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뉴스 MHN 서정준 기자] 지난 8일 오후 연극 '모범생들' 10주년 기념 공연 프레스콜이 대학로 드림아트센터 4관에서 열렸다.

8월 27일까지 공연되는 연극 '모범생들'은 '상위 3%를 향한 나쁜 엘리트들의 백색 느와르'라는 컨셉을 지닌 작품이다. 1992년을 배경으로 1등급을 맞고 싶어하는 특목고 고3들이 성적을 위해 컨닝을 시도하는 과정에서 점수를 돈 주고 산다는 소문이 있는 반장 민영과 대립하는 이야기를 그렸다.

상위 3%를 인생의 목표로 삼은 명준 역에 김도빈과 문태유가, 제주도에서 올라온 약삭빠르고 수다스러운 수환 역에 안세호와 안창용이, 공부는 못하지만 인간미 있는 종태 역에 박은석과 권동호가, 엘리트 중의 엘리트 반장 민영 역에 조풍래와 정휘가 출연했다.

본공연에선 이들외에 10주년 기념인만큼 이호영, 김슬기, 김대종, 홍우진, 홍승진, 김대현, 윤나무, 정순원, 임준식, 문성일, 강기둥, 김지휘, 양승리, 강영석도 출연할 예정이다.

이날 프레스콜은 1시간 가량의 하이라이트와 함께 기자간담회로 이뤄졌다. 하이라이트는 작품의 특징 중 하나인 컨닝하는 장면, 명품을 과시하는 장면 등을 안무로 만든 1장, 15장 등을 포함해 전반적인 극의 흐름을 알 수 있는 장면들을 선보였다.

 

백색 느와르라는 장르답게 교복을 입었지만, 비열함과 냉정함이 가득찬 연극 '모범생들'은 10년을 맞이했으나 여전히 스타일리시하고 동시대성을 갖춘 작품이다. 오직 성공만을 위해 달리는 인물들의 대사는 날카롭고 조금은 유치해 보이기도 하지만, 학생이 외칠 것 같은 '날 것의 느낌'이 느껴졌다.

'지탱'으로 불리는 지이선 작가와 김태형 연출은 "10년 뒤에도 이 작품을 하면 슬플 것 같다고 했었는데 아직도 하고 있다"며 다소 씁쓸한 소감을 밝히기도 했다.

이어지는 기자간담회에서는 지이선 작가, 김태형 연출과 하이라이트를 시연한 8명의 배우들이 함께 참여해 작품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다.

▲ 좌측부터 안세호, 김도빈, 문태유, 안창용, 권동호, 박은석, 조풍래, 정휘

형들에게 욕하고 멱살잡기 어렵지 않은지. 연극 '모범생들' 출연 소감은.

ㄴ 박은석: 제가 데뷔 후 줄곧 뮤지컬만 했지만, 학교에서도 연극했었고 계속 연극하고 싶은 열망이 있었다. '모범생들' 10주년에 참여해서 너무 행복하다. 연습부터 지금까지 너무 행복하고 재밌게 하고 있다. 감사한 마음이고 캐스트 중에 사실 형들이 꽤 있다. 멱살잡을 때 신난다(웃음). 평소에 잡을 수 없는데 이럴 때 잡아야 한다(웃음). 형들이 너무 좋아서 팀워크가 너무 좋다.

창작극으로 10주년을 이어오기 쉽지 않다. 계속해서 관객에게 사랑받을 수 있는 '모범생들'의 장점은.

ㄴ 지이선: 벌써 10주년이다. 예전에 그런 말을 했다. 나중에도 이런 작품하면 슬플 것 같다. 그런데 계속하고 있다. 시대가 도와주고 있다(웃음). 개인적으론 이 작품은 김태형 연출의 노동집약적 연출 스타일의 시작이 아닐까 싶다. 배우들의 좋은 멤버쉽이 지탱해온 힘이 아닌가 싶다.

ㄴ 김태형 : 예전에 10년 후에도 이걸 하면 슬플 것 같다고 했는데 왜냐면 이 공연이 의미하는 바가 촌스럽고 사회에서 이야기되지 않아 통하지 않는 사회가 되면 좋겠단 의미였다. 그런데 아직도 이 이야기가 아직도 사회에서 용납 가능하고 그럴법하다고 받아들여지고 있는 게 조금 아쉽고 슬프다. 학교에서의 성공이 사회의 성공으로 반드시 이어지는 것이 아닌데도 그걸 위해 애쓰고 나쁜 짓도 마다하지 않는 모습이 안타깝다. 학교뿐만 아니라 어른이 돼 벌어지는 일들도 사회의 모습과 크게 달라지지 않아 슬프다. 빨리 이 공연을 더할 수 없는 시대가 되면 좋겠다.

