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직지코드' 기자회견 말말말

▲ '직지코드' 기자회견에 데이빗 레드먼, 우광훈, 그리고 정지영 감독이 참석했다(왼쪽부터).

[문화뉴스 MHN 석재현 기자] 우리는 학교 역사 시간에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본'이라고 배우며 유네스코에도 등재된 '직지심체요절(이하 '직지')'과 서양 최초 금속활자 발명가인 요하네스 구텐베르크를 같이 배운다. 하지만, 한국과 달리 서양에서는 세계 최초 금속활자본은 구텐베르크가 만들었다는 게 통설처럼 받아들여지고 있고, 일반인들 또한 그렇게 믿고 있다. 

이런 서구중심의 생각이 만연하고 있는 현실과 구텐베르크의 금속활자가 '직지로부터 영향을 받았을지도 모른다는 하나의 가설에서 영화 '직지코드'는 출발했다. 그동안 '직지'를 다뤘던 국내 수많은 다큐멘터리는 많았다. 하지만, '직지코드'는 한 가지 큰 차이점을 두고 있다. '직지'와 전혀 상관없을 것 같은 푸른 눈의 외국인이 이 문제를 제기했다는 점이다. 

21일 오후 메가박스 동대문에서 화제의 영화 '직지코드' 언론/배급 시사회가 있었다. 시사회 이후 기자회견에는 총 제작을 담당해온 정지영 감독과 5개국 7개 도시를 누비고 온 우광훈, 그리고 데이빗 레드먼 감독이 참석했다. 세 사람이 들려주는 '직지'의 숨겨진 이야기가 지금부터 시작된다.

▲ 영화 '직지코드' 스틸컷

먼저 '직지코드'를 제작하게 된 배경, 그리고 연출 의도를 알려달라. 
└ 정지영 감독 : 아는 사람은 다 알겠지만, 내 고향이 청주다. 청주는 '직지'의 고향이기도 하며, 매년 직지축제를 하는데 나는 그 홍보대사로 활동하고 있다. 

어느 날 갑자기 데이빗이 '직지'에 관한 영화를 찍고 싶다고 찾아왔다. 데이빗은 자기가 경험한 이야기라면서 '직지'와 관련해 새로운 사실을 추적하는 영화를 찍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직지'가 구텐베르크에게 영향을 끼쳤다는 단서를 찾을 수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하길래, 그가 만들려는 추적다큐멘터리에 일조하고 싶어 열심히 투자 구하러 다녔고, 몇 년간 고생하다 간신히 찍었다. 

우광훈 감독 : 지금도 기억나는데, 도서관에서 시나리오를 쓰던 와중에 전화를 받았는데 정지영 감독님이셨다. 감독님이 내가 언어가 되고 촬영편집 가능하며, 때마침 내가 하는 게 없었던 걸 아시곤 획기적인 기획이 있다고 제안하셨다. 

지금까지 봐왔던 '직지' 다큐멘터리들과 달리, 서양인의 시각으로 다큐멘터리 영화를 만든다면 민족주의적이나 주관적인 면을 배제하고 객관적인 시각을 유지하는 새로운 형식의 다큐멘터리가 될 것으로 생각했다. 

특히, 2004년 엘 고어가 발언했던 '고려의 금속활자가 구텐베르크에게 미쳤다'는 설을 퍼뜨린 당사자를 만나 이야기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었다고 생각했으며, 나아가 이것이 베이스가 되어 댄 브라운의 소설 '다빈치 코드'처럼 박진감 넘치는 추적 다큐멘터리를 찍을 수 있다는 생각에 들떴다. 또한, 4개월 정도 걸린다고 해서 빨리 끝날 줄 알았는데, 3년이나 지나갔다. (웃음) 

데이빗 레드먼 : 영화에서 보는 것처럼, 파리에 있는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갔을 때 모든 직원이 '직지'에 대해 하나같이 아는 게 없다고 대답했다. 그들의 태도 때문에 기분이 상했지만, 한국 국보임에도 아무도 이런 정보에 대해 모른다는 것 또한 슬펐다. 

