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뉴스 MHN 장기영 기자] '천사 - 유보된 제목(이하 천사)'이 오는 29일부터 다음 달 3일까지 남산예술센터에서 공연된다. 

연극 '천사'는 극장에 별다른 치장을 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주며, 관객 개개인을 위한 공연 진행으로 구성됐다.

공연 관람을 위해 극장에 도착하는 관객은 MP3 플레이어를 지급받는다. 관객은 지급받은 MP3 플레이어 속 지시에 따라 남산예술센터로 입장한다. 60분 동안 평소에 접근할 수 없었던 장소들을 대면하게 되고, 공연의 마지막 부분에서 VR을 통해 그동안 살펴본 공간을 다른 관점으로 다시 돌아보는 시간을 가진다.

작품의 제목은 나치를 피하는 긴 여정 도중 스스로 목숨을 끊은 철학가 발터 벤야민의 「역사철학테제」서 인용됐다. 벤야민은 이 글에서 죽음을 앞두고 탈무드에 기반을 둔 종교학과 마르크시즘에 입각한 정치학을 기묘하게 섞은 자신의 역사관을 정리한다. 

이 글에서 벤야민은 본인의 애장품이기도 한 파울 클레의 드로잉 '새로운 천사'를, 도래하지 않은 구원에 대한 희망과 절망이 섞인 그의 문학적 사상의 중심에 놓는다. 그림 속 천사의 얼굴에서 그는 순수함 속에 깊이 스며든 멜랑콜리와 공포를 발견하고 이를 현실에 대한 고독한 통찰로 이어냈다.

"천사의 얼굴은 과거를 향하고 있다. 우리가 여러 다른 사건들로 파악하는 과거가 천사의 눈에는 하나의 거대한 대참사로 보인다. 그것은 천사의 발 앞에 계속 잔해들을 게워낸다. 천사는 그곳에 머물며 죽은 자들을 깨워내고 부서진 것들을 다시 온전한 하나로 복원하고 싶어한다. 그러나 천국으로부터 불어닥치는 폭풍이 그의 날개를 꺾고, 그 과격한 힘을 이길 수 없는 그는 미래로 떠밀린다. 하늘을 향해 치솟는 엄청난 잔해 더미를 바라보기만 하면서." (발터 벤야민)

서현석 연출은 "최근의 대한민국은 이러한 천사를 갈구했을지도 모르겠다"며, "'천사'는 벤야민의 문학적 상상에서 모티프를 가져와 관객 한 명 한 명에게 거칠면서도 고독하고 몽환적인 연극적 상황을 제안하는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몽환적인 감각들로 채워진 극장의 공간들과 영상을 통해 만나게 될 환상은 관객의 내면을 반영한다. 극장 안에서 만나는 환영이 작품 제목처럼 천사로 남을지 혹은 다른 것으로 기억될지는 작품을 만나는 관객의 몫이다. 작품은 음영이 뒤바뀐 거울처럼 관객의 마음을 비춘다.

이번 공연의 연출을 맡은 서현석은 영등포 시장('영혼매춘'), 세운상가('헤테로토피아'), 서울역('헤테로크로니'), 전시장('연극 - 서현석展') 등의 다채로운 장소에서 퍼포먼스를 선보인 바 있다. 

일반 공연의 관객은 객석에 앉아 무대장치와 희곡을 통해 공동체적 감각을 공유한다. 하지만 서 연출은 관객의 체험이 무대에서 객석으로 전달되는 것이 아닌, 관객이 직접 걸으며 현장과 유기적으로 어우러지는 상황을 경험하는 장소특정 퍼포먼스 작품들을 제작해왔다.

60분 동안 한 명의 관객이 극장을 여행하는 '천사 - 유보된 제목'은 하루 40명의 관객만 관람할 수 있으며, 예매를 통해 사전 예약된 시간에만 공연이 진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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