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뉴스 MHN 박소연 기자] 2016년 5월 17일 이후. 세상은 얼마나 달라졌고, 나의 세계는 어떤 변화를 겪어야 했는가.

지난해 5월, 강남역에서 한 여성이 끔찍하게 살해당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강남역 살인사건'으로 불리는 이 사건의 가해자는 '피해자가 여성이었기 때문'이라는 가해 동기를 밝혔다. 또한 가해 범위를 '여성'으로 한정시킨 이유에 대해서는 '평소에 여자들이 나를 무시해서'라고 답했다. 

사건 보도 이후, 수많은 여성들은 이 사건을 '여성혐오' 범죄라 주장하며, 스스로 피해자가 되지 않는 '우연을 겪었다'라는 표현으로 분개와 애달픔을 게워냈다. 곧이어 여성으로서 겪어야 했던 각종 차별의 일상이 곳곳에서 고백되어졌다. 이후 '페미니즘'은 여성들의 삶뿐만 아니라, 우리가 일상으로 치부하며 인식하지 못했던 가장 보통의 사회 현상에 대입할 수 있는 패러다임이 됐다. 

문화예술계 또한 '예술'이라는 미명 아래 묵살되거나 묵과해야만 했던 문제들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본지는 5.17 강남역 살인사건 1주기를 맞아, 지난 1년간 음악계에서 어떤 젠더 이슈가 있었는지 찾아봤다.
 

▲ 블랙넛이 해당 곡과 관련해 공개 SNS에 올린 사과문 ⓒ 블랙넛 인스타그램

1. 노래 가사 속 여성의 성적 도구화: 블랙넛 'Too Real'

블랙넛의 여성혐오는 상품성을 가진다. 가벼운 가십, 재미로 소비되며 '다음엔 얼마나 더 '센'수위의 가사를 가지고 나올 것인지 궁금하게 만든다. 긍정의 의미든 부정의 의미든, '역시 블랙넛'이라는 평이 따른다.  '갓대웅'이라는 수식어가 이를 증명한다.

2017년 4월 발매한 블랙넛  Too Real의 가사다. 

"걍 가볍게 딸감 물론 이번엔 ㅇㅇㅇ 아냐 줘도 안 처먹어 니 bitch는 "

최근 해당곡과 관련이 있는 래퍼가  가사로 인해 수치심을 느끼고 성희롱으로 블랙넛을 고소할 것을 밝히면서, 이  곡은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사실 블랙넛의 처벌 여부는 부차적인 것으로 보인다.  이 곡이 다시 주목받게 되면서 가사에 등장한 인물은 2차 피해를 받는다. 동의 없이 성적 대상화된 인물이 된 것도 모자라, 대중들에게 가십으로 소비되는 것이다. 

 ⓒ 러블리즈 Ah-Choo 뮤직비디오 캡쳐, 울림엔터테인먼트

2. 걸그룹을 상품으로 소비하는 세태: 대중이 원하는 젊은 여성

지금까지도 걸그룹 시대는 이어지고 있다. 동시에 걸그룹의 천편일률적인 컨셉을 지적하는 논란 또한 계속돼 왔다. 여기에서 주를 이루는 지적은, 걸그룹을 상품으로 소비하는 세태에 대한 것이다.

"여자는 쉽게 마음을 주면 안돼. 그래야 날 더 좋아하게 될 걸" (트와이스 Cheer Up)

" 아직 요리는 잘 못하지만 나 연습하고 있어요. 나 그댈 위해 몰래 감춰놓은 애교도 있는 걸. 매일 지루 하지 않게 웃게 해줄텐데" (러블리즈 Ah-choo)

"사랑은 몰라도 가슴이 두근두근 작다고 놀리지 말아요 나도 다 안다구요" (보너스 베이비 , 어른이 된다면)

기본적으로 유한 태도를 견지하면서도 쉽게 마음은 내어주지 않아 애를 태우는 여성. 요리와 애교 등 남성을 '즐겁게 해 줄' 센스와 능력을 갖추고 있는 여성. 사랑이 뭔지 모르는, 그러나 호기심에 가득한 눈망울을 하고 있는 어린 여성. 그러니까 전반적으로 다루기는 쉽지만 성적 긴장감은 줄 수 있는 여성. 대중들이 원하는 젊은 여성이다. 

