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크리틱-칼의 운영자 '홍태림' ⓒ 문화뉴스 MHN 김민경 기자

[문화뉴스 MHN 김민경 기자] "지금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우리의 삶을 각자의 방식으로 '서슴없이' 풀어내 보는 것입니다."

우리는 한 번이라도 자신에게 진실한 적이 있는가? 행동과 말이 일치한다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이고, 지켜내야 한다는 것은 투쟁을 임함이다. 여기에 말과 행동이 같은 '홍태림'을 만났다. 우리에게 시각예술웹진으로 알려진 '크리틱-칼'의 운영자이자 미술과 예술계의 적폐를 청산하기 위해 발로 뛰는 모습은 아직 희망이 있음을 엿보게 한다. 물론, 그의 모든 의견이 옳다는 뜻은 아니다. 하지만 '난 이렇게 생각하고, 이에 정직하게 행동한다'라고 꿋꿋이 앞길을 가는 모습은 마치 크리틱-칼이 지향하는 바를 암시한다. 우선 각자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용기를 가지는 것. 그것이 필요한 시점에 홍태림을 만났다.

 

▲ ⓒ 크리틱-칼 홈페이지

크리틱-칼에 대한 전반적인 소개를 해달라.

ㄴ 크리틱-칼은 2013년에 대학원 다닐 때 만들었다. 만들게 된 계기는 웹진을 만들면 다양한 사람들과 만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또한, 사람마다 각자 사안에 대한 의견이 있는데, 보통 개인적인 생각으로만 품고 있거나 가까운 친구들과 공유하는 선에서 끝난다. 생각이 맞고 틀리고를 떠나서 표명할 수 있는 환경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1년 정도 크리틱-칼을 운영하다보니 크리틱-칼의 '자생구조'가 언제까지 갈 수 있을 궁금해졌다. '공공기금 없이 필자와 독자, 플랫폼이 선순환하는 구조를 만든다면 어느 정도 규모이고, 언제까지 지속될 수 있을까?' 크리틱-칼을 설립하고 1년이 지나서야 자발적인 후원금을 받을 수 있었다. 크리틱-칼은 여러 담론이 촉발되고 구독자가 점점 늘어나면서 웹진으로서의 공공성을 생겼는데, 그러한 부분을 응원해주고 싶은 분들이 소중한 마음으로 조금씩 후원해주신다. 후원금은 약간의 서버 호스팅, 도메인 비용, 그리고 대부분은 필자에게 책을 선물하는 비용으로 나간다. 평균 1년에 후원금 60-70만원이 들어오고, 그만큼 비용으로 나간다. 다른 매체에 비해서 필자에게 드리는 고료가 터무니없이 적음에도 불구하고 그런 점까지 이해해주시는 분들은 기꺼이 크리틱-칼 필자로 참여해 주신다. 

 

학부 때 어떤 전공을 했나?

ㄴ 학부 때 미술 실기와 신문방송학을 전공했다. 이론을 따로 공부하지는 않았고, 글을 쓴지 4년밖에 안 됐다. 그림을 그리다가 안 끌려서 재료를 바꿔볼까 하다가 사진을 찍었고, 이후 글을 쓰는 것이 나에게 가장 잘 맞는 재료인 것 같았다. 자리가 많이 필요한 것도 아니고, 큰 자원이 들지 않아 마음이 편해서 시작했고, 하다 보니 비평 활동까지 하게 됐다.

 

학부 때 실기와 신문방송학을 같이 전공한 점이 크리틱-칼을 만든 것과 연결되는 것 같다.

▲ ⓒ 문화뉴스 MHN 김민경 기자

크리틱-칼 소개에 자유로운 투고를 원한다고 하지만, 최소한의 제한이 있을 것 같다. 어떠한 조건을 충족시켜야 하는가? 그리고 크리틱-칼에 주로 올라오는 글들의 경향은 어떠한가?

