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제8회 현대극페스티벌 극단 노을의 오세곤 작 연출 가라자승

[글] 문화뉴스 박정기 (한국희곡창작워크숍 대표) pjg5134@mhns.co.kr
한국을 대표하는 관록의 공연평론가이자 극작가·연출가.

[문화뉴스 MHN 박정기] <가라자승>은 허구라는 의미인 일본어 가라에 자승(自乘)을 붙였다, 실제가 아닌 허구에 자승까지 합했으니 대단한 허풍연극이라는 뜻이다.

<가라자승>은 포스트모더니즘을 뛰어넘는 신표현주의 연극이다. 포스트모더니즘이란 모더니즘이란 말에 '뒤'나 '후'(後)를 뜻하는 포스트(post)라는 접두어를 붙여 만든 말이다. 이 말은 1960~70년대 미국에서 문학과 건축 등의 예술 관련 분야에서 만들어진 말인데, 말 그대로 모더니즘 이후에, 모더니즘과 상반되는 특징을 갖는 작품이나 작가, 혹은 취향이나 태도 등을 지칭하기 위해 사용되었다. 근대의 이성은 규칙, 권위, 규율, 통제 등을 의미했다.

포스트모더니즘은 이러한 것들을 해체하려는 경향에서 출발했다. 다시 말해서 이성의 부작용인 경직되고 획일화된 사고에 반대하고, 그동안 이성에 밀려 무시되어 왔던 감성, 비주류, 여성, 아이, 유색인 등의 요소를 재조명하자는 의도였다. 그러나 현대에 이르러 포스트모더니즘은 역사적이고 과학적인 실증적 사고와 충돌한다. 포스트모더니즘은 무의미하고 몽매주의를 양산시킨다는 것, 과학의 엄밀성을 침해한다는 것, 실질적 사회 발전에 도움을 주지 못한다는 것 등이다.

일각에서는 포스트모더니즘이 종교적 도덕적 일탈 행동을 조장한다고까지 주장한다. 그러나 문화예술적 분야에서는 불붙듯 피어오르는 전진적 표현방법으로 평가되기도 한다. 특히 연극에서는 많은 작가와 연출가가 등장을 했다. 2017년 제8회 현대극페스티벌 참가작 극단 노을의 <가라자승>에서는 바로 포스트모더니즘까지 뛰어넘는 전진적 신표현주의 연극을 볼 수 있게 된다.

 

<가라자승>은 현실과도 일맥상통한다. 특히 정치현실과 부합해 창작되었다. 대통령이나 수상이 아닌 황제로 인물설정을 한 것이 다를 뿐이고, 등장인물들은 첨단과학기구를 사용한다. 국가비상사태가 발발하고 국민 수 십 만 명이 몰사했는데도 여황은 거울 앞에 앉아 손톱을 다듬고 있다. 정치현안은 비서관에게 전달을 받아서 듣고 고개만 끄덕일 뿐이다. 자칫 비서관이 개인의사나 반대의사를 피력하기라도 하면, 거만하고 불충한 것으로 여황의 분노와 질타를 받는다. 비서관은 땅에 머리를 조아려 사죄를 구한다.

그런 여황 밑에서 봉사한 비서관이 다음 황제로 등극한다. 다음 황제로 등극한 여황은 현실을 개혁할 의지를 보이지만, 기존의 법과 제도, 그리고 규칙에 의해 새로운 황제로서의 의지를 제대로 피력하지 못한다. 그저 선황제의 오만과 거드름 그리고 황제자리에 연연하고 선황제의 행동답습으로 이어질 뿐이다.

이 연극에서는 4명의 남녀가 황제의 자리를 승계한다. 특히 황제의 비서관이 차례로 다음 황제로 등극을 한다. 3인의 여황이 자리에 오르고, 마지막 황제는 남성이지만 여성 황제만으로 황제 직이 계승된 전통을 갖고 있기에 이 남성은 모든 의식과 행동이 여성보다도 더 여성적인 인물로 설정된다. 시대도 첨단과학기기와 기구를 사용하고, 머리에 안테나를 황제 관처럼 쓰지만 황제의 자리는 형식과 제도에 얽매인 구태의연한 자리이기에 이를 극복하지 못하고 선황의 경력과 역정을 되풀이 하는 모습에서 연극은 끝이 난다.

 

무대는 강단 같은 조형물과 화장대, 그리고 황제의 의자, 그 옆에 비서관의 탁자와 의자가 차례로 자리를 잡았다. 바닥에 전광으로 6면체의 문양이 펼쳐지고, 일본국가, 슈베르트의 송어, 독일가곡 등이 국기에 대한 경례나 의전음악으로 등장한다. 네 명의 출연자가 시계반대방향으로 돌며 황제의 자리를 승계한다.

박새롬, 임한나, 윤미경, 송영재 등 출연자 전원의 성격창출과 호연은 극 분위기 상승을 주도하며 관객을 극에 몰입시키며 탁월한 기량으로 연극을 성공작으로 이끌어 간다.

안무 안병순, 영상 김이진, 조명 이일균, 음악 박진영, 조연출 김기태 등 스텝 진의 기량이 합하여, 극단 노을의 제8회 현대극페스티벌 참가작 오세곤 작 연출의 <가라자승>을 세계시장에 내어보여도 좋을 명작연극으로 탄생시켰다.

※ 본 칼럼은 아띠에터의 기고로 이뤄져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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