'머더 포 투'에 이어 극의 흐름을 끌고 가기도 하고, 좀 가벼운 배역을 맡았다. 작품에 임하는 각오가 있다면.

ㄴ 안창용: 이것도 땀 엄청 흘리며 열심히 하고 있다. 인물이 다른 배역에 비해 말도 많고 깐죽대기에 가벼워보일 수 있는데 극의 초반 템포 같은 것도 수환의 행동에 따라 중요해지고 너무 가볍게만 전달되면 안 되는 역할이라고 생각해서 어려운 부분도 있었다. 연출님도 나쁘게 연기하려고 생각하라고 하셨고 저도 최대한 역할로서 이기적으로 하려 했다. 제 안에 그런 마음이 언제 있었나 생각하며 고등학생때 떠올리며 대입해보려고 노력했다.

▲ 김태형 연출

'벙커 트릴로지', '카포네 트릴로지' 등을 보면 작은 공간에서 미니멀한 연출을 한다. 배우들의 연기가 중요할 것 같은데 10년을 한만큼 새로운 걸 보여줘야한다는 부담감은 없는지. 반대로 이것만큼은 지켜야한다 싶은 건 있는지.

ㄴ 김태형 연출: 벽과 세트만으로 미니멀한 무대를 활용해 다양한 공간과 이야기를 만드는게 연극적이고 흥미롭기 때문이었다. 또 2007년이고 학교 지원을 받아 처음 공연하게 됐는데 돈이 없기 때문에 최소한의 세트로만 구성하려고 했다.
여러 번 거치며 '모범생들'이 공연됐지만 책상 4개와 벽을 활용하는 것에서 크게 변하지 않았다. 소품이나 책상에서 불이 들어오거나 등은 변했지만 시스템 자체는 그대로다. 최소한의 것으로 최대한의 상징을 드러내고자 하는 것을 유지하고 있다.
그런 무대를 사용하다보면 배우들의 연기가 무척 중요해진다. 거꾸로 무대를 최소화했기에 배우들에게 더 집중하게끔 했고 배우들이 눈에 보이지 않는 공간도 만들고 이야기를 힘있게 끌고 갈 만큼 에너지가 있어야 했다. 사실 배우들이 처음엔 다들 좀 쉽게 들어왔다가 힘들어 하면서 공연을 올린다.
커튼콜 끝나고 분장실에서 배우들 안아주고 있으면 재킷까지 땀에 흠뻑 젖어 있다. 그런데 시즌이 거듭될수록 땀이 점점 많아지는 거 같다. 제가 땀을 흘릴 것을 더 요구하는 거 같단 생각이 들었다. 그만큼 배우들이 부지런히 해주고 있기도 하다. 무대 예술이란게 여러 스태프들의 몫이 있지만 결국 배우가 무대 위에서 관객에게 전달해줘야 하는 것이고 특히 이 작품은 배우들의 에너지가 관객에게 닿지 않으면 안되는 작품이다.

노동집약적 연출에 작가의 몫도 큰 것 같다. 두분의 찰진 호흡은 어떤 의미가 있는지.

ㄴ 지이선 작가: 저희가 작업할 때 '지탱극'이란 별명이 붙은걸로 안다. 이 작품은 대학로 최고의 악연이라고 할 수 있는 '잘못된 만남' 10주년이라 할수 있다(웃음). 계속 작업을 이어오고 있는데 저와 태형 연출은 믿고 싸우는 관계라 할 수 있다.
서로의 좋아하는 코드가 잘 맞고 제가 뭘 하나 하면 거기에 하나 더 얹어주고 연출님이 하나 꺼내면 저도 열개를 더 꺼내서 펼쳐놓고. 그런 관계가 10년이 된 것 같다. 앞으로도 계속할 거 같은데 같이 하고 싶지 않지만(웃음) 같이 하게 되는 이유가 있을 거다.
연출님이 워낙 작품에 치열하게 접근하는 사람이라 저도 더 잘하려고 노력한다. 연출님은 제게 가끔 전우라는 표현을 쓴다. 저희가 30세부터 딱 40세까지 10년이 됐는데 그 말에 굉장히 좋은 의미도 있고 나쁜 의미도 있겠지만, 앞으로 있는 작업에서도 늘 즐거운 작업을 기대하게 되는 사람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모범생들'이 저희 둘에겐 대학로에서 처음 저희를 드러내게 하는 기회이자 서로 만나게 된 큰 의미가 있는 작품이다.

