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문화뉴스 MHN 이민혜 기자

[문화뉴스 MHN 석재현 기자] 지난 5월 17일, 기자는 [문화파일_강남역 살인사건 1주기] 영화 촬영장 밖 젠더 이슈, 어떤 변화 있었나? ③ 라는 제목의 기사로 영화 촬영장 밖에서 일어나고 있는 인권 침해 및 성폭력 문제를 다루며 사태의 심각성을 제기한 바 있다. 시간이 흐른 뒤인 8월 3일, 한 언론의 보도를 통해 다시 한번 촬영장 밖에서 일어나는 인권침해의 심각성 문제가 대두되었다.

해당 매체의 보도에 따르면, 한국 예술영화를 대표하는 김기덕 감독이 지난 2013년 자신의 영화 '뫼비우스' 촬영 도중 감정 이입이 필요하다는 이유로 여배우 A씨의 뺨을 때리고 시나리오에 없던 베드 씬 촬영을 강요당한 것이다. 이에 A씨는 하차한 후, 4년이 지나서야 전국영화산업노동조합을 통해 법적 대응에 나선 것.

8일 오전 10시 서울 서초구 서울지방변호사회 정의실에서 영화감독 김기덕 사건 공동대책위원회에서 '그것은 연출이 아니라 폭력이다' 기자회견을 했다. 이날 한국성폭력상담소 이미경 소장과 한국여성민우회 김민문정 상임대표, 연극영화산업노동조합 안병호 위원장, 여성영화인모임 채윤희 대표, 찍는페미 박재승 대표, 이명숙 변호사, 그리고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이수정 교수가 참석해 눈길을 끌었다.

이미경 소장은 "이번 사건은 감독과 배우의 전형적인 위계 간에 벌어진 사건으로, 이번 처음이 아니라 지속된 영화계 관행임을 주목해야 한다. 제대로 해결되지 않는다면 이후로도 지속될 수밖에 없다. 언제까지 예술이라는 명목하에 감독의 폭력과 모욕, 이해되지 않은 연출에 참아내야 하는가? 검찰이 이번 사건을 엄정하게 수사할 것을 촉구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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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문정 상임대표는 "이는 연예계 뿌리 깊은 문제며, 지금도 어디선가 일어나고 있다. 하지만 가해자가 합당한 처벌을 받는 건 드물다. 여성민우회는 현재 인권센터를 운영하며 감독에 의한 성폭행을 비롯한 다양한 인권 침해를 입고 있는 여성 연예인 지망생들의 기막힌 현실을 듣고 있다. 하지만 각종 협박과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피해자들의 입을 막고 있다"며 현 실태를 고발했다.

안병호 위원장은 "그동안 좋은 시나리오, 감독, 그리고 열정으로 연기하면 좋은 영화가 나올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지만, 좋은 게 무엇이며 어떻게 만들어왔는지는 그동안 설명되지 않았다. 그래서 영화산업을 예술로 치환해 어떻게든 감내하는 것이 좋은 영화, 작품을 만든다는 생각이 지배하게 된다. 영화는 사람에 대한 기록으로 시작되었고, 그러려면 사람의 이해가 우선되어야 하는데 김기덕 감독은 영화의 기본적 태도를 저버렸다"며 김 감독의 무책임함을 비난했다.

채윤희 대표는 "피해자들을 보호해야 할 기구들이 만들어져야 한다고 오래전부터 생각해왔으면서 그동안 실행하지 못한 것에 부끄러웠다. 올봄부터 적극적으로 대응하고자 범영화 성평등정책기구를 만들었고, 오래전부터 실태조사를 하고 있다. 이건 여성의 문제를 넘어 어디서나 폭력이 있어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 대응기구 만드는 데 있어 많은 분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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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안 위원장은 "실태조사는 영화진흥위원회와 함께 이뤄지고 있다. 9월 이후 이와 관계된 토론회를 열 계획이다. 현재 약 500여 건 이상 조사가 이뤄지고 있다. 이를 바탕으로 정례화를 도모하려고 계획 중"이라며 "이번 사건이 영화계 현장에서 발생했음에도 공대위에는 아직 4개 단체만 속해있다. 이를 계기로 더 많은 영화계 단체가 합류해 다시 한번 불미스런 사건이 일어나지 않도록 한 목소리 내야 한다"고 덧붙였다.

