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리디아가 만나는 대한민국 최고예술가 100'은 오랜 문화예술계 및 방송 경력으로 다져진 그가 문화뉴스의 부사장으로 취임하면서 만들어진 특별한 코너다. 대한민국의 예술계를 이끌어온 아티스트들의 노고를 기리고 그들의 생생한 현장의 목소리를 듣고자 기획됐다. 어디에서도 쉽게 듣지 못하는 탑아티스트들의 진짜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보자. [▶박리디아는?]

[문화뉴스 MHN 박리디아 부사장] "진실에 좀 더 다가가는 방법은 없을까를 모색하고자 한다. 그런 작업을 끊임없이 하고 있다."

한국 근현대 영화 역사와 삶을 함께해 온 정지영 감독을 만났다. 정지영 감독은 냉철하고 뚜렷한 주제의식을 담은 작품들로 우리 사회에 꾸준히 묵직한 화두를 제시하고 있다. 1946년 청주에서 태어난 정지영 감독은 고려대학교 불문과를 졸업한 후, 충무로에는 김수용 감독의 작품을 10여 편 참여해 1982년 '안개는 여자처럼 속삭인다'를 통해 본격적인 감독의 길에 들어선다. 

이후 1985년 '추억의 빛'으로 제9회 황금촬영상 감독상을, 1990년 안성기·최민수 주연의 전쟁영화 '남부군'으로 제11회 청룡영화상 감독상을 받았다. 1992년에는 안성기·이경영 주연의 베트남 전쟁을 소재로 한 '하얀 전쟁'으로 제3회 춘사영화상 감독상, 제31회 대종상영화제 각색상을 받았다.

1994년 '헐리우드 키드의 생애', 1997년 '블랙잭', 1998년 '까' 등 다양한 영화를 연출한 정지영 감독은 2012년 실화 소재인 '부러진 화살'로 오랜만에 연출작을 선보였다. 개봉 당시 약 340만 관객이 관람하며, '부러진 화살'은 정지영 감독의 가장 큰 흥행작이 됐다. 이 작품으로 정지영 감독은 제33회 청룡영화상 감독상을 받았다. 같은 해 11월에는 고인이 된 정치인 김근태의 수기를 소재로 한 '남영동1985'를 연출했다.

그 후 정지영 감독은 다큐멘터리 제작자를 맡았다. 2013년 '천안함 프로젝트', 오는 28일 개봉하는 '직지코드', 올해 전주국제영화제 상영작인 '국정교과서' 등을 제작했다. 극영화와 다큐멘터리 미묘하게 보여준 '우리 시대의 조율사', 정지영 감독을 만나 다양한 영화 이야기를 들어봤다.

 

문화뉴스가 선정한 '대한민국 최고 예술가 100인'에 선정됐다. 축하하며, 근황을 들려 달라.
ㄴ 감사하다. 최근 금속활자에 대한 이야기인 '직지 코드'라는 영화를 완성했다.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상영했고, 6월 28일 개봉 예정이다. 연이어 '국정교과서'도 준비 중인데, 내가 감독하는 것이 아니라 기획하는 것이다.

지난달 칸 영화제에 다녀왔는데, 덕분에 '한국영화의 밤'을 잘 마무리 지을 수 있었다.
ㄴ 그렇게 봐주니 고맙다. 그동안 영화진흥위원회가 칸에서 '한국영화의 밤'을 주최했다. 올해는 영진위 위원장도 사퇴로 인한 결손이 있었다. 안타깝게도 김지석 부산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가 세상을 떠나셔서, 김동호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도 호스트를 하지 못했다. 누군가 호스트를 해야 하는 데 없다고 해서, 누군가 의견을 제시하게 되어서 하게 됐다. 처음 가본 칸 영화제였는데, 좋은 점은 한국영화의 위상이 이 정도였다는 것을 느낀 점이었다. 나쁜 점은 칸 영화제 상당히 영화 내용으로는 진보적인데도 불구하고, 현실은 권위적이고 보수적이었다.

70회 칸 영화제인데, 만으로 70세에 처음 가게 됐다. 그래도 노장 감독, 원로 감독이라는 이야기를 듣기에는 너무 젊어 보인다.
ㄴ 그냥 나는 원로 감독이라는 말을 듣기 싫다. 그냥 '완숙해가는' 감독이면 좋겠다. 이제 진짜 익어가는 감독이라 보면 된다.

