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무인도 탈출기' 윤상원 강찬 손수현 박준 인터뷰

[문화뉴스 MHN 서정준 기자] [문화 人] '조금, 변할 수도 있겠다 싶은 이야기'…연극 '무인도 탈출기' 인터뷰①에서 이어집니다.

조금 편한 이야기로 넘어가자. 쉬는 날에 하는 일이나 취미가 있는지.

ㄴ 강찬: 컴퓨터 게임 하기? 영화 보기? 이거 대산데(웃음). 드라마 몰아서 보는 거 좋아해요. 요즘하는 게임은 '롤'이랑 '오버워치'해요. 드라마는 '무인도 탈출기'하기 전에 몰아보려고 '또오해영'을 봤어요. 그런데 공연 때문에 끝까지는 못 봤어요. 공연 끝나면 보려고요.

ㄴ 손수현: 저는 평소에 노래 듣는 거 좋아해요. 요즘엔 LP에 꽂혀서 '파산' 직전이에요(웃음). 싼 거는 5천 원짜리도 있는데 비싼 건 3, 4만 원 넘어요. 그 외에는 기타 치고 노래하는 거 좋아해요. 잘하진 못해요. 노래도 못 하고요. 그냥 취미에요. 아침에 일어나면 밥 먹고 창문 열어놓고 노래 크게 틀고 티타임을 가져요. 뭔가 여유가 있는, 하루가 시작되는 느낌?

ㄴ 박준: 저는 일이 없으면 낮에는 집에 부모님 일 나가시고 혼자 있으니까 빨래 개고, 청소기 돌리고, 설거지해놓고… 이것저것 하는 것 같아요. 게임도 하고요. '오버워치'랑 '피파'. 가끔 피아노 좀 두드리고요.

ㄴ 윤상원 연출: 박준 배우가 원래 작곡과였다.

ㄴ 강찬: 재밌는 게 네 명 모두 다른 전공 하다 연기를 하고 있어요. 전 경영학, 클래식 작곡(박준), 국악(손수현), 중국어(윤상원). 재밌지 않아요? 다들 늦게 시작했어요. 저는 스물넷에, (박)준 형은 스물여덟에 시작했고요. (손)수현이는 국악으로 대학원까지 들어갔다 연기로 빠졌고요.

 

새로운 곳에 도전한다는 건 대단히 힘든 일이다. 이전까지 하던 걸 벗어 던져야 하는 게 말처럼 쉽진 않은데 어떻게 다른 길을 걷게 됐는지.

ㄴ 손수현: 저는 프로필에 전공이 '국악'이라서 어떻게 연기했는지 많이들 물어보세요. 전 어렸을 때 만화가가 되고 싶었는데 중학생 때부터 어머니가 시키셔서 국악을 접했어요. 그래서 성격도 유해지고, 그걸로 고등학교, 대학교까지 갔죠. 사실 제 생각이 성숙해지기 전에 시작한, 억지로 한 거였는데 하다 보니 의미가 생겼죠. 진짜 잘하고 싶고, 욕심나고, 너무 훌륭한 음악을 한다는 감격도 느끼고요. 그래서 당연하게도 '나는 국악 하는 사람. 아쟁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대학을 가서 여러 수업과 다양한 사람을 만나며 제가 우물 안 개구리였다는 걸 깨달았어요. 고등학교도 국악고를 다녀서 주변이 온통 국악이었거든요. 그런데 대학을 가면서 다양한 사람과 생각이 있다는 걸 깨달은 거죠.
연기하게 된 것도 국악을 한 것처럼 우연이었어요. 전 연기는 TV에 나오는 사람들이나 하는 거고, 제가 할 수 있을 거란 생각을 못 했어요. 운명이 정해준 사람이나 나오는 거로 생각했죠. 그런데 우연히 연기할 기회가 생긴 거에요.
처음엔 아무것도 모르니 어렵지 않을 줄 알았어요. 글도 읽을 줄 알고, 말도 하고 울고 웃을 줄 아니까요(웃음). 피아노도 그냥 건반을 누르면 소리가 나잖아요. 그런데 알수록 복잡하고요. 그렇게 아쟁처럼 별생각 없이 연기를 시작했어요. 그런데 해보니 너무 어려웠죠. 지금도 어렵고요.
이런 이야기를 하면 '뭐든 쉽게 했다'고 말한 것처럼 보여서 오해의 여지가 너무 많더라고요. 그런 게 아니라 인생이 마음먹는 대로 가지도 않고, 마음 안 먹는다고 안 되지도 않는 운명 같은 거로 생각해요. 지금은 연기를 너무 잘하고 싶어요. 인정받고 싶고, 평생 하고 싶고, 아쟁처럼요. 그런데 앞으론 무슨 일로 변화가 생길진 모르죠. 뭐든 그저 지금 하는 것, 하고 싶은 것에 최선을 다하면 되지 않을까 해요.

