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가 있는 날·예술이 있는 삶을 빛냅니다…문화뉴스] "당연히 어떤 부분에선 정치적으로 해석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것까지 제가 할 수 있는 부분은 없다. '위로공단'의 특징은 작품의 설명을 하는 것이 아니라 질문을 던지는 것이기 때문에 어떤 점에서 불편할 수 있다. 그러나 불편해도 들어주는 것 자체가 그분들에게 치유와 위로가 될 수 있으므로, 정치적 해석은 안 하셨으면 좋겠다."

'위로공단'을 만든 임흥순 감독이 지난 4일 CGV 왕십리에서 열린 언론/배급 시사회 자리에서 힘주며 이야기한 부분이다. '미술 올림픽'이라고 할 수 있는 제56회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한국 최초로 은사자상을 받으며, 많은 언론의 시선은 임흥순 감독과 그의 작품에 집중했다. 한국 미술과 영화 역사상 유례가 없었던 일이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5월, 임흥순 감독의 귀국 후엔 별도의 수상 소감을 들을 수 있는 기자회견이 진행되기도 했다.

미술과 영화, 두 예술 분야의 조합으로 이뤄진 작품 '위로공단'은 한국 역사 중 노동사의 절반에 해당하는 부분을 인터뷰와 추상적인 영상과 함께 보여준다. 1970년대 동일방직 노동자 투쟁, YH무역 농성사건을 경험한 '공순이'들의 이야기, 1980년대엔 구로동맹파업의 모습을, 2000년대엔 기륭전자 사태, 영화 '또 하나의 약속'의 소재인 삼성반도체 직원들의 이야기, 영화 '카트'의 모티브이기도 한 이랜드 노조 투쟁에 관련한 내용을 보여준다. 그리고 현재의 대한민국에선 한진중공업 크레인 농성, 120 다산콜센터와 항공사 승무원들의 애환을 그려낸다. 그뿐 아니라, 캄보디아 유혈사태에 관련한 내용과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처우 개선 역시 작품 안에 포함되어 있다.

임흥순 감독은 기자회견을 통해 본인의 가족 이야기가 계기가 되기도 했다고 밝힌 바 있다. 그는 "저희 어머님이 40년 가까이 공제봉장에서 '시다'로 일해오셨다. 여동생 같은 경우는 백화점에서 의류판매장, 냉동식품 코너에서 일했고, 형수님의 경우 보험설계사로 일종의 감정노동을 하고 계시는데, 이런 삶들을 지켜보면서 그게 머릿속으로 계획했던 게 아니라 제가 계속 몸으로 느꼈던 여성들의 삶. 미안한 감정, 고마운 감정이 있었다"며 영화를 만들게 된 계기를 전하기도 했다.

이처럼 수차례 기자회견과 간담회가 있었지만, 아직도 임흥순 감독에게 궁금한 점은 남아있었다. 영화 '위로공단'에서 인상적이었던 장면인 인터뷰 연출 에피소드, 퍼포먼스를 중간에 넣은 이유, 작품의 인터뷰 내용이 정치적 해석 논란이 이뤄질지도 모르는 우려, 많은 세대 중 20대가 이 작품을 봐야 하는 이유 등 다양한 질문을 지난 6일 아트나인 이수에서 직접 만나 들어봤다.

   
 

베니스 비엔날레 은사자상을 받은 이유는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미술의 사회적 역할을 중시한 오쿠이 엔위저 전시 총감독의 영향이 있을 것 같다.
ㄴ 비엔날레가 총감독의 성향에 따라 성격이 다를 순 있다. 정확한 건 알 수 없지만, 주변 분들에게 들어보니 현대 미술이 관념적, 이론적이어서 일반 관객들이 보기에 어려운 부분이 있다고 했다. 이번 전시에서도 예술이 사회에 어떤 역할을 하는지에 대한 부분이 있었다. '위로공단'은 그런 이론들을 쉽게 설명해줄 수 있는 작품이라고 본다. 특히 이 작품은 세계적인 이슈인 노동 문제와 연관된다. 한국뿐 아니라 아시아, 경제적 문제를 겪고 있는 그리스 등 문제가 크기 때문에 심사위원들을 포함한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라고 생각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취재원의 말, 이야기, 표현 방식, 눈빛, 신념이 전해졌다고 본다. 그분들의 힘이 컸다고 생각한다. 언어는 통할 수 없으나, 자막을 떠나 목소리의 톤과 이야기를 하는 표정이 주는 예술이 미학을 넘어선 것 같다.