ㄴ 김태형 연출: 작가님답게 굉장히 아름답고 예쁜 말로 해주셨는데 지기 싫어했던 거 같다. "니가 써온 글 좋은데 나도 더 잘만들어서 보여줄거야" 그럼 그걸 또 보고 작가님이 또 고쳐주고.

ㄴ 지이선 작가: 서로에 대한 호승심이 있다.

ㄴ 김태형 연출: 이런 경쟁심과 적의에서 시작해서 시간이 지난 후 다른 작업자들과 만나보니 이렇게 적의를 드러내고 치열하게 할 수 있는 파트너가 많지 않다는 걸 뒤늦게 깨달아가는 과정인 것 같다.

 

기억에 남는 장면이 있다면.

ㄴ 정휘: 저도 연극이 처음이라 굉장히 긴장하고 설레면서 연습하고 재밌게 공연 올리고 있는데 연극인데도 첫 장면이나 시험 장면 등에서 안무적 요소가 재밌고 드라마를 표현하는데 춤으로도 이렇게 디테일하게 할 수 있다는 게 놀랍고 재밌었다.

공연의 관전 포인트가 있다면.

ㄴ 조풍래: 배우들이 고등학생과 성인을 오갈 때 옷만이 아니라 얼굴도 젊어지고 늙어지는 그런 모습이 있다. 연습실에서 무척 신기했다.

신체적 특징을 잘 살릴 수 있는 역할이다. 상대적으로 작은 배우, 예를 들어 문태유 배우와 할 때 어떤 기분이 드는지.

ㄴ 권동호: 너무 좋고 무척 신난다. '베헤모스' 인터뷰 때도 말씀드린 거 같은데 신체랑은 상관없지만, 한 번 쭉 갈 수 있는 역을 맡아보고 싶단 생각 많이 했다. 그런데 이번에 기회주셔서 열심히 했다. 뭐랄까 키 차이가 많이 나는 이야기를 하면 저도 자꾸 태유형을 보게 되는데(웃음) 자꾸 등을 굽히게 된다. 연출님이 한번은 연기 코멘트로 '너무 큼'이라고 쓰신 적이 있다. 키를 줄이라는 코멘트를 준 적 있는데 잘 안되더라(웃음).

'모범생들'에 임하는 각오가 있다면.

ㄴ 안세호: 제가 이 공연을 몇 년 전에 봤는데 너무 재밌게 봤다. 친구가 명준 역을 했었는데 이번에 새로 한다는 소문도 전혀 못 듣다가 오디션 보러 오라고 해주셔서 신기했고 저는 어린 역을 많이 해보지 않았다(웃음). 당연히 안 되겠지 했는데 신기하다. 이 극을 볼 땐 힘들어 보이지 않았다. 드라마적으로 흘러 가는 극이라고 생각했는데 연습하니까 엄청 힘들었고 공연 올리니 더 힘들다는 걸 깨달았다. 이 공연을 하러 오면 파이팅 넘치게 출근해야하는데 좀 우울하게 오게 되더라. 종태 반성문 장면 같은 거 생각하면 좀 슬프고, 창용이 말처럼 저희는 좀 극을 업시켜야 하는 사람인데 그게 잘 안된다(웃음).

'김명준'에게 인간적으로 공감갔던 부분이 있다면.

ㄴ 문태유: 후반에 민영과 극한 대립할 때 정말 자존심 다 굽히고 무릎 꿇는다. 그게 만약 제가 지금 고등학생 나이에 명준을 연기하라고 하면 이해하기 어려웠을 거다. 그런데 제가 이제 어른이 되고 그 씬을 볼 땐 공감이 되는 거다. 자기가 원하는 것을 위해서라면 자존심 한번 굽히고 무릎 꿇을 수 있다. 대사에도 있지만 "야 너 되게 어른같다"라는 말도 있다. 고등학생들이 말하는 어른. 도달하고자 하는 어른의 모습이 그런 면에서 드러난다. 그런 장면이 공감되면서 한편으로 나 역시 이걸 공감할 만큼의 어른이 됐구나 하고 씁쓸했다.

 

'모범생들'이 팀웍이 좋은 이유. 연습 과정의 에피소드가 있다면.

