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청룡기 4강, 연장 승부 끝 결승전 당일 아침까지 경기 진행

▲ 2009 청룡기 4강에서 홈런포를 쏘아 올리며 경기를 접전으로 만들었던 북일고 시절의 김동엽. 당시 홈런상도 그의 몫이었다. 사진ⓒ김현희 기자

[문화뉴스 MHN 김현희 기자] 2008년 11월부터 뒤늦게 이 일을 시작, 2009년부터 본격으로 그라운드에 나섰습니다. 프로에서 활약하고 있는 선수들의 이야기를 담는 것도 좋았지만, 미래의 프로야구 선수들을 만나는 것 역시 또 다른 즐거움이었습니다. 그리고 8년이라는 시간 동안 많은 선수들의 웃고 우는 모습을 지켜봤고, 프로에서 일이 잘 풀리지 않아 고민을 털어 놓는 친구들도 많았습니다. 그 중 일부는 해외로 진출하여 또 다른 이야깃거리를 제공해 주기도 했습니다.

8년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프로야구 못지않게 많은 이야기들이 오갔던 아마야구의 뒷이야기들, '김현희의 야구돌 시트콤'에서 풀어보고자 합니다. 그1편은 '1박 2일 경기'와 관련한 이야기입니다. 경기가 자정 넘어 이어지면 당연히 1박 2일 경기가 된다고 생각하시겠죠? 실제로 프로에서도 연장전으로 인하여 0시 넘어 종료되는 경기가 간혹 발생하죠. 그러나 그것은 엄밀히 따지면 '무박 2일 경기'입니다. 그런데 고교야구에서 1박 2일 경기를 진행할 수밖에 없는 속사정, 그리고 이에 대한 애틋한 추억을 공개하고자 합니다.

김진영-한승혁 던지고, 김동엽이 쳤던 2009년 청룡기 4강,
12회 연장 승부가 결말 맺지 못했던 사연

지난 4일, 목동 야구장에서는 제51회 대통령배 전국 고교야구대회 8강전 네 경기가 열리고 있었습니다. 비교적 순조롭게 대회가 진행되고 있었으나, 첫 경기부터 연장 승부치기까지 연결되는 등 심상치 않은 기운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여기에 제2경기도 9회까지 치열한 승부가 이어지는 등 한 경기에 소요되는 시간이 꽤 오래 걸리기 시작했습니다. 인천고와 마산용마고의 경기가 종료됐을 때 시각은 이미 오후 5시를 넘긴 상황. 결국 제3경기는 당초 계획됐던 15시가 아닌, 17시 34분에야 진행(기록지 기준) 됐습니다.

그런데, 이 심상치 않은 기운은 제3경기에서도 여지없이 이어졌습니다. 8회 콜드게임으로 끝났음에도 불구하고 서울고와 율곡고 합쳐 무려 18점을 뽑아내는 타력 쇼를 선보였기 때문이었습니다. 결국 제3경기 역시 20시 50분에야 종료됐고, 오후 9시가 되어서야 시작된 8강전 마지막 경기는 결국 4회까지만 진행한 이후 익일 서스펜디드가 선언되어야 했습니다. 이는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 대회 규정 때문입니다. '당일 최종 경기는 회수에 관계없이 23시까지 종료함을 원칙으로 하고, 22시 45분 이후에는 뉴 이닝에 들어갈 수 없다. 단, 뉴 이닝에 들어간 경기는 당해 이닝을 종료한다.'라고 명시되어 있었고, 4회가 종료된 시점에서 전광판 시계는 22시 46분을 가리키고 있었습니다. 결국 양 팀은 규정에 의거, 5일 10시에 마지막 경기를 치러야 했고, 승리한 학교는 잠시 휴식을 취한 이후 오후 6시부터 열리게 될 준결승 경기를 바로 소화해야 했습니다. 말 그대로 '1박 2일 경기'를 시행한 셈입니다.

그리고 치열했던 1박 2일 경기에서 경기고가 덕수고에 3-2로 승리, 시즌 첫 전국 본선무대 4강을 확정했습니다. 주말리그 전/후반기 내내 덕수고에 패했던 경기고의 절박함이 가장 중요한 순간에 빛을 발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이러한 1박 2일 경기가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고교야구가 프로야구보다 인기가 많았던 1970~80년대에도 간혹 있어왔고, 흔한 일은 아니었지만 본인이 본격적으로 취재를 시작했던 2009년에도 이러한 사례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당시 멤버들 중 다수는 프로야구의 현재를 책임지는 인재들로 성장했습니다. 그때로 잠시 시간을 돌려 보도록 하겠습니다. 공교롭게도 당시 경기의 중심에도 덕수고가 있었습니다.

