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가 있는 날·예술이 있는 삶을 빛냅니다…문화뉴스] '씬 스틸러(Scene Stealer)'. 영화나 드라마에서 한 장면을 온전히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배우들을 말한다. 이들은 뛰어난 연기력으로 주연처럼 주목받는 조연배우들이다. 문화뉴스의 [대한민국 탑 아트스틸러]는 대중적인 주류는 아니더라도 각자의 분야에서 큰 인정을 받으며 My way'를 걷고 있는, 우리 문화예술계를 빛내고 있는 소중한 아티스트를 소개하는 코너다. 이번 주인공은 영상으로 먼저 만나보자.

형식적이지만 자기소개 부탁 할게요.
ㄴ 네 안녕하세요 저는 98년도부터 춤을 시작한 티아이피크루 디퍼(Differ) 김기헌입니다. 디퍼의 뜻은 'Different'에서 얻었어요. 조금 다르게 추고 다르게 생각하고 싶어서 디퍼라고 지었습니다.

비보이 중에서도 키가 굉장히 크신 편 같은데?
ㄴ 보통사람에 비해서는 큰 편이 아닌데, 179cm에요. 어렸을 때는 키가 작고 근육이 많은 형들이 부러웠어요. '땅땅'해 보이는게 멋있는 비보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래서 그때는 제 몸이 싫었어요. '나도 좀 작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죠. 키가 크면 동작이 힘들더라고요.

그런데 2000년도 후반부터 키보다는 개성을 존중하는 쪽으로 바뀌면서 키가 크든 작든 마르든 뚱뚱하든 상관없이 몸에 맞게 잘 추기만 하면 인정을 받죠. 지금은 키가 큰 친구들이 많아졌더라고요. 그때 당시에는 제가 유일했는데(웃음).

근데 한편으로는 감성적인 춤을 추고 싶더라고요. 비보이는 맨날 폭발시켜야 되고 '으아아악' 이래야 하는데, 제 마음속에는 비 오는 날 발라드를 들으면서 창밖을 보고 싶은...하하하 왜 웃으세요(웃음). 어렸을 때부터 그런걸 표현하고 싶은 욕구가 있었나 봐요.

독보적이셨군요. 키 외에 이름처럼 다른 댄서들과 다른 점이 있다면?
ㄴ 달랐다기보다는 비보이답지 않은 생각을 많이 했던 거 같아요. 비보이 스타일은 '배틀' 문화가 있어서 에너지를 폭발시켜야 하는 상황이 많아요. 상대와 대결을 하는 구도가 많으니까요.

'춤이 말하다' 공연이 큰 도움이 됐겠어요.
ㄴ 비보이 행사에서는 전형적인 '배틀'이라는 형식 때문에 '분노' 외의 감정적인 부분을 구현하기 힘들어요. 그런데 '춤이 말하다' 공연에서 현대무용이나 발레, 전통무용을 하시는 분들과 공연을 하다 보니까 감정적인 부분을 표현하는 방법을 알게 되더라고요.

   
▲ '춤이 말하다'공연은 국립현대무용단 기획공연으로, 한국 전통춤, 현대무용, 발레, 스트리트댄스 등 각 분야의 무용가 6명의 강의 형식 퍼포먼스로 구성됐다. 예술의 전당에서 지난겨울 공연됐다.

같은 비보이 춤을 추셨는데, 기존 공연과 어떻게 달랐어요?
ㄴ 우리는 "어떻게 하면 이길 수 있을까, 더 잘할 수 있을까"를 생각하면서 '분노'를 주로 표현해왔잖아요. 그런데 이분들은 '죽음' '사랑' '행복' '고뇌' 이런 걸 자기 춤으로 표현 하는 거에요. 제가 비보잉을 하면서 한 번도 표현해본 적이 없었던 건데 많이 배웠죠.

'비보이를 사랑한 발레리나'처럼 요즘에는 그런 공연이 굉장히 많은데, 어떻게 보면 흔한 것 같기도 해요.
ㄴ 진짜 흔하거든요. 발레리나와 비보이의 조합. '비보이를 사랑한 발레리나'도 굉장히 대단한 작품이긴 하지만 개인적으로 비보이와 발레리나가 만나서 새로운 걸 만들어낸다는 느낌은 못 받았어요. '전통'과 '비보이' 이런 식으로 많이 섞어도 봤는데 더 깊게 들어가고 싶어요. 단순히 '비보이 기술'과 '전통 음악'이 아니라 진짜 표현하는 정점을 맞춰서 새로운 걸 만들고 싶더라고요. 굉장히 어려워요.

