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만들어가는 전통 속 정윤진 감독 리더십 '한 몫'

▲ 황금사자기 우승 확정 직후 선수들로부터 헹가래받는 덕수고 정윤진 감독. 사진ⓒ김현희 기자

[문화뉴스 MHN 김현희 기자] "어휴, 저 녀석들 칭찬해 줘야 할 지, 혼내야 할 지 모르겠어요."

지난 4월 21일, 덕수고등학교 교정은 선수들의 훈련하는 목소리로 가득 찼다. 몸을 풀고, 투-타에서 각자 훈련에 임하면서 자신의 부족한 점을 보완하고 있었다. 수업을 마친 후 훈련에 임하는 장면은 덕수고 뿐만이 아니라 다른 학교 야구부에도 발견할 수 있는, 지극히 정상적인 모습이기도 했다. 그런데 왜 덕수고 정윤진 감독은 훈련하는 선수들을 '혼내야 할지도 모른다'고 얘기를 한 것일까? 이에 대해 정윤진 감독의 다음 말에서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제 얘기 좀 들어봐요. 아니, 23일(일요일) 휘문고하고 주말리그 마지막 경기가 있어서 어제 훈련하고, 오늘은 휴식 취하면서 개인 훈련 할 사람만 나와서 하라고 시켰거든요. 어제 훈련, 오늘 휴식, 내일 훈련, 이 스케줄로 가면 일요일에 좋은 상태로 경기에 임할 수 있어요. 그런데 저 녀석들, 시키지도 않았는데 단체 훈련하겠다고 나온 거예요. 쉴 때는 쉬어 줘야 하는데, 이럴 때 감독 입장에서 칭찬해 줘야 하는 건지, 아니면 쉴 때 안 쉰다고 혼내야 하는 건지 참 헷갈리죠."

덕수고 야구부는 어떻게 강팀이 되었는가?
전통은 강요되지 않는 것. 스스로 만들어 가는 것!

사실 당시 휘문고와의 대전은 덕수고 입장에서 크게 부담을 가질 필요는 없었다. 이미 전승을 기록하여 황금사자기 출전을 확정했기 때문이었다. 굳이 주말리그 성적이 아니더라도 덕수고는 지난해 황금사자기 우승팀이었다. 디펜딩 챔피언 자격으로 자동 출전권이 주어진다는 것도 덕수고에게는 호재였다. 그러나 휘문고와 덕수고 모두 전국 본선 무대 우승 후보로 거론된 학교였다. 앞에 놓여진 상황보다는 양 교의 자존심 싸움이 걸린 대결이 먼저이기도 했다. 그리고 이러한 상황에서 덕수고는 본인들의 전반기 주말리그 마지막 경기를 5-1 승리로 마감하면서 전승 행진을 이어갔다. 재미있는 것은 당시 경기에서 덕수고가 자랑하는 양백김 트리오(양창섭-백미카엘-김동찬)를 전혀 쓰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러한 점이 황금사자기 본선 무대에서 큰 힘이 되었던 셈이다.

이러한 장면만 보아도 왜 덕수고 야구부가 강할 수밖에 없는지 짐작할 수 있다. 선수들 스스로 강함을 추구하고, 만족을 모르는 플레이를 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덕수고를 나왔다는 자부심과 애교심도 상당하다. 나경민(롯데), 김진영(한화) 등 덕수고 졸업생들도 "나를 포함하여 동기, 선/후배들도 덕수고를 졸업했다는 사실에 크게 자부심을 느끼고 있다."라며, 틈이 나는 대로 모교를 찾기도 한다. 이러한 과정에서 전통이라는 것도 저절로 만들어지게 되는 셈이다. 한때 덕수고 선수단 사이에서 '중요한 대회 기간 중 휴대폰 자진 수거'가 시행된 것도 이러한 마음가짐이 전제되었기에 가능했던 것이었다.

