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단 실험극장의 김태수 작 김순영 연출의 천덕구씨가 사는 법

[글] 문화뉴스 박정기 (한국희곡창작워크숍 대표) pjg5134@mhns.co.kr
한국을 대표하는 관록의 공연평론가이자 극작가·연출가.

[문화뉴스 MHN 박정기] 김태수 작가는 KBS 방송작가를 거쳐 대전일보 신춘문예에서 희곡 '파멸'이 당선되면서 극작가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대표작으로는 <베아트리체는 순수의 시대로 떠났다> <옥수동에 서면 압구정동이 보인다> <땅끝에 서면 바다가 보인다> <운현궁에 노을지다> <트라우마 IN 인조> 그 외에 다수 작품을 발표 공연했다. 제3대 한국희곡작가협회 이사장을 역임하고 현재 서울예술전문대학 교수다.

김순영은 극작가 겸 연출가로 극단 미연의 대표다. 일본소재대학 연극과를 졸업하고, <사랑을 주세요> <달님은 예쁘기도 하셔라> <거짓말쟁이 여자, 영자> <사랑이 가기 전에> <살려 주세요> <삼류배우> <주인공> <사랑의 방정식> 그 외의 다수 작품을 쓰고 연출했다. 김순영이 손을 대면 작품이 섬세하고 감성적이고 아름답게 빚어진다.

무대는 천덕구의 고물상 겸 집이다. 하수 쪽에 각종 농기구와 운동기구를 비롯한 중고기구와 아래 위단에 쌓여있고, 커다란 저울이 놓여있다. 여러 가지 정비기구가 눈에 띈다. 고물 사이로 위로 오르는 계단이 있지만 계단에도 온갖 잡동사니 고물이 잔뜩 쌓여 오르기가 불편하다.

상수 쪽은 천덕구의 방이다. 벽에 체경이 걸리고, 겸 조리대가 앞쪽에 가로 놓이고, 방 뒤로 내실로 통하는 복도가 있다. 가구와 의자가 놓여있고, 푹신해 뵈는 의자, 옷걸이, 조리대 위에는 양념담긴 플라스틱 통, 손잡이 달린 냄비, 밥그릇과 수저가 있다. 가스가 아닌 전기로 물을 끓여 국수를 만든다.

 

70대의 천덕구와 그의 아내가 등장해 연극을 이끌어 간다. 천덕구는 비교적 건강해 보이지만 동작이 젊은 사람들과는 틀리고, 아내는 자주 얼굴을 찡그리고 배에 손을 가져가며 몸을 구부리는 것으로 보아 깊은 속병이 있음을 감지하게 된다. 그러나 아내는 남편 앞에서 내색을 않으려는 듯 보인다. 천덕구가 직접 음식을 만들어 아내와 함께 먹는다. 휴대전화 통화로 천덕구에게는 장성한 두 아들이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내용은 천덕구의 생일잔치를 서울의 음식점에서 크게 차릴 예정이라는 것이 전해진다. 당연히 기뻐하는 천덕구와 아내의 모습에서 극 분위기가 상승된다. 그때 도로에 철제 맨홀을 벗겨 등에 지고 바로 이 고물상으로 와 팔려는 남자가 등장한다. 하지만 천덕구가 호령을 하며 다시 제자리에 가져다 놓으라며 나무라니, 남자는 혼이 나서 다시 맨홀을 짊어지고 퇴장한다.

곧이어 나이 많은 노인이 폐지를 수거해 손수레에 싣고 들어온다. 천덕구가 폐지를 저울에 올려놓다가 젖어있는 것을 알고 물을 축였느냐고 묻는다. 노인은 비를 맞은 것이라며 능청을 떤다. 천덕구는 잠자코 중량을 달고는, 값을 조금 더 처서 노인에게 지불한다. 노인은 흥이 나서 손수레를 끌고 퇴장을 한다. 향후 천덕구와 아내의 일상이 극에서 전개가 되다가 잠시 과거로 돌아간다. 젊은 시절 천덕구가 바람을 피운 이야기다. 그 까닭으로 해서 부부는 다투면서 목이 쉴 정도로 고성을 지른다. 그 후에 아내는 시름시름 속병을 앓게 되고, 향 후 속병이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음이 전해진다. 극중 요즘 흔한 자금 대출이나 상품당첨이 되었다는 휴대전화 통화내용도 마당 가운데 여성상담원이 조명을 받고 등장하는 것으로 연출된다.

