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 의문사' 유가족이 직접 무대에 오른 치유 연극 '이등병의 엄마'

▲ 연극 '이등병의 엄마'의 한 장면

[문화뉴스 MHN 양미르 기자] 검은색 상복을 입은 '군 의문사' 유가족 어머니들이 무대에서 오열했다. 그들의 눈물은 객석에 있는 관객의 눈가를 촉촉이 적셨다.

18일 오후 서울 종로구에 있는 예술공간 오르다에서 연극 '이등병의 엄마'(연출 박장렬) 프레스콜이 열렸다. 28일까지 열리는 연극 '이등병의 엄마'는 병역 의무를 이행하기 위해 군에 입대한 청년들을 잃은 유족의 사연을 담은 치유 연극이다. 유족 9명이 직접 무대에 선 가운데, 2,500여 참여자의 '다음 스토리펀딩'을 통한 후원으로 만들어졌다. '이등병의 엄마' 연극은 '군(軍) 사망사고 유족과 함께 하는 사람들'이 주관하고, 고상만 인권운동가가 작품을 쓰고 제작에 참여했다.

공연 관계자는 "한 해 평균 27만여 명의 청년들이 병역 의무를 이행하기 위해 군에 입대한다"라며 "그리고 그중 평균 100여 명은 다시 그들의 가족에게 돌아가지 못하고 있으며, 3분의 2는 '자살'로 처리된다. 이렇게 아들을 잃은 유족의 사연을 담아봤다. 이번 연극은 유가족분들이 직접 공연 예술가와 함께 무대 위로 올라가 '그동안 다하지 못한 내 아들들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자리가 될 것이다. 군에서 자식을 잃은 부모에게 국가와 군은 그동안 아무런 치유를 해주지 못했다. 대신 '아들이 자살했다는 사실만 인정하라고' 집요하게 요구당할 뿐이었다"라고 밝혔다. 공연을 앞두고 고상만 작·제작, 박장렬 연출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 고상만 인권운동가가 소감을 밝히고 있다.

작품을 올리는 소감을 남겨 달라.
ㄴ 고상만 : 사실은 지금 준비했던 말이 여러 가지 있었다. 연극을 보면서 내 체중이 줄었을 것 같다. 여러분도 체중이 줄지 않았을까 싶다. 연극이 끝나고 몇 분 정도 여쭤보니 많이 공감하셨고, 눈물도 흘리셨다고 했다. 준비했던 이야기가 필요할까 싶어서 다른 이야기를 하려 한다. 이 연극을 처음 준비한 것은 작년 8월이었지만, 진짜 준비한 것은 1998년이었던 것 같다. 19년 전, 천주교인권위원회 활동 당시 군 의문사를 당한 유족분들이 참석해 "내 아들을 억울하게 잃었다"라고 말했다. 이후 500여 유족분들 뵙게 됐다.

19년 동안 이어온 인연 중 한 어머니가 계신다. 그 어머니는 늘 국방부 철문을 부여잡고, 국회 앞에서 피켓을 걸고 울부짖으며 싸워왔다. 늘 생각해왔는데, 우리의 아들에 대한 이야기를 구호, 피켓, 현수막보다 더 많은 이에게 알리고 싶었다. 그래서 연극을 생각했고, 마침내 5월이 되어 결실을 보게 됐다. 그 과정에서 조바심을 굉장히 스스로 많이 냈다. 이게 될까 싶었다.

처음엔 박장렬 연출께서도 난색을 보이셨다. "어머니의 간절한 슬픔과 고통을 표현하려면, 많은 배우를 확보해야 한다. 어려워 보인다"고 했는데,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이 연극은 실제 아들을 가슴에 묻고 사시는 분들을 무대에 올리는 것이 핵심이다. 아무개 사건으로 불리는 아들의 사건을 '내 아들 아무개'로 말할 수 있는 연극을 만들고 싶었다.