비보이의 매력이 '춤이 말하다'에서 다른 분야와 접목이 됐을 때는 또 다른 매력이 있겠죠?
ㄴ 비보이는 기술을 많이 쓰는 장르기 때문에 신체조건을 만들기에 굉장히 좋은 장르에요. 여기에 아까 말했듯이 감정이라는 포인트를 집어넣으면 표현할 수 있는 게 어마어마하거든요. 비보이 춤에는 '분노'라는 영역이 많이 차지하다 보니까 격하고 에너지 있는 화려한 기술만 나오는데, 여기에 감정이 이입되는 순간 무한한 장르가 탄생하지 않을까 하고 기대하고 있어요.

좋은 시도지만, 한편으로는 비보이의 전통성이나 정체성을 흐린다는 얘기가 나오지 않나요?
ㄴ 네. 그래서 너무 비보이 행사에서 누군가를 응시하면서 감정을 꺼내거나 하진 않아요(웃음). 컨트롤을 잘해야 해요. 배틀에서는 다른 기술을 갖고 있다고 해도 비보이답게 그 느낌을 최대한 끌어내야 하고, 바이올린 연주처럼 비트가 다른 음악이 나왔을 때는 그 선율에 맞는 느낌으로 변신을 해야죠. 항상 중요한 건 두 가지를 같이 병행해야 한다는 점이에요. 한쪽으로 치우치면 중립을 잃으니까요.

춤을 출 때 어디서 영감을 받으세요?
ㄴ 주위의 사물이나 디자인, 자연, 아니면 개인적인 경험. 이런 데서 받을 때가 많아요.

감정이 없는 사물이나 디자인은 좀 의외인데요?
ㄴ 기본적으로 비보이 기술에서 영감을 받지만, 그 외로 영역을 넓히려면 4차원적인 생각을 많이 해야 하는 것 같아요.

평소 성격도 약간 4차원이신가요? (웃음)
ㄴ 평소 성격이 4차원 같은 건 아니고요. (웃음) 1차원적인 생각을 하기보다 좀 더 깊게 생각한다는 거죠. 나무를 보고 영감을 받아도 보통 사람들처럼 나무의 자세를 따라서 하기보다 나무가 서 있고 바람이 불고 잎사귀가 흔들리는 나무를 보고 춤의 흐름으로 재구성한다든가, 틀어서 생각해요. 보이지 않는 부분까지 표현을 해보려고 노력해요.

   
 

아까 중학교 때 쉬는 시간부터 춤을 시작하셨다고 하셨잖아요. 자세히 들어볼 수 있을까요?
ㄴ 그전까지는 춤에 대해 아예 몰랐어요. 우연히 친구가 쉬는 시간에 비보이 춤을 추는 걸 보고 시작했어요.

잘 추는 친구였나 봐요?
ㄴ 는 아니죠. (웃음) 지나가다 친구가 추는 걸 봤는데 저도 할 수 있을 것 같았어요. 체육을 좋아했었거든요. 그런데 한번 했을 때 안되더라고요. 그래서 3교시, 4교시, 점심시간 이렇게 계속 연습을 했어요. 될 때까지 했어요. 다음날, 그 다음 날…

어떤 춤이었어요?
ㄴ 비보잉의 한 기술이었어요. 물구나무서서 한쪽 팔로 도는 '나인틴'이라는 기술인데, 안돼서 계속하다가 며칠 만에 '찍-' 하고 조금 돌았어요. 그때의 성취감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어요.

그때부터 쉬는 시간마다 연습했어요. 연습실이 따로 없으니까 학교가 유일한 연습시간이었죠. 쉬는 시간에 연습하고 점심시간에는 좀 더 길게 연습하고. 수업시간에는 자고(웃음).

   
 

뭔가 바뀐 거 같긴 한데…(웃음)
ㄴ 그러다 고등학교에 가서 지금의 크루에 함께 있는 친구를 만났어요. 춤에 전념하려고 고1 때 학교를 그만두고 친구랑 같이 지금의 팀에 합류하게 됐어요. 그 친구는 18살 저는 19살 때 영국에서 열린 세계대회에 나가서 우승했어요.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서 처음 출전을 했는데 우승을 하고 돌아왔죠.

그 뒤에 출전한 국제대회에서도 항상 태극기를 챙겨 가셨다고 들었어요.
ㄴ 아마 국제대회에서는 저희 팀이 태극기를 가장 먼저 국기를 흔들었을 거에요. 국내대회에서 했던 퍼포먼스를 국제대회에서도 했는데, 지금은 전통이 돼버렸어요. 그래서 다른 나라들도 우승을 하게 되면 태극기를 펴고 있어요.

