들이 알아서 잘 해 봐라!'라는 심정을 가졌는데, 오히려 놔 두니까 알아서 승리했다."라며 올 시즌 내내 어렵게 경기를 할 수밖에 없는 속사정을 털어놓기도 했다. 어찌되었건 간에 다득점을 한 팀이 승리를 가져간 것. 집중력에서 앞선 충암고가 좋은 경기를 펼쳤던 것 만큼은 부인할 수 없었다.

반면, 성남고 선수단은 너무 많은 회한을 남긴 채 그라운드를 떠나야 했다. 특히, 김종득 부장교사는 선수단 못지않게 흥분한 모습을 보이며, 경기 결과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을 취했다. "이게 학생 야굽니까? 정말 이래도 되는 겁니까? 내일 신문에는 그저 우리가 졌다고만 나오겠죠. 그리고 그게 끝이겠죠."라며, 기다렸다는 듯 분통을 터뜨렸다. 서울고 유정민 감독과 함께 고교야구에서 대표적인 '덕장'으로 알려진 성남고 박성균 감독도 좀처럼 고개를 들 줄 몰랐다. 프로를 포함하여 아마야구에서도 판정에 대해서는 누구도 억울함을 가져서는 안 되는 만큼, 본지에서는 청룡기 결승전과 마찬가지로 '피해자'라고 이야기하는 학교들의 목소리도 들어봐야 했다. 이에 앞서 다시 한 번 더 본 고의 기획 의도와 전제 조건을 먼저 밝히고자 한다.

1) 충암고의 역전승 가치를 떨어뜨리고자 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승리한 학교는 최선의 플레이를 펼쳤으며, 충분히 박수를 받을 만한 자격이 있다.

2) 심판 위원 전체를 폄하하고자 하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심판 위원 다수는 본인의 일에 대한 사명감이 투철한 경우가 많다. 특히, 주말리그도 중계방송하면서 심판 위원들도 보다 정확한 판정을 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다만, 오심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상황에 대한 일부 심판위원들의 판정을 비난하는 목소리가 많다. 이 역시 심판 위원 전체가 '공동의 책임'으로 받아들였으면 하는 당부를 보내고자 한다.

130구의 투혼, 하준영의 눈물
그리고 박성균 감독이 밝힌 '두 가지' 승부처

▲ 펑펑 울면서 그라운드를 떠나는 선수들을 지켜보는 것은 괴로운 일이다. 더 괴로운 것은 그러한 선수들의 뒷모습을 담는 일이다. 사진ⓒ김현희 기자

경기가 끝나자 박성균 감독은 그대로 고개를 숙였다. 김종득 부장교사는 때마침 더그아웃으로 찾아 온 본 기자에게 울분을 토했고, 선발로 나와 130구 투혼을 선보인 하준영은 그대로 주저앉아 펑펑 눈물을 흘렸다. 톱타자로 출장한 오혜성 역시 10회 1사 2, 3루 상황에서 범타로 물러난 것이 본인의 잘못인 것 같아 한동안 눈물을 거두지 못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모교를 응원하러 목동구장에 등장한 동문 어른들도 "이게 야구냐! 내일부터 목동 구장 정문 앞에서 1인 피켓 시위를 하겠다."라며 당장에라도 이를 실천에 옮기겠다는 뜻을 표했다. 그러나 김종득 부장교사도 그것만큼은 아니라고 생각했는지, 동문들을 진정시키면서 선수들을 이끌었다. 이에 본 기자는 학교로 돌아가는 버스에 탑승하는 선수단 사이에 있는 박 감독을 발견, 잠깐이라도 솔직한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하)준영이가 오늘 정말 베스트 컨디션이었습니다. 사실 투구수 127개 였을 때 바꿔주려 했는데, 본인이 공 3개로 이닝 마무리하고 싶다면서 내려가지 않더군요. 그래서 그냥 준영이를 믿고 그냥 내려왔습니다."

