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가 있는 날·예술이 있는 삶을 빛냅니다…문화뉴스]

사랑은 마치 도장 같습니다. 도장은 신뢰·확인을 상징합니다. 신뢰할 수 있는 훌륭한 공연에서 우리는 사랑을 느낄 수 있습니다. <문화뉴스>에서는 방송인 김미혜와 함께 공연에서 사랑을 확인하는 코너 [김미혜의 공연과 사랑에 빠지다] 연재를 시작합니다. 많은 독자 분들께서 좋은 공연을 통해 사랑을 느낄 수 있으면 합니다…[편집자 주]

▲ 극장 가는 골목

"무엇을 사랑하느냐가 곧 어떻게 살아가느냐를 결정한다"

혜화역 1번 출구에서 안쪽 골목으로 들어가다 보면 조그맣게 자리 잡은 안똔 체호프의 전용극장을 만나게 된다. 하지만, 극장으로 들어가 보면 결코 작은 소극장이 아니라는 걸 바로 알 수 있다.

▲ 극장 입구

큼지막하고 넓은 무대를 보는 순간 '아, 뭔가 다르다!'는 생각을 먼저 하게 된다. 그렇게 '벚꽃동산'에 대한 기대감이 커져 있을 무렵 조용한 분위기로 연극이 시작된다. 

▲ 극장 복도

'어느 귀족의 아름다운 몰락, 벚꽃동산' 하지만 그 몰락 속에는 다양한 러브스토리가 존재한다.

▲ 무대

벚꽃동산의 주인인 '라넵스까야 부인'의 과거를 향한 사랑

어머니 '라넵스까야 부인'은 귀족생활을 하던 과거를 사랑하고 여전히 그 추억에 빠져 살아간다.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고 과거에 머무르는 어머니의 모습을 그 주변 인물들은 못마땅해 한다. 하지만, 나는 이 연극을 보는 내내 안타까운 생각이 들었다. 과거를 사랑하기에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주인공. 몰락하는 현실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아 추억 속에 머물러있는, 그 시절을 사랑하는 어머니의 모습이 마치 '삼포시대', '오포시대'를 살아가며 현실을 버거워하는 우리의 모습과 어찌 그리 닮아있는지…가끔은 이렇게 '라넵스까야 부인'처럼 힘든 현실을 외면하고 내가 가장 행복했던 그 시절 속에서 살아보고 싶다.

'라넵스까야 부인'의 둘째 딸인 '아냐'와 죽은 아들의 과외 선생이었던 '뻬쨔'의 사랑

이 둘의 사랑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사랑과는 사뭇 다른 느낌의 사랑이다. 사랑이라는 단어보다는 동경이라는 말이 더 어울릴 법한 이 둘의 관계를 보며 '아냐'가 '뻬쨔'에게 세뇌당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에 솔직히 조금 무섭게 느껴지기도 했다. 아무것도 모르는 어리고 순수한 '아냐'에게 어려운 용어를 남발하며 변화와 혁신을 외치는 '뻬쨔'는 멋있어 보일 수밖에 없는 존재다. 어린 시절 학교 선생님을 향한 존경 어린 눈빛을 발사했던 내 모습이 생각나기도 했다.

새로운 벚꽃 동산의 주인 '로빠인'과 '라넵스까야 부인'의 수양딸 '바랴'의 사랑

연극을 보는 내내 이 둘의 관계를 보면서 솔직히 조금 화가 났다. '로빠인'의 남자답지 못한 모습, 비겁한 모습에 같은 여자로서 자존심이 상하고 답답했다. 과연 '로빠인'은 '바랴'를 진심으로 사랑했을까? 당시 시대 배경을 생각하면 '바랴'는 수동적일 수밖에 없지만, '바랴'의 행동도 답답하기는 매한가지다. 나라면 고백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마저 놓쳐버린 용기 없고 돈밖에 모르는 '로빠인'과 같은 남자는 단칼에 버렸을 것이다. 돈과 성공을 사랑한 '로빠인'은 결국 자신을 기다려준 여자를 얻지 못한 채 벚꽃동산에 남게 된다.

하인 '야샤'와 하녀 '두나샤'의 사랑

극 중에서 그나마 연인의 냄새를 풍겼던 두 사람. 바로 하인 '야샤'와 하녀 '두나샤'이다. 하지만 이들 역시 진정한 사랑을 나눴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진심을 다해 '야샤'를 사랑했던 '두나샤'와 달리 '야샤'는 비겁했다. 주인의 눈에 띄지 않는 곳에서만 사랑을 표현했고, 결국 '두나샤'를 외면한다. 특히 2막에서 주인이 온다며 '두나샤'를 쫓아 보내는 장면에서는 순순히 물러나는 '두나샤'에게 화가 날 정도였다. 애정 어린 눈빛 한 번 받지 못했던 '바랴'에 비한다면 좀 낫겠지만 '두나샤' 역시 안쓰럽기는 마찬가지다. 극 중 표현을 빌리자면 분수에 맞지 않는 사람을 사랑한 '두나샤'는 결국 버림받고 혼자가 된다.

▲ 무대 인사

오빠 '가예프'를 향한 늙은 집사 '피르스'의 충성어린 사랑

농노해방 이후에도 이 집을 떠나지 않고 끝까지 이 집을 지키는, 어찌 보면 고집스럽다고 할 수도 있는 '피르스'의 충성심은 이 모든 사랑 이야기 중 으뜸으로 삼고 싶다. 시도 때도 없이 “도련님~”을 외치며 '가예프'를 챙기는 '피르스'. 모두가 떠나고 텅 빈 집에서 눈을 감는 '피르스'의 마지막 대사 “시간이 훌쩍 지나가버렸어. 사는 것 같지도 않게. 아무 것도 남지 않았어. 아무것도...” 긴 여운을 남기며 끝이 났다.

▲ 연극 끝나고 찰칵! 

우리 삶에서 '무엇을 사랑하며 살아가는가'가 '내가 어떻게 살아가는가'를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인 것 같다. 연극 '벚꽃동산'에서 발견한 다양한 사랑을 통해 과연 나는 지금 무엇을 사랑하고 있으며 어떤 것을 추구하는 삶을 살고 있는지 그리고 내 인생이 어디를 향해 달려가고 있는지 그 방향성을 다시 한 번 확인해보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글] 문화뉴스 아띠에터 김미혜 mihye0330@mhns.co.kr '세상에 밝은 빛을 비추리라'. 보기와는 다른 엉뚱하고 발랄한 매력으로 모든 이들과 진심으로 소통하는 방송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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