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가해자 탐구_부록: 사과문 작성 가이드' 극작가 겸 연출가 구자혜 인터뷰

연극 '가해자 탐구_부록: 사과문 작성 가이드' 컨셉 사진 ⓒ 남산예술센터

[문화뉴스 MHN 장기영 기자] "극장의 공공성이 걸어 나와 자신들의 가해 사실에 대해 공적으로 발화한다는 것."

지난 18일 남산예술센터 근처 카페에서 만난 극작가 겸 연출가 구자혜는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연극 '가해자 탐구_부록: 사과문 작성 가이드'의 의도를 밝혔다. 

'#XXX_내_성폭력' 해시태그 운동이 활발해지며 영화, 음악, 미술, 만화 등 예술계 내 성폭력 피해자들이 자신의 피해 사실을 발화하던 작년, 연극계는 고요했다. 잠잠한 이곳에서는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었던 것일까? 아무 일이 없었기에 조용했던 것일까?

'예술계 내 성폭력' 사태에서 유독 잠잠했던 연극계가 드디어 입을 뗐다. 남산예술센터의 성폭력 예방교육과 연극 '가해자 탐구_부록: 사과문 작성 가이드' 개막의 의미는 단순하지 않다.

연극계는 피해자 개개인이 피해 사실을 SNS에서 고발하던 발화 움직임에 동참할 수 없었다. 지속적인 집단 작업으로 작품이 제작되며, 상업적 이득보다는 창작진들 간의 긴밀한 관계를 중시하는 분위기가 강한 작업 환경 때문이다. 

그러나 한 공공극장은 스스로 연극계의 고질적 문제를 직시해 해결 방법을 찾고자 노력하는 중이고, 한 작품은 자기가 몸담고 있는 세계의 적폐를 용기 있게 꼬집어냈다. 이들은 '해일이 오고 있는데 왜 조개를 줍냐'는 비난에, 공통적으로 '조개가 살고, 미역이 살고, 갯벌이 살아야 해일이 와도 살아낼 수 있다'고 답한다. 다양한 문제가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는 이 세계에서 문제해결의 우선순위를 매기는 방법은 여성문제를 늘 '덜 중요한' 문제로 여겨왔다는 것이다. 남산예술센터와 구자혜 극작가는 말한다. 언제나 부차적이고 사소하게 여겨졌던 이 영역의 문제를 언제까지고 뒤로 미룰 수는 없다고 말이다. 

본지는 개막 직전 구자혜 극작가와 만나, 작품을 올리게 된 배경과 작품이 만들어진 과정 등을 들어볼 수 있었다.

 

 

 

연극 '가해자 탐구_부록: 사과문 작성 가이드', 제목이 특이하다. 소개 부탁드린다.
ㄴ '킬링타임'과 'commercial, definitely' 공연을 하면서 우리 공연이 가진 속성을 알게 됐다.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를 통해 진실을 말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더라. 그럼 이번에는 아예 '가해자'를 '탐구'해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이번에는 '예술계 내 성폭력'을 다루고 싶었다. 가해 자체도 문제가 있지만 묵인하는 제도도 분명 문제 있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성폭력 가해자들이 여러 채널을 통해 사과문을 발표하는데, 그 사과문을 들여다보면 가해 사실을 인정하는 것 같지도 않다. 심지어 자신이 얼마나 고통스러웠는지 예술적으로 적시돼 있다. 그래서 '사과문작성가이드'를 통해, 가해자 속성을 면밀히 들여다봄으로써 그들의 발화, 그 이후에 집중하고자 한다. '부록:사과문작성가이드'라는 제목이 붙은 것은 우리 공연 자체가 책의 콘셉트를 띠고 있기 때문이다.

 

'#예술계_내_성폭력' 해시태그 운동이 영화, 문학, 미술, 음악(인디)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발히 일어났다. 그러나 그동안 사회 문제에 민감하게 반응하던 연극계만이 유독 조용한 분위기였다.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해 생각해봤는지?
ㄴ 끊임없이 이야기하는 것이 가장 필요하다. 공론화되어야 한다. 어떤 기자가 '원래 이렇게 용기가 있었냐'고 물은 적 있다. 연극계에 속해 있으면서 연극계 이야기를 한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지 않냐는 것이다. 공연의 방식을 통해서든 SNS이든, 면대면이든 끊임없이 얘기해야 한다. 

연극계는 많이 보수적인 집단이다. 예를 들면, '여자가-'라는 식의 얘기들을 했을 때 불편해도 웃고 넘어가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이제는 실천으로 옮겨야 한다. 우리 팀부터도 실천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가족적인 분위기에서 나오는 말들 중 혹시나 폭력적인 부분이 있다면 서로 '삐-'라며 제재한다. 이 공연을 계기로 우리부터 변화하고 있다. 

작업하면서 중간에 그런 실천들까지 하려니 힘들더라. 팀원들끼리 끊임없이 지적하고 지적받다보니, 내부에서는 '그렇다면 말을 아예 하지 말라는 얘기냐'라는 얘기도 나왔다. 사실 남산예술센터서 진행한 성폭력 예방교육을 들으며 나도 부끄러웠다. 내가 직접적인 성폭력 가해자가 아닐 뿐이지,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폭력적이었더라. 친하기 때문에 혹은 선생님, 선배들의 말이기 때문에 넘어갔던 부분들, 일상적 용어로 치우치고 넘어갔던 부분들을 하나하나 집어냈다.

