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극 '보도지침'의 오세혁 작·연출과 출연 배우들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문화뉴스 MHN 양미르 기자] "하기 어려운 말을, 하기 어려운 시공간 속에서 꿋꿋하게 해내고 있는 용기 있는 연극이라는 점을 부인할 수 없다. 연극은 1980년대의 이야기를 배경으로 꾸며졌지만 그들의 메시지는 결코 1980년대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남들이 하기 힘든 일을 본인들이 직접 나서서 한다는 것은 충분히 박수받아 마땅한 일이다." - 연극 '보도지침' 초연 당시 본지 장기영 기자의 리뷰 中

지난해 봄에 초연된 연극 '보도지침'이 1년 만에 다시 찾아왔다. 1년이라는 짧다면 짧고, 길면 긴 세월 1년이 지났다. 현재 한국엔 많은 것이 뒤바뀌고 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물러나 새로운 대통령을 뽑는 '장미 대선'이 찾아오고 있고,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사건도 있었다. 여기에 지난 26일 국제언론감시단체인 '국경 없는 기자회'에서 발표한 2017 세계 언론자유지수에서 한국은 7단계 상승한 63위에 올랐다. 하지만 이는 변화의 시작일 뿐, 많은 것이 변화하지 않았다. 이 상황에서 연극 '보도지침'은 왜 다시 찾아왔을까?

21일 개막해 프리뷰 기간을 마친 연극 '보도지침'의 프레스콜이 27일 오후 서울 종로구에 있는 대학로 TOM2관에서 열렸다. 6월 11일까지 열리는 '보도지침'은 1986년 전두환 정권 당시, 정부가 각 언론사에 보도 방향과 내용 및 형식까지 시달하며 언론을 철저하게 통제한 시기에 김주언 한국일보 기자가 월간 '말' 지에 '보도지침' 584건을 폭로한 사건을 바탕으로 재구성했다. 

▲ 연극 '보도지침'의 한 장면.

이번 공연엔 보도지침을 폭로한 기자 '김주혁' 역은 김경수, 이형훈과 함께 오랜만에 연극 무대로 돌아오는 봉태규가 캐스팅됐다. 월간 독백의 발행인 편집장 '김정배' 역에는 고상호, 박정원, 기세중이 열연을 펼친다. 이들을 변호하는 변호사 '황승욱' 역에 박정표, 박유덕이, 이들과 맞서는 검사 '최돈결'역에 남윤호, 안재영이 캐스팅됐다. 여기에 이들의 은사이자 본 재판의 판사인 '원달'역에는 서현철, 윤상화가 무대에 오른다. 과거와 현재를 넘나드는 '남자' 역엔 김대곤과 최연동, '여자' 역에는 정인지와 이화정이 함께 한다.

최근 '지상 최후의 농담', '세상 친구', '밀사-숨겨진 뜻', '라흐마니노프' 등 다양한 연극과 뮤지컬을 통해 '대학로 블루칩'으로 떠오른 오세혁 작·연출은 "이번 '보도지침'을 진심을 담아서 하고, 진정성을 담고 한 마디 한 마디를 보여주고 싶었다"고 본지와의 전화 인터뷰를 통해 말한 바 있다. 프레스콜 이후 오세혁 작·연출과 주요 배우가 참석한 기자간담회에서 나온 말들을 살펴본다.

▲ 오세혁 '보도지침' 작·연출이 작품 소개를 하고 있다.

작품 소개와 연출을 하면서 중점을 둔 것이 무엇인지 말해 달라.
ㄴ 오세혁 : 이 작품은 1986년 실제로 일어난 '보도지침' 사건을 배경으로 만들었다. 한국일보 김주언 선생님께서 입사 후, 계속 기사 작성 방향에 대한 지침을 1년 정도 봐오게 된다. 자료를 수집한 후 동료들과 함께 이야기를 하며, 폭로를 하게 된 사건이다. '보도지침' 사건 전개의 과정을 이야기로 가볼까 생각했다. 그러다 재판받을 때, 말씀하셨던 '재판 기록'을 읽게 됐다. 최후 진술이나 법정에서 나온 말을 읽어보며, 연극에서 본 독백들보다 훨씬 감동적인 경험을 했다. 이분들의 말씀이 진실한 독백이었고, 진실된 현실의 과정에서 솔직히 말하는 것으로 생각했다.

그래서 이야기 중심보다 이분들의 말, 진실을 중심으로 하려 했다. 당시 시대를 둘러싸고 벌어진 빛나는 말과 글, 개인적으로 하고 싶은 다른 시대의 이야기까지 다 여기에 넣었다. 이것은 어떤 배우의 연기나 합이 중요하기보다, 순간적인 배우의 말이 중요했다. 연습할 때도 연기를 이렇게 저렇게 하는 것보다, 진실한 상태에서 말하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다. 말할 때, 진실한 상태만 보여주자고 생각했는데, 이 작품은 법정이 중심이다. 하지만 법정에서 발언도 있고, 광장에서의 토론 과정도 있다. 연극을 통해 복합적으로 하게 됐다.

