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뉴스 MHN 서정준 기자] 연극 '김씨네 편의점'은 한마디로 정의하기 어려운 작품이다.

'김씨네 편의점'을 간단히 정리하면 이런 작품이다. 캐나다로 이민 온 '미스터 킴'은 한국을 뺀 세상 모든 게 밉다. 집 나간 아들도, 말 안 듣는 딸도, 물건을 훔쳐가는 흑인도. 한국인의 자부심으로 살아온 그에게 편의점을 정리해야 할 위기가 찾아오고 편의점에서 일만 해온 그의 평범한 하루가 갑자기 흔들리는 사건들이 연이어 나타난다.

하지만 이렇게 정리해선 이 작품의 재미를 전혀 느낄 수 없다. '김씨네 편의점'은 사건보다 정서를 느껴야 하는 작품이다. 편의점에 등장한 도둑이나 집 나간 아들과의 만남 등 극을 움직이는 사건이 있지만, 사건을 통해 관객에게 다음 일이 어떻게 벌어질지에 대한 기대감을 주기보다는 김씨네 가족, 정확히는 김씨가 느끼는 정서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힘들게 살면서 가족만을 위해 헌신한 가장과 그로 인해 멀어진 가족과의 유대감, 타인을 배척하는 행동으로 공동체 의식을 다지는 작은 마을의 보잘 것 없는 사람들. 한국에선 제법 괜찮았지만, 캐나다의 평범한 한인 이민자인 김씨가 느끼는 정서는 사실 우리나라 국민이 과거에 많이 느끼고 '신파' 혹은 '아침드라마'에서 많이 보이던 오래된 가족애 정서와 맞닿는다.

하지만 이 이야기가 촌스럽게 '저런 감성이 살아 있던 시절이 좋았지'라며 지난 추억에 매달리는 작품이 아닌 이유는 김씨의 변화에 있다. 그는 극 중에서 그가 미워하던 것들을 조금씩, 천천히 덜 미워한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지만, 자연스럽게 남성우월적인 시각을 은연중에 내포한 게 느껴지는 여타 작품과 달리 처음부터 '블랙'은 안 되지만 흑인은 도둑질을 한다고 말할 정도로 철저하게 차별이 몸에 밴 평범한 아저씨인 김씨에게 다가오는 변화는 우리 시대가 바라는 이상적인 '아재'의 모습이 아닐까.

 

원작에선 콩글리시를 이용한 유머가 많았다는데 한국 공연에선 그런 면이 많이 빠지며 어쩔 수 없이 드라마가 강조됐다고 한다. 그러나 오세혁 연출이 지니는 특유의 리드미컬한 구성과 감각적인 코미디는 여전히 빛난다.

우리나라 관객이 이해하기 어려운 코미디를 이상적으로 돌파한 로컬라이징 방법이다. 엄마나 딸, 알렉스를 비롯한 흑인 캐릭터들 역시 작가의 시선 바깥에 서있는데도 최대한의 생명력이 느껴진다. 특히 원작에는 없었다던 자메이카 레게와 아리랑의 듀오는 압권이다.

물론 이 작품이 완벽한 것은 아니다. 엄마와 딸, 알렉스가 결국에는 김씨의 변화와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를 이끄는 촉매제 역할에 그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작품 하나만을 놓고 극의 주인공인 김씨처럼 가장 소통하기 쉬운 장르면서 동시에 가장 보수적인 장르로 평가 받던 '연극' 자체도 점차 생명력을 갖고 긍정적인 변화를 맞게 될 것이란 기대를 가지기엔 너무 이른 것일까.

한민족 디아스포라전 폐막작이자 보편적 가족 정서를 통한 감동 코드를 느낄 수도 있고, 닫힌 마음이 열리는 '소통'의 과정을 보여주는 작품이기도 한 연극 '김씨네 편의점'은 한 번쯤 꼭 봐야할 작품이다. 현재로선 표를 구하기 어려운 것이 단점이다. 23일까지 백성희장민호극장에서 공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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