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쟁에서 최종 우승한 '극단 불의전차' ⓒ 보통현상

[문화뉴스 MHN 장기영 기자] 관객의 다수는 '경쟁'에 찬성했고, 경쟁에 찬성한 이들 중 다수는 '극단 불의전차'의 공연을 지지했다.

열흘 간 남산의 중턱을 뜨겁게 달군 공연이 막을 내렸다. 연극 '창조경제_공공극장 편'은 '나의 창조활동이 경제생활에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문장에서부터 시작된 실험 연극이다. 전윤환 연출가와 앤드씨어터가 서바이벌 리얼리티 쇼를 표방하는 연극을 기획했고, 젊은 창작진 4팀 극단 불의전차, 신야, 907, 잣 프로젝트가 해당 서바이벌에 참여해 경쟁과 예술 사이 위태로운 외줄타기를 감행했다.

 

마지막 공연 투표 중인 관객들 ⓒ 보통현상

지난 6일부터 16일까지 총 9회의 공연이 진행됐다. 16일 마지막 공연에서 그 동안 이 서바이벌에 함께한 관객들의 투표 결과를 발표했다. 4팀에게 할당된 10여 분의 공연을 보고, 경쟁 시스템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앤드씨어터의 총체적 질문에, 관객들은 5개의 선택지 안에서 답할 수 있었다. 선택 가능한 섹션은 이렇다.

첫 번째 섹션은 '창조경제_공공극장 편'이 마련한 경쟁 시스템에 찬성하며, 서바이벌에 참여한 4팀 중 본인이 응원하는 한 팀을 택해, 가장 많은 표를 얻은 팀에게 상금 전부를 지급하는 방식이다. 두 번째 섹션은 이 경쟁 시스템에 반대하며 상금을 참가 4팀에게 균등 분배하는 방식이다. 세 번째 섹션에서는 이 모든 선택지에 반대하며, 새로운 대안을 마이크에 대고 자유롭게 발화하면 된다. 

네 번째와 다섯 번째 섹션은 공연이 진행되는 도중 관객들의 의견에 따라 새로 추가된 섹션이다. 네 번째는 경쟁에 반대하며 상금 및 티켓 수익 전부를 합해 각 참가팀에게 균등 분배하는 방식, 다섯 번째는 경쟁에 찬성하며 상금을 득표수대로 차등 지급하는 방식이다.

 

신야 ⓒ 남산예술센터

6일 마지막 서바이벌 공연이 진행된 후, 최종 집계 시간이 이어졌다. 많은 관객들은 2시간의 러닝타임이 훌쩍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제자리에 착석해 결과를 묵묵히 기다렸다. 이어 차례대로 결과가 발표됐다. 

우선 '창조경제_공공극장 편'이 마련한 경쟁 방식에 '찬성한다'의 득표수(622표)가 '반대한다'의 득표수(439표)를 앞질렀다. 경쟁에 찬성한다는 섹션 중 본인이 지지하는 팀에 '상금 전부를 몰아준다'는 섹션(467표)이 '차등 분배' 섹션(155표) 보다 많은 수의 표를 얻었다. 이후 각 팀의 득표수가 공개됐다. '극단 불의전차' 260표, '신야' 85표, '잣 프로젝트' 49표, '907' 73표. 이렇게 상금 1,800만 원 전부는 극단 불의전차에게로 향했다.

 

잣 프로젝트 ⓒ 남산예술센터

연극 '창조경제_공공극장 편'은 예술가들이 처해 있는 현 경쟁 상황을 진단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극단 불의전차의 연출 변영진은 우승 소감으로 "이 서바이벌에 참여한 4팀 모두는 (공연 준비 및 공연기간 중) 단 한 번도 경쟁한 적이 없다. 서로 연대하며 공유하고 서로의 작품을 응원했다"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쟁 프레임 안에 살 수밖에 없었다"고 전했다. 