'직지'에 대해 약간 알고 있었지만, 그 전까지 이렇게 활동적으로 연구하진 않았다. 국립도서관을 나온 뒤 검색해봤는데, '직지'가 유네스코에 등록되어있는 책으로서 귀중한 가치가 있다는 걸 알았다. 

처음에는 캐나다나 프랑스 영화사에 접촉했지만, 그들은 미지근한 반응을 보여 한국까지 오게 되었다. 정 감독님과 만나 영화를 만들고 싶다고 제안했는데, 감독님께 영화를 통해 서양인이나 그 밖에 다른 나라 사람들에게 '직지'를 알리고 싶다는 목적을 말했다. 그래서 정 감독님은 시나리오를 만들어오라고 하셔서 2주간 고생 끝에 탄생하였다.

▲ 영화 '직지코드' 스틸컷

'직지코드'를 만들면서 가장 고생했던 점은 무엇인가? 역시 로마에서 도난당했을 때인가? 
└ 우광훈 감독 : 영화에서 등장했듯이, 카메라 등을 도난당했을 때가 가장 힘들었다. 당시 스태프들과 밥을 먹으면서 앞으로 만나게 될 박물관장이나 유럽 학자들과 토론해야 했기에 지식을 주고받던 상황이었고, 이를 자연스레 담기 위해 카메라 한 대만 꺼냈다. 그런데 이런 일이 있을 줄 몰랐다. 살면서 이보다 더 힘든 일이 일어날까 생각도 했다. 데이빗은 자살하고 싶다고 말했고, 진취적인 사랑 씨도 그 상황을 겪으니 침체되었다. 

도난된 장비를 찾는 과정에서 로마 경찰들이 너무나 비협조적이었던 점이 놀라웠다. 우리가 잃어버린 장비들에 대해 설명했음에도 알아서 찾으라는 식으로 말했다. 그래서 현지인들 사이에서 위험하다는 집시 마을까지 들어가 그들의 우두머리를 만나 수소문까지 하는 아찔한 경험까지 했다. 

유독 그때 비가 억수로 쏟아졌는데, 집시 마을을 보면서 화려한 유럽 속에 처절함 또한 존재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때 가장 힘들었는데, 정지영 감독님이 아무렇지 않게 재촬영하라고 말씀하셨다. 이 위기가 기회가 되어 영화의 극적인 이야기로 잘 쓰여 메시지 전달에 쓰일 수 있었다. 

데이빗 레드먼 : 우 감독 말처럼, 그 상황을 겪고 자살 충동을 느끼기도 했지만, 우 감독이 잘 토닥여주어 극복할 수 있었다. 잃어버린 장비를 찾으려 고생했지만 결국 못 찾았다. 그럼에도 정지영 감독님이 응원해주고 대안을 찾아보라는 말에 상당히 감동받았다. 

다행히 일부 촬영본이 남아있어서 후에 영화를 만드는 데 첨가할 수 있어 그 점에선 다행이었다. 그리고 영화에서 보면 춤추는 씬들이 나오는 데, 이같이 춤추는 시간이 서로에게 위안이 되었다. 

정지영 감독 : 먼저, 내가 황당했던 것보다 현장에서 그 사건을 겪은 감독과 스태프들의 감정을 생각해봤다. 한마디로, 영화 한 편을 도둑맞은 셈이었다. 

처음엔 카메라 같은 건 돈이 되는 것이라 잊어버리더라도, 하드디스크 안에 담겨있던 콘텐츠는 찾을 수 있을 줄 알았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찾아보라고 말했고, 스태프들이 무서운 집시 마을에 들어가 고생한 것도 알고 있었다. 이 사건은 커다란 사건이었기에 한국 외교관들이 개입해서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아 로마 대사관까지 연결해서 찾으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결국 못찾는다는 걸 알고, 스태프들에게 재촬영하라고 이야기했는데 달리 방법이 없었다. 