영어 제목은 'Factory Complex(공업 단지)'로 어찌본다면 단순한데, 한국 작품명은 '위로공단'이다. 특별한 이유가 있다면?
ㄴ 가족이나 국가를 위해 열심히 일한 분들을 위해 위로를 해준 것이다. 위로를 해주셔야 하는 분들이 다들 사라졌다. 누가 숨기고 감췄는지는 모르겠지만, 위로를 해줘야 할 분들을 찾아 위로해 줘야 한다고 봤다. '구로공단'의 이야기만이 아닌데, 지명을 보여주는 면이 다양한 직업과 역사를 한정적으로 만드는 것 같았다. 예를 들어, 눈에 보이는 산업 공간뿐 아니라 다산콜센터처럼 감정노동 등의 변화를 소개하기도 했다. 그래서 추상적이지만 사람들한테 생각할 수 있고 상상할 여지를 주려고 했다.

인터뷰 형식으로 스토리라인을 구성했기 때문에, 그 사람들에겐 충분한 위로가 됐을 거라 본다. 스토리라인을 인터뷰로 짠 이유는 무엇인가?
ㄴ 기존의 영화처럼 서사 구조와 기승전결이 있는 내용의 작품은 만들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할 자신도 없었다. 새로운 서사를 만들고 싶었다. 그래서 서민들의 미학을 바탕으로 이야기하고 싶었다. 1978년 만들어진 '공장의 불빛'(편집자 주 : 김민기가 연출한 음악극이자 노래굿. '위로공단'에도 등장하는 동일방직 노조문제를 다뤘다.) '위로공단' 첫 장면에도 그가 만든 '야근'이 등장한다. 그때 당시의 자료를 보는데, 채희완 선생님이 안무하셨다.

   
 

그래서 찾아뵙고 퍼포먼스를 참고하려고 했는데, 재밌다는 생각이 들었고 본인이 고민한 것을 바탕으로 작품을 만들게 됐다. 서민들의 미학인 마당극처럼 기승전결이 아닌, 장마다 특징을 가져서 편집을 하려 했다. 여성노동자의 인터뷰도 기본으로 하면서 그들을 바라보는 가족들의 이야기도 많이 했다. 미학적으로 했다면 인터뷰 사이의 퍼포먼스를 더 구성했겠지만, 일과 삶에 밀접하고자 해서 어렵게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따라와 작품을 봐주셨으면 좋겠다.

인터뷰 장면 역시 지루하지 않도록 다양한 구도로 보여준다.
ㄴ 그분들을 만나면서 이야기 말을 듣는 것도 중요하지만, 단순히 정보 차원이 아니라 그분들의 느낌을 좀 더 담고 싶었다. 그분들의 역사, 성격, 해오신 일들, 그리고 아마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슬픔, 고통, 행복감 등을 어떻게 보여줄 수 있을지 고민했다. 그분들이 계신 공간을 어떻게 인물과 어울릴 수 있을지에 대해서도 노력했다. 단순히 인물 이야기만 듣는 것이 아니라 바라보는 사람, 관객들도 어떻게 고민해야 할지에 대해서도 생각했다. 흔히 다큐멘터리라고 하는 익숙한 프레임 크기의 거리감을 벗어나고 싶었다. 우리 현실 공간에서도 이어지는 영화 속의 영화처럼 보이기 위해 노력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인터뷰는 무엇이었나?
ㄴ 크레인 농성을 했던 김진숙 선생님, "본인이 만든 나이키 신발을 신고 싶다"고 말했던 강명자 선생님 등 여러분들의 이야기가 기억이 남는다. 특히 이총각 전 동일방직 노조위원장님이 기억에 남는다. 두 번 인터뷰했는데, 첫 번째 인터뷰 때 여러 이야기를 하셨다. 많은 감동도 받았고, 절제해야 하는 부분도 있었기 때문에 최대한 담담히 있었다. 그런데 촬영을 마치고 차를 몰고 인천에서 서울로 강변북로를 타고 오는데 그분이 살아온 삶이 스며들었다. 다시 생각나면서 울면서 운전을 했던 기억이 난다. 그분이 제가 될 수 없으므로, 그분의 심정을 이해하려고 하는 노력, 과정, 자세, 태도 등이 덕목이라 생각했다. 정보, 사건을 서술하고 기록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사람이라는 것을 먼저 생각하는 것이 중요하다.
 

