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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게는 해피엔딩이었어요."

연극 '필로우맨'에서 카투리안 역할을 맡은 배우 정원조를 만났다. 그는 철저히 카투리안에 몰입하고 있었고, 카투리안과 비슷한 점이 많은 사람이었다. 이야기를 사랑하는 카투리안은 잔혹한 이야기를 쓰는 작가다. 그가 쓴 이야기들은 획기적이었지만 비극적이고 잔인했다. 이야기의 주인공들은 마치 카투리안과 형 마이클의 불우한 어린 시절을 압축해 담고 있듯이, 비참하고 불행한 결말을 맞이했다.

연극의 엔딩 장면에 대해 얘기 나누며, 그는 이렇게 말했다. "제게는 해피엔딩이었어요"라고 말이다. 연극을 보지 않은 많은 관객들을 위해 스포일러의 역할을 자처할 생각은 없다만, 결코 해피엔딩으로 확언하며 말할 수 있는 내용은 아니다. 그런데 그는 자신에게 있어서, 아니, 카투리안에게 있어서 그처럼 행복한 결말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의 생각이 궁금해졌다. 그가 마주하는 '필로우맨'은 어떤 것이고, 그가 몸담고 있는 '연극계'란 어떤 곳일까. 연극인으로서 어떤 시선을 가지고 세상을 대하고 있던 것일까. 지난 8일, 우리는 연극이 공연되고 있는 두산아트센터 로비에서 그를 만났다. 그리고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연극 '필로우맨' 공연

그 동안의 근황이 궁금하다.
ㄴ워크샵 작품 두 개 정도 하면서 지냈다. 그리고 얼마 전에 서울연극제에서 '불량청년'에 출연했었다. 짧게 공연하는 작품들 여럿에 출연하며 지냈다.

연극 '필로우맨'의 카투리안이란 캐릭터 배역을 맡으셨다. 카투리안을 소화하기 위해 어디에 중점을 두었나.
ㄴ대본에서 카투리안이 가장 원하는 게 뭔지 그것에 초점 맞췄다. 이 연극은 '이야기'가 중요했다. 카투리안이라는 역할 자체가 '이야기'를 굉장히 중요시하기도 했지만, 극 자체 내에서도 여러 가지 이야기들이 잘 전달되어야 이 작품만의 재미를 살릴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중간 중간 삽입되는 잔혹동화 식 이야기들을 관객들에게 최대한 잘 전달하기 위한 연습에 노력을 기울였다.

카투리안은 '이야기'를 매우 사랑하는 인물이다. 실제로도 이야기를 좋아하는가.

ㄴ평소에 책을 보는 것을 참 좋아한다. 특별히 장르를 가리진 않는 편이고, 현재는 머리가 많이 복잡하고, 쉬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추리소설 하나를 읽고 있는 중이다.

주로 어떤 책을 좋아하는가.
ㄴ사람들 얘기 나오는 것을 좋아한다. 특히 자기고백적인 수필 같은 것들을 즐겨 읽는다.

   
 

그동안의 출연작('알리바이 연대기', '왜 나는 조그마한 일에만 분개하는가' 등)을 보니 관객과 연극 사이의 입체적이고도 경계적 선상에 있는 역할을 꽤 맡아왔다. 이번 연극의 카투리안도 '이야기'와 '현실'의 경계에 있는데, 이런 경계선상에 있는 인물들과 평면적인 인물들의 연기를 할 때 뭐가 다르게 느껴지는지, 그리고 이런 역할을 소화하는 '정원조만의 방식'이 있다면?
ㄴ특별한 방법은 없었다. 작품에 그렇게 쓰인 캐릭터들이었기 때문에 내 연기 또한 자연스레 그에 맞춰졌다. 그렇지만 그 역할들은 확실히 관객한테 직접적으로 얘기를 해야 하는 역할들이었기 때문에 다른 인물들과 남다른 점은 있다. 이번 작품에서도 극적인 장면들이 있긴 하지만, 동화를 들려주는 주는 장면이 많다. 그런 장면에서는 관객에게 편안하게 얘기하고자 노력한다. 더 직접적으로 관객들 개개와 일대일로 얘기하는 것처럼 느껴지도록 말이다. 아직도 많이 지적받는 부분이긴 한데, 나도 모르게 무대에 서다 보면 무대라는 공간을 많이 의식하게 되는 것 같다. 일대일의 관계가 아니라, 배우 대 관객으로 인식하려는 습관들을 버리고자 아직도 노력하는 중이다.