대중들의 요구에 부합하기 위해, 비교적 어린 나이의 가수들이 단체로 귀여운 의상을 입고 깜찍한 춤을 춘다. 그들의 애교 섞인 몸짓과 표정이 대중을 매혹시킨다. 아무리 그들이 음악적인 성장을 담은 앨범을 들고 나온다고해도, 전면에 내세워야 하는 것은 '대중이 원하는 여성적 매력을 어필할 수 있는 기획'이다.

물론 '여성적'이라고 불릴 만한 것을 거부하는 것 자체가 중요한 것은 아니다.  사회가 강요하는 '여성성'에 반발한다는 것이 여성적인 요소를 지우고 남성과 같아지기 위함을 의미하는 것 또한 아니다. 이 방식은 '인간적인 것'이 곧 '남성적인 것'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꼴이 된다. 여성 뮤지션들이 '여성의 상품화'에 대해 지적받았다고 해서 구태여 화장을 지우고, 신체를 드러내는 옷을 자제해야 할 필요도 없다.

대중이 '여성적' 이라고 의미 지운 것들이 실제적으로 여성들에게 즐거움을 줄 수도 있다. "이런 컨셉은 너무 여성성을 소비하는 것으로 보이니 당신들만의 독자적인 '무엇'을 구축할 수 있는 컨셉이 필요하다" 라고 말하는 것은 또다른 규율화에 지나지 않는, 가부장적 기획이다.

다만 걸그룹과 대중 모두가 견지해야 하는 것은, 걸그룹의 컨셉이 '판타지로서의 여성'만을 따라가서는 안된다는 점이다.

 ⓒ 포커스뉴스

3. 걸그룹 몰카 사태: 대중이 원하는 '여성적 현명함'

유튜브에 여성 아이돌 영상을 검색해보고 충격 받은 이들의 이야기를 종종 듣는다. 소위 '직캠'이라고 불리는 것들. 이게 가수의 무대를 기록하기 위해서 찍은 것인지, 몸매를 기록하기 위해 찍은 것인지 모르겠는 영상들이 많다. 한 아이돌의 경우, 공연 중 의도적으로 카메라 각도를 조절한 것을 보고 "아래에서 찍지 말라"며 주의를 주기도 했다.

또한 지난 4월 5일 걸그룹 '여자친구'의 멤버 예린이 팬사인회 현장에서 몰래카메라를 소지한 팬을 잡아내기도 했다. 이날 이 팬은 몰래카메라가 장착된 안경을 쓰고 팬사인회에 참여했고, 이를 감지한 예린이 안경을 보여달라며 카메라를 찾아낸 것.

예린의 신속한 판단과 실행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온라인상에서 이런 예린의 행동을 '무섭다'고 표현하기도 했다. 영상 촬영이 금지된 팬사인회가 아니었고, 몸을 찍은 것도 아닐 뿐더러, 애둘러 말하거나 뒤에서 이야기 할 수  있었음에도 팬에게 무안을 주는, '현명한 대처'를 하지 못했다는 것.

그렇다면, 이 팬은 영상촬영이 가능한 팬사인회 현장에서 왜 굳이 몰래카메라로 촬영했을까? 몰래카메라로 담을 수 있는 영상. 그것이 주는 의미가 무엇일까? 어떤 의미이길래  팬 사인회에 오기 전 몰카가 달린 안경을 알아보고 구입하는 수고스러운 과정을 거치게 한 것일까? 또한, 자신을 몰래카메라로 촬영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이를 바로 잡은 예린의 행동에서 잘못된 점은 무엇일까? 우리가 그에게 어떤 '현명함'을 요구해야 하는 걸까? 

여성 혐오는 어디에도 없고, 어디에나 있다.

앞서 다룬 몇가지 사례들을 보고 당신은 어떤 생각이 들었는가. 절망스러운가? 아직 멀었다는 생각이 드는가? 아니면, 예민한 지적이라 느끼는가? 들여다보지 않는 이상 여성 혐오는 어디에도 없다. 너무 흔한 것들은 명확하게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보지 않아야 편리했기에 우리는 외면했다. 그 결과 지금도 수많은 여성들이 도처에서 괴로워하고 있다. 1년이 지났다. 그러나 비극은 끝나지 않고 계속되고 있으며, 계속될 것이다. 이 비극을 끝낼 수 있는 방법은, 다름 아닌 외면했던 고개를 돌려 눈을 뜨고 귀를 여는 것이다.

soyeon0213@mhn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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