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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답했다.

연극 '모범생들'은 답답한 현실을 극적인 요소로 잘 녹여내고 있었다. 명준은 잘 살고 싶었다. 잘 살기 위해 연봉이 높은 직업을 가져야 하고, 그런 직업을 갖기 위해서는 일류 학벌을 가져야 하며, 그런 학벌을 가져야 하기 위해서는 학교 시험에서 좋은 성적을 가져야 했다. 그리고 좋은 성적을 거두기 위해, '커닝'까지 감행하고 만다. 더구나 그는 커닝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답안지를 돈 주고 산다'는 경우의 이야기까지 들은 마당에, 자신은 커닝페이퍼를 준비하는 정성을 기울이니 전혀 부끄러울 것 없다는 얘기다.

얼마 전 SNS를 뜨겁게 달군 화제의 인물이 있다. 하버드대와 스탠퍼드대를 동시에 합격했다는 천재 소녀 김 모 양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그러나 이 사실은 거짓으로 드러났고, 김 모 양의 동급생은 김 모 양이 이미 학교에서도 '거짓말'을 서슴없이 하는 사람으로 유명하다며 후문을 털어놓기도 했다. 의학 전문가들은 그녀가 '리플리 증후군'으로 의심된다고 전하기도 했다. 리플리 증후군이란 허구의 세계를 진실로 믿고 거짓된 말과 행동을 상습적으로 반복하는 반사회적 인격 장애로, 무능력한 개인이 성취욕구가 강할 때, 현재 처한 상황이 스스로를 만족시키지 못해 열등감·피해의식 등에 시달리면서 주로 나타나는 증상이라는 것이다.

김 양과 명준에 대해 우리 모두는 입을 열어 비난의 목소리를 높일 준비가 되어 있다.그러나 김 양과 명준이 그런 행위를 벌이게 된 원인에 대해서는 우리 모두가 함구할 수밖에 없다. 머나먼 타지, 그것도 미국에서 상위 25위권에 드는 고등학교에서 '살아남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온몸으로 겪어낼 수밖에 없었던 김 양. 그리고 입시 지옥, 개천에서 용이 난다는 말은 옛말이 되어버린 현실에 굴복하기 싫어, 가난의 대물림을 극복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던 명준.

자본주의라는 미명 아래, 앞뒤 잴 것 없이 무조건 타당하게 여겨져 왔던 '경쟁주의'라는 이름의 지옥은 학생들을 '개인'이 아닌, 한 사회의 '부품' 쯤으로 존재하게 했다. 김 양과 명준은, 스스로를 '잘 팔리는 부품'으로 만들기 위해 양심을 버릴 수밖에 없었다.

비단 학교와 입시 경쟁의 문제만은 아닐 것이다. 사회는 이보다 더 치열하고 지독할 것이며, 학교는 마치 이를 대비해주는 훈련소일 테니 말이다. 더 고민해보자. 김 양과 명준의 타락한 양심을 비난하기에 앞서, 현실은 과연 '타락'을 비난할 자격이 있는지 말이다.

문화뉴스 장기영 기자 key000@mhn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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