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백건우 피아니스트가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문화뉴스 MHN 양미르 기자] "베토벤은 우리가 연주하면서, 공부하면서 깜짝깜짝 놀란다. 어떻게 이런 아이디어를 잘할 수 있을까?"

70이 넘은 나이이지만, 피아니스트 백건우에게 베토벤은 여전히 고민과 연구의 대상이다. 그 고민과 연구의 결과물이 연중 펼쳐지는 전국 투어와 오는 9월 1일부터 8일까지 7일간 8회에 걸쳐 열리는 베토벤 소나타 전곡 완주 여정에서 쏟아진다.

18일 오전 서울 종로구에 있는 문호아트홀에서 피아니스트 백건우 기자간담회가 열렸다. 1946년 서울에서 태어난 백건우는 10살 때 한국 국립 오케스트라와 그리그 피아노 협주곡으로 첫 콘서트를 펼쳤다. 다음 해에 그는 무소로그스키 모음곡 '전람회의 그림'을 그의 이름을 건 연주회에서 연주했다. 15살 때 미국으로 건너간 백건우는 줄리어드 음악학교에서 러시아 피아니스트의 위대한 전통을 잇고 있는 로지나 레빈을, 1967년 런던으로 건너가 일로나 카보스를 사사했고 같은 해 나움버그 콩쿠르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1969년 백건우는 리벤트리 콩쿠르의 결선에 올랐으며 같은 해 세계적인 권위의 부조니 콩쿠르에서 골드 메달을 받았다. 이후 세계 유명 오케스트라와의 협연, 디아파종상 수상, 프랑스 3대 음악상 수상 등으로 더욱 명성을 높였으며, 1972년 뉴욕의 링컨 센터에서 처음으로 라벨의 독주곡 전곡을 연주하였으며, 베를린 필하모닉 홀에 이어 런던과 파리에서 연주함으로써 라벨의 뛰어난 해석자로서의 입지를 다졌다. 

이후 다양한 활동과 수상 경력을 보유한 피아니스트 백건우는 2013년 한국 섬마을을 찾아 지역 주민을 위한 음악회인 '섬마을 콘서트' 투어로 큰 화제를 모으기도 했으며, 2014년 7월에는 제주도 제주항 특설무대에서 '세월호 사고 100일 추모공연 - 백건우의 영혼을 위한 소나타'로 성원을 받은 바 있다. '건반 위의 구도자'라는 칭호로 늘 묵묵하게 자신의 길을 걸어가는 백건우는 감동의 여운이 오래가는 연주로 음악 애호가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오는 9월과 전국투어에서 선보일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전곡은 작곡가의 일생은 물론이고 서양음악사의 흐름과 시대정신을 집대성한 걸작이다. 베를린 필하모닉의 초대 상임지휘자를 지낸 피아니스트 한스 폰 뷜로는 베토벤 소나타 전곡을 가리켜 피아노의 '신약성서'라 칭한 바 있다. 2005년 10월, 백건우는 영국 데카 레이블과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전곡 녹음 계약을 체결하며 메이저 클래식 레이블에서 베토벤 소나타 전곡집을 발매한 첫 번째 한국인 피아니스트로 기록됐다.

2007년 12월에는 베토벤 소나타 32곡 전곡을 일주일 만에 완주하는 특별한 무대를 국내에 선보였다. 세계적으로 전례를 찾기 힘든 도전에 청중과 평단 모두 극찬을 보냈지만, 백건우는 흔들림 없이 자신의 음악을 냉철하게 돌아보았다. 그는 "연주를 거듭해도 베토벤은 늘 새롭다"며 전곡연주 이후에도 끊임없이 베토벤의 본질을 향한 연구를 이어갔다. 그리고 10년 만에 조금 더 성숙해진 결실을 무대에 올린다. 공연을 펼치는 소감 등 백건우 피아니스트의 이야기를 살펴본다.

▲ 피아니스트 김주영이 기자간담회 사회를 맡았다.