재촬영하려면 돈이 필요한데, 한국에서 당장 보내줄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저 그들에게 "고생 좀 해줘"라고 말할 수밖에 없던 분위기였다. 촬영인원수와 횟수를 줄여가면서 빡빡한 스케쥴 속에 스태프들을 고생한 시킨 내가 죄인이다.

▲ 우광훈과 데이빗 레드먼 감독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왼쪽부터).

잃어버렸던 첫 촬영분과 추가 촬영분이 차이난다고 하는데 어떤 부분에서 차이가 나는 지 구체적으로 알려달라. 
└ 우광훈 감독 : 처음 기획은 결과가 나와 있지 않은 사안을 발견하고 거기서 큰 감흥과 감동을 전달하기 위함과 동시에 날생선이 던져지듯 학자들과 담판을 짓는 거라 걱정하기도 했다. 그래서 학자들을 상대로 학자도 아닌 사람들이 우습게 보지 않도록 준비했는데, 의외로 일들이 잘 풀려갔다. 

긴장한 상태로 1, 2년 준비해서 그런지 우리가 알고 있지만, 그들이 몰랐던 것도 있었다. 그래서 감흥이 짜릿했다. 닭살이 돋을 만큼 좋았고, 서로 얼싸안으며 하나하나 밝혀가는 과정이 매우 좋았다. 그래서 첫 번째에는 모든 게 다 담겨 있어 박진감 넘치는 스토리텔링의 영화가 나올 것 같았다. 

그런데 도난 사건을 겪고 두 번째로 다시 돌려고 하니까 새로운 문제에 봉착했다. 다큐멘터리인데 첫 촬영처럼 놀라면서 경이로운 표정이 자연스럽게 나올 것인가, 얼싸안고 기뻤던 감정을 연기로 재현해야 할까 등으로 스태프들과 토론했다. 그들에게 어떻게 대답해줘야 할지도 힘들었다. 다행히 모두가 내가 지시한 대로 잘 따라줘서 좋은 결과가 나왔다. 

두 번째 촬영의 장점이라 하면, 충분히 이론적인 연습과 토론을 거쳤기에 좀 더 발전된 생각들이 나와 구체적이고 진취적인 질문을 할 수 있었다. 운명은 장단점 다 가지고 있는데, 단점이 있으면 이를 보완하는 장점이 있다는 걸 이번 기회를 통해 알았고, 다큐멘터리 만드는 데 새로운 경험이었다.

'직지코드'를 통해 관객이 얻을 수 있는 게 3가지로 보인다. 하나는 구텐베르크가 '직지'에 영향을 받았을 것이라는 가설, 두 번째는 구텐베르크가 금속활자를 만들었다는 증거가 부족하다는 것, 세 번째는 '직지'를 통해 그동안 드러나지 않았던 고려 왕실과 교황의 교류 사실인데, 이렇게 받아들이면 되는가? 
└ 데이빗 레드먼 : 구텐베르크와 '직지'에 대해 대부분 가설이며 유네스코 쪽에서도 직접적인 증거는 말할 수 없지만, 간접적인 증거들이 넘쳐나기 때문에 세계적으로 한국에서 금속활자를 먼저 고안했다고 말하는 추세다. 

영화에서 봤듯이, 아직도 바티칸이나 박물관 등이 개방되지 않은 정보들이 많아서 연구에 대한 여유는 많다. 예전 같으면 전문지식 가진 분들이나 해당 주제에 관심 있는 분이 매달리겠지만, 이제는 일반 사람들도 관심 가지는 부분이기 때문에 앞으로 더 많은 연구를 하고 싶다. 

▲ 영화 '직지코드' 스틸컷

'직지코드'는 이렇게 제시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인가? 아니면 추가적인 제작 계획 있는 건가? 
└ 정지영 감독 : 이 영화는 처음부터 서양인들 중심으로 쓴 역사를 우리가 그대로 따를 것인가, 분명 동·서양 금속활자에 연관성이 있을 것이다, 구텐베르크가 고려의 영향을 받고 만들었다는 가설이 이 영화의 출발점이 있고, 그 가설은 데이빗이 접했던 엘 고어와 추친박사의 발언이었다. 