▲ 2009년 2학년의 몸으로 모교 마운드를 이끈 한승혁. 이 당시부터 우완 속구 투수 최대어로 1라운드 지명이 유력했던 터였다. 사진ⓒ김현희 기자

때는 2009년 5월 29일 저녁 시간대로 넘어갑니다. 당시 청룡기 선수권 4강전은 신일고와 서울고, 북일고와 덕수고의 대전으로 결정됐었습니다. 일단 4강전 첫 경기는 1학년 하주석(한화)과 3학년 박주환(前 kt)이 버틴 신일고가 주장 김동빈(前 한화), 2학년 임정우(LG)가 분전한 서울고에 9-2로 신승하며 결승전에 선착을 했던 상황이었습니다. 그리고 이어진 북일고와 덕수고의 4강전 제2경기는 에이스와 에이스, 4번 타자와 4번 타자가 정면 대결을 펼쳤던 최고의 명승부로 진행됐습니다. 실제로 당시 주요 멤버들은 현재 프로야구에서 큰 기대를 모으고 있는 젊은 선수들이기도 합니다.

북일고 3학년 : 김동엽(시카고C-SK), 김용주, 김재우(이상 한화)
북일고 2학년 : 이영재(LG), 홍성갑(넥센), 오준혁(KIA), 신민재(kt)
덕수고 3학년 : 나경민(시카고C-롯데), 양효석(kt), 이인행(KIA), 김경도(한화-두산), 이영준(kt-넥센)
덕수고 2학년 : 김진영(시카고C-한화), 한승혁(KIA), 권정웅(삼성), 임신호(한화)
덕수고 1학년 : 길민세(3학년 이전 북일고 전학-넥센)

공교롭게도 김동엽, 나경민, 김진영 세 사람은 추후 시카고 컵스 마이너리그에서 재회하여 한솥밥을 먹기도 했습니다. 그러한 이들이 지금은 각자 다른 팀에서 나름대로 본인의 몫을 다하고 있으니, 8년이라는 시간이 길면서도 짧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각설하고, 타력이나 마운드 모두에서 어느 한 팀이 압도적으로 유리하다고 할 수 없을 만큼 양 팀은 2009 시즌 최고의 전력을 자랑하고 있었습니다. 실제로 덕수고는 대통령배에서, 북일고는 봉황대기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각자 시즌 중 한 차례 타이틀을 획득하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기선 제압에 성공한 팀은 북일고였습니다. 북일고는 선발 김진영을 상대로 1, 2회에 1점씩을 뽑아내며 기세를 올렸습니다. 그러자 덕수고 역시 3회 초에 1점을 만회한 데 이어 5회에 대거 4득점에 성공하면서 역전을 일궈냈습니다. 스코어는 5-2. 그러나 북일고의 타선은 정말로 강했습니다. 곧바로 이어진 5회 말 반격에서 다시 동점을 만들며, 상대 에이스 김진영을 마운드에서 끌어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북일의 4번 타자 김동엽은 목동구장 정 중앙을 넘어가는 투런 홈런을 기록하면서 자신의 대회 2호 홈런을 만들어냈습니다. 당시 정윤진 감독께서 김진영을 교체하면서 그에게 "뭐 던졌어?"라고 이야기하는 장면이 그대로 중계방송에 잡히기도 했습니다. 당시를 떠올린 김진영은 "사실 감독님께서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전혀 몰랐습니다. 홈런 맞은 순간 '멍' 했으니까요."라며, 어쩔 수 없이 마운드에서 내려올 수밖에 없었던 뒷이야기를 들려주기도 했습니다.

공교롭게도 양 팀의 선발(북일고 이영재, 덕수고 김진영)은 5회를 넘기지 못하고 마운드를 내려와야 했습니다. 그리고 이때부터 '에이스 자존심 맞대결'이 이어졌습니다. 덕수고는 한승혁이, 북일고는 김용주가 끝까지 마운드를 책임지면서 '공'이 아닌 '투혼'을 던졌다는 인상을 강하게 남기기도 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북일고가 7회 말 공격서 3점을 내며 승리의 기운을 잡는가 싶었지만, 이인행을 앞세운 덕수고도 8회에 다시 3점을 따라 붙으며 스코어는 8-8, 팽팽한 균형을 유지했습니다. 그리고 정규 이닝에서도 승부를 가리지 못했던 양 팀은 연장전까지 펼치며 득점 찬스를 노렸지만, 뜻을 이루지는 못했습니다. 결국 양 팀은 밤 10시 45분이 넘어서도 승부를 가리지 못했고, 이에 규정에 따라 양 팀의 승부는 익일 서스펜디드로 재개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즉, 그 해 청룡기 선수권 준결승전 제2경기는 결승전 당일 아침에 나머지 경기를 치른 이후 곧바로 저녁에 다시 결승전을 치러야 하는, 상당히 힘겨운 일정을 감수해야 했습니다.