ㄴ 김도빈: 항상 좋은 팀에는 좋은 대장이 있기 마련이다(일동 웃음). 여기 계신 김태형 연출 대단한 분이다. 전 소문을 들었을 때 인텔리한 분이고 그렇다고 알았는데 연습 때 이렇게 많이 노는 연출은 처음 봤다. 어디 가서 노는게 아니라 연습 과정에서도 쉬는 시간에 족구도 하고 플스방가서 위닝도 하고. 너무 재밌게 연습했다. 그래서 팀웍이 좋을 수 밖에 없다. 또 해야할 때는 확 밀어붙이는 대단한 연출이다. 작가님도 늘 함께 한다.

지이선 작가-김태형 연출 콤비도 어떻게 보면 공연계의 모범생인 것 같다. 10년을 그렇게 해왔는데 앞으로 문제아적 행동을 하실 생각은 없는지. 김태형 연출은 내년에 무조건 쉬겠다는 말도 했던데.

ㄴ 김태형 연출: 저는 어릴 때부터 모범생으로 살았기 때문에 지금이 일탈에 가깝다. 10년간 상업극 쪽에서 일을 했다. 중간에 엉뚱한 일도 가끔 했지만, 웰메이드한 작품을 만들려고 애를 써왔다. 중간에 다른 시도를 한다고 했지만 형식이나 그런 면에서 다른 거지 문제아적 작품은 아니었다. 연극사에 길이남을 문제아적 작품을 해야하는데 어렵다(웃음). 쉬겠다고 했지만, 이미 하기로 한 게 몇 개 있어서 최소한만 하고 육아에 전념하려 한다. 와이프와 아이를 위해서기도 하지만 절 위해서기도 하고 주양육자가 돼 아이도 키우고 사랑도 하고 안정도 얻어보고 그 힘으로 문제적 작품을 해봐야하지 않을까 싶다. '모범생들'같은 모범적인 작품도 하겠지만 희한한 작품을 더해봐야겠다고 생각한다.

ㄴ 지이선 작가: 저는 혼자살고 있다(웃음). 연출님도 그렇고 저도 그렇고 모범생 코스를 밟아왔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래도 작품이 꾸준히 사회의 이슈를 다룬 작품을 해온 거 같다. 개인적으로 '프라이드'나 '킬 미 나우', '카포네 트릴로지, '벙커 트릴로지' 등도 사회의 문제나 구조, 약자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앞으로도 그런 작품에 꾸준히 관심을 갖고 하고 싶고 내년부턴 연극계의 탕아로서, 문제아라 부를 나이는 아니더라. 문제 어른으로서 열심히 다음세대에게 영감을 줄 수 있는 작업을 하자는 말을 많이 하고 있다. 새로운 시도를 이제 좀 더 적극적으로 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 지이선 작가

김태형 연출은 ‘베헤모스’에서도 좀 더 어두운 면이 강하다고 밝히기도 했다. 작가 입장에서는 혹시 10년동안 여러 작품을 하면서 변화를 줬으면 했던 부분이나 생각이 밝아진 부분이 있는지.

ㄴ 지이선 작가: 어찌보면 제가 '모범생들'을 제일 오래한 사람이다. 그런데 태형 연출님을 만나면서 처음 시작할 땐 저희가 세상에 화가 많이 나있었다. 그리고 그 10년 사이에 다양한 사람들, 또 너무 감사하게도 관객들을 만나고 여러가지 일이 있으면서 제가 달라진 게 사실이다. 태형 연출도 마찬가지다. 그러면서 '모범생들'이란 작품도 맨 처음에 했을 때와 달리 점점 바라보게 되고 힘을 주게 되는 인물이 달라졌다.
예전엔 명준이나 민영이를 보다가 나이가 들며 점점 종태를 바라보게 된다던가 그런게 생기더라. 저도 연출님도 사실 그런 호흡은 같이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10주년을 보면서 아쉬운 것은 남녀공학인데 남자만 네 명 나오는가. 그 부분이다(웃음). 애초에 처음 시작을 그렇게 한 건 (작품을 쓴) 그때의 제가 있는 건데 '모범생들'을 통해 그때의 저를 제가 계속 들여다보게 된다. 10년 전의 나는 어땠는가.
그런데 작품에 있는 인물들이 제가 써온 것도 있지만 연출님. 회사. 수많은 배우들이 있기에 더 이상 저 혼자 쓴 작품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새로운 스타일과 정리된 게 많이 생겼고 그 부분들이 이 10년을 끌어왔던 힘이라고도 생각해서 개인적으로 10년 전의 저에게 아쉬운 점들이 있는거지 '모범생들'을 봤을 때는 감사할 따름이다. 앞으로 다른 작품 통해 제가 그런 면에서 변화를 주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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