ㄴ 윤상원 연출: 배우란 직업이 인생을 알아가는 업이잖아요. 저도 제 장점이 연기 전공을 했지만, 연기만 한 게 아니어서라고 생각해요. 중학생 땐 국악도 했거든요. 시장에게 상도 받고, 국회의장에게도 받고요(웃음). 같이 하던 친형은 아직도 하고 있고요.
그리고 고등학교 때 공부하다 대학교는 중문과를 다니고, 떡볶이 장사도 해보고, 연기가 안 돼서 글 쓰고 연출하고, 이렇게 다양한 걸 겪으며 성장한 것 같아요. 연기만 바라봤으면 오히려 편협해졌을 것 같아요. 학교 다닐 때도 교수님이 연기 서적만 보지 말고 인문학 서적을 많이 보라고 말씀하시거든요.

ㄴ 손수현: 연기는 인문학에 가까운 것 같아요. 인간을 이해하는 과정과 마찬가지고, 활짝 열려있어야 하는데 그러면서도 자기 것을 가지고 있어야 하더라고요. 너무 어려운 만큼 매력 있죠.

 

ㄴ 박준: 저는 중학생 때까진 대통령이 꿈이었어요. 그러다 고1 때 친구가 CD를 가져왔는데 엑스재팬 이런 노래를 처음 들었어요. 다음엔 또 흑인 음악 같은 것도 듣게 되고, 피아노는 어릴 적부터 쳤지만, 음악에 본격적으로 관심이 생겼죠. 어디서 주워들었는데 모든 음악의 기본은 클래식이라고 하더라고요(웃음). 그래서 진로를 고2 겨울방학 때 바꿨죠.

ㄴ 강찬: 저는 가끔 그런 생각 해요. 처음 붙은 학교가 홍대 경영학과였는데 같이 썼던 곳이 한양대 교육학과였어요. 만약 교육학과를 다녔으면 계속 그쪽 길을 했을 것도 같아요. 그런데 경영학이 저랑 정말 안 맞아서 다른 생각이 든 거죠.

ㄴ 윤상원 연출: 저도 원래 고대 고고학과에 쓰고 싶었어요. 국사, 역사에 관심이 많았거든요. 동국대를 가서 전과하게 돼서 길이 변했죠. 어떤 의미에선 운명이죠.

 

자기 삶의 '무인도'는 언제였다고 생각하는지.

ㄴ 윤상원 연출: 저는 중국어를 전공했잖아요. 그런데 너무 어려웠거든요. 그러다 군대에 갔는데 그곳이 제 무인도였던 것 같아요. 저는 군대에서 좀 아파서 병원 생활을 오래 했어요. 나를 바라볼 수 있는 시간을 가진 거죠. 살면서 가지는 굴레라는 게 있잖아요.
내가 하고 싶은 거 하면 돈은 어떻게 하고, 부모님은 어쩌고, 결혼은 어쩌고 이런 걸 벗어나서 온전히 나만 바라볼 수 있는 시간이 된 것 같아요. 제 생각엔 우리처럼 뭔가 갑자기 삶의 변화가 온 사람들은 다들 이런 무인도를 잠시 거쳐 간 것 같아요. 그래서 하게 된 연기인데 애매하게 하면 부모님께 죄송하잖아요(웃음). 그래서 정말 열심히 하게 된 것 같고요.