이에 양 팀은 잠시 수면을 취한 이후 아침에 다시 목동야구장 그라운드에 나왔고, 12회까지 이루었던 8-8 균형은 12회 말에야 깨졌습니다. 북일고 김동엽의 타구를 3루수 김경도가 실책을 범하면서 주자가 홈인, 1박 2일의 승부를 끝낸 것입니다. 최종 스코어 9-8. 본인 때문에 패했다고 생각했던 김경도는 이후 더그아웃을 떠나지 못한 채 슬픔의 눈물을 흘렸고, 정윤진 감독을 비롯한 민동근 당시 수석코치(현 NC 스카우트)도 그를 감싸면서 달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김경도는 이후에 열린 아시아 청소년 선수권 일본전에서 결승타를 치면서 대회 우승에 일조, 그 설움을 한 번에 날리기도 했습니다.

▲ 시카고 컵스를 거쳐 지난해 한화 1번 지명을 받은 김진영. 이제 프로에서 김동엽, 한승혁, 김용주 등 고교시절 동료 및 라이벌들과 맞대결을 펼치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사진ⓒ김현희 기자

그러나 이렇게 투혼을 불살랐던 북일고도 체력이 다 한 탓인지 결승전에서 만난 신일고에 3-5로 패하면서 황금사자기에 이어 청룡기 선수권에서도 준우승에 만족해야 했습니다. 이러한 설움은 추후 열린 봉황대기 대회 우승으로 말끔하게 해소했고, 그 해 감투상만 두 번 받은 김용주는 대회 MVP에 선정, 그 해 열린 전면 드래프트에서 한화 1라운드 지명을 받는 겹경사까지 누리기도 했습니다.

그렇다면, 왜 이렇게 결승전 당일까지 4강전을 소화해야 했을까요? 당시 목동 야구장이 지닌 특수성 때문이었습니다. 목동 야구장은 당시까지만 해도 넥센 히어로즈가 홈구장으로 사용하고 있었던 프로야구 1군 그라운드였습니다. 전국대회가 열릴 때마다 KBO에서도 넥센에게 원정 경기를 배정하는 등 아마야구를 배려하는 모습을 보여줬지만, 우천이 문제였습니다. 우천 순연 경기가 일어나면서 일정도 촉박해지고, 이로 인하여 대회 이후 넥센이 다시 홈 경기를 치러야 하는 문제가 있어 어쩔 수 없이 대회 일정에 대한 연기 자체가 불가능했던 것입니다. 현재 목동 야구장에는 그러한 이유로 일정을 강행하는 일은 없어졌지만, 한반도 기후 특성상 발생하는 우천과 장마는 여전히 고교야구 전국무대를 준비해야 하는 신문사 및 협회가 지속적으로 안고 가야 할 숙제로 보여집니다.

그런데, 신인지명회의 이후 김진영은 이와 관련한 뒷 이야기를 털어놨습니다. 본인이 선발로 나섰던 청룡기 준결승전에서 김동엽에 홈런을 맞은 이후 열병에 걸려 정작 다음 날 서스펜디드 경기에는 참가를 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만약에 승리하면 결승전에 등판할 수 있었기 때문에 숙소에서 초조하게 경기 결과를 기다렸지만, 결국 패배의 소식이 전달되자 그 역시 김경도와 마찬가지로 설움에 북받혔다고 합니다. 본인의 고집 때문에 진 것 같아서 상당히 마음이 아팠다는 후문입니다. 김동엽과 승부를 할 때 유리한 볼카운트에서 '힘'으로 밀어 붙인 것이 결과적으로는 홈런으로 이어졌기 때문이었습니다. 둘은 2011년을 기점으로 시카고 컵스에서 한솥밥을 먹으며 동료로 지내기도 했습니다만, 1년 터울로 다시 국내로 돌아오면서 서로 다른 팀의 지명을 받았습니다. 향후 두 사람이 1군 무대에서 다시 만난다면, 이번에 승자는 누가 될까요?

서울 목동, eugenephil@mhn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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