장면이 바뀌면 천덕구와 아내의 일상이 재연되고, 아내와 대화를 하고 겸상을 해 밥을 먹고, 고물상 일을 하면서 취침을 할 때까지 천덕구는 늘 아내와 자리를 함께 한다. 생일날 아내는 천덕구의 구두를 정성스레 닦는다. 천덕구가 새 옷을 장만해 들고 들어와 거울 앞에 서서 입는다. 그리고 아내 앞에서 입고 뻐기며 젊은이처럼 몸을 흔들어대며 흥겨워한다. 아내도 흥겨워하다가 얼굴을 찡그리며 손을 배에 가져대며 허리를 구부리고 방으로 급히 들어간다.

천덕구는 반짝이는 구두를 신고, 경쾌한 걸음걸이고 집을 막 나서려다 휴대전화를 받는다. 장남에게서 온 전화다. 사업관계로 지방출장을 가게 되어 생신을 차려드릴 수 없다는 내용이다. 천덕구는 실망한 표정이지만 자식에게 내색을 않고, 잘 다녀오라고 한 후 평상복으로 갈아입는다.

다시 휴대전화 음이 들리면서 마당에 조명이 비추어진 공간에 작은 아들이 다리를 절며 등장한다. 부자간의 통화로 작은 아들도 잔치를 못해드려 죄송하다는 이야기와 함께 결혼을 하게 되었다고 아버지에게 알린다. 천덕구가 기뻐하면서도 신부 부모가 네가 몸이 불구라는 것을 아느냐고 걱정스레 묻는다. 작은 아들은 신부부모가 "신랑이 마음이 착하면 괜찮다."고 했다는 말을 전한다. 천덕구는 생일잔치취소로 언짢았던 심정이 밝아지며 아내에게 작은 아들의 결혼소식을 알리려 "여보" "여보" 하고 부르며 방으로 들어간다.

그런데 아내의 답은커녕 빈 방인 것을 알고 되돌아 나와 부엌과 뒷마당으로 아내를 부르며 찾다가 놀란 표정으로 되돌아온다. 그때 이웃 남자가 연장을 빌리러 들어와 천덕구를 찾는다. 천덕구가 아내가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를 않는다고 걱정스레 이야기를 한다. 그러자 이웃 남자인 친구가 "자네 처가 몇 개월 전에 죽었는데 무는 소리를 하느냐?"고 이상한 듯 쳐다본다. 천덕구는 비로소 그 사실을 상기하는 듯싶다. 친구는 연장을 빌려들고 되돌아간다.

천덕구의 상심과 허탈이 객석에 전달된다. 객석 여기저기에서 충격을 받는 듯싶은 모습이 보이기 시작한다. 마음을 다져먹었는지 천덕구가 고물정리를 시작하며 쌓인 고물사이에 난 계단을 밟고 위로 올라간다. 이웃 친구가 빌려간 공구를 되돌려 주려고 들어와 천덕구를 찾는다. 천덕구는 위의 단에서 대답을 한다. 그러나 친구는 그 소리를 듣지 못한다. 아니 안 들리는 성싶다.

이웃 친구는 한참을 찾다가 공구를 걸이에 걸고 되돌아 나간다. 천덕구가 다시 내려와 방으로 들어가 아내의 영정을 들고 나와 소파에 앉아 옆에 놓인 녹음기의 스위치를 누른다. 아내의 마지막 녹음소리가 들려나온다. 마당 가운데 조명이 비추어진 공간에 아내가 등장한다. 그리고 아내의 따뜻한 마음이 한마디, 한마디가 천덕구에게 전해진다. 아니 천덕구 뿐 아니라 관객 모두에게로……객석 여기저기에서 손수건을 꺼내 눈으로 가져가는 모습이 보이기 시작한다. 천덕구가 소파에 아내의 영정을 바로 놓은 채 눈물을 흘리며 방으로 들어가면, 영정에 집중조명이 들어가는 장면에서 연극은 마무리가 되지만 관객은 자리에 앉아 일어날 줄을 모른다.

 

오영수가 천덕구, 차유경이 아내로 출연해 일생일대의 명연을 펼치며 관객을 완전히 극에 몰입시킨다. 유정기가 이웃 남자와 폐지 수거하는 노인 역으로 출연해 전혀 다른 성격창출로 기량을 발휘한다. 강인철이 맨홀을 지고 등장하는 남자 역과 막내아들 역으로 출연해 호연을 보인다. 김예림이 휴대전화 상품당첨 알리는 여인 역으로 등장해 폭소를 유발시킨다.

제작 이한승, 무대 신종한, 음악 음향 한철, 조명 진용남, 의상 조문수, 분장 김선희 진성희, 사진 이강물, 편집디자인 윤영준, 조연출 신진아, 후원회장 박석준 등 제작진, 후원진, 스텝 진의 열정과 노력이 혼연일체가 되어, 극단 실험극장(대표 이한승)의 김태수 작, 김순영 연출의 <천덕구씨가 사는 법>을 남녀노소 누구나 보아도 좋을 친 대중적이자 감동만점의 연극으로 만들어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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