사실이다. 7회 말 투 아웃 상황에서 선발로 나선 하준영의 투구 숫자는 정확히 127개였다. 보통 때라면 이 쯤에서 무조건 투수를 바꿔야 했다. 실제로 박 감독도 7회 2사에서 박수를 치면서 하준영에게 다가섰다. 바꾸겠다는 뜻을 표했던 것이다. 그러나 하준영은 공 3개로 7회를 막겠다는 뜻을 표했다. 무엇보다도 성남고 유니폼을 입고 뛰는 마지막 경기였기 때문에, 아웃카운트 한 개라도 더 잡고 싶어 했다. 이 경기를 끝으로 청소년 대표팀에 합류하기 때문이다. 에이스의 고집에 박 감독도 마운드를 내려왔고, 스승이 내려가자마자 하준영은 포수 미트 정 중앙에 스트라이트 두 개를 꽃아 넣더니, 마지막 3구째도 정 가운데를 향하여 던졌다. 이를 의식한 듯, 타자도 공을 쳤지만 그 타구가 유격수 정면으로 향하며 직선타가 됐다. 정말로 공 3개로 아웃 카운트 하나를 잡아 낸 것이다. 하준영으로서는 본인이 할 수 있는 최고의 투구를 선보였다. 최고 구속 141km가 말해주듯, 하준영은 공이 아닌 투혼을 던졌다.

"그런데, 준영이 투구수가 7이닝에서 130개까지 갈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스트라이크 판정이 너무 애매해서 저도 어필을 했더니, 심판 위원은 공이 낮았다고만 이야기 하더군요. 어쩌겠습니까. 스트라이크 판정에 대해서는 더 이상 어필 사항이 아닌 만큼, 그저 지켜만 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박성균 감독의 말이다. 어필 상황이 아님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지만, 제자의 역투를 바라 본 박 감독은 어떻게든 경기 방향을 돌려보고 싶어했다.

두 번째로 박성균 감독이 아쉬움을 표한 장면은 9회 말 상황이었다. 충암고 5번 양우현이 몸에 맞는 볼 이후 도루로 2루에 살아 나간 상황에서 6번 김동호가 타석에 들어섰다. 여기에서 김동호가 삼진으로 물러 난 사이에 2루 주자가 견제로 아웃될 수 있는 상황까지 갔다. 아웃인지 세이프인지 애매한 상황에서 심판 위원은 세이프를 선언했다. 이에 박성균 감독을 비롯한 선수단은 허탈감을 표시했고, 이해할 수 없는 판정이라 생각했던 박 감독은 또 다시 어필을 목적으로 그라운드에 들어설 수밖에 없었다.

"비디오 판독이라도 가능했다면, 경기가 그대로 끝났을겁니다. 누구라도 억울한 상황에 놓이는 일이 없게 하기 위해서라도 비디오 판독이 진행됐으면 좋았을텐데..."

결국 박성균 감독은 말을 끝내지 못했다. 버스에 오르지 못했던 선수들도 좀처럼 눈물을 거두지 못했다. 물론 심판 위원의 판정에 대해서는 이의를 제기한다 해도 바뀌는 것은 없다. 그러나 어찌되었던 간에 이렇게 '억울하다'라는 목소리까지 외면할 수는 없는 일. 경기 직후 이러한 목소리도 있었다는 것을 알아주었으면 한다.

다행인 것은 성남고 선수단 모두 버스 탑승 이후에는 애써 웃음을 지으며, 시즌 마지막 경기를 치르고 난 다음 미련을 떨치는 듯한 모습을 보여줬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모습을 감안해서라도 서울특별시 측에서는 반드시 내년 시즌에는 예정됐던 '목동구장 카메라 설치'를 반드시 시행해 주기를 기원한다.

eugenephil@mhns.co.kr

주요기사

 
저작권자 © 문화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