박재승 대표는 "영화관계자 중 한 분께서 '한 사람이 목격하고도 방관하기 시작하면 모두가 그렇게 된다. 하지만 두 사람이 지적하고 문제 해결에 나서기 시작하면 분위기가 바뀔 것이다'고 말씀하셨다. 여기 모든 우리는 함께 해야 한다. 여태껏 여성 영화인들이 희생됐고, 더는 묵과해선 안 된다. 대의 아래에 수많은 사람이 질식하지 않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명숙 변호사는 "문화예술계 각종 여성 인권침해 문제는 오래전부터 다양하게 이어져 왔다. 그만큼 해당 사건이 많이 일어난다. 피해자들은 언론에 보도될까 봐, 혹은 가해자에게 협박죄가 성립돼 불이익을 받을까 봐 등 여러 이유로 나서질 못한다. 어떤 이는 사건이 알려진 후 1주일간 집에 나오질 못했고, 그 외 언론이나 댓글로 인한 피해, 수사과정 중에 노출되어 각종 불이익을 경험했다. 그렇기에 피해자들이 선뜻 나서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이수정 교수는 "사건 발생은 지금으로부터 4년 전이다. 당시에는 행위 자체가 위계 있는 구조 속에서 피해자가 당한 사건의 내용을 끄집어내기 어려웠다. 촬영 현장에서 보복이나 지위 차이 등을 극복하기 힘들어 입 다물 수밖에 없었다"고 오늘에서야 A씨가 기소하게 된 배경에 대해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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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이는 한국 이외에 영국이나 미국 등 선진국에서도 빈번하게 발생하는 일이며, 이런 사건의 80% 정도는 은폐된다. 문제를 포착해도, 기소까지 가는 것 또한 어렵다. 제일 큰 문제는 피해를 입어도 사법절차 내에서 실행되기 어렵다는 의심을 품고, 시간을 끌게 된다"며 "또 다른 문제는 피해자가 전형적인 강간이 아닌 성적 괴롭힘을 당한 것인데, 영미법과 달리 국내에는 마땅한 형사 죄명이 없어 사건화하기 어려워 고통만 떠안은 채, 시간 지연이 된다"고 덧붙였다.

이 교수는 "그래서 이번 사건은 갑질 문제의 연장선으로 잡게 되었고, 우리나라 사법제도가 마련되지 않기 때문에 한국사회의 특이한 상황에 이해하길 바란다. 이로 계기로 여성들이 직장, 지위 등으로 당하는 문제제기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번 사건에 대해 이명숙 변호사는 "A씨 또한 4년간 고민하다 오늘에서야 용기냈다. 김 감독이 촬영현장에서 충분한 설명 없이 이뤄진 행위는 연기지도나 연출이 될 수 없다. 촬영 다음 날까지도 계속되는 두려움과 공포, 호흡곤란을 느끼며 수차례 상의를 거쳐 하차했는데, 무단이탈이라 표현한 건 범죄행위다. 사실을 인정하지 않고, 우회적인 단어를 쓰는 그들의 발언은 실망스럽다"고 강도높게 비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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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회견 하게 된 이유에 대해 "법원을 통해 제대로 밝히고자 했고, 언론을 통해 공개되는 건 해당 사건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음과 동시에 피해자 이외 동료 배우 및 스태프들, 심지어 가해자로 지목된 김 감독에게 2차 피해가 될 수 있다는 생각에 알리지 않았다. 하지만, 예상치 않게 언론에 보도되었고, 시간이 지날수록 수많은 억측과 쏟아져 나와 침묵이 능사가 아님을 결정해 기자회견을 하게 되었다"고 밝혔다.

이 변호사는 이 자리를 빌려 몇 가지 당부의 말 또한 전했다. 그는 "피해자가 어렵게 용기 낸 것이기에, 2차 피해가 가지 않도록 억측을 자제하고, 수사결과가 나오길 기다려주기 바란다"며 "차라리 이 사건을 통해 문화예술계 전반에 걸친 고질병, 그리고 개선 방법, 해외 제도 등을 찾아봐 달라"고 말했다.

이어 "피해자는 보도된 것처럼 상당한 증거를 확보했고, 상당한 사실에 대해 침묵하고 있다. 언론에 보도된 것은 일부다. 그런데도 사실과 다른 주장 및 SNS 등을 통한 악성 댓글, 피해자의 신상을 털려고 하는 나쁜 병폐가 없어지길 바란다. 만일, 그러한 행위가 있다면 법적으로 강경하게 대응할 것"이라고 전했다.

한편, 김기덕필름 측은 "약 2회 촬영을 하다 일방적으로 출연을 포기해 다른 배우로 교체했다. 그리고 연출자 입장에서 영화의 사실성을 높이고자 집중하다 생긴 상황이며, 개인적인 감정은 전혀 없었다. 스태프 중 당시 상황을 정확히 증언하면 잘못에 대한 책임을 지겠다"는 모호한 공식 입장을 밝혀 논란만 가중했다.