그때가 2002년이죠?
ㄴ 네. 월드컵을 할 때라 많이 묻혔죠. 세계대회에서 우승하고 돌아왔는데 공항에는 아무도 없었어요. 아무튼, 그때를 시작으로 '비보이'하면 '한국 비보이가 세계 최고'라는 이미지가 심어졌어요. 계속 우승을 하기도 했으니까.

세계 대회에서도 배틀 형식 외에 지금 계속 시도를 하는 다른 춤과의 교차하는 형식을 적용해보는 건 어떻게 생각하세요?
ㄴ 비보이만의 문화가 너무 확고히 있어서 배틀에서 하는 건 힘들어요. 그런데 유럽이나 미국 같은 경우는 또 달라요. 미국은 영상이랑 같이 비보이 공연을 하는 경우가 많아서 대중화가 된 편이죠. 영국이나 프랑스 같은 쪽은 비보이지만 자기만의 스타일로 무용계에 진출한 친구들이 많아요. 그래서 현대무용 쪽 사람들과 실험적이 시도를 많이 하죠. 이런 비보이 대회 말고 무용 같은 예술 쪽으로 진출하기도 하고요.
저도 그런 쪽으로 가보고 싶었는데 '춤이 말하다'라는 공연이 제가 갈망하던 부분을 채워줬죠. 

   
 

'춤이 말하다'를 통해서 얻은 바가 많으시겠어요.
ㄴ 도전해보고 싶었던 분야에 몸을 던진 것도 뿌듯했지만, 저 자신이 벽을 깼다는 게 제일 좋았어요.
우연한 기회로 출연하게 된 건데, 공연이 매진되고 반응도 되게 좋았어요. 너무 감사하고. 저 때문에 스트릿 분야에서 오신 분들은 다른 분야를 보게 되고 또 무용 쪽 분들은 저를 보고 비보이에 대한 선입견을 버리게 됐던 게 좋았던 거죠.

출연진분들과 계속 연락 하시나요?
ㄴ 다음 주에 같이 공연도 해요. 얼마 전에는 제가 '춤이 말하다' 시즌1,2를 했는데, 시즌 2에서 현대무용을 담당하셨던 차진엽씨의 'Fake Diamond'를 같이했었어요. 아르코예술극장에서 했는데, 스트릿 계열에만 있다가 이런 공연은 처음 해본 거였어요. 제가 영상 보여드릴게요.

 

어떤 부분을 맡으셨나요?
ㄴ 전시회 같은 공연을 하는 거예요. 동상이 아니라 실제 사람이 각자 배치된 위치에서 하는 형식이죠. 차진엽씨가 저에게 "이 공간이 우주야. 처음 오는 공간이고 너도 모르게 알 수 없는 힘으로 움직이고 있어"라고 말씀하셨는데, 처음에는 이걸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몰라서 머리가 너무 아팠어요. 그런데 이 과제를 풀어야 비보이의 세계에 갇혀있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노력했죠.

경험해보지 못한 무중력상태를 연습하기 어려우셨겠어요.
ㄴ 제가 가진 기술을 감정과 함께 연습했어요. 집에서 혼자 불도 꺼보고 촛불 하나만 켜놓고 난 지금 고독해. 여긴 우주야. 이러면서. 진짜 그렇게 연습해야 해. 감정을 연기해야 하니까 실제로 연기하는 사람들도 많이 보고 그랬어요.

새로운 분야에 도전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건 뭔가요? 배틀에서 할 수 없었던 것 중에서요.
ㄴ 단순하게 비보이라는 장르로 춤을 20, 30분 동안 춰본 게 일단 처음이었으니까요. 그것도 오롯이 저 혼자. 비보이 배틀 때는 해봐야 1분 동안, 5라운드라면 5번 하는 게 전부였어요.

그런데 아르코극장에서 공연을 했을 때 혼자 오롯이 30분 동안 공연을 했잖아요. 그때 많이 느꼈어요. 내가 이 사람들에게 보여주려고 하지 말고 혼자 추자. 여기는 지금 우주야. 사람들이 지금 날 보고 있지만 보고 있는 게 아니야. 이런 식으로(웃음). 제 기술을 가지고 다르게 표현하는 방법을 많이 배웠어요. 같은 기술이어도 상황에 따라 전달하는 방법이 다르니까요.

