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뉴스 MHN 석재현 기자] 그를 처음 봤던 건, 지난 2011년에 개봉했던 영화 '파수꾼'에서였다. '파수꾼'이 대중영화가 아니었음에도, 많은 사람은 이 조그만 영화에서 빛이 나는 그의 연기력을 보고 감탄했고, 혹자는 새로운 신예의 등장이라고 일컫기도 했다. 그리고 연이어 개봉한 '고지전'에서 고수, 신하균, 류승수 등 뛰어난 배우들 틈에서도 그는 자신의 빛을 잃지 않았다. 이후, '건축학개론', 그리고 드라마 '시그널'을 통해 배우로 완벽하게 인정받았다.

이제훈에게 시대극은 사실 모험이었다. 2014년 SBS 드라마 '비밀의 문'에서 한 번 했지만, 영화에선 처음이었다. 게다가 일제강점기를 살아갔던 독립운동가 중 한 명인 '박열'을 연기해야 했고, 촬영 기간 또한 짧았기에 말 못 할 고충도 많았을 법했을 것이다.

6월 중순 삼청동 어느 한 카페에서 만난 이제훈은 '박열'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면 힘든 기색을 없이, 예전에 수많은 작품에서 보았던 그 초롱초롱한 눈빛을 보였다. 그리고 짧은 기간임에도 '박열'을 향해 진지하게 배우고, 깨달은 게 많아 보였다. 이제훈에게 '박열'이 어떤 존재이자, 어떤 작품인지 그 못지않은 진지함으로 접근해보았다.

 

촬영이 끝나고 나서 아쉬움이 남는 건 없는지?
└ 보통 영화나 드라마를 찍은 후 모니터링 하면, 아쉽거나 부족한 점이 보여 다시 찍었으면 좋겠다는 생각하기 마련인데, 이번 '박열'은 내가 가지고 있는 모든 걸 다 쏟아냈던 작품이었다. 다시 그때로 돌아가도 그렇게까지 하지 못할 작품이었다.

'박열'을 촬영하는 내내 고생을 많이 했다고 들었다. 완성본을 본 소감은 어떠한가?
└ 후반부 법정 씬에서 굉장히 가슴 아픈 이야기를 잘하지도 못하는 일본어 대사를 감정을 담아 쏟아낼 때 큰 부담이었고, 촬영 끝날 때까지 압박감이 상당했다. 완성본을 보면서 그동안 내가 고생을 많이 했다는 흔적이 보였다. 일본어를 전혀 못 하지만, 한국뿐만 아니라 일본에서도 연기하는 데 불편함 없이 잘하고 싶었던 욕심이 컸다.

우리가 흔히 독립운동가라고 하면 김구 선생이나 안중근, 윤봉길 열사 등을 떠올린다. 하지만 박열은 그 분들과 다른 성향인 것 같다. 이제훈이 생각하는 박열의 차이점, 그리고 박열을 연└ 보통 '독립운동가' 하면, 혁명가 이미지로 비장함이나 진중한 모습을 떠올리는데, 박열은 이를 넘어 국가나 민족을 사랑하는 마음, 그리고 한 여인을 향한 사려 깊고 포용력 있는 사람이다. 박열은 개개인에 대한 존중이 잘 드러나는 사람이라는 걸 느꼈다.

1919년 3.1운동 당시, 박열은 고등학생이었다. 그는 항일운동을 보고 느꼈던 뜨거운 감정으로 전면에 나서 태극기를 휘날렸고, 그의 고향 문경까지 밀려오면서 운동을 그치지 않았다. 3.1 운동 이후, 그는 항일운동이 부족하다는 생각, 그리고 배움에 대한 열망으로 제국주의 심장부인 도쿄로 건너가 활동했는데, 이 사실에 굉장히 놀랐다. 대부분 만주나 상해 등으로 가는 반면, 박열은 지옥 불 같은 곳에서 독립운동을 할 수 있었던 것에 대단했다.

 

대본을 받기 전까지 박열이라는 이름조차 생소했는데, 그 분을 몰랐다는 데 대한 부끄러움이 들었다. 유관순 열사처럼 전면에 나서 알려진 분들도 계셨지만, 박열 같은 분들도 있다는 걸 모르시는 분들이 많기에 박열을 한 번 생각하는 관점에서 이 작품이 어필되기 바랐다.

박열이라는 인물과 그의 20대 초반의 모습을 그리고 소개하는 데 있어, '가네코 후미코'라는 존재 없이는 설명하기 부족했다. 촬영하면서 느꼈던 점은, 후미코를 통해 박열이 성장했고, 두 사람은 기존 남녀 간의 사랑과 달리 플라토닉적인 면, 그리고 신념적인 동지로서 서로에게 의지했다.

박열과 후미코가 함께 찍은 사진은 영화 개봉 전부터 크게 이슈가 되었는데, 그 사진을 보고 어떤 느낌이 들었는지?
└ 사진을 처음 봤을 때, "이게 뭐지?" 하고 놀랐다. 동시에 두 사람의 밀착된 사진을 보고 왜 이렇게 찍었을까 하는 의문도 들었다. 실제로는 옷섶까지 젖혀서 찍었다고 하는데, 감독님이 거기까진 하지 않아도 된다고 하셨다. 이 사진을 보며, 왜 이런 사진을 남겼으며, 감옥 안에서 어떻게 이런 사진을 찍었을까 하는 의문이 따라다녔다.

