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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영의 음악잡수다 인터뷰 ①] 'JFS Mastering Studio' 대표 성지훈
[글] 문화뉴스 아티스트에디터(아띠에터) 김수영 panictoy27@munhwanews.com
음악으로 할 수 있는 일은 어디까지일까, 실용음악과 건반을 가르치면서 음악방송 '음악잡수다' DJ를 맡고 있다

[문화뉴스 MHN 김수영 아띠에터] 한 아티스트의 작업물이 세상에 발표되기까지는 여러 단계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또한 이 단계들에는 전문성을 가진 많은 스태프가 각자 자신의 몫을 해내야 한다.

음반을 제작하는 제작자, 제작되는 앨범의 전반적인 부분에 관여하여 큰 그림을 그리는 프로듀서, 음악을 만드는 작가, 연주하고 노래하는 실연자, 레코딩과 믹싱 그리고 가장 최종 단계인 마스터링을 하는 엔지니어 등 많은 역할의 스태프들이 음악 한 곡에(혹은 한 앨범에) 크나큰 열정과 에너지를 쏟아야 비로소 새로운 음악이 세상에 나오는 것이다.

이번 '인터뷰 시리즈' 첫 번째 이야기는 음악 감독으로, 그리고 음향 감독으로, 다양한 분야에서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고 있는 'JFS Mastering Studio'의 대표 성지훈 음악 감독에 관한 이야기이다.



대중음악계에서 일한 지 굉장히 오래된 걸로 알고 있다. 꽤 오래 전부터 마스터링 엔지니어로 유명해졌는데, 음악에 입문한 계기가 궁금하다.

└ 10대 때는 단순히 음악이 좋아서 혼자 곡을 카피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기타도 독학했는데 문득 '곡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어릴 적에 기타를 연주하며 멜로디를 만들어 보기 시작한 것이 작곡의 시작이었다고 볼 수 있으나, 당연히 그 나이 때에는 멋진 곡이 나올 수 있을 리가 만무했다. 당시 결과물은 상당히 동요스러웠다(웃음).

이후 '더 멋진 곡을 만들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하다가 화성학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당시에는 모든 음악 이론책이 클래식 음악 기반의 책들이었고, 결국 하다 하다 대위법까지 공부하는 상황이 발생하기도 했다, 그것도 혼자서. 그런 과정을 거쳐서 계속 곡을 쓰게 되었는데, 당시 대부분 작곡가들은 멜로디만 만들어놓고 편곡가들이 따로 코드 진행을 수정하는 일들이 많았다. 아무래도 그때에는 작·편곡가들이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결국엔 비슷한 멜로디에 비슷한 편곡들이 나왔는데, 나는 그것들을 조금 지루하게 느껴졌던 것 같다. 그래서 직접 편곡하기 위해서 공부를 하고 음악을 만들다 보니 점점 실력이 늘더라.

원래는 음악을 '업'으로 삼을 생각은 전혀 없었다. 그러다 열일곱, 열여덟 즈음에 우연히 당시 한국에서 제일 잘 나가던 모 가수를 알게 되면서 그때 본격적으로 대중음악계에 입문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직업으로 삼을 생각이 처음부터는 없었으나, 어쩌다 보니 남들보다 훨씬 일찍 대중음악계에 몸을 담게 된 것이 지금 생각해 보면 참 희한한 일이기도 하다.


JFS Studio 의 성지훈 음악감독

의외로 '믹싱'과 '마스터링'의 차이를 모르는 사람들이 더러 있다. 혹시라도 이 글을 읽을 '음알못'인 사람들에게 믹싱과 마스터링의 차이를 간략하게 말해준다면?

└ '마스터링'이라는 작업이 있다는 것 자체를 아는 사람이 그리 많지는 않다고 알고 있다. 쉽게 비유를 하자면, 자동차가 한 대 있다고 치자.

