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배 결승서 서울고가 13-9로 승리한 날의 뒷 이야기

▲ 우승 트로피와 우승기, 상장 및 부상을 받고 김응룡 협회장과 사진 촬영에 임하는 서울고 선수단대표. 사진ⓒ김현희 기자

[문화뉴스 MHN 김현희 기자] 광복 이후 중등학교(현 고등학교) 전국 야구 대회를 시작으로 한국야구의 태동을 알린 고교야구. 한국전쟁, 혹은 서울 운동장(동대문야구장) 정비 등의 이유로 잠시 중단된 기간을 제외하면, 매년 결승전이 열렸고, 그 안에서 승자와 패자가 갈렸다. 하지만, 그 유명한 스타 플레이어들도 쉽게 우승을 차지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객관적인 열세를 극복하고 우승을 차지한 학교도 많았다. 그래서 전국 대회 우승팀은 하늘이 정해준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올해 역시 마찬가지. 황금사자기 2연패에 성공한 덕수고는 결승까지 오르는 과정에서 수차례 탈락 위기를 맞이하기도 했고, 그 틈을 타 우승을 노렸던 마산용마고는 '이채영 트리오(이승헌-이채호-박재영)'와 홈런왕 오영수를 보유하고도 결승전에서 또 다시 덕수고에 무릎을 꿇으며 우승 기회를 다음으로 넘겨야 했다. 청룡기에서는 당초 우승 후보로도 거론되지 못했던 배명고가 서울고에 신승하며 개교 첫 선수권대회 우승을 차지했고, 이 과정에서 청룡기 2연패에 도전했던 덕수고가 4강에서 발목이 잡히는 이변이 연출되기도 했다.

'꼰데스'의 서울고와 '후라 경고'가 만나던 날,
대통령배 결승전을 돌아보다

이번 대통령배 역시 마찬가지였다. 결승 무대에 오른 서울고와 경남고 모두 우승이 간절했던 팀이었다. 양 팀 사령탑 맞대결부터 뜨거웠다. 2014년 부임 이후 처음으로 전국 무대 결승에 오른 경남고 전광열 감독, 2015년 부임 이후 유독 우승과 인연이 없었던 서울고 유정민 감독 모두 '처녀 우승'에 목이 말라 있었기 때문이었다. 부산에서 열린 친선 대회에서 우승한 경험이 있는 양 팀(경남고 : 롯데기 친선대회, 서울고 : 우수고교초청 친선대회)이 본무대 주인공이 되기를 바란다는 것도 인지상정이었다.

故 최동원 감독, 이종운 감독, 이대호, 송승준(이상 롯데), 심창민(삼성), 한현희(넥센) 등 굵직한 프로 선수들을 많이 배출한 경남고는 역대 우승 숫자에서도 전국 열 손가락 안에 들 만큼 야구 명문중의 명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당대의 선수들도 이루지 못했던 것이 있다. 대통령배 우승이다. 만약에 이번에 경남의 후배들이 대통령배 우승에 성공한다면, 선배들도 이루지 못했던 '커리어 그랜드슬램(황금사자기, 청룡기 선수권, 대통령배, 봉황대기 우승)'을 이룰 수 있었다. 특히, 마운드 높이에서 경남고가 약간의 우위를 점하고 있어 이러한 꿈이 현실이 되는 것도 불가능한 것만은 아니었다.

반면 서울고는 이미 2014년 황금사자기 우승으로 커리어 그랜드슬램을 달성한 상태였다. 그러나 유정민 감독 부임 이후 청룡기 준우승만 두 차례 차지하는 등 유독 우승과 인연이 없었다. 더구나 지난 달 종료된 청룡기 선수권 결승전에서는 두 차례 석연치 않았던 판정으로 인하여 유정민 감독이 경기 직후 기다렸다는 듯이 강력하게 심판 위원들에게 항의하는 등 한동안 그라운드에서 떠날 줄 몰랐다. 당시 유 감독은 "선수들에게 너무 미안하다. 하지만, 우리가 절대 졌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라며, 아쉬움 속에 경기장을 떠나야 했다. 대통령배를 앞두고 다시 만난 유 감독은 "청룡기 결승전만 생각하면 자다가도 벌떡 깨어난다."라며, 이번만은 반드시 좋은 성적으로 선수들을 다독이고 싶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또한, 결승전은 2017 세계 청소년 대회에서 국가대표로 나설 유망주들이 무려 다섯 명이나 포진되어 있던 '작은 별들의 잔치'였다. 양 팀 선발로 나온 서울고 강백호, 경남고 서준원이 그러했고, 라인업에 포함된 경남고 예진원-한동희 듀오, 서울고 최현준-강백호(투-타 겸업) 듀오가 또 그러했다. 8월 21일 대표팀 소집을 앞두고 맞는 사실상의 마지막 대결이기도 했다.

