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바르샤바에서 개인적 도구(1969)를 시연 중인 크지슈토프 보디츠코, 1972, 우치 미술관 소장

참고기사: [문화 生] 세계적인 미디어 아티스트 '크지슈토프 보디츠코'…"공공의 장을 통해 사회적 변화가 이루어져야"

[문화뉴스 MHN 권혜림 기자] 지난달, 폴란드 출신의 세계적 미디어 아티스트인 '크지슈토프 보디츠코'의 기자간담회가 서울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렸다.

지난해 5월, 처음 한국을 찾은 보디츠코는 그로부터 약 1년여에 걸쳐 '나의 소원 My Wish'(2017) 이라는 작품을 완성하여 내놓았다. 작품 '나의 소원'은 독립운동가인 백범 김구 조각상의 얼굴과 손, 그리고 발에 한국 사회 구성원들의 다양한 목소리가 영상으로 랩핑되는 프로젝션 작업으로 세월호 참사로 아이를 잃은 어머니, 해고노동자, 탈북 예술가, 귀화 영화배우, 동성애 인권 운동가, 소외되는 노인 등 지금 한국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상처와 고통을 담아 내었다.

▲ 나의 소원, 2017 ⓒ국립현대미술관(MMCA)

보디츠코는 '나의 소원'에 드러난 백범 김구가 꿈꾸던 '이상적인 사회에 대한 기대'에 끌려 이 작품을 만들게 됐다고 밝혔다. 해방이 되고 드디어 하나의 국가로 '독립'을 맞이했지만 그것이 김구 선생이 그토록 염원한 '자주 독립'을 이룬 모습의 나라였을까? 그가 말한 '나의 소원'은 이 땅에서 이루어진 적이 있을까?

광복 72주년을 맞이하는 오늘날, 우리가 상기해야할 점은 무엇이며 광복은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지, 최근 문화계의 동향을 통해 그 의미를 되짚어본다.

한국인이 몰랐던 '하시마섬'의 아픈 역사, 영화 '군함도'를 통해 재조명되다

최근 개봉한 영화 '군함도'에 대한 논쟁으로 열기가 뜨거운 가운데 일본 '하시마섬'의 진실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하시마섬'은 일제 강점기 당시 전범 기업인 '미쓰비시'가 소유하고 있던 섬으로 섬 전체가 탄광으로 개발되었고 최신식 아파트와 오락시설들이 갖춰진 화려한 도시였다. 일본인들과 하시마섬을 방문하는 방문객들에게는 화려한 산업화의 꽃을 피운 상징적이고 자랑스러운 역사로 홍보가 되고 있지만, 실상은 이곳으로 강제징용된 한국인들에게 '지옥의 섬'으로 불렸던 곳이다. 

▲ 일명 '군함도'로 불리는 하시마섬

일반인들에게 이 사실이 알려지게 된 건 2015년 MBC 버라이어티 프로그램 '무한도전'을 통해서다. 일명 '군함도'로 불리는 '하시마섬'의 진실을 파해치던 서경덕 교수 팀이 무한도전과 함께 일본을 방문하여 묻혀져있던 역사를 알리면서 처음 주목을 받게 되었다.

위안부 문제와 마찬가지로 이들은 모두 좋은 대우로 돈을 벌 수 있게 해주겠다는 말에 속아 징용을 당해 탈출은 꿈꿀 수도 없는 섬에 갇혀 해방이 될 때까지 말못할 온갖 고초를 겪으며 강제노동을 당해야했다. 이러한 일본의 만행은 1920년부터 1945년까지 자행되었다.

▲ 용산역광장에 건립된 '강제징용 노동자상' ⓒ권혜림기자

이에 대해 일본 정부는 이 사실을 인정하고 반성을 하기는 커녕 광복 70년을 맞이한 2015년, 조선인의 강제징용 사실은 모두 누락시킨 채, 유네스코에 하시마섬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하기에 이른다.

하지만 여러 사람들의 노력 덕분에 '군함도'가 재조명받고 미디어에 노출이 되면서 일반에도 알려져 관심이 모아지면서 지난 12일 용산역 광장에는 '강제징용 노동자상'이 세워졌다.

▲ 용산역광장에 건립된 '강제징용 노동자상'에 놓여진 꽃다발 ⓒ권혜림기자

이는 일제강점기 당시 일본은 물론 사할린·남양 군도·쿠릴열도 등의 광산·농장·군수공장·토목공사 현장으로 강제징용 당하고 비참한 생을 마친 한국인들을 기리고 이 비극적 역사를 잊지 말자는 뜻을 새긴 상이다. 그러나 이마저도 정부로부터 정식적인 부지 허가를 받은 상태는 아니여서 동상건립 의의에 큰 힘을 싣지 못하고 있다. 

▲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반세기가 지난 '현재 진행형' 사건, '일본 위안부 성노예 피해자' 문제

위안부 존재에 대한 공식적인 인정과 사죄 문제는 한일관계의 진전을 발목잡는 오래된 문제다. 위안부 할머니들의 항의의 뜻을 전달하는 의미에서 처음 시작된 '수요집회는' 1992년 첫 집회를 가진 이래 계속 진행 중이다. 첫 수요 집회 당시 정부에 공식 등록된 위안부 할머니들의 숫자는 234명이었지만 이미 생존자의 대부분이 고령이었기에 이후 질병과 노화로 많은 분들이 돌아가셨다. 올해에도 벌써 할머니 몇 분이 돌아가신 상태고 2017년 8월 현재 기준으로 37명이 생존해 계신다.