ㄴ 강찬: 저의 무인도는 바로 지금이 아닌가 싶어요. 제가 올해 서른인데 주변의 친구를 보면 취직도 하고, 같이 연기하기로 한 친구들도 그만두기 시작하고요. 현실적인 것에 부딪히는 사람들이 많아요.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는 중인데… 지금이 표류 중인 거 아닐까 싶어요. 사실 무인도에서도 마냥 행복할 수만은 없듯이 작품이 없을 땐 괴롭기도 하고요. 그래도 하고 싶은 걸 찾아가는 지금이 무인도 위가 아닐까 싶어요.

 

ㄴ 박준: 저는 음대 졸업한 뒤였던 것 같아요. 쓸데없이 학사가 두 개에요(웃음). 대학원 가려고 준비했는데 영어성적이 필요한 거예요. 그래서 종로에 있는 영어학원을 다녔는데 2004년 이후 영어는 완전히 놨으니 눈에 안 들어오죠. 몇 달 했는데 어느 날 문득 '내가 진짜 음악이 하고 싶어서 이걸 하는 건가?' 싶은 거예요.
3, 4학년 때는 현대음악 공부를 많이 해요. 보통 사람들이 듣기엔 이상하고 어려운데 저는 그게 재밌었거든요. 그런데 우리나라에선 못 하고 외국에서 해야 그나마 먹고살 수 있는 장르거든요. 그래서 국악과 퓨전을 해볼까 해서 국악 쪽으로 대학원을 준비했던 건데 정말 하고 싶었던 건지, 어쩔 수 없이 흐름에 맞춘 건지, 너무 물 흐르듯 사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죠.
그래서 학원도 그만두고 고민했죠. 그러다 제 살아온 인생을 돌아봤어요. 앨범을 꺼내서 보는데 초등학교 4학년 때 학교에서 연극을 한 적이 있었어요. 그 사진을 딱 보는 순간 그때 무대 위에서 느낀 사람들의 반응, 희열감이 가슴에서 확 올라오는 거예요. '오. 이거다!' 해서 다음날 바로 연기학원을 알아봤어요(웃음).

ㄴ 손수현: 이런 게 진짜 신기한 게 막 내가 하고 싶다는 마음에서 시작된 건데 전 그런 게 한 번도 없어요. '동현' 같은 걸 수도 있어요. 누가 하라고 해서 해온 거. 하라고 손에 쥐여주고 해봐 하면, 그걸 하면서 의미를 찾고 소중하게 여긴 거죠.
그런 시기는 있었던 것 같아요. 대학 졸업한 뒤 잠시 동안 광화문에 많이 다녔어요. '내가 뭘 하고 싶은가' 했는데 그때는 직장인이 되고 싶었어요. 안정적이고 월급 받는 삶이라고 생각해서 부러웠거든요. 뭘 몰랐던 거죠. 지금은 하라고 해도 못 할 것 같아요.
국악은 일자리도 잘 안 나고 미래가 불안하니까 그런 꿈을 꿨어요. 광화문에 있는 카페 갔다가 이어폰 끼고 청계천 걷고 해 질 때쯤 되면 청계천에 앉아서 고민하고. 그런데 그땐 답을 못 찾았어요. 그래서 막연히 '역시 음악을 더 해야 하는구나' 하고 대학원에 갔죠.

 

손수현을 배우로 알기보단 '아오이 유우 닮은꼴'로만 기억하는 사람이 많다. 그래서 그동안 연기력이 드러날 기회가 적었던 것 같은데 '무인도 탈출기'에서 연기 잘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처음에는 원래 성격이 '수아' 같은 게 아닐까 했다.

ㄴ 손수현: 아니에요. 첫공 때는 정신 없이 지나가서 관객이 안 보였는데 두 번째 공연 때 관객 반응이 다 보여서 힘들었어요. 그 공연을 망친 것 같아서 끝난 뒤에 (강)찬에게 전화해서 '난 연기하면 안 되나 봐. 재능이 없는 것 같아'하고 신세 한탄하면서 자괴감 느끼고 그랬죠.

관객이 보이면 어려울 수밖에 없다. 마지막에 '봉수'랑 '수아'의 대화도 엄청 심각한데 관객은 '동현'을 보며 막 웃는다. 그런 아이러니한 상황을 극복해야 하는 작품이다.

