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호 감독 휘하 선수단 선전 이어지며 대통령배 16강 '견인'

▲ 경기 직후 응원단에 예를 표하는 서울디자인고 선수단. 사진ⓒ김현희 기자

[문화뉴스 MHN 김현희 기자] 어느 분야에서나 '첫 번째'는 늘 외롭기 마련이다. 숫자 '1'이 최고를 의미하는 경우에는 그 자리를 지키기 위한 노력을 지속해야 하며, '최초'를 의미하는 경우에는 제로 베이스(zero base)에서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 자리에 '혼자' 서 있어야 하기에 숫자 '1'은 상징성이 있으면서도 상당히 외로운 숫자임에 틀림없다.

이를 고교야구에 접목시켜 보면, 더욱 그럴 듯 하다. 전국 본선 무대에서 우승을 거둔 학교는 이듬해에도 우승을 차지하기 위해 졸업한 선수들의 공백을 메워야 하고, 아예 새로 창단한 학교는 주말리그 참가를 위한 최소한의 선수 숫자를 확보하는 작업부터 시작해야 한다. 그런데, 최고의 자리를 지키는 것은 '현재 전력'을 강화하는 것에 중점을 두되, 좋은 신입생을 수월하게 스카우트하는 방향으로 진행하면 어느 정도 소기의 성과를 거둘 수 있다.

반면, 제로의 상태에서 팀을 만드는 과정은 또 다른 외로움과의 싸움을 진행해야 한다. 기존에 있는 학교에서 주전으로 뛰지 못하는 선수들을 전학시켜야 하는 문제도 있고, 중학 유망주들 중에서 신생 학교 진학을 희망하는 인재들도 뽑아야 한다. 그러나 학생 선수라면, 명문고교에서 자신의 재주를 드러내 보이고 싶어 할 것이다. 팀을 만들기 위해서는 선수 수급부터 원활해야 하는데, 그러한 기본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어렵다 보니, 'ONE TEAM'을 만드는 것 또한 쉽지 않다. 그래서 전국 본선 무대는 커녕, 주말리그에서도 힘을 못 쓰는 것이 신생팀이 지닌 한계이기도 하다.

우리 학교 야구부 탐방, 서울 디자인고등학교 편

그러나 이러한 일반적인 핸디캡을 빠른 시간 내에 극복하는 학교도 있다. 서울 마포구에 위치한 서울 디자인고등학교 야구부도 마찬가지. 3~40대 이상에게는 공덕동 사거리에 위치한 '동도공업고등학교'라는 명칭이 더 익숙하고, 럭비부에서 세운 69연승의 신기록 역시 최고로 인정받을 법했던 바로 그 학교였다. 그랬던 동고공고가 2004년을 기점으로 '서울 디자인고등학교'로 교명을 변경하면서 변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여기에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를 주축으로 펼쳐진 고교 야구부 지원 사업이 활기를 띄면서 디자인고 역시 야구부 창단에 합류했다.

2013년 말 창단 이후 2014년 주말리그부터 참가한 디자인고는 다른 창단팀들이 그러했듯, 늘 1승에 목이 말랐다. 작년 대통령배를 치르기 전까지 전국 본선 무대에서 첫 승을 거두는 것이 정말 어려웠다. 그러다 지난해 봉황대기 1회전에서 인상고에 7-6 승리를 거두면서 분위기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창단 첫 전국무대 32강에 오른 것은 물론, 그 해에 프로선수까지 배출하는 겹경사까지 맞았다. 중학교 때 야구를 잠시 그만뒀다가 고교 무대에서 속구 투수로 거듭났던 소이현이 NC의 지명을 받았던 것이었다. 이러한 점이 동문회나 후원회에도 크게 어필이 됐던 셈이었다.