▲ 자율훈련/휴식을 명했음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단체 연습을 자청한 선수들. 강팀이란 이렇듯 스스로 만들어가는 것이다. 사진ⓒ김현희 기자

또한, 덕수고 야구부에서 가장 강조하는 것 중 하나가 '덕수고 다운 야구를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덕수고 다운 야구란 무엇인가? '기본을 지키는 야구를 하는 것'이다. 말로 표현하는 것은 쉽지만, 이것이야말로 프로에서도 시행하기 어려운 것이다. 물론 아마야구/학생야구에서 실수를 할 수는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학생야구 선수들이 '프로다운 마음가짐을 가질 수 있도록 지도하는 것'까지 소홀하게 해도 된다는 뜻은 아니다. 정윤진 감독도 바로 이 부분을 늘 선수들에게 강조하고 있다. '야구' 그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라운드 안에서 본인이 얼마나 발전된 모습을 보이는지, 기본에 철저하면서 어이 없는 실수를 하지 않는지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래서 정 감독은 "의미 없이 얻어지는 10-0의 승리보다 덕수고 다운 야구를 해서 얻어진 1-0 승리가 더 중요하다."라며, 선수들에게 정말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스스로 깨닫게 한다. 승패 여부와 관계 없이 어이 없는 실책이 나온다면, 십중 팔구 정 감독은 "아이고, 죄송합니다. 오늘은 우리 답지 않은 플레이를 했네요. 변명의 여지가 없습니다."라고 먼저 이야기한다.

또한, 정윤진 감독은 선수 개인의 능력에 맞게 진학 지도를 하려고 적지 않은 시간을 보낸다. 이미 이정호를 서울대 체육교육과에 진학시킨 것처럼, 이번에도 공부에 탁월한 재능을 보이는 이들을 선별하여 또 다시 '이정호 프로젝트'에 도입했다. 실제로 야구를 하고 싶어 정 감독을 찾아 오는 중학 유망주들 중에는 공부에 두각을 나타내는 학생 선수들도 있다. 그럴 때마다 정 감독은 "만약에 다음 기말 고사에서 반 4등 해서 오면, 두말 않고 감독이 받아주겠다."라며, 야구 하는 시간과 공부 하는 시간을 조절해 주고자 한다. 그리고 정말로 그 학생이 좋은 성적을 받아 오면, 약속을 지켜준다. 현재 2학년 선수 중 김산호 역시 이와 비슷한 케이스다. 학생 야구 선수이면서도 전교 1등을 놓치지 않고 있는 그는 현재 학생 회장까지 맡고 있다. 그래서 정 감독은 오히려 그에게 공부할 수 있는 시간을 배려해 주고, 주변 동료들도 그것을 너무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정 감독 스스로도 한양대에서 교육학을 전공하면서 석사 학위까지 취득한 바 있다. 본인이 스스로 공부를 해 봤기 때문에, 공부 하는 학생 선수에 대한 관리를 어떻게 해 줘야 하는지 너무 잘 알고 있는 셈이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선수들이 '실전을 가정한 훈련'에 임하는 만큼, 덕수고 야구부에는 좀처럼 수비 실책이 발생하지 않는다. 잔실수가 많았던 이번 황금사자기 4강전 까지는 예외로 하더라도, 결승전과 같은 중요한 순간에는 그러한 집중력이 더욱 빛을 발한다. 실제로 황금사자기 결승전 4회 말 1사 2, 3루 상황에서 나온 윤영수의 스퀴즈번트는 사전에 약속된 플레이였다. 3루 주자에 이어 2루 주자까지 홈을 밟으면서 '번트 하나에 2득점'하는 장면은 사실 프로에서도 보기 드물다. 또한, 광주 동성고와의 4강전에서 나온 더블 스틸 사인도 상대의 허를 찌른 상당히 과감한 작전이었다. 모두 이와 같은 상황을 염두에 두고 수십 번 연습에 임했던 결과가 실전에서도 나온 셈이었다.

그러면서도 늘 높은 곳을 향하여 선수들을 지도하는 일에 열심이다. 황금사자기 2연패 확정 직후에는 "3연패는 한국 전쟁 이전에 한 번 나온 것으로 안다(주 : 경남중 1947~1949년). 그런데 이후에는 한 번도 3연패가 없었다고 들었다. 이제 한 번쯤 나올 때가 되지 않았는가!"라며, 오늘의 2연패를 즐기기보다 내일의 3연패를 만들기 위해 또 한 번 각오를 다지기도 했다. 그러나 이것이 또 지극히 정윤진 감독다운 모습이기도 하다.

즉, 어떠한 측면에서 바라보건 간에 덕수고 야구부는 '강팀'이 갖춰야 할 제반 조건들을 대부분 갖춘 셈이다. 여기에 동문회장과 후원회장, 학교장을 중심으로 한 아낌 없는 지원도 전제되는 만큼, 향후에도 '덕수 전성시대'는 지속되지 않을까 싶다.(취재 도움 : 이채원 건국대 학생기자)

eugenephil@mhn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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