이 부분에 있어서, 우리 팀의 작업은 참 건강하게 진행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실제로는 참 고통스럽다. 성폭력 가해자한테 비판하는 것은 당연한데, 일상에 있는 사소한 표현들까지 지적하는 것은 힘들고 까다로운 일이기 때문이다. 또한 그 일상적 발언들이 악의적이지가 않기 때문에 지적하기가 힘든 것 같다. 

 

 

연극 '가해자 탐구_부록: 사과문 작성 가이드' 컨셉 사진 ⓒ 남산예술센터

가해자의 시선에 집중하는 이유는? 왜 가해자의 시선을 관객들이 봐야 하나?
ㄴ 일부러 리서치를 많이 하지 않았다. 과연 예술계 성폭력 문제를 다루는 공연이 가능할까 싶었다. 작업하면서 연출로서 힘든 부분은, 너무 단순하다는 것이다. 가해를 저질렀고, 가해자 자신은 변명하고, 주변 사람들은 그걸 감싸주고. 여기서 특별한 원리를 못 찾겠더라. 너무 단순하고, 깊지가 않았다. 

그래서 이번 작업은 가해 사실을 감추고 보호해주는 이 심플한 현상을 작가로서 계속 파고들어갔다. 그 안에 뭐가 있을까 생각하며 가해자의 시선을 담았다. 피해자들이 (무대 및 현실에서) 발언하지 못하는 이유가, 2차 피해 발생 때문이다. 이 문제는 예술계 내 성폭력 뿐 아니라, 모든 성폭력 피해자의 경우에 해당되기도 하다. 

피해자가 자신의 피해 사실을 증명해야 되는, 그리고 가령 피해자가 건강하고 당당하게 피해 사실을 얘기하면 그것조차 또 다른 혐의가 된다. 예술계 내 성폭력 같은 경우, 피해자들이 발언하기 힘든 이유가 발언하면 (현장 내에서) 불이익이 있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피해자들은 더 배제되고 그렇게 예술계는 더 좁아진다. 현실에서 피해자들이 발언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장이 적다. 그 현실을 극대화할 수 있는 방식으로 작업하고 싶었다.

연극을 구성하는 과정에서 가해자의 시선을 어떻게 수집했나?
ㄴ 공연 전부터 예술계 내 성폭력에 관심 있어서 SNS 사례를 관심 있게 지켜봐왔다. 이번 공연 뿐 아니라, 다른 공연을 할 때도 어느 정도 리서치가 이뤄지면 더 이상 진행하지 않는다. 리서치의 함정에 빠지는 경우가 있는 것 같다. 

예술계 내 성폭력은 관심이 있었기 때문에 이전부터 리서치 하고 있었고, 가해자의 시선은 가해자의 시선을 다룬 서적이나 영화를 자료로 삼았고, 예술계 성폭력과 직접적 연관이 없는 자료들도 참고했다. 

 

 

 

연극은 가해자 뿐 아니라, 가해자 주변에서 그들의 개인적인 사건에 대해 가치 평가 내리고 침묵하는 주변인들까지 다룬다. 실제로 주변에 성폭력 사례가 빈번히 일어나고 있는지? 그 사례를 물어봐도 될까?
ㄴ 연극계 사례는 실체가 확인되지 않아 말하기 어렵다. 그러나 주변에서 흔히 보이는 사례를 말씀드리자면, 술자리에서 성희롱적인 발언이 발화되거나, 이후 성폭력 사건이 일어난다면, 비난의 화살이 여성에게 간다. 왜 술자리에 오래 남아있었냐는 것이다. 여성이 젊을수록 더욱 심하다. 

내가 겪은 이야기를 들려드리는 게 나을 것 같다. 다른 테이블에 내 담배가 있기에, 전달해달라고 부탁했더니, 어느 남성이 '내가 빨아줄까?'라고 하더라. 또 어떤 선배는 '남자친구 있냐'고 질문하기에 내가 '없다'고 대답했더니 '(성욕) 어떻게 푸니?'라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하더라. 그래서 '제 성생활은 알아서 할 테니 선배님 성생활이나 잘 하시죠'라고 말한 적 있다. 다음부터는 그런 말씀 안 하시더라.

피해자는 보통 연극판에서 사라진다. 직접 피해 사실에 대해 발언을 하든, 주변에 의해서 알게 되든, 어떤 식으로든 그 피해자는 지속적으로 활동하기 힘들어진다. 피해자들이 (이 세계에서) '배제됐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우리 공연은 가해자들의 말로 채워진다. 대사가 무척 많은 공연인데, 피해자들은 (무대서든, 현실서든) 한 마디도 못 하고 있다. 

