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약자의 목소리에 귀기울이는 세계적 미디어 아티스트 '크지슈토프 보디츠코'의 회고전

▲크지슈토프 보디츠코(Krzysztof Wodiczko) ⓒ국립현대미술관

[문화뉴스 MHN 권혜림 기자] 폴란드 출신의 세계적 미디어 아티스트 크지슈토프 보디츠코의 기자간담회가 지난 5일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열렸다.

크지슈토프 보디츠코는 폴란드 난민으로 시작해 진정한 세계 시민으로 거듭나며 예술의 사회적 역할에 대해 고민해 온 이력을 지닌 아티스트다.  그래서인지 그는 사회적 약자에 관심이 많다. 전쟁의 상처를 안고 사는 사람들, 길 위의 노숙자, 외국인, 불법 이민자 등 사회의 그늘의 가려져 있는 사람들이 그의 작품의 주제로 등장한다. 목소리를 가져보지 못했던 그들을 위한 목소리를 대변하듯, 그의 작품에 드러난 메세지는 직설적이고 명확하다.

▲ 핀란드 헬싱키의 거리에서 대변인(마우스피스)(1993년 작)을 시연 중인 퍼포머들, 1993, 프랑스 루아르 FRAC 소장 ⓒ국립현대미술관
▲ 한 노숙인이 뉴욕 트럼프 타워 앞에서 노숙자 수레를 시연 중인 모습, 1988, 홍콩 개인소장 ⓒ국립현대미술관

이 날 그는 자신이 해온 작업들을 설명하면서 '공공장소'의 의미와 소통에 대한 강조를 많이 했다. 보디츠코는 "나는 '집회라던가 시위를 통해서 공공장소들이 정치적 활기를 띤다'라는 말을 한 적이 있다"면서 "공적 장소가 집회나 시위를 통해 정치적 활기를 띄지만 진정한 공적 장소가 되기 위해서는 문화적 프로젝트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 ⓒ권혜림 기자

보디츠코는 "지난 겨울, 서울에서 (광화문광장 같은) 공적 공간들이 어떻게 사용되는지 보고 큰 감동을 받았다."면서 "공공의 장소가 정치적 행위를 위한 무대가 됐고 문화적 전쟁을 위한 장소로 사용되기도 했다. 이러한 맥락에서 작품을 소개하게 돼 더욱 뜻깊게 생각한다"며 한국에 방문한 소감과 인상을 밝히며 말문을 열었다. 1943년생 태생으로 벌써 70이 훌쩍 넘은 백발의 노인은 날카로운 눈빛과 대비되는 또렷한 목소리로 사회적 약자들을 향한 따뜻한 시선을 드러내 눈길을 끌었다.

그는 "문화 프로젝트가 큰 시위나 집회가 계속 벌어지는 사이에 생긴다면 많은 사람들이 서로를 만나고 대면하고 서로의 입장에서 대면할 수 있을거라 생각하고 이렇게 하면 큰 대규모의 시위가 일어날 이유가 줄어들 것이라 생각한다. 변화가 계속해서 이어질 것이기 때문이다."고 견해를 밝혔다.

▲ ⓒ권혜림 기자

"그렇다면 이상적인 공동체를 어떻게 생각하나?" 라는 질문에 대해 "이상적인 커뮤니티를 논하기 전에 이상이 무엇인지를 생각을 하고 그러한 이상을 가지고 정해놓은 목표를 가지고 계속해서 나아가려고 노력해야한다고 생각한다. '이것이 확실한 유토피아다'라는 생각을 가지고 그것을 추구하되 매일 실천을 통해서 그것에 가까워져야된다고 생각한다. 물론 그 목표는 언제든 달성할 수 없을 수도 있지만 계속해서 가려고 노력해야한다고 생각한다."고 이상적 공동체에 대한 자신의 신념을 드러냈다. 

이번 전시에서 단연 이목을 끈 작품은 '나의 소원'(My Wish, 2017)이라는 신작이다. 보디츠코는 백범 김구를 작품의 상징적 모델로 삼은 이유에 대해 "김구가 꿈꾸던 통일된 한국에 대한 비전, 기쁨의 국가, 자유롭게 아이디어를 교류하는 민주적 국가, 그리고 아름다움과 문화에 초점을 맞춘 국가에 이끌렸다"고 말했다.

▲ 나의 소원, 2017, 작가소장 ⓒ국립현대미술관
▲ 나의 소원, 2017, 작가소장 ⓒ국립현대미술관

작품 '나의 소원'은 백범 김구가 1947년 발표한 김구의 정치철학과 사상을 밝힌 논문인 '나의 소원'에서 제목을 가져온 것으로 김구의 동상을 본뜬 조각상 위에 지금 한국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 -세월호 참사로 아이를 잃은 어머니, 긴 시간 해고노동자로 공장이 아닌 거리에 섰던 노동자와 다큐멘터리 사진작가, 탈불예술가, 동성애 인권 운동가, 평범한 20대 청년들-의 모습을 영상으로 맵핑하는 프로젝션 작업이다. 

▲ 바르샤바에서 개인적 도구(1969)를 시연 중인 크지슈토프 보디츠코, 1972, 우치 미술관 소장 ⓒ국립현대미술관

한편, 1943년 바르샤바에서 태어난 크지슈토프 보디츠코는 대학에서 산업디자인을 전공했다. 1968년부터 유니트라(Unitra) 등에서 산업디자이너로 근무하면서, 실험적인 예술인과 지식인들이 운영하던 대안공간을 중심으로 작가로서 활동을 시작한다. 1977년 캐나다의 레지던시에 참여하면서 캐나다로 이주했고, 1980년대에 들어 미국의 뉴욕, 독일의 슈투트가르트와 카셀 등 여러 도시에서 사회 비판적, 정치적 메시지를 던지는 야외 프로젝션 작품을 잇달아 발표했다. 미국, 멕시코, 독일, 일본 등 세계 각지에서 난민, 외국인, 노숙자, 가정 폭력 희생자 등 상처받고 억압된 사람들이 공적인 공간에서 발언할 기회를 만들어주는 공공 프로젝션과 디자인 작품으로 국제적 명성을 얻었다. 

이번 전시는 다양한 분야를 넘나들며 사회의 주요 담론을 선도해온 크지슈토프 보디츠코의 국내 첫 개인전이자 아시아 최초 대규모 회고전으로 1960년대 후반부터 최근까지 주요 작품 80여 점이 총 망라되며 '크지슈토프 보디츠코: 기구, 기념비, 프로젝션'이라는 이름으로 7월 5일부터 10월 9일까지 서울관 제5전시실과 제7전시실에서 개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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