자동차를 만들 때, 결과적으로 자동차는 겉보기에 한 대가 존재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 있는 부품들은 수천 가지가 있다. 한 대의 자동차가 수많은 부품으로 구성되듯이, '믹싱'은 음악 한 곡에 들어있는 하나하나의 요소들 곧 보컬, 피아노, 드럼, 베이스 등등의 악기들과 그 음악에 쓰인 작은 소스 하나하나까지를 잘 섞어주고 발란스를 맞춰줌으로써 한 곡의 음악으로 만들어주는 과정이다.

수천 가지의 부품들로 자동차가 만들어지면 그 자동차를 팔기 위해서 그 차를 열심히 깨끗하게 광내고 닦아서 판매할 수 있도록 하는 작업이 진행된다. 바로 이 과정을 '마스터링'욿 비유하면 적절할 것 같다. 보석으로 빗대어 보자면, 보석을 세공하고 나면 더 예쁘고 빛나 보일 수 있도록 닦고 포장해 판매 가능한 상품을 만드는 후반 작업이 필요하다. 음악도 마찬가지로 믹싱이 끝나고 난 후의 음악을 한 번 더 발란스를 맞춰주고 사운드의 퀄리티를 높여줌으로써 일반 대중이 고음질의 듣기 좋은 음악으로 다듬어주는 아주 중요한 작업이 바로 마스터링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지금은 마스터링 스튜디오를 직접 운영하는 대표이자, 대한민국 마스터링 엔지니어 중에 손에 꼽히는 실력자로도 유명하다. 마스터링 작업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있다면?

└ 사실 처음엔 상당히 비전문적인 방법으로 시작했다. 그게 90년대 중반 즈음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때쯤 우리나라에 마스터링을 하는 시스템이 도입되기 시작했는데 막상 외국의 팝 음악들과 비교해서 들어보면 제일 먼저 귀에 거슬렸던 것은 레벨이 작았다는 것이었다. 레벨 차이가 너무 많이 나는 것에 의문을 가지고 미국에 가 직접 마스터링을 해보니, 우리나라와는 분명 확연한 차이가 있었다. 그러면서 '우리나라는 지금 마스터링을 엉터리로 하는 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지금도 그렇게 우리나라가 높은 수준을 자랑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처음 믹싱 엔지니어가 되었을 때도, 내 음악을 다른 엔지니어들이 제대로 표현해주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에 '내가 직접 하는 게 더 낫겠다'는 생각으로 믹싱 엔지니어가 되었다.

믹싱 작업 이후 마스터링 된 CD가 나와 들어봤더니, 또 한 번 직접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미국에 가서 마스터링을 직접 해보며 어떻게 해야되는 건지 깨닫게 됐고, 그 경험을 바탕으로 마스터링에 대해 조금씩 공부해 나가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본격적으로 마스터링 엔지니어로서도 일을 시작하게 됐다. 누군가는 우리나라의 마스터링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려주어야 하겠다고 생각한 이유에서 시작한 부분도 있다.


현재도 꾸준히 마스터링 작업을 계속할 뿐만 아니라 믹싱 작업도 하고 있다. 지금까지 했던 작업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작업과 결과물은 무엇인가?

└ 지금은 주로 마스터링 작업 위주로 하고 있고, 믹싱은 아주 가끔 한다. 마스터링 작업으로 가장 인상에 남는 곡은 박효신의 '야생화'라는 곡이었다. 믹싱을 했던 곡 중에서는 솔리드 2집 수록곡인 '나만의 친구'라는 곡을 꼽을 수 있다. 이 곡으로 인해 내가 프리랜서 엔지니어로서 자리매김할 수 있었다. 그 전까지는 주로 내가 직접 쓴 곡이나 내 주변에 가까운 작곡가나 가수들의 음반만 작업하다가 솔리드 2집 앨범 작업 이후로 조금씩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했던 것 같다.

생각해보니 당시 솔리드 2집 앨범 마스터링 작업을 미국에서 했었다. 그래서 사운드의 차이가 다른 가요들에 비해 확연히 차이가 났던 것 같다. 그렇게 사운드가 좋았던 가요였다 보니, 나이트클럽에서 디제이들이 한창 이 곡을 많이 틀기도 했었다(는 건 안 비밀이다).