여성의 권리와 인권에 대한 인식재고에 대한 목소리가 사회 곳곳에서 점점 더 높아지고 있는 요즘, 위안부 문제는 단지 국가만의 문제가 아닌 우리 사회 문제의 집약체라는 생각이 들게한다. 위안부 문제를 한일간의 '역사문제'로 규정하기 이전에 이것이 '집단적 강간'이 국가라는 이름 하에 자행된 '성폭력 사건'으로 본다면 이 문제의 본질에 좀 더 쉽게 다가갈 수 있지 않을까?

▲ 일본 위안부 소녀들의 이야기를 재조명한 영화 '귀향' 중 한 장면

광복 후에도 '위안부'였다는 이유만으로 '창녀'라는 이름으로 낙인찍혀 매도당하고 오랜시간 동안 한국 사회에 온전히 융화되어 살아갈 수 없었던 것은 우리 사회가 가부장제의 폭력적인 시선이 만연한 사회였기 때문이다. 이것은 성폭력 피해자들이 겪는 2차 폭력이다. 그리고 이 역사적 문제를 매듭짓지 않은 채, 피해자를 오랜시간 동안 이러한 폭력에 노출되도록 용인하고 '사회적 약자'로 방치시킨 국가의 책임을 묻는 '사회적 문제'다.

현재 한국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온갖 성폭력과 인권에 관한 문제들, 그리고 그것을 바라보는 시각의 문제가 '일본 위안부'라는 해결되지 않은 오래된 역사에 집약적으로 담겨있다. 그렇기에 위안부 성노예 피해자 문제는 과거사가 아닌 '현재진행형'의 문제다. 이 문제가 제대로 해결되지 않은 상태로 우리 사회의 성폭력 문제와 인권의 위상이 높아졌다고 감히 얘기할 수 있을까?

▲ 지난해 11월, 대통령 탄핵을 위한 촛불집회의 모습, 광화문 광장 ⓒ권혜림기자

오늘날 민주주의 대한민국에서 '광복'의 새로운 의미

광복을 맞이한 이후로도 '주권'에 관한 문제는 항상 물음표였다. 강대국 사이에 둘러싸인 약소국의 숙명처럼 광복 후에도 우리는 일본과의 관계에 있어서도, 그리고 미국과의 관계에 있어서도 중요한 외교문제에서는 주권을 내세운다 할 만한 모습을 보이지 못했다. 외교적으로 상실된 주권이 제자리를 찾지 못하는 동안 국민들은 크고 작은 사건들을 겪으며 점차 성숙한 시민의식을 갖춰나갔고 마침내 진정한 주권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물음을 던지며 '국민주권'으로까지 그 의식을 확장한다. 그것을 가장 잘 보여준 지점이 바로 지난해 한국사회에 변곡점을 찍은 '탄핵촛불집회'다.  

▲ 지난해 11월, 대통령 탄핵을 위한 촛불집회의 모습, 광화문 광장 ⓒ권혜림기자
▲ 지난해 11월, 대통령 탄핵을 위한 촛불집회의 모습, 광화문 광장 ⓒ권혜림기자

보디츠코는 우리가 결코 타인의 고통의 깊이에 가 닿을 수는 없지만, 타인의 고통에 대해 귀 기울일 수 있으며, 또한 귀를 기울여야하는 의무가 있다고 말한다. 보디츠코가 지난 정부에 대한 탄핵 집회가 한창이던 2016년 12월 광화문 광장을 직접 찾았을 때, 그는 광장을 가득 메운 사람들을 보고 깊은 인상을 받았다고 말했다. 억압과 차별을 견디며 박탈감에 고통 받던 많은 사람들이 모여 이상적인 국가와 민주주의의 의미, 그리고 인간다운 삶의 조건을 묻는 목소리를 내는 모습에서 김구가 70년 전, 대한민국에 던진 물음을 그는 다시 한 번 떠올렸다고 했다.

▲ 세계적인 미디어 아티스트 '크지슈토프 보디츠코'(Krzysztof Wodiczko)

우리에게 지난 2016년과 현재 2017년은 타인에 대한 고통을 공감하고 연대하는 경험을 통해 민주주의에서의 과연 '주권'이 무엇인지, 주체를 가지고 행동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에 대한 역사를 만들어낸 한해였다고 볼 수 있다. 그 지점에서 우리는 진정한 의미의 광복을 만들어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광복절을 맞이한 오늘, 매년 돌아오는 공휴일처럼 의례적으로 맞이할 수도 있는 날이지만 현재의 광복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를 생각해본다면 올해의 광복절에는 좀 더 남다른 의미를 선사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런 의미로 김구 선생님의 '나의 소원' 전문 중 일부로 글을 마칠까 한다. 

"나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 
가장 부강한 나라가 되기를 원하는 것은 아니다.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문화의 힘은 우리 자신을 행복되게 하고, 나아가서 남에게 행복을 주겠기 때문이다. 
지금 인류에게 부족한 것은 무력도 아니오, 경제력도 아니다. 

인류가 현재에 불행한 근본 이유는 인의(仁義)가 부족하고, 
자비가 부족하고, 사랑이 부족한 때문이다. 
이 마음만 발달이 되면 현재의 물질력으로 20억이 다 편안히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인류의 이 정신을 배양하는 것은 오직 문화이다.

최고 문화로 인류의 모범이 되기로 사명을 삼는 우리 민족의 
각원(各員)은 이기적 개인주의자여서는 안된다. 
우리는 개인의 자유를 극도로 주장하되, 그것은 저 짐승들과 같이 
저마다 제 배를 채우기에 쓰는 자유가 아니요, 제 가족을, 제 이웃을, 
제 국민을 잘 살게 하기에 쓰이는 자유다. 
공원의 꽃을 꺾는 자유가 아니라 공원에 꽃을 심는 자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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