그렇다면 70년의 세월을 전반전으로 놓고 보면, 정치·사회 이슈 영화를 많이 연출하는 감독으로 인식이 됐다. 왜 그렇다고 생각하나?
ㄴ 아마도 내가 인간과 사회의 대해 관심이 많은 것 같다. 영화감독은 남들이 다 하는 것을 하는 사람이 별로 없는데, 그런 분야를 남들이 안 해서 하는 것이다. 마치 정지영 감독의 브랜드가 된 것처럼, 정치·사회 이슈를 영화하는 감독처럼 되어버렸다. 남들이 잘 안 한다. 그런데 내가 하는 것이다.

▲ 정지영 감독(오른쪽)이 본지 박리디아 부사장(왼쪽)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현재까지 온 대표작을 살펴보자. 베트남과의 전쟁을 소재로 한 '하얀전쟁'(1992년)이 있는데, 이후 '한베평화재단' 이사로 활동 중이다. 

ㄴ 최근 지속해서 한국인이 베트남에서 저지른 일종의 행위에 대해 현장에서 비를 세우고 있다. 이렇게 하면 안될 것 같고 조직적으로 해야겠다는 생각이 있었는데, 내가 '하얀전쟁'을 만든 것을 알고 참여해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거기서 하는 일은 한국과 베트남의 화해다. 우리가 일본에 '위안부 문제' 등으로 사과하라고는 하지만, 베트남에서 한국이 '민간인 학살'에 대한 사과를 해야 한다는 주장을 하면 꺼리는 분이 많다. 한국군은 미국 돈에 팔려서 베트남 전쟁에 참여한 용병이었다.

그런데 한국·베트남 전쟁을 '하얀전쟁'으로 만들고 싶어도 군사정권 시절이라 만들지 못했다. 30만 명이 참전한 전쟁인데, 베트남 전쟁을 미국의 시점을 통해서만 보게 된다. 그러면 미국·베트남의 싸움으로만 보이는데, 베트남 전쟁을 정확하게 이해하려면 한국군이 어떻게 참전했고, 어떤 일이 있었는지를 역사적으로 우리가 짚어줘야만 한국 현대사가 제대로 선다는 생각으로 만들게 됐다. 

안정효 작가의 원작과 달리 정치적인 코드가 많이 영화에 들어간다. 그것을 전쟁과 인간 측면으로만 해서는 부족한 점이 있었다. 군사 정권 속에서 베트남 전쟁을 들여다보니 부족한 점이 있었다. 일부 마을의 우물 파주는 대민지원은 한 바 있더라도, 베트콩이나 월맹군이 아닌 민간인의 학살도 이뤄졌다. 그것을 반드시 짚어서 역사에서 반성해야 제대로 일을 끝낼 수 있다는 생각으로 영화를 만들었다. 그래서 당신이 와서 이바지를 해달라고 했다. 물론 나는 문제를 제기했다는 것에 만족하고 싶었었다.

▲ 영화 '부러진 화살'

2012년 1월, 실화에 바탕을 둔 '부러진 화살'이 개봉해 흥행과 더불어 논란을 낳기도 했다.
ㄴ 먼저 "이게 사실이냐"를 물었다. 얼마나 허구가 들어가고, 사실이냐에 대한 논란이 있었다. 나는 "90%가 사실이다"라고 답했다. 왜냐하면, 피해자, 변호사 의견을 다 듣고 영화를 만들었지만, 그걸 믿고 싶어 하지 않는 사람도 있다. 기득권에 있는 사람은 "이건 영화다. 이걸 왜 사실로 보려 하냐"라고 했다. 기득권 네트워크에 문제를 제기하고, 우리 학교, 사법부 등 가진 자들에 대한 문제를 제기했다. 자기가 정직한 사람인데, 문제를 제기하니 해고를 하고, 법원에도 문제를 제기하니 그것도 안 된다고 해서 화살을 쏜 사건이었다.

그 기사를 봤을 때, 어떤 똘기 있는 교수가 화가 나니 판사를 화살로 쐈구나 싶었다. 억울해서 쐈다고 생각했는데, 그 내용을 들여다보니 책도 있었다. 책은 내가 본 내용과 다른 이야기였다. 이게 재밌었다. 이 이야기를 알려주면 재밌을 것 같아서 영화를 만들었다. 거기서 발견한 것은 이 교수는 상당히 보수적인 사람이었다는 점이다.