주변에서 이번 연극에 대한 비판적 시선이나 우려를 표하지는 않았는가? 연극계 분위기가 어떤 것 같나?
ㄴ 연극계 내에서 이 공연에 대해 내게 우려나 비판적 어조로 말씀을 주신 분은 없었다. 다만 연극계 내에서 우리 공연을 응원한다는 몇몇 분이 있었다. 모두 여성이었다.

 

 

 

남산예술센터에서 공공극장 최초로 성폭력 예방 교육을 모든 스태프와 함께 진행하고 있다. 그 프로그램에 참여해봤나? 프로그램 자체와 현장 분위기에 대해 소개해준다면? 또 개선해야할 점이 있다면?
ㄴ 강연자는 무대에, 연극인들은 객석에 앉아 듣는 구조였다. 온라인 사전 설문지 작성부터 진행됐다. 나는 내가 페미니스트라 생각하고 성폭력 문제, 일상 언어 중 폭력적 어휘나 어감 등에 대해 민감하다고 생각해왔기 때문에, 강연 내용을 무난하게 받아들였다. 그러나 남성들은 그렇지 않았을 것 같다. 사실 작업에 참여하는 이들 모두가 성폭력 예방교육을 들으러 오는 게 편하지만은 않았을 거다. 

강연 중 듣기 힘들었던 내용이 있었는데, 내 얘기 같았기 때문이다. 모두에게 적용될 수 있는 강연이었다. 공공극장 최초로 성폭력 예방교육을 실시한다는 사실이 엄청난 일인 것 같다. 

개선하기 원하는 부분은, 이번 강연에는 배우들이 많이 참여했는데 미리 일정이 공유돼 스태프까지 많이 왔으면 더 좋았을 것 같다. 또한 설문조사가 더 구체적으로 이뤄졌으면 좋겠다. 강연 이후 극단 내에서 이런 얘기를 따로 안 하는 걸로 알고 있다. 그렇다면 극단 내에서 얘기하지 못하는 것들을 설문조사 답변에서 쓸 수 있도록 질문을 더 구체적으로 구성해주셨으면 좋겠다. 이 답변들을 토대로 강연자가 강연에서 피드백 주면 극단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한다. 

우리 팀은 내부에서 얘기가 살짝 나왔다. 앞으로 성폭력 관련 사건들이 생겼을 때 어떻게 대처할지까지 얘기를 나눴다. 강연이 듣고 끝내는 것이 아니라, 극단 내에서 이 사안에 대해 발전해 생각할 수 있도록 자극시켜주는 역할을 해줬으면 좋겠다. 

 

 

 

 

이번 연극은 '가해자의 시선에서 성폭력의 역사를 기록한 무대'라고 설명된다. 온라인을 중심으로 빠르게 확산됐던 '미러링'이 연상된다. 기존의 미러링은 남성들의 여성혐오를 되비춘다는 취지에서 시작됐지만, 결국 단순한 반복적 형태만 보여줘 진일보한 방향을 보이지 못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이번 연극은 어떤 다른 점을 보여주나?
ㄴ 미러링을 염두에 두진 않았다. 미러링을 통해 발생할 수 있는 풍자의 기능은 염두에 뒀다. 평소 의도치 않게 '풍자 구선생'으로 불리고 있는데, 지금까지 나는 어떤 작품도 풍자하거나 희화화하려고 의도한 적이 없다. 그런데 아무래도 전작들이 풍자라는 속성에서 많이 이야기되고 있다 보니, 이번 작품은 풍자적 부분을 정확하게 짚고 작업하자는 얘기가 나왔다. 

풍자는 예술계 일반적 현상으로 한정됐다. 서로 밀어주고 끌어주고, 선생이 제자를 감싸고, 선생한테 허락받아야 창작이 완성되고, 선생의 평가와 판단이 중요하다는 예술계 문제에 대해서는 풍자를 의도했다. 그러나 예술계 내 성폭력을 다룰 때는, 누구를 풍자해야 할지 모르겠더라. 가해자를 풍자하다가는 이 폭력 사건들의 심각성이나 가해자의 악행을 놓치게 될까봐, 가해 사실 자체에 대해서는 풍자를 날렸다. 

 

이번 공연이 어떤 의미로 남았으면 하는지?
ㄴ 대의를 위해 묵살되던 것들이 있다. 예술이란 대의를 위해 여성이 배제되고 성폭력이 옹호됐다. 예술계 내에서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슈들이 있다. 여성들의 처우에 대한 문제는 언제나 있었음에도, 늘 (이 문제보다) 항상 먼저 해결해야 되는 문제가 있었다. 그럼 이 문제는 언제 해결하나 싶었다. 

우리가 고질적으로 가지고 있었던 문제를 원점으로 돌아와 직시할 수 있는 시간이었으면 좋겠다. 예술이 뭣도 아닌데,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너무 많은 것들이 희생되고 있는 것 같다. 가해자를 단죄하거나 고발하는 공연이 아니라(가해자에 대한 고발은 자연스레 함께 나올 수 있지만), 무엇이 예술계 성폭력을 자꾸 덮고 있는지를 생각해볼 수 있는 시간이었으면 좋겠다.

key000@mhns.co.kr 사진=구자혜ⓒ문화뉴스 MHN 서정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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