그러던 올해, 디자인고는 이호 감독이 지휘봉을 넘겨받으면서 다시 한 번 전환점을 맞이했다. 서울권역에 강호들이 많아 주말리그에서는 크게 빛을 발하지 못했지만, 올해 처음 참가하는 전국 본선 무대인 대통령배 대회에서 꽤 의미 있는 기록을 남겼다. 지난 30일, 목동야구장에서 열린 대통령배 32강전에서 선발 박민준의 역투와 하위 타선의 힘을 바탕으로 디자인고가 영선고에 6-3으로 승리하며, 창단 첫 전국 본선 16강에 합류했기 때문이다. 탄탄한 기본기를 바탕으로 안정된 수비를 선보였다는 점이 꽤 인상적이었다. 경기를 지켜보던 박용진 전 LG 2군 감독도 "디자인고가 질서가 잘 잡힌 야구를 한다. 기본이 잘 되어 있다. 초등학교와 중학교에서 20여 년 선수들을 지도해 온 이호 감독의 공이 크다."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을 정도였다.

▲ 20년 이상 지도자 생활을 하며, 많은 제자들을 양성한 이호 감독. 올해부터 디자인고 야구부를 이끌고 있다. 사진ⓒ김현희 기자

선린중-선린상고-건국대를 졸업한 이호 감독은 현역 은퇴 이후 꽤 오랜 기간 지도자로 많은 제자를 키워낸 이였다. 언북초교, 언북중학교에 몸담으면서 엄상백, 심우준(이상 kt)을 키워냈고, 이동걸, 조지훈(이상 한화), 그리고 박정우(KIA)의 성장에 도움을 주기도 했다. 이후 잠시 디자인고 코치를 역임하다가 2016년에 제주국제대학교로 거처를 옮긴 후 1년 만에 다시 디자인고로 돌아왔다. 고교 감독직은 이번이 처음이다.

경기 직후 만난 디자인고 이호 감독은 "선수들이 열심히 해 준 덕이다. 학교측에서도 야구부 발전을 위해 아낌없는 지원을 해 주셔서 창단 첫 16강에 오른 것 같다."며 본인보다는 학교, 그리고 동문회와 선수들에게 공을 돌렸다. 그러는 한편, "기본을 지키는 야구를 하려고 노력을 많이 한다. 그래서 기본기 위주로 훈련을 많이 하고, 또 선수 이전에 학생이기에 학생다운 인성을 많이 강조한다. 또한, 이번 대회를 앞두고 선수들에게 자신감을 불어 넣어 주는 데에 힘을 많이 썼다."며, 본인만이 지닌 지도 철학을 밝히기도 했다. 이틀 후 열리게 될 16강전에 대해서도 "서울고가 올라오건, 화순고가 올라오건 간에 우리는 한 경기, 한 경기 최선을 다 하고 열심히 해야 한다. 경기 후에 꼭 최선을 다 했던 팀이라는 평가를 받고 싶다."라며, 다가 올 16강전에 대한 각오를 다졌다.

사실 강호들이 둘러 쌓인 서울지역에서 디자인고와 같은 신생 학교들까지 힘을 낼 경우 주말리그를 더욱 알차게 운영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시험 무대가 될 대통령배에서 디자인고의 도전이 어디까지 이어질지 지켜보는 것도 자못 흥미로울 것이다.

※ 대통령배 스타 : 서울디자인고 투수 박민준

▲ 대통령배에서 시즌 첫 승을 기록한 서울디자인고 투수 박민준. 사진ⓒ김현희 기자

올해 유달리 승운이 따르지 않았던 '비운의 에이스'였다. 특히, 성남고, 배재고, 충암고와의 주말리그전에서는 잘 던지고도 패전을 기록했다. 대통령배가 시작되기 전까지 박민준의 성적은 승리 없이 4패, 평균자책점 5.08이었다. 그러나 영선고와의 대통령배 32강전에서 선발로 등판, 107개의 투구수를 기록하는 동안 8이닝 8피안타 3자책 호투로 대통령배 16강 진출 확정을 알리는 승리이자 본인의 시즌 첫 승을 신고하는 데 성공했다.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야구를 시작한 박민준은 모가중학교-배재중학교를 거쳐 디자인고에 입학했다. 그 전까지 주로 외야수로 활약하다가 고교 진학과 함께 투수로 전향했다. 지기 싫어하는 성격 탓에 올해 승리 없이 4패만을 기록한 것에 대한 자존심도 상했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이번 승리로 8강 이상까지 바라보겠다는 각오가 대단하다.

서울 목동, eugenephil@mhn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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