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마가 있는 야구_대통령배 고교야구 준우승팀 성남고 야구부 이야기
[문화가 있는 날·예술이 있는 삶을 빛냅니다…문화뉴스] 우승이 눈앞에 다가온 것 같았다. 감독 부임 이후 4년 만에 모교를 전국 무대 결승에 오른 이 젊은 감독은 9회 초 공격서 제자들이 3점을 추가하자 조심스럽게 '우승'을 생각했다. 6회부터 에이스 성재헌을 구원 등판하러 올라온 1학년 하준영도 겁 없는 투구로 8회까지 상대 타선을 무실점으로 막은 터였다. 남은 것은 9회 말 수비, 단 한 번뿐이었다.
그러나 스포츠는 저 유명한 '요기 베라(전 뉴욕 양키스 선수/감독)'가 언급했던 것처럼, 끝날 때까지 끝난 것이 아니었다(It ain't over 'till it's over). 큰 경기를 자기 손으로 끝내야 한다는 부담감 때문이었는지, 이제 갓 중학교를 졸업한 1학년 선수는 상대 타선에 난타를 당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내 7번 김태진의 싹쓸이 3루타가 터짐과 동시에 경기는 연장으로 넘어갔다. 9회 초까지만 해도 7-2로 앞서고 있어 우승은 어렵지 않을 것 같았던 학교가 눈앞에서 거짓말 같은 동점을 허용하고 만 것이었다. 그렇게 성남고와 광주일고가 만났던 '제49회 대통령배 전국 고교야구 대회 결승전'은 역대 고교야구 사상 최고의 혈전으로 기록될 만큼 뜻하지 않게 극적인 승부로 이어지게 됐다.
그라운드에 흘린 눈물, 누가 성남고를 패자라 부르는가?
7-2의 여유로운 점수 차에서 동점이 되자 성남고 박성균 감독도 고개를 떨구었다. 에이스 성재헌을 앞으로 내세우면서 상대의 허를 찌르는 작전이 통하는 듯싶었지만, 겁없는 신예라 자부하던 하준영이 결정적인 순간에 상대 기 싸움에서 밀렸던 것이 치명타였다.
"(하)준영이는 내일의 에이스입니다. 지금도 잘 던지지만, 내년과 내 후년에는 분명히 전국을 대표하는 투수가 될 겁니다. 두고 보십시오." 성남고 박성균 감독의 말이다. 하주석(한화)과 같이 1학년 때부터 두각을 나타내면서 이영민 타격상을 받는 신예들이 간혹 나타난다는 점을 생각한다면, 하준영 역시 올해 기대 이상의 활약을 펼쳐주고 있는 신예임이 틀림없다. 다만, 그 어린 선수가 전국대회 결승이라는 큰 무대를 100% 소화하기에는 그 부담이 상당히 컸던 것 또한 사실이었다.
경기가 7-7 동점인 상황에서 연장에 들어섰지만, 성남고 선수들은 결코 '포기'라는 단어를 머릿속에 담아두지 않았다. 10회 초 투 아웃 만루 상황에서 4번 이동규가 주자 둘을 불러들이는 적시타를 기록하며 다시 9-7 리드를 잡았기 때문이었다. 연장 상황에서 1, 2점은 큰 점수였다. 정규 이닝에서 우승을 확정할 기회는 놓쳤지만, 10회 말 수비만 잘 소화하면 또다시 우승을 가까이할 수 있었다. 그러나!
승리의 여신은 이번에도 성남고를 가혹하게 만들었다. 만루 상황서 김태진의 적시타와 8번 정찬식의 스퀴즈로 경기 흐름을 다시 9-9 동점으로 만들었기 때문이었다. 이쯤 되면 승패를 떠나 경기가 빨리 끝나기만을 바랐을 수 있었다. 하지만, 성남고의 근성은 연장 승부 내내 단 한 번도 꺾이지 않았다. 11회 초 공격에서도 8번 전경원의 적시 2루타로 다시 한 점을 더 앞섰기 때문이었다. 단 한 번의 수비만 버티면 이번에도 우승은 성남고의 차지가 될 수 있었다.
하지만, 더 극적인 드라마는 11회 말 광주일고 공격에서 만들어졌다. 1사 만루 상황에서 5번 신제왕의 밀어내기 볼넷으로 10-10 다시 동점을 만들었기 때문이었다. 설상가상으로 경기 중반부터 내린 비가 목동구장을 촉촉이 적시고 있어 공을 던지기에도, 수비하기에도 상당히 어려운 상황이었다. 타석에 들어선 타자들 역시 투수들의 공을 제대로 볼 수 없었다. 그러한 상황에서 다시 투 아웃이 만들어졌고, 타석에는 결승전 맹타의 주인공, 김태진이 다시 들어섰다. 연거푸 볼 3개를 던진 이후 다시 스트라이크 두 개를 허용한 김태진은 6구째에 방망이를 휘둘렀다. 그러나 타구는 3루수 이동규 머리 위로 날아가 잘만 잡으면 다시 12회 초 연장에 임할 수 있었다. 바로 그때!
수비하던 이동규가 갑자기 주춤했다. 조명탑이 켜진, 더구나 비가 오는 밤의 목동구장은 웬만한 프로선수들도 높이 뜬 타구를 처리하기 어려웠기 때문이었다. 이리저리 자리를 잡던 이동규는 결국 타구를 놓쳤고, 그것으로 3루 주자가 홈을 밟으면서 경기는 끝났다. 그 순간, 성남고 선수들은 누구랄 것 없이 그라운드에 주저앉아 펑펑 울었다. 그 모습을 본 성남고 응원석의 학부형들과 동문 선/후배들도 눈물을 보이긴 마찬가지였다. 최종 스코어는 11-10, 광주일고의 우승이었다. 사상 첫 대통령배 우승을 꿈꿨던 성남고의 바람도 결국은 다음을 기약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현장에 있던 누구도 성남고를 패자라 부르지 않았다. '객관적인 전력'이라는 편견을 이겨내고 당당히 준우승을 차지한 팀이라고 부를 뿐이었다. 이에 동문 선/후배들도 모두 그라운드에서 눈물 흘리는 선수들을 격려하기에 바빴고, 박성균 감독도 경기 후 선수들을 일일이 안아주면서 최선을 다한 제자들에게 스승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고마움을 표했다. 그것이 지난 7월 23일 끝난 대통령배 고교야구 결승전의 모습이었다.
한 달여가 지난 현재, 성남고는 또 다른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2016 신인지명 회의를 앞두고 열리는 대한야구협회장기에서 다시 한 번 우승에 도전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앞서 열린 감독자 회의에서 만난 박성균 감독도 "방학이지만, 선수들이 구슬땀을 흘리면서 훈련에 임하고 있다."라며 근황을 전하기도 했다. 대통령배 대회의 최고 히트 상품인 좌완 성재헌과 동문 선배인 박병호(넥센)의 고교 시절보다 낫다는 평가를 받는 이동규가 버티고 있는 성남고가 남은 대회에서 또다시 '작은 기적'을 만들어낼 수 있을지 지켜보는 것도 자못 흥미로울 듯싶다.
그들의 도전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문화뉴스 김현희 기자 eugenephil@mhn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