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간 영화도 다시보자 '명화참고서'…'취화선'
[문화뉴스 MHN 석재현 기자] 어느덧 12일간 진행하는 제70회 칸 국제영화제(Cannes Film Festival, 2017)도 막을 내린다. 이번 경쟁작에 봉준호 감독의 '옥자', 그리고 홍상수 감독의 '그 후'가 심사위원들과 외신들의 연이은 호평을 받고 있어 수상 가능성이 유력해지고 있다. 그 때문에 국내 대중들 또한 칸으로 시선이 모이고 있다.
칸 국제영화제에 한국영화가 첫선을 보였던 것은 지난 1984년 이두용 감독의 '여인잔혹사 물레야 물레야'였고, 2000년대부터 꾸준히 한국영화는 칸으로부터 초대장을 받았다. 그래서 이번 '명화참고서' 또한 칸 국제영화제에서 수상했던 한국 작품 중 하나 소개하려고 한다. '한국영화계 거장'이라 불리는 임권택 감독의 2002년 작인 '취화선'이다.
'취화선'의 주인공 '오원' 장승업, 19세기 조선 후기를 살다간 비운의 천재 화가. 대중들에게는 많이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기도 하다. 스크린이라는 큰 도화지 위에 임권택과 최민식이라는 붓으로 '장승업'이라는 한 인물의 일대기를 그리고 있어, 지루할 것으로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취화선'은 초반부터 양반들에게 "일획이 만획이요, 만획이 일획이로다"며 거만하게 일갈하는 장승업을 드러내며 모두의 예상을 깨뜨렸다.
고아로 지냈던 유년기부터 회화에 재능을 보여 한 분야의 대가로 거듭나, 전국 최고의 화원으로 등극하는 말년까지 파란만장하고 숨이 가쁘게 달려가는 이야기를 담은 '취화선' 속에서, 임권택 감독이 전작에서 드러냈던 흔적들-끊임없는 방랑(방랑하는 장승업), 근대의 상처(19세기 중후반), 백성의 고난(동학운동), 주목받은 한국 전통문화(장승업의 산수화들)-이 이번에도 등장했지만, 자신의 미적 완성을 위해 포효하고, 발악하며, 몸부림치는 '취화선' 장승업의 갈망에 초점을 맞췄다.
분명 장승업의 폭발할 것 같은 일대기를 그리는 것 같으면서도, 임권택 감독은 장승업이라는 인물에게 자신의 모습을 투영시켰다. 그래서 미적 완성을 추구하는 장승업은, 어느샌가 과거와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임권택이 겹쳐 보였다. 그래서 '취화선'이 전작들과 다른 스타일로 느껴지는 것도 그 때문이다.
'취화선'은 임권택 특유의 롱테이크 원샷이 사라진 대신, 감정을 절제하듯이 감정 고조에 도달할 것 같으면 다른 장면으로 넘어갔다. 그리고 그 시대 주요사건은 최대한 간략하게 설명 혹은 생략하면서, 사건을 겪은 해당 인물들을 담아냈다. 최대한 억제와 절제를 하면서도, 카메라가 담아내는 자연풍경은 마치 장승업이 그토록 찾아다녔던 아름다움의 최절정으로 등장해 그를 비롯해 관객들을 한 폭의 산수화에 빠뜨렸다.
'취화선'이 여운이 길게 남는 건, 영화가 그려내는 아름다운 산수화 때문만은 아니다. 자신을 인정하지 않는 세상으로부터 인정받기 위해 끊임없이 투쟁하는 장승업의 모습이 불타는 새떼 그림처럼 끝내 실패하는 불완전함 때문일 것이다. 이 불완전함과 새로운 시도가 있었기에, 임권택 감독과 '취화선'이 칸을 사로잡았던 게 아닐까?
취화선(Chihwaseon), 2002, 19세 관람가, 드라마 ,
2시간, 평점 : 3.3 / 5.0(왓챠 기준)
syrano@mhn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