또한 약 40% 이상의 관객은 예술가들을 원치 않는 '경쟁'으로 내모는 현 지원사업 방식에 동의할 수 없다는 의견을 표출했다. 전윤환 연출가도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현 지원사업을 거치는 예술가들의 창작활동은 '자기 증명을 위한 자기 착취 현상을 자아내고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이 경쟁에 참여하는 4팀의 극단과 앤드씨어터 단원들은 일절 보수를 받지 않으며 작업에 참여했다. '서바이벌'이라는 시스템이 유지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상금. 상금 확보를 위해 앤드씨어터를 포함한 5개의 극단 모두는 최소한의 제작비만을 가지고 제작에 임했다. 공연 제작 과정 및 실제로 올라간 공연을 바라봤을 때, 연극에 대한 애정과 열정을 가지지 않고 이 공연에 참여한 창작진은 없었다. 그러나 이들의 노동력은 금전적 가치로 환원될 수 없는 것으로 소모됐다.  

경쟁에 참여하는 것이, 혹은 경쟁을 통해 나의 존재 가치를 평가받는 것이 익숙한 우리에게, 경쟁은 너무나도 필연적인 것이었다. 경쟁 없이 살아본 적 없는 우리에게 경쟁을 초월할 수 있는 대안은 생각해보기 어려운 것이었을까? 결국 다수의 관객은 '경쟁에 찬성했'고, 그중에서도 상금을 차등 분배하는 방식이 아닌, '승자에게 전부 몰아주는' 방식을 택했다.

 

907 ⓒ 남산예술센터

투표 결과로만 봤을 때, 연극이 불편 혹은 불만을 제기했던 기존의 경쟁 시스템은 바뀐 것이 없었다. 

그러나 1등 팀의 변영진 연출가의 우승 소감대로 참가자들은 경쟁 체제 내에서도 무한 경쟁 대신 연대와 공유를 갈망했고, 적지 않은 40% 이상의 관객들은 현 경쟁 체제에 반대한다는 주장을 몸소 표현했다. 또한 경쟁에 참여했던 잣 프로젝트는 실제로 연극 내내 '연극계 내 경쟁', '예술과 노동'에 대한 다양한 질문을 발화했고, 907은 사과 씨앗을 비유로 '8~90개의 열매를 맺는 사과 씨앗 하나가 자라기까지는 10년 이상의 시간이 걸린다'며, 단기적이며 결과 중심 위주의 현 경쟁 시스템을 되돌아보게 만들었다.

무엇보다 공공극장 남산예술센터에서 연극 '창조경제_공공극장 편'이 기획되고 실제로 공연됐다는 사실은, 많은 이들이 현재의 '경쟁'에 대해 염증을 느끼고 있음을 공적으로 발화할 수 있는 시공간에 다다랐음을 보여줬다. 

연극 '창조경제_공공극장 편'은 관객들의 투표로써 매듭지어졌다. 그러나 그들이 품었던 질문은 끝나지 않았다. 예술은 지금까지의 방식대로 존재할 수만은 없다. 우리는 예술의 존재 향방을 찾아내야 한다.

 

연극 '창조경제_공공극장 편' 공연 중 ⓒ 남산예술센터

끝으로 '창조경제_공공극장 편'이 의지했던 문장을 인용한다.

"나는 갈등을 믿는다. 그 외에 나는 아무것도 믿지 않는다. 내 작업에서 내가 시도하려는 것은 갈등에 대한, 모순과 대결에 대한 의식을 강화시키는 일이다. 다른 방법은 없다. 답과 해결은 내게 흥미를 주지 못한다. 나는 어떤 대답이나 해결도 제공해 줄 수 없다. 내게 흥미로운 것은 여러 가지 문제와 갈등들이다."
-하이네 뮐러(Heiner müller)

key000@mhns.co.kr

주요기사
관련기사

 
저작권자 © 문화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