ㄴ 주제와 필자 모두 제한하지 않는다. "글을 올려도 돼요?"라고 물어보는데, '올려도 돼요'라고 생각하는 것까지 다 올려도 된다. 시, 영상, 사진 등 안되는 것 없이 다 올라간다. 제한하는 것이 없었기에 초창기에는 문화예술 관련 글들을 쓰는 분뿐만 아니라 소방관, 회사원, 연극을 하는 분들도 있었다. 4년이 지난 지금은 제가 시각예술 분야에 있던 사람이기도 하고 처음 필자를 모은 분들이 그 분야이기도 해서, 주제를 제한하지 않음에도 문화예술, 특히 시각예술 분들이 글들이 많다. 그다음으로 정치, 사회에 관한 비판적인 글들이 주로 올라온다. 처음에 방향성을 정하지 않은 이유는 자유롭게 놓다 보면 매체가 자연스럽게 갈 길을 갈 것이라고 막연히 생각했다. 다만 저는 제한하지 않는데, 필자들이 스스로 위에서 말한 주제로 올리는 경향이 있다.

사례로 예전에 일간베스트 활동을 하던 친구가 크리틱-칼에 세월호 관련해서 글을 쓰겠다고 해서 그렇게 하라고 한 적이 있다. 이에 관해 많은 비판이 있었는데, 그렇다고 그 사람의 글을 아예 보지를 않거나 그 사람이 생각하는 것을 고려하지 않는 것은 잘못됐다고 생각한다. 그 사람이 의외로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를 할 수 있고, 잘못된 이야기를 할 수도 있는데, 그것은 우선 글을 보고 나서 판단할 문제이다. 혹시 문제가 있다고 하더라도 댓글 등으로 반박하거나 보완하면서 글타레가 이어진다면 괜찮다고 본다. 옳고 그름 이전에 우선 자신의 의견을 밖으로 꺼내서 사람들과 생각을 나누는 과정이 중요하고, 크리틱-칼이 그럴 수 있는 곳이었으면 좋다고 처음부터 생각했다.

 

지금 가고 있는 크리틱-칼의 방향이 마음에 드는가?

ㄴ 마음에 안 들 것도 없고, 막 마음에 들 수도 없다. 자연스러운 것으로 생각한다.

평균 얼마나 많은 사람이 크리틱-칼을 방문하는가? 최근 가장 많은 구독자가 본 글은 무엇인가?

ㄴ 게시물 별로 어떤 사람이 쓰고, 어떤 내용이냐에 따라 편차가 매우 크다. 평균 한 게시물을 400~600명이 본다. 시의성이 있거나, 논쟁적인 글의 경우는 몇천 단위가 넘어간다. 최근 가장 큰 이슈는 '서울로 7017'을 개장하면서 '슈즈트리'라는 공공미술을 설치한 문제인데, 이에 관해 권혁빈과 제가 비판하는 글을 썼다.

 

필자들이 다른 매체가 아닌, 크리틱-칼을 선택해서 쓰는 이유는 무엇인가?

ㄴ 적어도 시각예술계 안에서는 크리틱-칼에서 여러 논쟁이 점화될 때 관계자들이 다 보는데, 그 부분이 크다고 생각한다.

또한, 크리틱-칼을 만들면서 수명이 다해서 종료할 수 있지만, 자료로서 아카이브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지켜내겠다고 다짐했다. 웹진이라는 것이 쉽게 생겼다가 없어지는 게 보통인데, 필자들의 정성과 썼던 글이 날아가는 선택은 무책임하다고 생각한다. 필자 입장에서도 1, 2년만에 없어지는 웹진이라면 글을 쓰고 싶겠는가. 아카이브로서 역사성을 가지고 보존한다는 면에서 필자들이 좋게 보는 것 같다.

아카이브를 하는 방법은 무엇인가?