   
 

제일 많이 영향을 줬던 춤은 뭔가요?
ㄴ 전부 영향을 받았지만, 발레가 특히. 실제로 발레를 처음 보기도 했으니까요. 화려한 무대가 아니라 제 옆에서 하는 걸 보는데도 너무 멋있었어요.

어떤 점이요?
ㄴ 자기 몸과 함께 감정을 절제하는 점이 굉장히 인상 깊었어요. 비보이의 컨트롤과는 다른 느낌이라서. 단순히 동작만 컨트롤하는게 아니라 감정까지 절제하면서 '슬픔'을 표현하는데 보는 내내 닭살이 돋았어요. '저거다' '저걸 배워야겠다' 생각했어요.

현대무용 같은 경우는 그런 틀을 깨버리는 게 인상적이었어요. 발레는 '예뻐야 된다','비보이는 '멋있어야된다'가 아니라 이건 일그러져도 되고 추해도 되고. 그런 부분이 신선했어요. 여러 방향으로 표현할 수 있다는 걸 배운 거죠.

전통 무용에서는 내공이 느껴졌어요. 손 하나 흔드는 데 1분이 걸린다고 상상해보세요. 그런데 그게 절대 지루하지 않게 감정을 녹여내시거든요.

보면서 저도 제 동작에 내공이 있어야 하고, 몸을 컨트롤할 때도 음악과 함께 감정도 절제해야되고, 정해진 기술만 쓰는 게 아니라 현대무용처럼 틀도 깨봐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반대로 다른 분야의 분들이 비보이 춤을 보고 어떤 점을 인상 깊게 생각하셨을까요?

ㄴ 일단은 제 기술을 보고 '와 어떻게 이런 게 돼?' 하면서 놀라셨어요. 제가 그걸 좀 쉽게 바꿔서 현대 무용하실 때 응용할 수 있게 가르쳐 드리기도 했어요. 좋아하시더라고요.

그래도 가장 크게 느끼신 건 "아 비보이가 이렇게도 하는구나" "내가 생각한 비보이는 그냥 돌기만 하는 줄 알았는데, 너 같은 애도 있구나" "내가 너 같은 애는 못 본 거 같아"
그런 느낌을 많이 받았어요.

기분 좋으셨겠어요.
ㄴ 그렇죠. 제가 표현하려는 방향이었으니까요. 저는 춤을 췄을 때 여운을 남기고 싶어요. 환호하더라도 금세 잊어버리기보다는 진짜 와 닿으면 박수도 안 나오잖아요. 제가 발레가 무용이나 전통을 보면서도 그렇게 느꼈기 때문에, 제 춤도 그렇게 만들고 싶어요. 지금은 비보이 춤을 추면서 여러 요소를 잘 섞을 수 있게 연구 중이에요. 재밌고 지루하지 않게 감동적인 작품을 만드는 게 제 목표에요.

   
 

지금 기획 중인 작품이 있으신 가봐요.
ㄴ 네 있어요. 일단 지금 기획 중인 작품은 '비상업적'인 작품이에요. 대중들에게 단순히 재미로만 다가가는 게 아니라, "비보이도 이런 걸 할 수 있구나"라는 느낌을 주는 게 첫 번째 목표라서 'Chair'라는 작품을 준비하고 있어요. 브레이크 비트가 아니라 현대무용 같은 요소가 많이 가미됐어요. 간단하게 들려드릴게요. 들으시면 ""이런 노래에…? "하실 거예요(웃음)

아까 말씀하셨던 무중력 같은 느낌이 드는데요? 생각했던 것보다 부드러운 음악이네요.
ㄴ 현대무용수가 아니라 비보이 힙합 왁킹 이런 스트릿 분야에서 표현을 해보고자 하고 있어요. 그런데 어려워요. 일단은 '세상에 알려야지'가 아니라 '내가 하고 싶은 걸 해보자'라는 마음으로 시작한 거죠.

여태까지 달려오시면서 역경은 없었나요?
ㄴ 많았죠. 말 못할 역경들이 많죠.

그중에 제일 보탬이 됐다 싶었던 경험 하나 말해주세요.
ㄴ 되게 심한 게 하나 있는데 이거는 술 마시면서 얘기해야 하는거라 안돼요(웃음)
사실, 언더그라운드 문화가 보탬이 많이 됐어요. 무시도 받았고 적절치 않았던 환경에서 춤을 춰야 했고. "우리는 괜찮아 바닥에서 연습해도 돼" 이런 정신들이 좋은 멘탈로 이어진 것 같아요. 그래서 지금처럼 좋은 연습실에 와도 그때를 잊지 않고 있어요.

