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국부' 리뷰

 

[문화뉴스 MHN 장기영 기자] 신화는 어떻게 만들어질까? 지난 10일부터 18일까지 남산예술센터서 공연된 연극 '국부'는 신화가 돼버린 한 텍스트를 가져와 롤랑바르트의 '신화론'을 떠오르게 한다. 우리는 여기서 박정희라는 텍스트를 만났다.

박정희와 그의 인생은 하나의 텍스트가 됐다. 박정희의 탄생 비화, 5.16 군사정변과 경제 성장 정책들의 후일담, 그리고 그 비범한 인생의 종지부를 찍는 비극적 죽음까지. 박정희라는 텍스트는 신화가 돼 21세기의 대한민국에서도 여전히 막강한 영향력을 휘두른다. 

 

 

바르트는 '신화'란 역사적 발생 동기를 수반하며 태어나지만, 그 동기를 은폐하고 그것이 전달하는 의미를 극히 자연스럽고 당연한 사실로 제시함으로써 일반적인 상식으로 통용시키는 것이라 설명한다. 박정희라는 기표는 어떻게 본래의 기의를 상실하며 일종의 이데올로기적 상징물이 됐을까. 

대한민국에서 '박정희'라는 텍스트는 방점을 어디에 찍느냐에 따라 아주 극단적인 해석이 가능해진다. 자유를 말살시킨 독재의 아이콘, 대한민국의 경제를 구원한 리더. 이외에도 그는 다양한 이름으로 호명되고 있다. 이중 연극 '국부'는 박정희가 어떻게 '영웅', '초인', '위대한 지도자' 등이라는 비범한 존재로 대중의 인식에 각인됐는지에 초점을 맞춰 그 과정을 짚어낸다.

 

 

연극은 향수-이야기-신화-초인, 총 4장으로 구성됐다. 1장 '향수'부터 3장 '신화'까지는 각각 증언, 요약, 비유로써 에피소드가 채워진다. 

1장 '향수'는 박정희를 그리워하거나 비판하는 사람들의 증언으로 이뤄졌다. 그러나 대체적으로 다수의 사람들은 부모 세대의 증언을 통해 박정희를 그리워한다. 이후 2장 '이야기'에서는 박정희의 출생담부터 새마을운동 노래를 짓기까지, 그가 어떤 삶의 궤적을 그렸는지 많은 이들이 알만한 이야기를 간략히 재현한다. 

3장 '신화'에서는 박정희의 군사독재 시절 이야기를 '구약성서' 중 모세의 출애굽 이야기에 비유한다. 히브리 백성들을 애굽에서 구원해낸 모세, 그는 곧 박정희로 묘사된다. 모세 박정희는 통치에 잘 따르지 않는 백성들에게 초반에는 기적을 선보이다가, 점점 공포와 학살의 통치를 가하며 그들의 복종을 이끌어낸다. 모세는 신과 인간을 잇는 존재였지만, 박정희는 곧 신적 존재 그 자체가 된다.

 

 

흥미로운 것은 4장의 구성. 4장은 박정희가 김재규에 의해 총살당하는 장면을 반복적으로 보여준다. 반복되는 사건에서 배우의 행위와 대사는 부조화를 일으키며, 각각 그 자리에 참석했던 이들의 회상과 사족이 덧붙여진다. 그들은 박정희가 총탄을 2회에 걸쳐 맞으면서도 평범한 인간으로서는 도저히 내뱉기 힘든 말 '난 괜찮아'를 외쳤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그렇게 박정희는 비범한 죽음의 당사자, 곧 초인이 됐다.

3장과 4장 사이에는 한나 아렌트의 '악의 평범성'을 인용하는 부분이 삽입된다. 나치 정권 하, 명령에 따라 중간관리인으로서 유대인 학살 정책에 동조했던 아이히만의 행위는 유죄가 맞다는 부분을 짚어내며, "생각하지 않는 것이 곧 죄"라는 말을 인용한다. 전인철 연출은 여기서 생각이 없다는 것, 곧 스스로 주체적 사유의 자유를 포기했다는 것이 곧 '신화' 생성의 원동력이라 언급하는 듯하다. "독재에 대한 향수는 이야기를 신화로 만들어 그를 다시 부활시킨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어 4장에서는 찬양의 언어가 가득했다. 박정희가 '고문, 5.16 군사정변, 부인의 죽음, 그리고 본인의 마지막 순간까지, 절체절명의 순간들을 매번 의연하게 대처해' 왔다며 그 초인적 모습을 강조하기에 이른다. 또한 18년간의 독재에도 그의 죽음을 기리기 위해 박정희의 묘지를 찾는 국민들의 모습이 이어진다. 신화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설명하다가, 독재자의 죽음을 찬양하는 언어로 끝을 맺는 이유는 무엇일까? 

4장은 박정희의 죽음을 찬양의 언어로 구성함으로써, 결국 그 신화가 만들어진 시발점을 재현한다. 독재자의 죽음이 실재했다. 그 죽음은 다만 실재했을 뿐이지만, 그 죽음을 묘사하고 기억하고 호명하는 이들에 의해 독재자의 존재는 무고한 희생양으로 거듭난다. 그리고 그 과정을 주체적인 사유 없이 그저 '받아들이게' 된다면, 폭력적인 지도자는 우리 인식에 신뢰를 바탕으로 하는 가장 '건강했던 지도자'로 생명력을 얻을 수 있다는 점을 말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극이 그리는 그의 초인적인 마지막 모습은, 국민들이 다시 그를 향수하고, 그의 이야기를 영웅담으로 만드는 과정의 단초가 된다. 전 연출은 "지금 독재자의 딸이 저물고 있고, 문재인이라는 구세주가 나타났으며, 노무현이라는 신화가 만들어지고 있다. 그러나 대통령이 국부고 영웅이며 구세주여야 할 이유는 없다"라며, "슈퍼맨 같은 대통령을 기대하지 말"라고 말한다. 

연극은 배우들의 성 역할에 대한 고정관념을 부순다. 여성 배우가 연기하는 박정희, 남성 배우가 연기하는 육영수 등 역사적 인물들의 실제 성별과는 관계없이 역할을 배정한다. 더욱이 박정희는 무대에 등장하는 모든 이들이 돌아가며 한 번씩 연기하게 되는데, 이는 곧 누구나 '박정희'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모든 신화를 경계하기 위하여. 그 누구도 구세주가 될 수 없으며, 그 누구의 삶도 신화가 돼서는 안 되며, 어느 한 지도자를 절대적인 존재로 상정해서는 안 된다는 것. 연극은 한 독재자의 극단적인 신화화 현상을 무대에 그림으로써, 다양한 신화화의 가능성을 경계하자고 얘기하는 듯하다.

key000@mhns.co.kr 사진=ⓒ 서울문화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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