   
▲ 지난 4일 열린 '위로공단' 언론/배급 시사회에서 임흥순 감독(왼쪽), 인터뷰이로 출연한 강명자(가운데), 김민경 프로듀서(오른쪽)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한국의 노동운동사를 소재로 하다 보니 현재 정권에 대한 비판적인 내용의 장면이 인터뷰와 화면으로 등장한다. 특별한 정치적 이유는 없었나?
ㄴ 먼저 정치에 큰 관심은 없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을 더 행복하게 하고 살아갈 수 있느냐고 고민하는 사람인데, 이런 작품을 해서 나 혼자 사는 것은 무의미하다. 같이 사는 사람들의 행복한 얼굴을 보고 싶지, 불행한 얼굴을 보고 싶지 않다. 함께 행복할 방법은 무엇인지에 대해 고민하고 작업하게 됐다.

이 영화가 노사 간의 갈등 문제보다 지켜보는 대중들, 시민들이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았다. 노동자들도 힘들지만, 사측도 힘든 부분이 많다. 회사도 하고 싶은 이야기는 많지만 못한 이야기도 많을 것이고, 노동자 입장에서도 할 이야기가 많지만, 할 곳도 없다고 봤다. 그걸 들어줬으면 좋겠고, 회사가 감싸주고 국가가 이해해줬으면 한다는 생각을 한다.

저도 현 정부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이 불편하고 자기검열이 있기 때문에, 그렇게 이야기하지 마시고 다르게 말씀하라고 할 순 있지만 그건 아닌 것 같았다. 그때 느꼈던 감정과 하고 싶으셨던 이야기를 제가 막으면서 하는 건 아니라고 봤다. 부정적인 시선의 이야기가 분명 있을 것이고, 실제 존재했던 피켓도 그분들의 과거와 현재를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것인데 그것을 정치적으로 해석하는 건 아닌 것 같다. 삶의 문제는 모두가 해결해야 하는 문제다. 그것은 여당, 야당, 진보, 보수 모두 불편해야 하는 것이 맞는다고 본다. 모두 미안함의 감정을 갖는 것이 바르다고 본다.

정치는 국민을 위해서 하는 것이다. 그런데 정치인들이 이 작품을 본인들이 자기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기 위해 정치적으로 보면 어쩔 수 없다. 이것 또한 소통의 길이고 참여하는 길, 다양성이라고 본다. 불만을 받아주는 것 또한 잘 된 국가의 몫이다. 어느 시대나 불만들은 있을 것인데 그걸 안아줬으면 좋겠다. 너무 정치적으로 해석하려 하지 말고, 사람의 일에 대한 문제로 생각하는 것이 효율적이며, 합리적인 것 같다.
 

   
 


TV 다큐멘터리를 주로 본 대중들이 이 작품을 보고 불편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개미, 잠자리 등 곤충들과 얼굴을 가린 사람들의 모습이 인터뷰 중간에 들어간다.