평면적인 작품보다는 경계선상에 있는 캐릭터들을 맡았을 때 얻는 게 많을 것 같다.
ㄴ장단점이 있는 것 같다. 극의 경계가 없는 작품이라면, 처음부터 끝까지 극 내용에 몰입하면서 인물 내면에 집중할 수 있다. 그러나 이렇게 경계선 상에 있는 인물을 맡다 보면, 극 자체에 들어갔다 나왔다를 반복해야 한다. 둘 다 각기 다른 매력을 가지고 있다.

   
 

작품 프로그램에는 "여기, 모든 불행한 인생을 더 이상 불행하지 않게 도와주느라 어느새 자신도 행복할 수 없었던 현실의 필로우맨이 있습니다"라는 글귀가 적혀있다. 카투리안은 자신의 형 마이클에게, 그리고 자신이 끝까지 지키고자 했던 이야기에게도 '필로우맨'이었던 것 같다. 또한 동생과 동생의 이야기를 지키기 위해 고문을 감당하겠노라 결심했던 형 마이클까지 '필로우맨'으로 여겨질 수 있는 것 같다. 현재, 본인도 누군가의 '필로우맨'인가?
ㄴ아직 결혼을 안 하고 아이도 없다 보니, 누군가에게 적극적인 의미에서의 '필로우맨'이지는 못한 것 같다.

그렇다면 필로우맨은 '가족'에만 국한된 개념인가?
ㄴ그건 아니다. 작품에 나오는 '작은 예수'에서도 소녀의 불행에 아무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그녀의 불행을 도와주지 않듯이, 그리고 길거리에 앉아계신 노숙자 분들에게 아무도 관심 갖지 않듯이, 한 개인이 어떤 생각이나 신념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에 대해 우리는 딱히 관심을 갖지 않는다. '가족'은 사회의 가장 작은 단위이다 보니, '필로우맨'이란 개념과 가장 밀접하지 않나 싶었다.

 

   
 

마이클이 자신을 곤경에 빠뜨림에도 불구하고 계속 사랑으로 감싸는 카투리안의 모습이 기억에 남는다. 카투리안 자체만 놓고 보면, 그다지 악하거나 잔인한 사람이라고 인식되지는 않는다. 그런데 그가 쓰는 이야기들은 전부 잔혹한 이야기들뿐이다. 그는 왜 이런 이야기들밖에 쓸 수 없는 것일까?
ㄴ'작가와 작가의 형제' 이야기에도 나왔듯이, 카투리안과 마이클은 어렸을 때 자신의 부모에게 그런 끔찍한 일을 겪었다. 어렸을 적, 가장 사랑을 받아야 할 존재에게서 그런 일들을 당하다보니 정상적인 상태로 자라기에는 무리가 있지 않았나 싶다.

극작가 중 체홉을 가장 좋아한다고 알고 있다. 특별한 이유가 있는가. 어느 작품을 가장 좋아하는가. 그 이유는?
ㄴ체홉이 사람의 섬세한 감정들을 잘 표현하는 것 같다. 작품 모두가 재밌는데, 어렸을 때부터 줄곧 좋아했던 작품은 '갈매기'다.