실용음악과에서 음향을 전공하는 학생들 혹은 엔지니어를 꿈꾸는 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조언이 있다면?

└ 이제 알 사람들은 거의 다 안다. 이 업계가 얼마나 험난한 곳인지. 아직도 스튜디오마다 사람 구하기가 굉장히 힘들다. 일하는 시간은 많지만 페이는 적기 때문이다. 또한 레퍼런스 데이터를 해당 작곡가 혹은 제작자에게 보내주고 나서 오케이가 떨어질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이렇게 정해진 시간 안에 일을 할 수 있는 직업이 아니다 보니, 힘든 환경을 잘 버티지 못하고 나가는 친구들이 많다. 하루 내내 스튜디오에서 보내야 할뿐만 아니라, 엔지니어로 '밥을 먹고 살 수 있을 정도'가 되려면 단시간에 이루어지는 분야갸 아니다.

엔지니어가 되려면 일단 첫 번째로, 종일 음악에 파묻혀 살 생각을 해야 한다. 내 개인적인 시간이 아닌, 음악을 위한 시간에 온 하루를 다 쏟을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조금 더 현실적인 조언을 하자면, 우리나라에 현재 '밥을 먹고 살 수 있는 엔지니어', 그리고 '나만의 휴가를 가질 수 있는 엔지니어'가 몇이나 되는지 직접 한번 찾아보라 말하고 싶다. 그리고 그런 사람이 있다면 그 자리에 오기까지 얼마나 오랜 시간을 음악에 쏟아부었는지를 살펴봐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엔지니어가 되고 싶다면 열정과 강한 인내심을 가지고 꾸준히 공부하길 바란다. 혹시라도 실용음악 전공자 중에, 졸업 후 스튜디오에 취직했는데 '왜 나는 전공까지 했는데 청소나 잡일만 해야 하나'라는 생각이 든다면 그건 큰 착각이다. 전공했다고 공부가 끝이 아니라, 전공하고 난 이후 실전에서 경험을 쌓는 순간부터가 비로소 시작이다. 이 점을 분명히 염두에 두길 바란다.


마지막으로, 앞으로의 계획이 무엇인지 궁금하다.

└ 계획 같은 게 원래는 없었다. 작년 이맘때쯤 나의 계획은 열심히 키운 후배에게 많은 것을 물려주고 나는 은퇴를 위해 뒤로 한 발 빠져 있는 것이었으나, 여러 사정으로 인해 그 계획에 차질이 생겨 버렸다. 오랫동안 가르쳐온 후배에게 자리를 물려준 뒤, 한 명 더 가르치고 은퇴하려 했다. 그런데 그 계획에 차질이 생기면서 다시 일에 복귀하게 되었고, 이제는 우리나라 마스터링이 해외로 진출할 수 있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 마스터링 업계는 이미 포화 상태이다. 우리나라는 인구도 적고, 시장도 작고, 게다가 인구도 점점 더 줄어들고 있다. 미래성이 딱히 뚜렷하지 않아 보이기에 해외로 나가보자는 생각이다. 올 초부터 중국어 공부를 하고 있고, 미국에서 30년을 살았기 때문에 영어는 다행히 무리가 없다. 현재 해외의 K-POP 시장이 점점 커지고 있는 게 사실이기에, 음악이든 음향이든 해외로 나가는 것이 현재의 계획이다.


몇 안 되는 질문들이었지만 '마스터링'이라는 단어와 개념에 대해 다소 생소할 수 있는 독자들을 위해 간략히 인터뷰해 보았다. 대중음악계에서의 유명세에 비해 인터뷰를 거의 진행하지 않으신 분이었기에 본 인터뷰에 응해주셔 더욱 감사했다. 한국의 음향 엔지니어들이 해외에서도 인정받을 수 있도록, 성지훈 감독의 계획이 꼭 이루어길 바라며, 실제 이루어지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김수영 | panictoy27@munhwa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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