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과 '관행'으로 묻혀왔던 문화예술계 성폭력 사례 설문조사 실시

▲ 8일 오전 10시 서울 서초구 서울지방변호사회 정의실에서 영화감독 김기덕 사건 공동대책위원회에서 '그것은 연출이 아니라 폭력이다' 기자회견이 진행됐다 ⓒ 문화뉴스 MHN 이민혜

[문화뉴스 MHN 장기영 기자] 지난 2013년, 김기덕 감독이 영화 '뫼비우스' 촬영 도중 감정 이입이 필요하다는 이유로 배우 A씨의 뺨을 때리고, 시나리오에 없던 베드 씬 촬영을 강요했다는 증언이 나왔다.

배우 A씨는 당시의 충격을 4년이 지나서야 전국영화산업노동조합을 통해 토로하게 됐다. 그는 왜 해당 문제를 당시 바로 제기할 수 없었을까? 왜 영화계를 떠난 이후에야 법적 대응을 준비할 수 있었을까?

지난 해 10월 문화예술계 성폭력 해시태그 운동이 일어난 이후, 문화예술계 성 평등을 지향하는 다양한 단체와 캠페인이 생겨났다. 현장에서 문화예술계 성폭력 사건은 어떻게 해결 혹은 예방되고 있을까? '페미광선'이 오는 10월 '문화예술계 성폭력 해시태그 운동 1주년'을 기념하는 책자 발간에 앞서, '문화예술계 성폭력 사례 설문조사'를 실시한다. 

'페미광선'은 작년 일어난 문화예술계 성폭력 해시태그 운동에 예술가들이 직접 대응하고자 만들어진 단체이다. 이들은 현재 부산성폭력상담소와 연계해 문화예술계 성폭력 피해신고창구 및 지원체계를 마련하고 있으며, 올해는 '문화예술계 성폭력 out'이라는 슬로건으로 관련된 캠페인, 집단회, 도서 발간을 진행하고 있다.

'페미광선' 운영진은 8일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문화예술계 성폭력 문제가 공론화됐음에도 불구하고, 이후에 문화예술계 내에 성폭력을 예방할 기구가 생기지 않으며, 문제에 대한 대책이나 대응조차 신속하게 이뤄지지 않고 있다"며, "문화예술계 성폭력 문제는 집단 혹은 구조적 문제서 비롯되곤 하는데, 대개 개인의 문제로 전가되고 있다. 성폭력 실제 피해 사실들, 가해가 어떻게 이뤄지고 있는지 등을 통계화 해 문화예술계 성폭력 사건의 특수성 등에 대한 자료를 남기고자" 설문조사를 시행하고 있다고 전했다.

 

▲ 현재 진행 중인 '문화예술계 성폭력 사례 설문조사' 캡쳐 사진

이번 설문조사의 참여 대상은 실제 성폭력 사건 피해자, 문화예술계 종사자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운영진은 "현 예술계 종사자가 아니더라도 예술계에 종사했을 과거 당시의 이야기, 문화예술인이 아니어도 문화예술 행사에서 겪었던 성 차별적 발언 등을 모두 조사하고 있다"며 본 설문조사를 "문화예술계 전반적 성 평등 인식 전환을 위한 설문조사라는 개념으로 이해하면 된다"고 밝혔다.

또한, 이번 설문조사는 특정 분야로 한정된 조사가 아니라, 문화예술계 전반의 성폭력 사례에 대한 조사이다. '페미광선' 운영진은 "타 장르에 비해 아직 참여율이 높지 않은 분야도 있다. 무용, 연극 분야의 참여자들이 용기 내주시길 바란다"며 "설문조사에 참여하다 본인의 신원이 드러날까 두려워하지 않아도 된다. 부담되지 않는 선에서라도 참여가 가능하다"고 전했다. 실제로 이번 설문조사의 문항들은 꽤 길고, 다양하게 구성됐다. 다양한 사례를 포함할 수 있기도 하지만, 참여자가 말하기 곤란한 문항들은 필수적으로 참여하지 않도록 구성됐다.

현재 문화예술계 내 성폭력 사건들은 '예술' 혹은 '관행'이라는 이름과 뒤섞여, 가해자의 처벌이 원활히 이뤄지지 않다는 점에서 피해자들을 이중으로 고통스럽게 한다. '페미광선' 운영진은 이번 설문조사가 "문화예술계 성폭력이 각 장르마다 어떤 유형으로 가해가 발생하고 있는지 소개할 수 있는 자료"가 될 수도 있지만, "실제 발생된 피해를 해결하는 분들께 공적인 자료로 사용될 수 있"길 바란다고 전했다. 또한 "문화예술계 성 평등 정책이 마련될 때도 실태가 정리된 이 자료가 도움이 되길 바란다"는 바람도 전했다. 

지난 2일부터 시작된 '문화예술계 내 성폭력 실태조사'는 오는 31일까지 '페미광선' 소셜미디어(SNS) 페이스북에 게시된 링크를 통해 참여 가능하다.

key000@mhn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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