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 경기 전 정확한 배팅 오더 확인 못한 채 스스로 지명 타자 '말소'

▲ 넥센 장정석 감독이 1회 말 공격 도중 롯데 배팅 오더에 대한 부분을 어필했다. 장 감독의 빠른 어필이 있었기에 라인업도 정정될 수 있었다. 사진=SBS 스포츠 방송 중계 캡쳐

[문화뉴스 MHN 김현희 기자]지난 17일, 고척 스카이돔구장을 찾은 야구팬들은 상당히 진귀한 장면을 목격했을 것이다. 어찌 보면 평생 구경하지 못할 수 있는 장면이기에 이를 두고 웃어야 할지 화를 내야 할지 고개를 갸우뚱 하는 이들도 있었을 것이다. 착오에 의한 배팅 오더 제출, 그에 따른 관리 소홀이 빚어낸 결과가 어제 경기를 있게 한 셈이었다.

상황은 이러했다. 당초 롯데 조원우 감독은 이대호의 체력 안배를 위하여 1루수 최준석-지명 타자 이대호로 이 날 경기를 치르려 했다. 그런데 정작 배팅 오더에는 '3번 지명 타자 최준석, 4번 타자 1루수 이대호'로 기록을 했던 것이었다. 문제는 1회 초 공격이 끝나고 1회 말 수비로 이어질 때까지 조원우 감독을 비롯한 코칭스태프, 선수단 모두 이를 전혀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4번 타자 투수 노경은', 보기 드문 구경 하셨죠?
하지만, 이는 정말 프로답지 못한 행동이었습니다. 꾸짖어 주세요!

▲ 배팅 오더와는 달리, 최준석이 1루수로 투입(사진 우)됐다. 바로 이 순간, 지명 타자 자리는 소멸됐다. 사진=SBS 스포츠 방송 중계 캡쳐

만약에 1회 말 수비에 들어가기 전까지 롯데 관계자 누구라도 이를 인지했다면, 다소 체력적인 부담이 다가왔어도 이대호를 급하게 1루수로 투입했을 수 있다. 또한, 고척 스카이돔 전광판에도 '아주 친절하게' 라인업과 수비 위치를 모두 명시하여 롯데의 4번 타자 겸 1루수가 이대호임을 명시해 주기도 했다. 이쯤 되면, 본인들이 정식으로 제출한 배팅 오더가 제대로 기록되어 있는지 다시 한 번 더 점검할 필요가 있었는데, 그러한 과정을 전혀 거치지 않았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프로 답지 못했다'라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것이다. 결국 조원우 감독도 이를 인정, 당초 지명 타자로 지정됐던 최준석이 1루수로 투입된 것으로 판정하여 지명 타자 자리가 소멸되게 됐다. 이것이 바로 '4번 타자 투수 노경은'의 연출 전말이었다.

▲ 롯데 라인업에는 분명히 '지명 타자 최준석-1루수 이대호'로 명시됐다. 심판 위원도 이 점을 착안, 기록원에 의한 실수인지 롯데 측에 의한 실수인지를 파악하는 데 많은 시간을 소비했다. 사진=SBS 스포츠 방송 중계 캡쳐

결국 성남고 시절 이후 거의 방망이를 잡아본 일이 없던 노경은은 4번 타자라는 중책까지 맡으며, 경기를 치러야 했다. 롯데로서는 의도하지 않게 선수 한 명에게 많은 짐을 지워 준 셈이었다. 공격의 핵심이 막히다 보니, 이렇다 할 득점 찬스도 잡지 못했다. 만약에 1회 초에 나온 전준우의 선두 타자 홈런이 아니었다면, 영봉패를 당해도 할 말이 없었다. 바로 이러한 모습이 대한민국 최고를 자랑한다는 고척 스카이돔에서 펼쳐진 것이다.

착오로 작성된 배팅 오더의 제출로 상대팀 넥센 히어로즈에게도 큰 실례를 범하게 됐다. 최상의 전력을 갖춰 상대를 대하는 것이 프로다움에도 불구하고 롯데는 이러한 의도치 않은 상황을 연출, 4번 타자로 투수를 상대하게 하는 해프닝을 빚어낸 것이다. 어떠한 이유에서건 간에 입장료를 지불하고 야구장을 찾은 팬들에게도 큰 실례를 범했다는 점에서 꾸짖음을 받아도 할 말이 없게 됐다.

▲ 경기 도중, SBS 스포츠 중계 카메라가 아주 유의미한 장면을 잡아냈다. 롯데가 전광판에 표시된 대로 배팅 오더를 제출했다는 점이었다. 사진=SBS 스포츠 방송 중계 캡쳐

그나마 다행인 것은 넥센 장정석 감독의 빠른 어필이 있었다는 점이다. 롯데가 1회 말 수비에 들어갈 때까지 전광판에 표시된 라인업과 수비 위치가 잘못되었다는 점을 인지한 심판 위원도 정황상 없었기 때문이었다. 만약에 넥센 쪽에서도 이러한 점을 인지하지 못한 채 경기에 임했다면, 향후 몰아 칠 파장도 상당했을 것이다.

고교야구에서도 지명 타자 제도를 적극 활용한다. 그러나 투-타 양 쪽 모두 재능을 보이는 이가 있다면, 초반 지명 타자로 투입되다가 경기 막판 마무리 투수 형태로 마운드에 오르는 것이 일반적이다. 바로 이 순간, 지명 타자 자리는 없어지게 된다. 군산상고 석수철 감독도 이 점을 착안, 에이스 겸 4번 타자인 임지훈을 적절하게 활용하여 여러 차례 수비 위치를 변동시키는 작전을 쓰기도 했다. 고교야구 감독들도 너무 잘 아는 지명 타자 규정을 프로 야구에서 인지하지 못했다는 점도 상당히 아쉬운 부분이다.

의도야 어찌되었건 간에, 야구팬들은 고척 스카이돔 관전이나 텔레비전 중계를 통하여 만화속에서나 있을 법한 장면을 제대로 구경한 셈이다. 어제 고척동에서는 만화 '4번 타자 왕종훈'과 '메이저'가 현실 속에서 일어난 하루였다. 이러한 진귀한 장면을 구경하게 해 준 관계자들에게 감사를 해야 할 지도 모르겠다. 다만, 1인 2역을 하느라 원치 않게 마음 고생을 했을 노경은에게는 따뜻한 박수를 보냈으면 하는 것이 작은 바람이다.

eugenephil@mhn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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