ㄴ 두 달 전에 호스팅하는 업체가 해킹당했는데 마비가 된 적이 있다. 그래서 네이버 블로그를 새로 만들어서, 필자마다 폴더를 개설하고 그분들의 글을 다 옮겼다. 즉, 미러페이지를 만들어서 혹시 불상사가 생기더라도 아카이브가 남도록 했다.

크리틱-칼 홈페이지에 가면, '구 크리틱-칼'과 '크리틱-칼' 메뉴가 나뉘어 있다. 구 크리틱-칼에서 크리틱-칼로 옮긴 이유는 무엇인가?

ㄴ 구 크리틱-칼은 2013년에 만들었고, 크리틱-칼은 작년 9월에 새로 만들었다. 옮긴 이유로는 첫째로, 기존 구 크리틱-칼은 인터페이스가 독자들이 구독하기에 불편했다. 메뉴가 산발적이어서 게시물을 열람하는 분류체계가 혼선이 많았다. 둘째로, 검색기능이 없었다. 셋째로, 모바일 버전으로 변환이 안 돼서 독자들이 핸드폰으로 보기가 힘들었다.

새로운 크리틱-칼은 위에서 말한 기술적인 부분을 해결했다. 구 홈페이지에 있던 글들은 엔진 툴이 달라서 호환이 안 돼서 옮길 수가 없었다. 고민하다가 이원화해서 구 홈페이지는 내버려 두고, 새로운 크리틱-칼에서 구 홈페이지로 바로 들어갈 수 있도록 해서 과거의 글들도 열람할 수 있게 했다. 최근에 만든 네이버 미러페이지는 구 크리틱-칼과 크리틱-칼 필자들 글을 다 합쳐서 정리했기 때문에 그곳에서 봐도 된다.

 

많은 독자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홍보 또한 필요할 것 같은데, 홍보 방법은 무엇인가?

ㄴ SNS는 고속도로라고 생각한다. SNS가 내용을 담는 그릇은 아니다. 홈페이지를 만들어서 따로 아카이브를 하고, 이를 페이스북, 트위터, 네이버 블로그를 활용해서 접촉면적이 넓혀가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페이스북, 트위터를 활용하면, 크리틱-칼 페이스북 구독자 약 4,000명, 트위터 팔로워 약 2,000명에게 게시물이 올라왔다고 알려진다. 최근 만들어진 미러페이지로 네이버 블로그나 검색을 통해서 들어오는 분도 있다. 

 

시각예술 관련된 글이 크리틱칼에 많이 올라오는데, 보통 미술에 대한 글은 어렵다는 편견(?)이 있다. 미술에 관련된 글은 어려울 수밖에 없어서 소수의 정보를 아는 사람만 접근할 수 있는 것인가? 미술과 관련해서 좋은 생각을 가진 글을 더 많은 사람이 보려면, 전문가뿐만 아니라 대중도 쉽게 접근할 필요성이 있다고 보는데, 이 부분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ㄴ 어려워서 어렵게 쓸 수밖에 없는 글과 독자가 읽기에 어렵게 쓴 글은 다르다. 필자가 잘 녹여내지 못 한 글은 필자도 이해하지 못하고 독자도 어렵다. 어려운 글은 있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다만 어려운 시각예술 텍스트와 독자 사이에 간극이 있는데 이를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해서는 문화예술에 관한 의무교육이 중요하다고 본다. 대학교육, 좀 더 나아가면 사회구조, 노동과 여가를 사용하는 것과 총체적으로 연결이 된 것이라 쉽게 해결책을 내놓을 수 없을 것이다. 간극을 메우려면 서로 노력이 필요하다. 만약 흥미가 생긴다면 감상자인 독자도 노력해야 하고, 그들과 소통하려고 하는 예술가와 평론가도 노력해야 한다. 

▶ [문화 人] 홍태림, "문재인 정부, 시각예술표준계약서·작가보수제도 공약" ② 에서 계속됩니다.

avin@mhn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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