법대로, 원칙대로 하자는 것을 주장한다. 다만 사법부가 주장하지 않는다. 변호사는 진보적인 사람인데, 법은 쓰레기라고 생각한다. 법은 절차적 민주주의를 위한 도구로 이용된다. 그래서 모순된 법은 쓰레기라고 한다. '김경호' 교수(안성기)와 '박준' 변호사(박원상)라는 두 사람이 만나서 문제를 해결해가는 과정을 보여주려 했다.

▲ 정지영 감독이 영화 '남영동1985' 촬영 현장을 보고 있다.

'남영동 1985'를 관람할 당시, 보기 힘들었다. 작품을 만든 후 불이익을 받지 않았나?
ㄴ 물리적으로, 불이익은 내가 아픈 것뿐이었다. 영화를 만들면서 담배를 다시 피웠다. 내가 그 영화를 만들면서 가장 주안점을 둔 것은 고문당한 사람의 아픔을 관객도 그만큼 아파야 한다고 생각하며 만들었다. 그러다 보니 나도 아파야 했다. 연기자도 그랬을 것이다. 내가 지나치게 연출을 해서 그런지, 보는 사람이 끔찍했다. 좀 더 강하고, 세게 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사람들이 아파했다.

감정이입이라기보다 논리적으로 이 영화를 만든 목적은 수많은 국민이 그들의 고문을 통해 혜택을 받고 있다고 느꼈다. 그들에게 "옛날에 그런 일이 있었다"라고 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고, 강하게 항의하길 바랐다. 지나친 기우였나 싶었다. 내가 담배를 계속 피우는 바람에 병원에 입원하기도 했다. 이상하게 고문을 지시한 이경영 배우는 아팠는데, 고문을 당했던 박원상 배우는 원래 물에 트라우마가 있었는데, 그 영화를 찍고 나서 고쳐졌다고 한다. 

2013년 '천안함 프로젝트'를 제작한 이유는 무엇이었는가?
ㄴ 많은 사람이 술 먹고 이야기를 했다. "그게 말이 안 되잖아. 북한 소행이라는 증거가 안 나왔다"라는 이야기가 나왔다. 언론을 통해 문제를 제기한 사람도 없었는데, 시대 때문인지 방송에 나오지도 않는다. 천안함이 어떻게 격침됐는가를 추적해보고 싶었다. 탐사 프로그램이 그걸 못해서, 영화 쪽에서라도 해야 했다. 문제를 제기해본 것이다. 답은 나오지 않았는데, 이 문제를 제기했다는 것 자체로 용감하다, 대단하다는 말이 나오는 사회가 등장해선 안 된다였다. 당연히 질문할 수 있는 사회인데, 그런 사회를 바라면서 만들었다.

 

박근혜 전 정부가 지시를 내렸던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에 이름이 올려졌다.
ㄴ 이름이 당연히 올라갔다. 이명박 정권 때부터 싫어했다. 이후에 한국영화를 하지 못했다. 왜 못했을까를 돌이켜보니, '내가 하고자 한 작품에 투자를 하고 싶지 않아서일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이 억울했다. 블랙리스트에 올라가서 억울하다는 것보다 원래 반민주적인 행위를 거리낌 없이 하는 사람들의 행동 자체를 알고 있으므로, 국민이 정권을 만드는 과정에서 국민이 그 상황을 알고 거부하는 것밖에 해결방법이 없다고 봤다. 간첩도 아닌데, 간첩으로 고문당한 사람도 있지 않았는가?

오는 28일 개봉하는 '직지코드'를 제작하게 된 계기는?
ㄴ '직지코드'는 데이빗 레드먼이라는 외국인이 어느 날 찾아와서, 정보를 제공해줬다. 구텐베르크가 고려 금속활자를 모방한 것이었다는 정보였다. 그래서 "증명할 수 있냐"라고 물었고, "증명할 수 있다"고 답했다. 추적하는 다큐멘터리를 해보면 좋겠다고 생각은 했다. 한국인이 왔다면, 한국인의 시각으로 '쇼비즈니스' 차원에서 가는 게 아니냐고 했는데, 외국인이 와서 호기심이 들었다. 심지어 나는 청주 출신의 '직지 축제' 홍보대사다. 청주시에 가서 이런 거를 할 테니, 돈을 달라고 해서 지원을 받았다.