그래서 혹자는 이 영화는 결국 단서를 찾는 데 성공했냐고 물어보면 단서는 못 찾았다. 못 찾았지만, 우리는 또 찾으러 나갈 것이다. 금속활자에 대해 대중들이 몰랐던 사실들을 다큐멘터리가 지적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학자들뿐만 아니라 대중 또한 문제를 제기할 것이다. 그리고 이전에 확실한 증거가 가진 왈드 포겔이 묻혔던 이유, 교황이 고려 사절단과 교류했다는 사실을 처음 공개되었다. 

지금도 아비뇽의 엄청난 장서들은 학자들의 손을 기다리고 있다. 그 책들을 어떤 학자든 열심히 뒤적이면 틀림없이 단서가 나올 것이다. 왜냐하면, 그곳에서 발견된 문서로 교황과 고려 왕실이 교류했다는 사실이 드러났기에, 세계최초 금속활자가 아시아에서 유럽에 전해지지 않았을까, 아비뇽에서 금속활자를 발견했을까 하는 추측이 이어질 수 있기에 실패한 작업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누군가가 제작비를 준다면 또 만들 생각이다.

데이빗 레드먼에게 질문한다. 현재, 미국과 유럽 많은 교과서가 금속활자 관해선 아직 '직지'가 누락되고, 구텐베르크만 이야기하고 있다. 세계최초 금속활자가 '직지'라고 바꿔 달라고 하면 넣길 거부했다. 이 영화가 세계에 알려지면 어떻게 알려야 하는가? 
└ 데이빗 레드먼 : 서양학자들이 '직지'의 존재에 놀라고 있지만, 그들 또한 서구중심 사상에 물들어있기에 그런 일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서구중심주의 사상을 이 영화를 통해 바꾸는 데 일조하는 것으로 홍보하면 좀 더 효과 있지 않을까 싶다. 

우광훈 감독 : 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게, 결코 '직지'를 내세워 우리의 기술성이 더 뛰어나고 우수하다고만 전하는 게 아니다. '직지'의 내용 중에 "마음이 둘이면 옆에 있는 부처도 보지 못한다"가 있다. 좋은 글귀들을 담아 만든 책이 '직지'인데, '직지'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세상은 하나고, 모든 것을 초월해 하나가 되어야 깨달음을 얻는다"는 메시지가 있다. 

다큐멘터리를 할 때 사실을 발견하지 못하면 그것을 염원하듯이 메시지를 전달하는 게 나는 그걸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 '직지'라는 영화를 만들면서 그 '직지' 내용에 집중했다. 이 작은 불경 책 하나가 서양으로 넘어가 100년 넘게 어두운 도서관에 갇혀있다가 인제야 빛을 보고 왜 중요한지 밝힘과 동시에, 과거의 동·서양 교류를 깨달으면서 우리가 왜 단결하는 민족인지를 되돌아보게 한다. 

과거 원과의 전쟁 중에도 우리는 금속활자를 끼고 피난 가서 여러 가지 책을 찍어냈다. 우리의 뿌리가 어디서부터인지 말하는 게 이 영화가 말하는 메시지가 아닌가 싶다. 

▲ 우광훈, 정지영, 그리고 데이빗 레드먼 감독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왼쪽부터).

한편, '직지코드'는 프랑스 국립도서관이 소장 중인 고려 시대 세계 최초 금속활자본 '직지'와 서양의 최초 금속활자를 개발한 구텐베르크의 비밀을 밝히기 위해 '데이빗(데이빗 레드먼)'과 제작진이 프랑스부터 바티칸까지 총 5개국 7개 도시 횡단을 통해 완성된 다큐멘터리 영화로 오는 28일 개봉 예정이다.

syrano@mhn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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