▲ 영화 '박열' 스틸컷

당시 재판이 이루어지면, 여러 신문이 실제 내용과 다른 이야기들로 전달해 조선 사람들이 왜곡하여 받아들여지기도 했다. 하지만 그 사진을 통해 이들이 어떻게 재판과정을 거쳤는지 관심을 가질 것이며, 제국주의에 대한 거부나 반항심을 보인 것을 느낄 수도 있었다.투옥 중에 핍박이 심했을 텐데, 그만큼 자신의 의지를 표명하는 데 있어 한 장의 괴사진을 통해 논란거리를 만들어 많은 이야기가 양산되었으면 하는 바람에 찍었을 것이다. 그 점에서 대단하다고 느꼈다.

박열이 '아나키스트'로 알려져 있는데, 대중들은 아나키스트를 그저 무정부주의자로만 알고 있다. 구체적으로 아나키스트가 무엇인지 설명 부탁한다.
└ 그 당시 현 정부의 사상과 체제를 거부한다는 건, 조선인으로서 일본의 정책과 교육 사상 등을 거부한다는 의미이며, 나아가 서구 문명이나 사상을 받아들이고 거부하는 것과도 이어져 있다. 박열은 민주주의나 공산주의의 화합을 끌어내는 부분에 있어서 애쓰셨던 분인데, 탈민족주의 관점으로 세계는 하나이며, 각 국가 간 대결이 아닌 모두가 평등하고 자유의지를 표명해야 한다고 이야기하셨다.

말을 들어보면, 당시 독립운동을 하셨던 분들의 기반이 되었던 사상과 다를 바 없어 보이는데?
└ 감히 정의할 순 없으나, 개인적으로는 그때 당시 사셨던 분들은 그런 시절을 겪었기에 모두 다 아나키스트 정신을 이어받지 않았나 생각된다.

▲ 영화 '박열' 스틸컷

박열의 분장도 상당히 파격적이었는데, 어디서 착안했는가?
└ 어디서 가져온 것이 아니라, 신문이나 사진 등에 담긴 박열의 모습 그대로 따라 했다. 거의 씻지 않은 모습을 그대로 가져왔다. 내 머리가 길지 않아서 뒷머리에 부분가발을 붙이고, 수염도 지저분하게 붙였다.

처음 테스트 촬영하면서 박열의 모습처럼 분장했을 때 스태프들 전부 나를 못 알아봤다. 그저 다른 한 명의 배역이겠거니 여기고 못 알아보더라. 이준익 감독님 또한 살짝 당황해하셨다. (웃음)

스스로 자신의 분장한 모습을 봤을 때는?
└ 상당히 쎄다는 생각이 듦과 동시에 한편으로는 이제훈이 지워지고 박열이 온전히 투영되어 보여줄 수 있겠다는 기대도 있었다.

'박열'을 준비하는 데 시간이 매우 짧았다고 들었다. 짧은 시간에 소화하려고 하니 힘들진 않았는지?
└ 지난해 11월에 대본을 처음 받았고, 올해 1월에 촬영을 시작해 2월에 끝났다. 드라마가 끝나자마자 곧바로 영화 촬영에 들어갔던 셈이다. 그래서 캐릭터를 준비하고 받아들이는 과정이 매우 짧았다. 인물을 받아들이는 시간이 충분히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나 스스로에게도 준비 기간이 짧아 부담감이 컸었다.

준비하는 과정도 그렇지만, 특히, 6주 만에 촬영에 끝냈어야 했던 작품이었다. 하루에 찍어야 했던 분량 또한 상당했고, 이 작품을 대하는 태도와 자세가 이전 작들과 달리 상당한 집중력이 필요했다.

 

특히, 짧은 촬영기간에 일본어를 소화하기도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
└ 이준익 감독님과 작품을 함께한다는 기쁨으로 임했는데, 그건 잠시였다. (웃음) 시나리오 막바지에 일본어로 되어있는 긴 대사를 보고 위기를 느꼈다. 고증해야 하는 입장이었기에 한국어로 감히 바꿀 수도 없는 노릇이었고, 재판 기록을 그대로 담아 만든 작품이었기에 가장 먼저 숙달했어야 했던 것도 일본어를 습득하고 체화시키는 과정이었다.

준비 및 촬영 기간이 짧았기에 같이 하는 배우들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세 사람(최희서, 김인우, 최우수)에게 부탁드리고, 일본어 대사의 문장이나 문단, 단어, 그리고 말의 속도와 억양 등 세세하게 배우며 연습했다.

'동주'의 연장 선상이라 보면서, 한편으로는 상당히 역동적인데?
└ 상업 영화로서 다른 편집이나 임팩트 있는 씬으로 채워 관객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해야 한다는 목적도 있지만, 이 영화가 지니는 의의나 가치에 더 집중했다. 감독님도 그렇기에 이 영화는 저예산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하셨다.

메시지 전달 부분에 있어 박열을 연기하는 나로서도 신중해야 했다. 혹시나 박열을 연기하면서 왜곡되거나 미화되지 않았나 싶었나, 혹은 인물을 표현하는 데 있어 폭발시켜야 하는지, 아니면 부족하거나 넘치지 않을까 하는 등 제3자 입장에서 바라보았다.

[문화 人] '박열' 이제훈이 잊지 못할 사람들, '박열' · '후미코' 그리고 '이준익 감독' ② 으로 이어집니다.

syrano@mhns.co.kr 사진제공=ⓒ 메가박스(주)플러스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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