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마가 있는 야구_광주일고, 서울 강세 제치고 8년 만에 대통령배 '정상' 등극

▲ 대통령배 우승 확정 직후 일제히 그라운드에 나가 서로를 치하하는 광주일고 선수들. 사진 ⓒ 김현희 기자

[문화뉴스]대통령배 전국 고교야구대회 결승이 한창인 목동구장. 광주 제일고등학교(이하 광주일고)와 서울 성남고등학교가 예상을 깨고 나란히 결승에 진출했던 상황이었다. 그러나 예상 밖의 팀이 결승에 진출했다고 해서 전국대회 최종무대다운 긴장감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반대였다. 결승전답게 양 팀이 3회까지 이렇다 할 찬스를 잡지 못한 채 4회를 맞았기 때문. 선취점이 생명인 결승전에서 먼저 포문을 여는 팀이 그만큼 우승에 가까워질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바로 그때 광주일고가 먼저 기선을 제압했다. 4회 말 공격서 5번 김도길의 적시타로 두 점을 앞서 나갔기 때문. 성남고 선발 성재헌이 준결승까지 역투를 펼쳐 힘이 떨어졌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아무래도 에이스 김현준(KIA 타이거즈 1차 지명)이 버티고 있는 광주일고가 유리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운명의 신'은 전국무대 타이틀 홀더의 주인 자리를 쉽게 허락하지 않았다. 7회 공격서 1점을 만회한 성남고가 8, 9회에 걸쳐 3번 최수빈의 2루타를 시작으로 와일드피치 두 개 등으로 한꺼번에 6점을 만회했기 때문이었다. 여기에 상대 실책까지 겹쳐 내 주지 말아도 될 점수까지 내어 준 광주일고의 운명은 그야말로 '바람 앞의 촛불' 이었다. 9회 말 공격이 다가왔을 때 성남고는 사상 첫 대통령배 우승에 대한 기대감이 커져 있었고, 반대로 광주일고는 단 한 번 찾아 올 기회만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었다.

'8년 전 기적 재현', 광주일고의 '대통령배 정복기'

바로 그 때, 승리의 여신은 아직 광주일고를 버리지 않고 있음이 드러났다. 1학년 김우종의 안타로 포문을 연 광주일고가 홍신서, 류승현이 또 다시 안타로 출루에 성공하며 찬스를 만들었기 때문. 바로 이 때 7번 김태진의 적시 3루타가 터지면서 광주일고 응원석은 말 그대로 '광란'에 휩싸였다. 그리고 뒤집힐 것 같지 않던 점수가 기어이 7-7 동점이 되자, 페이스는 완전히 광주일고 쪽으로 넘어오게 됐다. 바로 이 때 광주일고 김선섭 감독은 8년 전 대통령배 대회를 떠올리게 됐다.

'정말 그 때의 기적을 재현했으면...'
 
2007년, 동대문 야구장에서 열린 대통령배 고교야구 결승전은 정찬헌의 광주일고와 이형종(이상 LG)의 서울고의 대결로 압축됐다. 객관적인 전력에서는 백중세였던 두 팀이었지만, 먼저 기선을 제압했던 것은 서울고였다. 안치홍(KIA)을 비롯하여 팀의 중심 타자를 겸하고 있던 이형종 등이 맹타를 퍼부으며 광주일고 에이스 정찬헌을 강판시키는 데 성공했기 때문. 마운드에서 내려가 1루수로 교대한 정찬헌은 입을 꽉 다문 채 말없이 눈물만 흘리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에이스다운 역할을 하지 못한 채 팀의 패배를 지켜볼 수도 있다는 죄책감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광주일고 역시 호락호락하게 물러나지 않았다. 연투로 지친 이형종을 상대로 '아무도 모르게 조금씩' 점수 차이를 좁혔기 때문이었다. 점수 차이가 좁혀지자 이형종은 마운드에서 눈물을 글썽이기 시작했다. 자신의 힘으로 도저히 광주일고 타선을 막을 수 없다는 괴로움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눈물은 당시 사령탑이었던 김병효 감독이나 추성건 코치(현 자양중 감독)도 닦아줄 수 없었다. 어떻게든 팀의 대들보가 그 상황을 이겨내 줘야 했다.