공연하게 된 소감을 들려 달라.
ㄴ 사실 32곡을 다시 완주한다는 것은 큰 프로젝트다. 나도 처음엔 생각을 못했는데, 빈체로에서 10년이 됐으니 한 번 하는 게 어떻겠냐는 아이디어를 냈다. 10년 동안 이 곡들을 해왔고, 하면 할수록 좀 더 가까워진 느낌이 든다. 지금 와서 이 곡을 더 알게 된 것 같고, 새롭게 이 곡들이 느껴지기 때문에, 그런 면에서 새로운 모험, 경험이 될 것 같다. 베토벤이라는 작곡가는 음악 역사에 있어서 너무나 뛰어난 작곡가이기 때문에, 우리 음악인들의 삶을 좌우하는 그런 거인인 것 같다. 이런 훌륭한 작품과 인생을 같이해서 참 행운이다.

서울에서는 9월 전곡을 연주하지만, 지방 투어에서는 어떤 기준으로 선곡하는가?
ㄴ 전곡을 할 때는 순서에 크게 신경 쓰지 않는 편인데, 지방에서 할 때는 한 독주에 소나타 4곡 정도밖에 못한다. 프로그램마다 성격이 다르고, 프로그램으로 성공시키기가 쉽지 않았다. 고민하다가 타이틀이 있는 소나타 '비창', '월광', '열정' 등 타이틀을 하나씩 집어넣었다. 그런 식으로 프로그램을 짰고, 마지막 프로그램은 무제다. 제목을 붙일 수 없었다. 그러한 식으로 지방 프로그램을 넣게 됐다.

소나타 1번부터 32번까지를 연주하면서 번호순대로 연주하지 않는다.
ㄴ 1번부터, 2번, 3번, 4번으로 가는 게 별로 의미가 없다고 본다. 당시 출판사에서 정한 것이고, 오푸스(Op) 번호가 있지만, 베토벤이 3번하고 4번을 다음으로 연주하길 원하고 쓰지 않았다. 별 의미가 없다고 봤다. 곡의 흐름이 더 중요하다.

베토벤은 우리가 연주하면서, 공부하면서 깜짝깜짝 놀란다. 어떻게 이런 아이디어를 잘할 수 있을까? 그리고 항상 새롭게 접근한다. 그래서 그 작품들을 완전히 소화하는 건 힘들 것 같다. 그래서 재발견하는데, 이러한 점이 베토벤 음악이 위대한 곡이라 할 수 있겠다.

▲ 백건우 피아니스트가 기자간담회에 참석했다.

10년 전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전곡연주 공연과 올해 공연의 차이점이 있다면?
ㄴ 올해 '끝없는 여정'이라고 타이틀을 지었는데, 지금 공연을 앞두고 어느 느낌이 드는가 하면, 우리가 어디를 방문했을 때, 문을 하나씩 열어가는 과정이라는 생각이다. 전에 보이지 않았던 전경이 보이고, 소리가 들리고, 드라마가 이해된다. 앞으로 계속 연구를 해야 할 것이다. 그래서 10년 전에 하얗지만, 지금은 빨갛다고 바로 이야기할 수 없다. 과거 유명한 브렌델과 같은 피아니스트분들도 몇 번씩 다시 돌아오는 과정을 거친다. 그만큼 베토벤은 우리 곁에 있다.

얼마 전에 한국을 거쳐 간 지휘자 엘리아후 인발과 이야기를 했다. 베토벤은 역시 시간이 필요한 작곡가라고 말씀하셨다. 내 과거를 들여다보면 10년 전에 왜 베토벤 소나타를 그렇게 했는지 생각해본다. 그전부터 쭉 해왔는데, 그 지점에서 왜 베토벤을 지금 해야 하는지 느꼈다. 매일 공부를 하게 되고, 같이 생활하게 되면서, 그것이 발전해 녹음하게 됐다. 연주자와 작품이 만나는 그 시기가 있는 것 같다. 어느 순간 드뷔시나 쇼팽과 좀 더 가깝게 느껴지는데, 이것이 음악을 이해하는 것과 성숙함이 동행하는 것 같다.

