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친정엄마>를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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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을 하면서 한 번도 울지 않은 날이 없다."

배우 조양자 씨가 울먹거리며 내뱉은 저 한 마디에 공감하지 않을 여성 관객은 아마 없을 것이다. 작가부터 연출, 주요 배우들까지 모두 여성으로 이루어진 연극이 있다. 바로 연극 <친정엄마>이다. 작가 고혜정 씨는 "세상에 '엄마'와 '딸'이 존재하기 때문에, 아직도 이 작품이 공연되고 있지 않나"라고 말했다. 그랬다.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엄마와 딸들이 존재하기에, 뻔한 이야기일 지라도, 연극 <친정엄마>는 아직까지도 가슴 깊이 아려오는 묵직한 슬픔을 관객들에게 고스란히 전해주고 있다.

   
 

대학에 가기 위해 서울로 상경하기 전, 딸은 부모님께 소리친다. "아버지 같은 사람 안 만나려고, 엄마처럼은 안 살려고 죽기 살기로 공부하는 거예요!"라고 말이다. 딸은 엄마가 돌아가시기 전까지 계속 외친다. 엄마처럼은 안 살 거라고……. 엄마를 사랑하는 딸은 엄마처럼 살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리고 딸을 사랑하는 엄마도 나처럼은 살지 말라고 읊조린다. 이처럼 아이러니한 관계가 또 있을까. 서로 향한 깊은 사랑의 이면에는, 서로 향한 진득한 연민의 감정이 자리 잡고 있었던 것일까. '나는 꼭 우리 엄마처럼 살 거야'라고 다짐할 수 있는 딸이 과연 몇이나 될까. 그렇게 엄마와 딸은 서로가 다르게 살기를 원한다. 서로 다른 이유에서 말이다.

   
 

"딸아, 내가 이 세상에서 제일 잘한 일은 너를 낳은 일이야. 그런데 이 세상에서 가장 후회하는 일 또한 너를 낳은 일이야"라고 읊조리는 엄마 역을 맡은 배우에게, 이를 지켜보는 수많은 딸은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엄마에게 딸을 낳았다는 사건은, 가장 기쁘고 행복한 일이었다. 그러나 너라는 존재가 보잘것없는 나의 딸로 태어남으로 인해, 세상의 온갖 부귀영화를 누리지 못하게 된 데에는 가장 미안하고 한평생 죄스러워서, 그것이 엄마에게는 가장 후회하는 일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시공간을 초월하여 '엄마'라는 존재의 정체성을 가장 여실히 드러내는 대사이지는 않을까. 이쯤에서 우리는 엄마와 딸 사이를 메우고 있는 '사랑'이라는 것에 방향성이 있지는 않을까 고민하게 된다.

   
 

모녀 관계는 일방적이다. 모든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가 그렇지만은, 모녀 관계는 특히나 더, 그랬다. 이들 사이에 존재하는 '사랑'에는 방향이란 것이 존재했고, 그것은 언제나 엄마가 딸에게 일방적으로 전하는 방식이었다. 딸은 엄마가 돌아가시고 나서 외친다. "미안해. 가장 미안한 것은, 엄마가 세상에서 제일 사랑하는 사람은 나인데, 내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사람은 엄마가 아니라서 미안해."라고 말이다. 수많은 딸이 인정하기는 싫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는 저 대사는, 엄마와 우리 간의 사랑이 얼마나 일방적이고 외로운 방식이었는지를 가늠하게 해준다. 그리고 우리는 저 대사에 이의를 제기하면서 반박할 수가 없어서 더욱 죄송하다. 딸 또한, 내 자식의 '엄마'이기에, 그 말에 반박할 수 없음을 여실히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연극의 제목은 그냥 '엄마'가 아니라, '친정엄마'이다. 그저 딸이기만 할 때는 알 수 없던 엄마라는 존재였다. 결국, 딸도 한 아이의 엄마가 되고 나서야, 그 크고 엄청난 존재를 절실히 느낄 수 있었던 것이었다. 소설, 영화, 뮤지컬, 그리고 연극까지. <친정엄마>는 여러 장르를 돌고 돌아 우리네 무수한 엄마와 딸들의 눈물을 적시고야 말았다. 드라마가 너무 강한 나머지, 연극 본연의 정체성을 살짝 잃었다는 것에는 아쉬움이 남지만, 수많은 엄마와 딸들에게 서로의 관계를 생각해보며 스스로 사랑을 반추해볼 수 있는 기회를 무대를 통해 제공해주었다. 여성 관객으로서 누릴 수 있는 특권을 연극 <친정엄마>에서 부디 찾아가기를 바란다.

[글] 문화뉴스 아띠에터 장기영 artietor@mhns.co.kr / 사진 ⓒ 마케팅컴퍼니 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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