그것을 추적하는 내용인데, 구텐베르크가 고려 금속활자에서 힌트를 얻어 알파벳의 금속활자 인쇄술을 발명했다는 전제로 영화가 시작되지만, 증명은 못 한다. 그것을 증명하고자 하는 사람이 여러 경로로 찾아가지만, 이 작품을 토대로 많은 발견을 했기 때문에, 이 발견을 토대로 또다시 깊이 있게 추적을 한다면 좀 더 가까이 갈 수 있지 않겠냐는 생각을 한다. 그게 무슨 말이라면, 그들은 200년이 지났고 그 기간 서양과 동양의 교류가 많았으니 영향을 받지 않았느냐고 주장한다. 오히려 학자가 추적한 후 아니라고 덮어버린다. 그 문제 제기를 영화를 통해 하고자 했다.

▲ 지난 16일 오후 서울 동작구 아트나인에서 영화 '직지코드' VIP시사회가 열렸다. 정지영 감독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 문화뉴스 MHN 이현지 기자

'직지코드'처럼 올해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상영한 백승우 감독의 '국정교과서'에도 제작을 맡았다.
ㄴ 백승우 감독이 국정교과서 문제를 한 번 이야기하자고 했다. 누군가 이야기를 해야 하는데 돈이 없었다. 누구한테 설득해야 하나 싶었다. 그러다 다음 스토리펀딩을 발견했다. 여기에 몇 사람이 글을 써서 그것으로 국정교과서 영화를 만들자고 했다. 그래서 스토리펀딩에 3천만원 목표로 했는데, 2천만원 정도가 모였다. 또한, 여러 대표님의 투자를 받아 진행하게 됐다. 국정교과서가 폐기 됐다 하더라도 그 근거와 이유에 설득력이 있어야 했다. 박근혜 정부가 강제로 했으니, 폐기되어야 한다는 것은 아닌 것 같다. 그 이유를 보여주고 싶었다.

그래서 공부시키는 감독이 아니냐는 말을 듣기도 한다.
ㄴ 공부시키는 감독이라기보다 사람이 어떤 것을 기정사실로 알고 있는 것에 대해 문제를 제기해서 좀 더 진실로 가까이 가는 역할을 하고자 한다. 부재 속에 존재함, 실존을 포함해 사상이 없을 때, 그 부재 속에 알게 하는 것을 감시하고, 고발하고, 깨우치고자 한다.

극영화와 다큐멘터리 사이를 미묘하게 보여주는 조율사 역할을 맡고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는가?
ㄴ 진실에 좀 더 다가가는 방법은 없을까를 모색하고자 한다. 영화는 그것을 찾아서 관객, 대중에게 문제를 제기해 새롭게 생각해보게 하는 그런 작업을 끊임없이 하고 있다.

▲ 정지영 감독(오른쪽)이 본지 박리디아 부사장(왼쪽)과 포즈를 취하고 있다.

영화를 만들고자 하는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은 선배의 조언은?
ㄴ 영화를 만드는 테크닉은 좋아진 것 같다. 영화를 만드는 솜씨, 물적인 토대도 좋다. 중요한 것은 무엇을 만드느냐다. 각자 자기 화두가 있어야 한다. 자기 화두를 가지고 영화를 통해 찾아가는 모습이 보였으면 좋겠다.

앞으로 어떤 작품을 만들고 싶나?
ㄴ 우선 더 힘이 빠져서 움직이지 못하기 전에 나는 세계 문명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만들려 한다. 여행을 다니면서 보고 있는데, 우리가 보면 미국과 중국의 힘겨루기, 종교 때문에 나오는 문화충돌이 이뤄지고 있다. 전쟁이 문화적 이질감에서 서로가 적대시해서 생기는 것이라 봤다. 그래서 과연 그럴까를 생각했다. 문화와 문화는 충돌할 수밖에 없는지, 문화가 충돌하면서 새로운 문화를 창출할 수 없는지, 세계 문명사를 보여주는 다큐멘터리를 만들고 싶다.

 

관객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ㄴ 영화를 사랑해달라는 이야기밖에 없다. 영화를 사랑하는 방법은 블록버스터, 천만 영화 말고도 다양하게 봐주셨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단돈 2만원으로 만든 영화라도 보석 같은 작품 있으니 찾아봐 줬으면 좋겠다.

golydia@mhns.co.kr 정리·사진=문화뉴스 MHN 양미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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