   
 

'춤이 말하다' 첫 미팅 때는 어떠셨나요?
ㄴ 미팅을 가기 전에 '선입견 때문에 분명 나를 무시하겠지'? 이런 생각에 일부러 스케이트 보드를 가져갔어요. 나름의 귀여운 작전이었죠. 발레리나분들이 "이거 타고 오신 거에요?"라고 질문을 하기도 했어요.(웃음)

첫 미팅 때 50평 정도 되는 무대 가운데 서서 오디션 프로그램처럼 감독님들 앞에서 서게 됐어요. 제가 첫 주자였는데, 아무 말이나 해보라고 하셨어요. 예정에 없던 거라 속으로 떨고 있었지만, 당황하지 않고 제가 하고 싶은 말은 다 했어요. 사실 지하철에서부터 나름대로 준비를 했거든요.

40분 동안 버벅거리기도 했지만, 춤을 어떻게 추게 됐고 오늘 인터뷰한 것처럼 '저는 감정적으로 춤을 추고 싶고 지금은 이런 춤을 추고 싶습니다' 라고 얘기를 하곤, 평상시에 듣던 노래를 틀어서 즉흥으로 보여드렸어요. 다음주자도 저처럼 자기 얘기를 하시더라고요. 그다음 분도 똑같이 하셨는데, 결국은 그게 '춤이 말하다' 컨셉이 되기도 했어요. 본의 아니게 거기서 작가분이 아이디어를 얻게 된 거죠.

 

무시한다는 게 어디서 드러나요?
ㄴ 어렸을 때 많이 그랬죠. 비기가 오거나 유리조각이 떨어져 있어도 상황에 상관없이 춤을 계속해야 하고. 연습실이 따로 없었으니까요.

무용은 좋은 대기실이 있지만 저희는 그냥 바깥에서 화장실에서 옷 갈아입고. 아주 사소한 거에서 큰 것까지 되게 많아요. 다 말할 수는 없는데 대중이 일반적으로 생각했을 때 발레는 고상하고 비보이는 반항적인 이미지를 떠올리잖아요. 지금은 많이 없어졌다 하더라도 개인적으로는 열등감이 있었나 봐요(웃음).

그런데 막상 함께 작업을 해보니 힘들고 사회적 지위를 떠나서 이분들도 똑같이 작품 하나 만들기 위해서 정신병자처럼 매진하는 걸 보고 많이 배웠어요. 그런 걸 보면서 제가 스스로 겸손해졌어요. '나는 아무것도 아니구나'라는 생각도 들고요.

이런 쪽으로도 많이 배우셨겠네요.
ㄴ 성숙해졌죠. 물론 티아이피라는 단체에서도 많이 배웠기도 했어요. '약자를 위해서 나서줄 수 있는 사람들이 되자'는게 저희 신조에요. 항상 겸손하기. 남에게 피해주지 말기 지저분해 보이지 말기(웃음).

마지막께 웃길 수도 있는데, 왜냐면 어렸을 때 비보이는 침뱉고 담뱃재가 있는 바닥에서도 연습해야 했기 때문에 옷이 더럽고 그런 거에요. 연습 때문에 땀 냄새도 나고.

그런데 사회에 진출하려면 적어도 여긴 한국이다 보니까 개선할 점은 개선해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어요. 단순히 '우리는 비보이고 원하는 대로 할 거야'라는 생각이 사회의 시선으로 봤을 때는 다르다는 걸 알기 때문에 이런 신조를 갖게 됐어요.

마지막으로 후배들에게 한마디 해주세요.
ㄴ 요즘 친구 중에는 춤을 추는데 이유가 너무 많아요. 좋은 거만 하려 하고 싫은 건 안 하려 하는 게 상당히 아쉬워요. 자기가 진짜 좋아하는 일이면 싫은 일, 힘든 일도 부딪혀서 극복해야 좋은 일이 오거든요. 이런 것도 경험으로 승화시키면 춤으로 나와요. 그런 부분을 많이 노력했으면 좋겠어요. 확고한 목표를 가지고 많이 적극적으로 하면 자기한테도 돌아오니까 현명하게 잘 선택했으면 하죠.

춤을 계속 출 수 있게 하는 건 결국 '열정'이에요. 후배 댄서들도 열정을 불태웠으면 하고, 독자분들도 그 열정을 응원해주셨으면 합니다.

문화뉴스 전영현 기자 ntp@mhns.co.kr

 

주요기사
관련기사

 
저작권자 © 문화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