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문화뉴스 MHN 양미르 기자

[문화뉴스 MHN 석재현 기자] 7월 23일에 막을 내린 제21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이하 BIFAN), 총 300여 편 가까이 되는 영화가 10박 11일 동안 부천 일대에 상영되었다. 수많은 원석들이 관객들에게 선보였지만, 그중 빛나는 원석이 하나 있다.

7월 18일 CGV 부천역에서 필자는 BIFAN의 숨은 원석이었던 '어둔 밤'을 발견했다. 영화의 제목부터 할리우드의 거장 크리스토퍼 놀란의 역작으로 손꼽히는 '다크 나이트'를 가져다 그대로 패러디해 시선을 끎과 동시에, 마치 '족구왕'처럼 웃음과 슬픔이 동반하는 웃픔을 던지며 관객들을 쥐락펴락했다. 그 덕분에 BIFAN 코리안 판타스틱 부분 작품상을 거머쥐었다.

BIFAN에서 수상까지 하며 단숨에 주목받을 줄 알았으나, '어둔 밤' 심찬양 감독을 찾는 러브콜이 생각보다 잠잠했다. 그래서 누구보다도 빠르게 'BIFAN의 히어로' 심찬양 감독을 지난 24일 홍대 MHN 미디어센터에서 만나보았다.

BIFAN 코리안 판타스틱 부분 작품상 수상 축하한다. 소감은?
└ 마냥 좋았다. 사실 초청된 것 자체만으로도 감사했다. '웃긴 영화'라고 평가해주는 것도 좋지만, '뭔가가 있는 영화'라고 봐주셨다는 게 대단히 감사할 따름이다.

영화제 수상한 후, 출연했던 배우들이나 스태프들 반응은 어땠나?
└ 기뻐하고 좋아했다. 특히, '안 감독' 맡았던 친구는 영화를 하고 싶어 하는데, 이번에 엄청난 분들로부터 연기 칭찬을 받았고 "'밀양'의 송강호급이다"는 소리도 들었다. (웃음)

▲ ⓒ 문화뉴스 MHN 양미르 기자

사실 나는 받을 줄 알았다. BIFAN에서 봤던 영화들 중 '어둔 밤'이 가장 강렬하게 남았다. '어둔 밤'을 만들게 된 계기는?
└ 과거 봉준호 감독님이 한 인터뷰에서 "영화에서 '다큐멘터리 같은 순간'을 느낄 때 가장 쾌감을 느꼈다"고 말씀하시는 걸 우연히 봤다. 그래서 '다큐멘터리 같은 순간'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궁금증이 생겼다.

그동안 수많은 영화를 봤지만, 가장 열광하면서 본 게 '다큐멘터리 같은 순간'이었다. 그 순간으로 이루어진 무언가를 만들면 재미있을 것이라 생각했고, 주변에 재밌고 독특한 친구들과 함께 졸업하기 전에 재밌는 걸 만들면 좋겠다 싶어 시작하게 되었다.

'이게 영화일까? 과연 영화로 성립할 수 있을까?'는 의문을 가지고 작업을 시작하게 된 게 1부였고, 그 1부가 우연히 2년 전 전주국제영화제에 상영되었다. 그때 관객들로부터 '좋은 영화'라는 반응을 얻었다.

나는 '어둔 밤'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좋아했고 사랑했다. 하지만 극 중 출연했던 이들 중 한 명이 입대한다는 소식을 전했기에 그 전에 영화를 빨리 찍어야겠다고 싶어 1년 반이 지나 다시 찍게 되었다. 그동안 이야기를 쓰는 사람으로서 영화를 찍지 못한 것에 대한 일말의 죄책감도 일부 있었다. 1년 반 동안 뿔뿔이 흩어졌던 친구들을 다시 모아 '어둔 밤'을 완성하게 되었다.

2년 전 전주국제영화제에 진출한 이후, 이번 BIFAN에도 나가게 되었는데 애초에 염두했는지?
└ BIFAN에 제출하기 이전 다른 영화제에도 '어둔 밤'을 제출했지만, 미완성본인 상태였기에 스스로 보기 부끄러웠다. 최종편집이 완료된 것은 올해 4월이었고, 4월 기점으로 가장 가까운 영화제를 찾다 보니 BIFAN이었다. 또한 BIFAN이 장르 영화제였기에 관객들이 좋아하겠다는 판단이 생겨 제출하게 되었다.

부천에서 상영할 당시, 많은 관객들이 호평을 했다. 이를 예상했었는지?
└ 영화를 좋아하시는 분들이 많이 찾아주셨기에 혹평은 많이 없을 것이라 생각했었다. 그런데 생각 외로 많은 분이 '인생 영화다' '대작들과 비교해도 이게 제일 좋았다' 등의 극찬을 해주셔서 낯뜨거웠다. (웃음) 그때 관객들에게 진정성이 전달되었다고 생각했다.

사실 BIFAN에 출품한 버전 또한 아직 기술적인 문제들이 남아있어 완성본이라고 할 수 없었는데, 많은 이들이 감동하셨던 것 같다. 나 스스로 할 수 없는 무언가를 내가 만든 것 같다.

▲ 영화 '어둔 밤' 스틸컷

'어둔 밤'이 1, 2부는 메이킹 필름 형식, 그리고 3부가 본격적으로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다크 나이트' 패러디인데 매끄럽게 이어졌다. 특히나 메이킹 필름 형식인 1, 2부 제작이 힘들었을 텐데, 어디서 착안한건가?
└ 나는 개인적으로 해설 하나 없는 영화 속 메이킹 필름을 보는 게 재밌었다. '올드보이'는 9시간짜리 메이킹 필름이 있다. 메이킹 필름이라는 자체가 영화의 어떠한 느낌이 있겠다는 걸 항상 생각해왔고, 여기에서 관객들이 따라갈 수 있게, 서사의 커다란 굴곡까지는 아니더라도 약간의 극적인 장치를 심어놓았다.

