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왕위 주장자들' 리뷰

 

[문화뉴스 MHN 장기영 기자] 근대는 '나'의 발견으로부터 시작되는 세계이다. 

근대극도 주체성이 개개인에게 자각되면서 자연스레 시민사회의 의지를 담아냈다. 근대극의 1인자로 불리는 19세기 노르웨이 극작가 헨릭 입센은, '왕위주장자들'이라는 작품을 통해 21세기 서울의 한 연극 무대에 호명되어 아직까지도 압도적인 존재감을 증명해냈다. 

 

 

서울시극단 창단 20주년과 세종M씨어터 재개관 10주년 기념작인 '왕위 주장자들'의 연출을 맡은 서울시극단 김광보 예술감독은 "연극인의 입장에서 어떤 정치적 부분에 뭐라고 명확하게 입장을 밝히는 것은 좋은 방법은 아니다. 단지 올 것이 왔고, 우리가 생각한 모든 것이 현실로 벌어졌다고 말하고 싶다"라고 작품의 의미를 밝혔다. 실제로 이 작품은 탄핵 사건 이후, 무겁고 진지한 마음으로 대한민국의 새로운 대표자를 뽑아야 하는 이 시점에 꼭 필요한 메시지를 담아내고 있었다. 

 

 

왕위를 차지한 호콘(김주헌)과 그에 굴복할 수 없는 스쿨레 백작(유성주) 및 여러 왕위 주장자들. 스쿨레는 오랜 세월 왕좌의 가장 가까이에 있었지만, 왕이 되지 못한 채 늙어가는 사실을 인정하기 힘들다. 노르웨이의 교회를 대표하는 니콜라스 주교(유연수)의 간교로 기존 왕권에 전복 의지를 불태우는 스쿨레는 결국 나라를 분열시키기에 이른다. 그러나 권위를 향한 욕망에 잠식되며 지도자로서의 역할을 잊어가는 스쿨레는 결국 호콘에게 항복하며 죽음의 길로 향한다. 

극중 스쿨레는 자신을 절대적으로 믿어줄 수 있는 사람을 애타게 찾는다. 왕위, 아들, 자기 존재에 대한 확신과 그에 따른 자신감을 가진 호콘과 대비되는 스쿨레. 그는 앞선 두 가지를 차례대로 갖게 되지만 결국 파멸의 길로 향한다. 자기 존재에 대한 확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스스로 왕위에 오르고서도 끊임없이 자신이 왕처럼 보이느냐고 묻는 스쿨레는 왕으로서의 그 어느 역할도 수행할 수 없다.

 

 

그가 자기정체성을 오롯이 확신한 순간은 죽음을 앞두고 있을 때였다. 칭송하던 시민들이 자신을 증오하며 죽이려 하고, 무결했던 아들(장석환)의 영혼이 타락하고, 손자의 생명까지도 범하기로 결정했던 본인의 결정을 타인의 입에서 듣게 될 때, 그는 그의 모든 과오를 자각하게 된다. 

자신의 존재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며, 그는 생명력을 가진 하나의 주체로 폭발하는 의지를 갖게 된다. 타자의 욕망을 욕망했던 스스로를 발견하게 될 때, 그는 불안과 결핍에서 자유로워져 거세됐던 본인의 욕망을 되찾을 수 있게 됐다.

 

 

다행히도 스쿨레는 모든 과오마저도 용서해주고 그의 죽음을 슬퍼해줄 가족이 존재했지만, 현재 대한민국을 시끄럽게 물들이는 모든 대권 주장자들에게 그런 주변인들이 존재할지, 또한 그들이 이전 대통령에게서는 발견될 수 없었던 주체적 존재로서의 자각을 겪었을지는 의문이다. 

1863년에 쓰인 이후 154년 만에 국내 초연으로 무대에 오르는 연극 '왕위 주장자들'은 오는 23일까지 세종M씨어터에서 공연된다.

key000@mhns.co.kr 사진ⓒ세종문화회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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