ㄴ 윤상원 연출: 극 중 극을 너무 드라마틱하게 가져가고 싶지 않았는데 박준 배우가 잘 치고 들어온 것 같아요.

ㄴ 강찬: 약간 웃픈 느낌? 짠하기도 하고.

ㄴ 손수현: 그땐 이미 '봉수'랑 '수아'에겐 극 중 극이 아니라 실제가 돼버린 상황인데 잘 정리됐죠.

ㄴ 박준: 제가 해냈습니다(웃음).

ㄴ 윤상원 연출: 전 이번에 그 부분이 제일 좋았어요. 뭔가 그런 감정이나 경계가 교차하는 지점이 가장 극명히 보이는 부분 같았거든요. '동현' 대사가 그러잖아요. "이건 꿈같이 없어질 이야기다". 자기계발서 보면 그렇잖아요. 뭐든 가능할 것 같다가 다음날 되면 현실을 깨닫는. 그런데 또 그게 읽고 나면 조금이라도 생각이 변하는 게 있잖아요. 관객들도 공연을 보고 변하는 게 생기고, 극 속의 인물들도 이 일을 계기로 뭔가 변할 수 있고요. 저는 관객들이 웃다가 '수아'의 표정과 분위기를 보고 점차 웃음이 잦아드는 장면이 이번 공연에서 가장 크게 건진 게 아닐까 싶어요. 박준 배우 덕분이죠. 원래 대본에는 그렇게 분위기를 깨야 한다고 쓰지 않았거든요.

 

'무인도 탈출기' 끝나면 다음 일정은 없는지.

ㄴ 강찬: 저는 DIMF에서 공연이 있어요. 윤상원 연출님과 대구 내려가서 '더 픽션'을 해요. 끝난 뒤에는 7월부터 뮤지컬 '오디션'에 출연할 것 같아요.

마지막으로 한마디 한다면.

ㄴ 윤상원 연출: '무인도 탈출기'가 이번에 세 번째인데 거쳐 간 사람이 많지 않지만, 그분들이 일당백의 역할을 해주셨어요. 초연 연출했던 이채승, 조명했던 정찬영, 배우들도 계속 바뀌며 그분들 덕분에 만들어진 것도 있고요. 저희 극단도 인원이 많지 않지만, 그들이 다 저를 많이 도와주셔서 이렇게 계속 할 수 있단 생각이 들어요. 이렇게 윤상원이 인터뷰를 할 수 있는 사람이 되다니(웃음) 싶은 생각 들고, '무인도 탈출기'가 더 오래도록 좋은 작품으로 남을 수 있도록 더 열심히 고민하고 생각하고 늘 새롭게 만들 수 있도록 열심히 노력하겠습니다.

ㄴ 강찬: 참 감사한 건 이런 좁은 공간에서 관객과 만나고 있는데도 많은 분이 찾아주셨어요. 어떤 날은 자리가 넘칠 정도로요. 저나 수현이는 연극을 처음 해서 걱정됐거든요. 저희가 이런 이야기를 한다고 했을 때 많은 사람이 찾아주실까? 그런데 저희 생각보다 많은 분이 와주셨고 응원해주셔서 감사히 하고 있고 막공까지 보답하는 마음으로 유종의 미를 거두겠습니다.

ㄴ 손수현: 이렇게 연극이라는 직접 관객과 만나는 일을 할 수 있어서 기쁘고 잊을 수 없을 것 같아요. 힘들기도 했지만, 힘들지 않은 과정은 없으니까요. 저 자신도 이번 작품 통해 마음이 훨씬 더 열려야겠다고 생각됐고요. 인간적으로도 반성할 수 있었어요. 이게 다 지나고 나면 좋은 시간으로 기억됐으면 좋겠어요. 관객분들도 요즘 너무 힘든 시기인데 잠깐이라도 웃고 위로받는 시간이 됐으면 좋겠어요.

ㄴ 박준: 이 작품을 보러 오시는 분들이 잠시나마 쉬었다 가시면 좋겠어요. 뭔가 새로운 게 관객분들 마음에 닿아서 뭔가 도전하는 데 힘이 될 수도 있고요. 뭐라도 얻어가시면 좋겠어요. 공연 끝나면 윤상원 연출도, 저도 다들 잘됐으면 좋겠어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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