 

10년 전 가장 힘든 곡과, 지금 가장 힘든 곡의 차이가 있나?
ㄴ 힘들다고 하는 것이 그 곡을 얼마만큼 이해하는가가 문제가 될 것이다. 문제야 항상 있지만, 그것이 중요하진 않다. 훨씬 더 친밀해졌다고 해야 할까? 더 가까워지고, 좀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는 것 같다. 좋은 음악인이라면 항상 그 문제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한다. 연주를 들어보면, 그것이 순간순간의 연주냐, 아니면 한 곡이 처음부터 끝까지 우리 피부에 다가오는 연주인가를 아마 쉽게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한 곡의 구성을 피부로 느낄 수 있을 때 그 곡의 힘을 우리가 본다.

베토벤은 그러한 조그마한 모티브로 대곡을 쓰는 것이 특기다. 그것을 어떻게 전달하느냐가 큰 숙제다. 어떻게 접근할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웃음) 32곡이 너무나 다 다르다. 그러므로 매력을 느낀다. 소나타를 하게 되면 소나타 폼이 있어서 하이든과 모차르트를 비교하면 비슷한 것을 느낀다.

그런데 베토벤은 2악장에서 5악장이 되는 곡도 있고, 전곡을 반복하는 곡도 있고, 2악장이 1페이지밖에 안되는 등 다른 성격을 가진 작품 많다. 우리가 악보를 얼마만큼 잘 끄집어내느냐에 따라 곡이 나올 것이다. (많은 악보 중 어떤 악보를 사용하는가?) 여러 악보를 사용해왔다. 악보 하나를 선정할 수 없다. 각자의 믿음이 가장 중요한 것 같다.

 

베토벤 교향곡 19번과 20번을 첫 프로그램에 넣은 이유는?
ㄴ 19번, 20번은 사실 1번 전에 스케치했던 곡이다. 베토벤이 몇 살 때 처음 스케치한 지 모르지만, 그 이전에 쓴 곡을 나중에 다시 손질했다. 그 곡이 너무나 순수하고 시작하기에 적합한 것 같다. 그래서 19번으로 시작할까 했는데, 20번이 장조여서 더 시작에 맞는 것 같았다.

올해 지방 공연을 5번 진행했다. 지방 공연의 의미가 있다면?
ㄴ 이번에는 지방 공연을 20여 곳에서 한다. 그 공연들이 굉장히 중요한 의미가 있다. 10년 전과 큰 차이점이 있다면 이점이다. 10년 전엔 서울에서만 했다. 올해는 전국에서 베토벤과 함께 할 수 있어서 너무나 기쁘다. 그 많은 곳에서 연주한다는 것은 또 어떤 의미가 있냐면, 한국의 클래식 무대가 넓어짐을 뜻한다. 전국이 한 프로젝트에 같이 참여하고, 같이 작업한다는 점이 나한테는 매우 큰 의미가 있다. 한 지역에서 음악회를 하고, 다른 지역에서 다른 음악회를 하는 게 아니라, 큰 그림 아래에서 같이 32곡을 들을 수 있어서, 참 새롭고 발전시켜야 할 것 같다.

올해로 지방 공연한 지 25년~30년이 흐른 것 같다. 귀국해서 연주를 하는데, 항상 가는 곳이 똑같다. 서울, 부산, 대구와 같은 몇 곳이다. 지방의 작은 소도시에서도 똑같은 음악을 들을 자격이 있는데, 왜 여기에서만 해야 하는지 생각했다. 지방공연을 이번에 하고 싶다고 생각해서 하게 됐다.

지금도 많이 나아졌다지만, 홀이나 악기가 어려운 것이 많다. 청중과의 대화에선 차이가 하나도 없는 것 같다. 평생 음악이 누구의 마음에 모두 전달할 수 있다는 믿음으로 생활해왔다. 그러한 순수한 대화를 하고 싶다. 그래서 상징적인 음악회라고 이야기를 하는데, 나한테는 그러한 대화를 한다는 것이 중요하다.

[문화 生] 피아니스트 백건우 "中 '사드 보복' 공연취소, 신경쓰지 않아" ② 에서 계속됩니다.

mir@mhns.co.kr 사진ⓒ문화뉴스 MHN 이현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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