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뉴스 아티스트 에디터 강해인 starskylight@mhns.co.kr
영화를 보고, 읽고, 해독하며 글을 씁니다. 좋은 영화는 많은 독자를 가진 영화라 믿고, 오늘도 영화를 읽습니다.

[문화뉴스 MHN 아띠에터 강해인] 오르되브르는 정식 식사에 앞서 식욕을 돋우기 위한 음식입니다. [영읽남의 오르되브르]는 관람 전, 미리 영화에 대해 읽어보는 코너입니다.

2016년은 DC 코믹스의 팬들에게 끔찍한 한 해였다. '어머님이 누구니?'로 끝난 두 영웅의 이야기 '배트맨 대 슈퍼맨: 저스티스의 시작', 마고 로비의 매력만 남긴 '수어사이드 스쿼드'는 팬들의 기대를 난도질한 영화들이었다. 그 덕에 '원더우먼'의 기대치가 낮았던 게 사실이다.

그런데도 기대할 수 있었다면, '배트맨 대 슈퍼맨'에서 한스 짐머와 정키 XL의 'Is she with you?'와 함께 등장한 갤 가돗의 강렬한 이미지 덕일 것이다. 흥행 불패의 마블에게 경쟁자의 지위를 거의 상실했던 DC에게 인공호흡을 해주러 데미스키라에서 원더우먼이 왔다.

 

 

'원더우먼'의 러닝 타임은 141분이다. 다수의 영웅이 등장하는 마블의 '어벤져스:에이지 오브 울트론'과 같은 시간인데, 영웅 혼자서 소화하기엔 분명 적지 않은 시간이다. 이번 편의 상영 시간은 패티 젠킨스 감독이 '다이애나'라는 캐릭터를 쌓아올리는 데 상당히 공을 들인 결과다. '원더우먼'은 다이애나의 성장 과정을 따라가며 그녀의 가치관을 설정했고, 스티브 트래버(크리스 파인)와의 긴 여정을 담아 두 인물 사이에 감정도 축적했다.

지루해 보일 수 있는 이 과정은 지난 날, DC 영화에서 부족했던 것을 채운다. '어머님이 누구니?'에 분노하고, 마고 로비의 매력만 보인 건 관객이 캐릭터에게 이입할 여지가 부족했던 탓이다. 그리고 감정 없는 액션은 파괴의 스펙터클을 나열하거나 '수어사이드 스쿼드'처럼 리듬감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개싸움만을 보일 뿐이다. '원더우먼'은 다이애나의 다양한 감정을 포착했고, (무표정하던 갤 가돗의 귀여운 모습까지 볼 수 있다) 소녀가 불멸의 영웅으로 성장하는 과정을 밀도 있게 담았다.

 

 

제작자로서, 그리고 DC 유니버스를 본격적으로 시작한 감독으로서 잭 스나이더의 흔적도 발견할 수 있다. 잭 스나이더의 장기라고 할 만한 액션의 장엄함과 타격감은 아마존의 정체성을 가진 다이애나를 통해 우아하게 드러난다. 잭 스나이더가 제작/연출을 한 DC의 영화에서 만화 '드래곤 볼'의 격투를 본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고는 한다. 실사로 표현했을 때 유치할 법도 한 장면인데, 이를 무리 없이 연출해 내는 건 DC의 장기라 할 만하다.

이런 장기와 함께, 앞서 말한 감정이 있는 액션은 몰입감을 높이고, 다이애나의 동작 하나하나에 집중하게 한다. 덕분에 쾌감 역시 상당하다. 더불어 전작에서 다져 둔 웅장한 음악의 흔적이 남아있고, 적절한 순간 뿜어져 나오며 흥을 돋운다. 그 테마곡이 언제 등장할지 기다리며 보게 될 정도다. 이렇게 '원더우먼'은 전작의 좋은 점은 남기고, 나쁜 점은 보완해 이야기와 액션 모두 한층 탄탄한 영화가 되었다. 이 감각이 '저스티스 리그'에도 이어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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