올해 연출까지 같이하면서 중심을 둔 포인트는 배우의 말이 실제로 존재하는 거 외에는 덜어내려 했다. 말을 할 수 있는 솔직한 상태를 만들기 위해, 음악, 무대, 조명도 최소한의 것으로 하려 했다. 많은 관심과 애정을 부탁드린다.

▲ 연극 '보도지침'의 기자간담회가 열렸다.

지난해엔 작가로만 참여했으나, 올해는 연출도 겸하게 됐다. 추가된 부분이 많이 있다고 했는데, 그렇다면 덜어낸 부분도 있을 것 같다.
ㄴ 오세혁 : 먼저 작년에 작가로 참여했을 때, 썼던 대본 중 협의를 해서 빠진 장면이 있었다. 그게 충분히 빠져야 할 것 같아서 뺏는데, 시대가 변해서 넣어야 할 것도 있어서 배우분들과 논의를 했다. 한두 장면이 추가됐다. 대표적인 장면으로, 초연에서는 '정배'가 채플린의 독백만 읽고 바로 법정으로 넘어왔었다. 이번엔 채플린 독백을 읽는 와중에, 교내에 전경들이 들어와 뿌려진 유입물을 읽는 장면이 추가됐다.

진실한 독백이 무엇인지 물으면서, 햄릿이나 채플린의 독백이 들어간다. 실제 학생이 쓴 유서 중에서도 어떤 부분에 귀를 기울여야 할까 생각해 그러한 장면을 추가로 넣었다. 다른 것들을 많이 덜어냈기도 했는데, '장면의 온도'가 있다. 때가 때인 만큼 작년엔 온도가 뜨거웠는데, 새로운 시대를 만들어야 할 것 같아서 장면의 온도를 차갑게 하려고 노력했다.

'장면의 온도'라고 했는데, 지난해에 공연을 올렸을 때만 하더라도 이러한 내용이 상업극으로 적당할지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기도 했다. '장면의 온도' 이야기를 좀 더 설명해 달라.
ㄴ 오세혁 : 작년 같은 경우는 구체적으로 말씀드리진 않겠지만, 시대에 좀 더 외치고 질러야 하는 게 필사적이었다. 지금은 조금 즐거운 외침이라고 해야 할까? 이제는 그 외침에서 내용을 만들어 가야 하는 것이 컸다. 작년 공연을 돌이켜보니, 매우 뜨거웠다. 지금은 어떤 방향, 어떤 위치에서 만드는 게 중요할까 생각했다. 지금도 작품이 뜨거워지면 강요가 될 것 같아서, 차가워지려고 했다. 어떤 장면에서는 아직도 뜨거운데, 배우들에게 뱃속에서 뜨거운 게 올라오더라도, 머리 위는 차갑게 해서 명치 위로는 올라오지 않도록 했다. 그 온도 차이가 가장 크다.

▲ 연극 '보도지침'의 한 장면

'보도지침'에 관한 질문으로, 어떠한 내용을 꼭 보도해야 한다고 생각하나?
ㄴ 윤상화 : 어려운 질문이다. '보도지침'이라는 말 자체가 존재하는 것에 문제가 있다. 언론에 지침을 내린다는 것 자체에 문제가 있다. 작품으로 봐서 어떤 것이 살았어야 한다면, 결국 관객과의 문제에서 결정된다.

지난해 초연의 공연장이었던 '수현재씨어터'보다, '대학로 TOM 2관' 무대는 더 작다. 그래서 오히려 관객에게 좀 더 몰입감을 줄 수 있었다. 무대 역시 법정을 중심으로 배치가 됐는데, 어떤 의미가 있나?
ㄴ 오세혁 : 극장 처음 오면서 놀랐던 것이 3면을 내려다보기 때문에, 광장 같은 느낌이었다. 너무나 좋았다. 여기서라면 어떤 장치나 효과에 의존하지 않고, 순전히 말과 몸으로 '승부'할 것 같았다. 김대한 무대 디자이너께도 그 취지를 말씀드렸다. '라흐마니노프'도 같이해서 믿는 편인데, 무대가 법정과 광장이 공존했으면 좋겠다고 해서, 한동안 바라보시더니 지금과 같은 형태가 나왔다. 이 극장과 잘 어울리는 것 같다. 다른 극장에 가면 어떻게 바뀔지 모르겠는데, 이곳의 장점으로 여러 가지를 할 수 있었다.

여기에 이주원 조명디자이너가 의견을 냈는데, 법정 장면 때는 어떤 조명효과를 내지 않고, 하얀등으로만 가면 좋겠다고 했다. 그래서 나는 그 의견에 따랐고, 좋은 장면이 나온 것 같다.

[문화 生] '팬텀싱어' 기세중, 연극 '보도지침' 선택한 이유는? ② 에서 계속됩니다.

mir@mhns.co.kr 사진=ⓒ문화뉴스 MHN 이현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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