어머니들은 우리가 어떻게 연극을 하겠냐고 했다. 여쭤봤더니 태어나서 연극을 단 한 번도 보시지 못한 분이 절반이 넘었다. 그래서 처음 연극을 보기도 했고, 두 달간의 전문배우, 박장렬 연출의 지도로 이런 연극이 태어났다.

▲ 연극 '이등병의 엄마'의 한 장면

나는 이 연극을 꼭 보셨으면 하는 두 사람이 있고, 바치고 싶은 사람이 한 명 있다. 먼저 같은 어머니의 심정으로, 고통을 받고 힘겹게 살아가는 어머니의 손을 잡아주시기를 원하는 마음으로 문재인 대통령의 부인, 김정숙 여사가 어머니의 손을 잡고 위로해주고, 품어주길 바란다. 이 자리를 통해 초청하고 싶다. 원하는 것은 없고, 그저 오셔서 어머니의 손을 한 번만 잡아주시면 좋겠다.

두 번째로 이 나라의 국방정책을 중요하게 책임지는 국방부 위원이 오셨으면 좋겠다. 상대를 죽일 가공할 무기의 폭발력만 챙기지 말고, 누군가의 아들이 있고, 그 아들을 국가가 책임지고, 그렇지 못한다면 데려가서는 안 된다. 서울구치소에 있는 사형수만큼이라도 대우해주면 좋겠다. 사형수는 내일이 사형일이라도, 건강하게 데려와서 다음날 사형을 집행한다. 우리 아들이 왜 사형수만큼의 대우를 받지 못하는지, 이 아들의 사연을 국방부 위원께서 꼭 보시면 좋겠다. 이 연극이 28일까지 진행된다. 그분들이 오셔서 63만명 숫자 중 '비전투손실'로 사라지는 숫자가 아니라, 모두가 다 우리의 아들이라는 것을 확인해주셨으면 좋겠다.

19일 공연에 정의당 김종대 의원, 이철희 더불어민주당 국회 국방위원회 간사님 오신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또한, '군 의문사' 유족 문제에 관심이 있는 김광진 전 국회의원, 백군기 전 의원도 오신다고 하셨다. 끝으로 이 연극을 바치고 싶은 사람이 있다. 국회에 처음 들어가서 제일 알고 싶었던 것이 있었다. 1948년 10월, 국군 창설 이후 지금까지 우리나라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국가로부터 아무런 예우를 받지 못하고, 속된말로 '개죽음' 처리되었는지였다. 순직결정도 받지 못하고, 국립묘지에 안장되지도 못한 채 자살로 처리되어 화장된 아들이 얼마나 되는지 알고 싶었다. 그래서 국회에 있을 때, 국방부에 자료를 요청한 바 있다.

놀랍게 바로 다음 날 연락이 왔다. 평상시에 잘 관리를 하나 해서 돌아온 답을 받았더니, 그 답은 자료를 받을 수 없다였다. 지금까지 이런 질문을 한 적도 없었고, 자료를 관리한 적도 없어서, 몇 명이 얼마나 죽었는지 모른다였다. 그래서 화를 냈다. "이러고도 의무복무제의 나라인지, 죽이고 사실상 버리는 것이 국가의 신성한 의무이고 권리인지, 반드시 꼭 가지고 와라"라고 했다. 

그러더니 10일 후에 한 장의 문서가 왔다. 1948년 이래, 약 39,000명이 그렇게 죽었다는 것이다. 지난 66년간 나눠보면 한 해 평균 약 600명이고, 세월호 참사가 1년에 2번이나 일어난다는 이야기였다. 39,000명의 이름 없이 죽어간 모든 군인, 대한민국 아들에게, 엄마의 따뜻한 젖처럼 이 연극을 바치고 싶다.

▲ 박장렬 연출이 소감을 남기고 있다.