바로 그때, 광주일고 타석에서는 포수 윤여운(KT)이 들어섰다. 2사 만루, 9-9 상황을 맞은 운여운은 1루수 옆을 빠지는 우전 안타로 3루 주자를 불러들이며 대 역전극의 주인공이 됐다. 바로 그 순간, 이형종은 마운드에 무릎을 꿇은 채 하염없이 눈물을 흘려야 했다. 이형종의 '눈물의 역투'로 회자됐던 2007년 대통령배 대회는 그렇게 광주일고의 대역전극으로 마무리된 바 있다. 그리고 김선섭 감독은 당시 모교 광주일고의 코치였다.

▲ 2007년 코치로 우승을 맛본 이후 감독으로서 다시 대통령배 정상에 오른 김선섭 감독. 사진 ⓒ 김현희 기자

코치로 우승을 맞은 후 8년 만에 다시 대통령배 결승전에 오른 김선섭 감독. 공교롭게도 이번 2015년 대통령배 역시 8년 전과 상당히 비슷한 상황으로 흘렀다. 다만, 당시에는 9회 말 정규이닝 마지막 공격에서 승부를 끝냈고, 이번에는 승부를 연장까지 가져간 것이 다르다면 다른 점이었다.

그러나 이번 혈전은 8년 전과 자못 달랐다. 성남고가 다시 연장에서도 점수를 추가하며 기세를 올렸기 때문이었다. 더구나 광주일고에는 당시의 정찬헌처럼 압도적인 에이스가 없었다. 그나마 3학년 에이스로 주목을 받았던 김현준 카드도 이미 써 버린 상태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김선섭 감독은 1학년 좌완 박주홍을 내세워 성남고 타선을 필사적으로 막기 시작했다.

그렇게 맞은 12회 말 공격. 12회 초 수비서 또 다시 한 점을 내어 주면서 9-10 리드를 허용한 광주일고는 어떻게든 최소 동점을 만들어야 했다. 그러나 믿었던 리드오프 최지훈이 좌익수 플라이로 물러나면서 그 바람은 조금씩 꺾이는 듯했다. 바로 이 때 승부는 1학년 어린 선수의 손에서 다시 시작됐다. 2번 김우종(1학년)이 2루수 옆 내야 안타로 출루했기 때문이었다. 뒤 이어 3번 홍신서의 좌전 안타로 다시 기회를 잡은 광주일고는 10회부터 대타로 들어 온 신제왕이 상대 투수 이민욱으로부터 밀어내기 몸에 맞는 볼을 얻어내면서 다시 동점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 6번 곽봉준의 삼진으로 잠시 예봉이 꺾이는 듯 했지만, 만루 상황에서 등장한 이는 앞선 타석에서 무려 3개의 안타를 쳐 낸 김태진(3학년)이었다.

풀 카운트 상황에서 그가 친 공은 그대로 3루수 이동규의 머리 위로 떴다. 평범한 내야 플라이처럼 보였지만, 야간 경기 특성상 어린 선수가 타구를 놓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이동규도 타구 방향을 잡은 듯 보였지만, 순간적으로 조명탑에 공이 가려진 것이 치명타였다. 낙후 지점을 놓쳐 버린 것이었다. 결국 이 타구는 3루수 뒤쪽에 떨어지는 안타가 되면서 결승타가 됐고, 3루 주자가 홈을 밟자마자 광주일고 선수들은 누구랄 것도 없이 그라운드에 나가 우승의 기쁨을 누렸다. 11-10. 대통령배 역사상 최고의 혈투로 기억될 이 경기는 광주일고의 우승으로 끝이 났다. 오후 5시 57분에 시작된 경기가 오후 10시 11분이 되어서야 끝난 것이었다(공식 경기시간 : 4시간 14분).

결승타 포함, 결승전에서만 무려 4안타, 5타점을 기록한 중견수 김태진은 대회 최우수 선수(MVP)에 선정되어 향후 개최될 2차 신인지명 회의에서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게 됐다. 그리고 1학년 선수로는 드물게 2개의 홈런포를 가동한 내야수 김우종은 성남고 이동규를 제치고 대회 홈런왕에 오르는 영광을 안게 됐다. 1학년 선수가 전국 무대에서 상을 받는 것은 2009년 하주석/정병관(이상 신일고) 이후 오랜만이기도 했다.

당초 우승 후보로는 손꼽히지 않았지만, 정확한 선수 기용과 중심 타자들의 활약을 바탕으로 8년 전 대통령배 우승을 재현한 광주제일고. 서울 지역 고교가 대세라는 평가 속에서 많은 서울팀들을 제압하고 정상에 오른 그들의 저력이 향후 청룡기 대회, 혹은 내년 시즌에 어떻게 다시 나타날지 지켜 볼 일이다.
 
문화뉴스 김현희 기자 eugenephil@mhn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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