체홉은 "파편적 일상이 삶의 총체를 형상화할 수 있다"고 생각하며 집필해왔다. 일상의 파편, 즉 오늘의 하루가 삶이라는 전체와 등가물일 수 있다고 생각하며, 그의 작품들은 지극히 '일상적'이고 '사소한' 것들을 풀어낸다. 그런 차원에서 배우 정원조의 일상이 궁금하다. 정원조의 '파편'들을 보여 달라고 말하는 게 실례가 안 된다면 묻고 싶다. 배우 정원조, 인간 정원조의 일상은 어떠한가.
ㄴ내 일상은 정말 단순하다. 운동하고 집안일 하고 일하는 것이 다다. 역할을 맡았을 때는 거기에 연습하는 것이 추가될 뿐이다.

 

   
 

개인 SNS나 그동안의 인터뷰들을 살펴보면 "모든 연극은 대사회적 발언이다"라는 말에 동의할 것 같다. 연극을 통해서 '무엇을' 말하고 싶나.
ㄴ배우라는 직업은 사람을 표현하는 일을 한다. 그래서 내가 내 주변에 관심이 없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단하고 엄청난 사회운동을 벌이겠다는 포부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주변과 인생에 무관심하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

그런데 배우로서는, 어떻게 보면, 한계가 있다. 작품을 적극적으로 선택하거나, 창작하거나 할 수 없는 입장이기 때문에, 누군가가 그런 작업을 해주면, 내 입을 통해 그 사람을 대신해 이야기할 수 있다. 그래서 연극을 통해 "무언가를 하겠다"는 것은 확실하게 단언할 수가 없다. 그런 연극에서 나를 불러줘야 할 수 있는 일들이니까 말이다. 그렇지만, 사회에 대한 관심을 계속 갖는 이유는 내가 정말 많은 사람들을 이해할 수 있고 공감할 줄 알아야, 작품을 읽는 눈이 넓어지며, 그 역할들을 표현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조금 아날로그적인 방식이지만, 매일 종이신문을 읽으려고 한다. 종이를 넘겨가며 쭉 훑기만 해도 신문의 섹션과 제목들을 통해 사회의 많은 면을 훑을 수 있다.

마지막 장면이 매우 인상에 남는다. 
ㄴ마지막 장면이 내게는 해피엔딩이었다. 결국 '이야기'가 살아남지 않았나. 두건을 썼을 때만 해도, 카투리안의 이야기들이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결국 형과 나 자신은 죽었지만, 그가 간절히도 원했던 이야기의 생존이 실현됐다.

이후 작품 활동 계획과 꿈이 궁금하다.
ㄴ좋은 작품에 캐스팅되는 것은, 늘 가지는 바람이다. 최소한 6개월 정도의 스케줄은 미리 정해져 있었으면 좋겠다는 작은 바람도 가져본다. 이제는 스케줄에 대한 압박감에서 벗어나긴 했지만, 그래도 그런 안정을 향한 바람들은 항상 갖게 되는 것 같다. 또한 이후 작품 일정은, 12월에 한양레퍼토리에서 '달빛 안개길'이라는 작품에 참여할 수 있을 것 같다.

   
 

인터뷰를 하면 할수록 궁금해지는 배우였다. 짧은 시간 동안, 배우임에도 불구하고 소탈한 모습을 보여줬던 그에게서, 세상과 연극을 마주하는 아주 진지한 자세를 엿볼 수 있었다. 그는 배우를 향한 고정관념을 깨뜨리는 사람이었고, 타인을 향한 무관심의 절정 속에 살아가는 우리의 개인적인 모습을 건드려주는 사람이었다. 연극과 객석 사이를 오가는 배우, 이야기와 현실 가운데서 입체적으로 살아 숨 쉬는 배우, 우리는 그런 배우, 정원조를 만났다.

[인터뷰·글] 문화뉴스 장기영 기자 key000@mhns.co.kr
[인터뷰·사진] 노네임씨어터 컴퍼니 & 문화뉴스 전영현 기자 ntp@mhn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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