박장렬 : 너무나 깜짝 놀랐다. 군 의문사에 대해 몰랐던 사람이었는데, 세상에 이런 일이 계속 진행되다니 말이 안 된다는 것이 처음 느낀 소감이었다. 어머니와 두 달 연습하고 같이 눈빛 마주치고 했는데, 너무 행복했다. 사실 진실을 맞닿는 것이 힘들다. 연극을 통해 진정성과 더불어 불합리한 일을 이야기할 수 있어서 너무나 개인적으로 소중한 시간이었고, 많은 것을 배우는 시간이었다.

무대에 나와 대사 한 줄을 하기 위해, 밤잠 설치고 연습한 어머니에게 감사드린다. 30년 연극을 하면서 가장 소중하고, 값진 시간이었다. 어머니들이 저를 행복하게 해주셨다. 슬픈 행복이지만, 행복이라 생각한다. 관객분들도 연극을 함께하고 공유하고, 불합리한 일이 사라지면 좋겠다. 어머니들이 연극을 보시고 군의문사 문제가 법으로 지정되고, 다시 조사하고, 제대로 밝히는 세상이 오길 바란다. 이 일을 진행하신 고상만 작가님에게도 감사드린다. 배우님들에게도 감사드린다. 어머니의 위대한 사랑을 느꼈다. 분명히 이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 믿는다.

'연극 치료' 방법을 선택하게 된 이유는?
ㄴ 고상만 : 연극을 만들려고 한 핵심 이유는 왜 국가가 군대에서 자식을 잃은 부모에게 치유를 해주지 않는가였다. 트라우마 치료는 하도 방송에서 많이 나와서 이제 알고 있다. 그걸 군 의문사 유족에게는 한 번도 해준 적이 없다. 국방부도 꺼내지 않았고, 아무도 계획이 없다. 그래서 어머니, 아버지, 형제에게 이 연극을 만들어 치유를 해드리고 싶었다.

이 연극을 하자고 했더니, 춘천에서 오신 어머니께서 처음엔 "저는 연극에 참여하고 싶다고 했는데, 어지럼증이 생겨서, 일어날 수도 없고, 걸을 수 없다. 죄송한데 연극을 못하겠다"라고 하셨다. 그러더니 연극 연습을 시작한 지 한 달도 되지 않아서 "이제는 건강하게 춘천에서 매일 여기까지 올 수 있어요"라는 말씀을 주셨다. 그때, 이 연극에 성공했구나. 어머니에게 치유를 해주고 싶었는데, 그 역할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무엇보다 이 연극을 하기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 '군 의문사' 유가족 부모와 출연·제작진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앞서 김정숙 여사가 연극을 관람했으면 좋겠다고 했는데, 새 정부에게 바라는 점이 있나?
ㄴ 고상만 :  내가 며칠 전, 페이스북에 그런 말을 썼다. 우리도 기다리면 다음엔 우리에게도 기회가 올 것이다. 명예회복, 사인 진상규명 등인데, 많은 사람이 현재 새로운 정부에 많은 기대를 하고 있다. 그런데 늘 우리가 꼴찌인 것 같다. 의무복무로 가서 그런 사고가 났는데, 무슨 권리가 있느냐였다. 그래서 아무도 진심으로 한 번도 사과한 적이 없다. 지난해 9월, 국회 본회의장에서 정의당 김종대 의원이 방청석에 유족이 몇 명 있으니 국방부 장관에게 사과를 해달라고 했더니, 거절했다.

"63만 군인이 제각각 권리를 누리고 있는데, 소수의 일을 가지고 전체 군을 매도해선 안 된다"는 말을 남겼다. 그래서 거절을 한 것으로 알고 있다. 나는 지금도 이게 나라냐고 묻고 싶다. 그래서 김정숙 여사가 오시면 좋겠다. 같은 엄마의 심정으로 한 번 보시고, 한 번만 손을 잡아주시면 좋겠다. 살려서 보내야 할 아이들을 살리지 못했으니, 국가는 미안하다고 사과하고, 순직을 인정하고, 왜 죽었는지 부모에게 진실을 알려주는 것이 국가의 의무라는 것을 말해주고 싶다.

mir@mhn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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