ㄴ 곤충들은 작고, 하찮고, 보잘것없다는 은유적 상징체이기도 하다. 이처럼 하찮고 보잘것없다고 생각하는 곳에서 일하시는 분들이 많다. 사회를 지탱하는 또 하나의 힘이기 때문에, 은유적으로 보여주고 싶었다. 그리고 이런 상황은 사람만의 문제는 아니다. 사람뿐 아니라 동물, 자연, 환경까지 넓게 바라볼 문제라고 봤다. 사람에 한정적으로 이야기한 것이 아니라 넓은 의미에서 같이 살아가고자 하는 과정에 대해 보여주고 싶었다.

얼굴을 가린 장면들은 1970년대에 일하시는 분들이 지하 봉제공장에서 먼지나 실밥들이 눈, 귀, 코, 입에 많이 들어가셨다고 했다. 살고자 하는 일터에서 당시 죽음이라는 공간도 생각이 들었다. 이처럼 잊어버리거나, 신경을 못 쓰고 감춰놓은 '공순이'를 만들어드리고 싶었고, 삶의 일과 노동의 가치를 보여주는 의미에서 그런 퍼포먼스를 진행했다.

기자간담회 당시, 20대가 이 작품을 많이 봤으면 좋겠다고 한 이유는?
ㄴ 이 작품을 한 이유가 지금까지 일해오신 분들에 대해 위로라고 했지만, 저는 많은 부분이 20대를 위한 것이라고 봤다. 출연하신 분들이 얘기하셨던 것이 떠오른다. 본인들은 이미 어려운 시기를 어찌 되었던 간에 건너왔다. 앞으로 그 험한 세상과 다리를 건너올 후배들, 자식들에 대해 걱정을 한다. 너무 뻔한 이야기겠지만, 이런 노동 환경을 이해하고 알려주면 자신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 어떻게 견뎌낼 수 있을지에 대해 알려줄 기회가 될 것이라 봤다.

물론 20대도 힘들다. 학교에서 취직하기 전까지 힘든 상황이다. 이 사람들이 나보다 더 힘들게 살고 있어서, "난 아무것도 아니야"가 아니라 상대방을 위로하고 이해하면 자신에게 오는 것이 있을 거라 봤다. 단순히 동정심으로 도와주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찾아가고, 자신의 역할을 변화시키는 길이기도 하다. 개인의 가치, 존엄성, 일의 의미를 찾아가는데 자신의 옆과 뒤를 보는 일이 저는 큰 위로라고 봤다. 삶을 질적으로 좀 더 풍성하게 살아가는 길일 것 같다.

앞으로의 작품 활동 계획이 궁금하다.
ㄴ 모든 삶이 그렇지만, 삶이 계획처럼 되지 않다. 계획대로 하고 싶진 않다. 계획이 벗어날 때, 괴로워하는 게 아니라 그 상황을 즐기고 다른 변화와 작품으로 이어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봤다. 인생도 옆으로 벗어날 수 있을 때, 실패하고 잘못되고 시련일 수도 있지만 어떻게 활용하는가가 중요한 것 같다.

현재 계획은 만들고 있는 단편을 장편으로 발전시키려 한다. '한 가족 작업'으로 이웃 지역 공동체가 이웃 국가로 확장하려려 한다. 이는 또 하나의 저를 찾아가는 길이고, 한국의 또 다른 모습을 찾아가는 길이라 본다. 한국 안에서 머물 것이 아니라 문화 한류를 같이할 수 있는 부분을 찾는 것에도 영향을 줄 것이다. 이 역시 예술이 할 수 있는 일이다.

끝으로 하고 싶은 말은?
ㄴ '위로공단'은 예술영화라는 한계점이 있다. '국제시장'이 남성과 아버지 세대의 이야기를 상업적으로 많은 공감과 감동을 이끌었다면, 이 작품은 여성과 어머니의 시각을 다른 방식을 통해 감동을 줄 수 있다고 봤다. 보시는 분들이 한쪽만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하게 접하고 자신에게 맞는 것을 찾길 바란다.

[글] 문화뉴스 양미르 기자 mir@mhns.co.kr
[사진·영상] 엣나인필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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