이하는 기자회견문 공식 전문이다.

지난해부터 영화계를 비롯해 문화예술계 내 성폭력문제에 대한 수많은 피해자들의 증언과 문제해결을 촉구하는 목소리들이 있어 왔습니다. 그리고 오늘, 한국 영화계가 직면한 폭력, 폭언, 강요된 노출 및 베드신 연기, 성상납, 성폭력 등 오랜 기간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자행되어온 인권침해 문제의 또 다른 피해사건 해결을 위해 영화계, 여성계 법조인들이 한자리에 모였습니다.

지난 3일 처음 언론 보도된 '영화감독 김기덕 사건'은 2013년 제작된 영화 '뫼비우스' 촬영과정에서 발생한 것으로 해당 영화의 연출을 맡은 김기덕 영화감독이 출연 여성배우 A씨에게 자행한 폭행과 강요 등에 대해 고소한 사건입니다. 언론보도 이후 피고소인 김기덕은 따귀를 때린 폭행 부분에 대해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말과 함께 "어떤 경우든 연출자 입장에서 영화의 사실성을 높이기 위해 집중하다 생긴 상황이고 다수의 스텝이 보는 가운데서 개인적인 감정은 전혀 없었다"고 입장을 밝혔습니다.

배우의 감정이입을 위해 실제로 폭행을 저지르는 것은 '연출'이라는 이름으로 합리화될 수 없습니다. 이는 '연출'이 아니라 '폭력'입니다. 배우는 시나리오에 있는 내용을 기반으로 해당상황을 '연기'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는 전문가입니다. 성폭력 장면을 리얼하게 찍기 위해 직접 살해를 하지는 않는다는 것은 영화연출자 아닌 사람들도 그 누구나 알고 있는 기본 상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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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사건은 단순히 한 명의 영화감독과 한 명의 여성 배우 사이에서 일어난 일이 아닙니다. 영화감독이라는 우월적 지위와 자신이 절대적으로 장악하고 있는 영화 촬영 현장을 비열하게 이용한 사건입니다. 수많은 영화스텝들이 보는 앞에서 뺨을 때리고, 폭언과 모욕, 사전에 합의되지 않은 '상대 배우의 성기를 직접 잡게 하는 행위'를 강요하고, 사실과 다른 소문을 퍼트려 피해를 입은 여성배우의 명예를 훼손한 사건입니다. 이는 피해자들의 이름만 바뀔 뿐 끝도 없이 반복되어 온 영화업계의 폭력적인 노동환경 등 뿌리 깊은 인권침해의 문제입니다.

또한 언론에서는 여성배우 A씨가 누구인지, 왜 4년이나 지난 시점에 고소를 진행하는 지를 추적하며 본 사건의 본질인 영화촬영현장에서 감독에 의해 자행되고 있는 폭행, 강요 등의 행동이 가지고 오는 배우를 비롯한 영화인들의 인권침해의 문제해결을 위한 사회적 토론을 방해하고 있습니다. 추측성 보도와 피해자 신상 파헤치기를 중단할 것을 엄중히 경고합니다.

이제 우리는 영화계 내에서 '연출'이나 '연기' 또는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벌어지는 여성에 대한 폭력을 끊어내야 합니다. 폭력을 '연출'하는 것을 멈춰야 합니다. 자신의 피해를 이야기함으로써 또 다른 여성배우들이 입게 될 피해를 중단하고자 큰 용기를 낸 피해자를 공격하는 이야기들을 생산하고 퍼트리는 행위를 중단해야 합니다.

이 자리에 모인 '영화감독 김기덕 사건 공동대책위원회'는 이 사건을 지속적으로 주목하며 영화계, 나아가 연예계 전반에 만연한 인권침해의 문제를 없애기 위해 노력할 것입니다. 또한 우리는 이 사건에 대한 공정하고 철저한 수사를 촉구하는 바이며, 영화계의 잘못된 연출 관행을 바로잡아 모든 영화인의 인권이 보장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다음과 같이 요구합니다.

우리의 요구

하나. 서울중앙지검은 피고소인이 자행한 폭행과 강요죄 등에 대한 성역 없는 철저한 수사를 진행하라!

하나. '연출'이라는 명목으로 출연 배우들에게 자행되는 폭력, 강요 등의 문제해결을 위한 영화계 내 자정노력을 촉구한다!

하나. 정부는 영화계 내 인권침해, 처우개선을 위한 정기적 실태조사 실시 및 관련 예산을 적극 마련하라!

하나. 언론은 사건에 대한 추측성 보도와 피해 여성배우 신상 파헤치기를 당장 중단하라!

syrano@mhn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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