그 외 대사의 재미를 위해, 혹은 영화의 흐름을 구현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 그리고 촬영 내내 배우들이 내가 상상했던 이상의 그림을 만들어주고 보여주고 와서 뭔가 나오지 않았나 싶다.

겉보기에는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다크 나이트 트릴로지'를 패러디한 것이지만, 다르게 본다면 크리스토퍼 놀란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시도한 작품이다. 후반에는 다른 작품들과 융합하여 놀란 작품과는 다른 방향으로 가게 된다. (웃음)

크리스토퍼 놀란의 작품을 패러디하고 오마주를 가져오는 게 신선했지만, 마니아가 아닌 이상 대단히 힘든 작업일 것이다. 그런데 '어둔 밤'에 등장하는 배우들 대부분이 공교롭게도 '놀란 마니아'였다. 이렇게 모으기도 쉽지 않았을 텐데
└ 2010년 포항에서 대학교 다녔을 때 촬영과 PD를 맡았던 친구들을 처음 알게 되었고, 그들과 수많은 작업을 했다. 단편 영화뿐만 아니라, 공연, 그리고 청년 뮤지컬도 했었다. 작년 대학로에서 연극을 올리기도 했다. 재미는 '어둔 밤' 이상이었다고 생각하는데, 아쉽게도 관객들에게 많은 주목을 받지 못했다.

▲ 영화 '어둔 밤' 스틸컷

이 친구들과 함께 학교가 있었던 포항에서 주로 작업했지만, 나름 영화의 질은 괜찮다는 확신이 있었다. 이 팀으로 클레르몽페랑 국제 단편 영화제에 나가 수상하기도 했고, 그 외 수많은 작품도 같이 해오면서 단단한 팀워크가 생겼다.

하지만 대부분 배우나 혹은 연기를 한다는 것에 큰 목적을 두지 않았다. 그래서 더욱 진짜처럼 나올 수 있었다. 그게 연기의 고급스킬인데 모든 이들이 '나는 연기하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참여했다. 그들 자체가 다이아몬드였기에, 나는 그저 좀 더 다듬어줬을 역할만 했을 뿐이다.

이들이 전문 배우가 아니라는 점에서 이 정도로 실제 같은 연기력을 보여줄 줄은 몰랐다. 쉽지 않았을 텐데
└ 촬영하는 순간에도 본인들 스스로 어색하다고 느꼈을 때도 있었겠지만, 이창동 감독님의 '밀양'을 능가하는 실제처럼 가보자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어느 부분에서는 촬영의 질이 조금 떨어지거나, 초점이 나가도 된다고 생각했다. 어차피 메이킹 필름 콘셉트였고, 카메라를 처음 잡는 친구가 찍는 설정이었다. 이런 살아있는 순간을 만들어내지 못한다면, 찍을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다.

BIFAN에서 '전도연 특별전'에 참석했다가 그때 만난 '밀양' PD님이 나한테 영화 아주 재밌게 잘 봤다고 칭찬해주셨다. 최대한 살아있는 것처럼 보이려고 했던 게 잘 반영된 것 같다.

그럼 여기서 궁금한 게, 1부부터 등장인물의 모든 설정은 정해놓고 시작한 것인가?
└ 1부를 만들기 전에는 아무것도 정한 게 없었다. '이렇게 했으면 좋겠다'고 지침서 같은 대본이 있었고, 촬영 한 시간 전에 처음 대본 리딩을 했다. 대본 리딩을 한 후에야 비로소 역할을 정했다. 모두가 혼란한 상태에서 일단 해봐라 식으로 시작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안 감독'과 '심 PD' 역할을 바꿔서 했는데 너무 안 어울려서 망했구나 싶었다. 그래서 완성본처럼 정하니까 그때부터 서로에게 착 달라붙었다. 그렇게 하나둘씩 잡아갔다. 대부분 '어둔 밤'에 참여하는 이들이 오랫동안 봐왔기에 그들이 무엇을 잘하고, 어떤 모습을 했을 때 매력적인지를 잘 알고 있어 쉽게 잘 잡아나갈 수 있었다.

▲ 영화 '어둔 밤' 스틸컷

'어둔 밤'에서 가장 매력적인 인물을 꼽자면 '슈퍼 히어로'와 '악당' 역을 했던 배우 분들이 가장 눈에 띄었다.
└ '슈퍼 히어로'를 맡았던 친구는 현재 취직했지만, 연기를 잘했다. 애초에 배우를 해야겠다는 생각은 아니었는데, 나와 같이 다니다 보니 영화나 뮤지컬도 함께 하게 되었다. 작년에는 대학로에서 배우로 활동도 했다. 어느 정도 재능이 있다는 걸 알고 배우로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본인은 평범하게 살길 원하는 것 같다. (웃음)

'악당'을 맡았던 친구는 소문난 '배트맨 마니아'였다. 어느 날 '배트맨 코믹스'를 보고 있다가, 혼자 분노에 차서 "배트맨이 사람을 죽일 수 있냐?"며 말하더라. 그리고 영화 '다크 나이트'의 '조커' 대사를 6분 동안 똑같이 구사할 정도였다. 그 친구에게는 '어둔 밤'이 꿈을 이루었던 순간이었다. (웃음) 한 명의 꿈을 이렇게 이뤄준 것만 하더라도 좋은 일이지 않나 싶다.

[문화 人] '어둔 밤' 심찬양 감독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 팔로잉한 이유는…" ② 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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