▲ 자신의 무기를 다 보여주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그저 주저앉은 서준원. 최민준(등번호 11번)이 그저 어깨를 툭툭 쳐 줄 뿐이었다. 사진ⓒ김현희 기자

서로 우승할 이유가 자명했던 양 팀 맞대결이었던 만큼, 경기 중반까지 치열한 0의 행진이 이어져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었다. 그리고 중/후반부에 결승타가 나올 것으로 예상됐다. 그러나 경남고 선발로 내정됐던 서준원의 상태가 변수였다. 경기 전부터 볼을 만지며 마인드 컨트롤을 했던 서준원은 강백호라는 이름이 주는 부담감이 컸는지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결국 2사 이후 한 타자도 잡아내지 못한 채 5실점하며 고개를 숙여야 했다. 2회에도 2사 이후에 실점하는 등 집중력이 떨어진 모습을 보였다. 가장 좋은 무기를 지니고 있었지만, 정작 큰 무대에서 자기 실력을 100% 발휘하지 못했던 장면이 안쓰럽기까지했다. 그 마음을 동료들이 너무 잘 알기에 더그아웃에서도 그 누구도 고개 숙인 서준원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오직 맏형 최민준만이 어깨를 툭툭 쳐 줄 뿐이었다.

한편, 서울고 선발로 나선 강백호는 말 그대로 '인생 경기'를 펼쳤다. 그동안 수차례 투수로 마운드에 올랐지만, 선발로 나서는 것은 대통령배 결승이 처음. 그 첫 선발 등판 경기에서 강백호는 11개의 탈삼진을 솎아내는 역투 속에 7과 2/3이닝을 소화했다. 생애 첫 선발승을 거둔 강백호는 마운드에서 내려오자마자 스스로 원래 포지션인 포수로 돌아가며 끝까지 경기를 책임졌다. 하지만, 경남고 타선 역시 강백호를 상대로 무려 다섯 점이나 뽑아냈다. 그리고 9회 말 2사 이후에는 연속 안타로 4점을 추격하는 등 대통령배 준우승팀다운 면모를 보였다. 그 4득점으로 인하여 최다안타상, 최다타점상의 주인이 단숨에 바뀔 수 있었다.

경기 직후 만난 양 팀 감독은 환하게 웃고 있었다. 조금도 후회가 남지 않은 승부였기 때문이었다. 서울고 유정민 감독은 "청룡기에서의 아쉬움을 제자들이 확실하게 풀어줬다. 이제는 두 발 뻗고 잘 수 있을 것 같다. 올해 멤버가 너무 좋아서 우승의 적기라 생각했는데, 목표를 이루어서 너무 좋다."라며, 비로소 미소를 지어 보였다. 경남고 전광열 감독도 "(서)준원이가 정말 좋은 공부를 했다. 내년에는 (한)현희보다 나은 모습을 보일 것이다. 커리어 그랜드슬램을 목전에서 놓친 것은 아쉽지만, 어쩔 수 없는 것 아닌가. 봉황대기를 포함하여 내년에도 좋은 모습 보여드릴 것을 약속한다. 더운 날 정말 고생 많았다."라며, 결과에 만족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서울세가 강세인 올해 고교야구에서 경남고가 대통령배 준우승을 포함하여 황금사자기 4강에 오른 것은 대단한 성과임에 틀림없다.

▲ 시상식에서 우연히 발견한 네 명의 3학년 청소년 대표팀 선수들. 이번 대회 최고의 장면 중 하나다. 시상식 전후로 서로 치하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사진ⓒ김현희 기자

'꼰데스'의 서울고와 '후라 경고'의 경남고 만남은 이렇게 끝이 났다. 그러나 경기가 종료된 뒤에도 서로의 플레이를 치하하며 악수를 하는 모습은 프로야구 형님들보다 훨씬 나았다. 그리고 이러한 '명품 결승전'을 직접 볼 수 있었던 필자도 양 팀 선수들에게 진심 어린 감사 인사를 보낸다.

서울 목동, 김현희 기자 eugenephil@mhn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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