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회 대한민국연극제 강북지구 극단 삼각산의 장미자 예술감독 김나정 작 문선주 연출 채동훈 협력연출의 화

[글] 문화뉴스 박정기 (한국희곡창작워크숍 대표)
pjg5134@mhns.co.kr 한국을 대표하는 관록의 공연평론가이자 극작가·연출가.

[문화뉴스 MHN 박정기] 김나정은 1974년 서울에서 태어나 상명여자대학교 교육학과, 서울예술대학과 중앙대학교 대학원 문예창작과, 고려대학교 문예창작과 박사 과정을 졸업했다. 2003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단편소설 부문에 「비틀스의 다섯 번째 멤버」가 당선되어 등단했으며, 2006년 『문학동네』 평론 부문에 「성난 얼굴로 돌아보지 말라」가 당선되어 문학평론가로 등단했다. 2010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희곡 『여기서 먼가요?』로 등단해 희곡 작가로도 활동 중이다. 저서로 소설집 『내 지하실의 애완동물』, 『멸종 직전의 우리』,청소년평전 『꿈꾸는 건축가 안토니 가우디』 『만화의 신 데즈카 오사무』 『미디어 아트의 거장 백남준』, 공저 『공포』 『설렘』 『가족, 당신이 고맙습니다』 『수업』 『30Thirty』 등이 있다.

문선주는 혜화동1번지 4기, 극단 바람풀 소속의 작가 겸 연출가로 <달콤한 편지> <밥을 먹다> <빈자리에 멈추다> <위험한 독신녀> <어머니가 부르는 노래> <사랑... 소리나다> <마일 거리 공연> <배우가 읽어주는 소설 '그리움을 위하여> <안나 카레니나> 등을 연출했다.

<화>는 1960년 4 19의거의 도화선이 된 김주열 사건과 당시 자유당 정권을 배경으로 구성한 연극이다. 4·19 혁명(四一九革命) 또는 4월 혁명(四月革命)은 1960년 당시 제1공화국 자유당 정권이 이기붕을 부통령으로 당선시키기 위한 개표조작을 하자, 이에 반발하여 부정선거 무효와 재선거를 주장하는 학생들의 시위에서 비롯된 혁명이다.

3·15 부정 선거의 무효와 재선거를 주장하던 마산 3·15 의거에 참여한 마산상업고등학교 입학생 김주열이 실종된 지 27일 후인 4월 11일 아침 마산 중앙부두 앞바다에서 왼쪽 눈에 경찰이 쏜 최루탄이 박힌 채 시신으로 떠오른 것이 부산일보를 통해 보도되면서 시위는 전국적으로 격화되었다.

4월 19일 경찰이 대통령 관저인 경무대로 몰려드는 시위대를 향해 발포하였고, 발포 이후 시위대는 무장하여 경찰과 총격전을 벌이며 맞섰다. 전 국민적 저항과 군 지휘부의 무력동원 거부에 봉착한 대통령 이승만이 4월 26일 하야를 발표함으로써 이승만의 자유당 정권은 몰락하였고, 이 혁명의 결과로 과도 정부를 거쳐 6월 15일(6·15 개헌)에 제2공화국이 출범하였다.

김주열(金朱烈, 1944~1960)은 전라북도 남원군 금지면 옹정리에서 아버지 김재계와 어머니 권찬주 사이의 3남 2녀 중 둘째 아들, 넷째로 태어났다. 

할아버지 김태종은 해방의 혼란기에 면장을 지냈으며 아버지는 조합장을 지낸 천석꾼 부잣집이었다. 김주열이 어린 나이에 죽었으면서도 비교적 많은 사진이 남아 있는 것은 이미 사진기와 전축을 가진 부유한 집에서 태어나고 자랐기 때문이다. 어머니 권씨는 함양 사람으로 '함양댁'이라 불렸으며, 이는 김주열의 영남 지방과의 인연을 암시하고 있다.

1956년에는 용지국민학교(현 금지동초등학교)를, 1960년 남원 금지중학교를 졸업하여 마산상업고등학교(현 마산용마고등학교)에 입학하였다. 이어 진주고등학교 시험에 합격하였으나 거리가 너무 멀다는 이유로 아버지가 반대해 남원농업고등학교에 입학하였다. 그러나 적성에 맞지 않았는지 몇 달을 다니지 않고 집에서 재수를 시작했다.

 

1년 후, 아버지의 병환이 깊어져 가세가 서서히 기울고 있었다. 이에 서울로 올라가 학비가 별로 들지 않는 철도고등학교 입학시험을 치르지만 실패하고, 서울고등학교에 원서를 냈다. 그러나 형 김광렬의 친구이며 형같이 따르던 하용웅의 "집안을 일으켜 세우려면 은행원을 하는 것이 지름길이다."라는 권유를 받고 마산상업고등학교에 다시 원서를 내게 된다.

그렇게 마산상고 입시를 치르고 돌아와 3월 14일로 예정된 합격자 발표를 앞두고 형 김광렬과 함께 마산으로 갔으나, 3.15 부정선거를 앞두고 군중이 모이는 것을 극도로 꺼린 교육청에서 합격자 발표의 연기를 종용해서 16일로 연기되어 있었다. 그래도 하용웅 선배의 담임 선생님을 통해 합격했음을 확인하였지만, 당시에는 마산에서 남원까지 꼬박 하루가 걸려서 첫차를 타지 못하면 도중에서 유숙해야 했기 때문에 곧장 남원으로 귀향하지 못했다.

이 당시 김주열의 이모할머니는 열렬한 민주당 당원이었는데, 자유당의 부정선거로 인해 당연히 투표 통지표가 전달되지 않아 종일 울분을 터트리고 있었다. 그러던 중 마산에서의 부정 선거가 들통이 났고, 학생과 시민들이 거리로 나와 시위를 하자 이를 목격한 이모할머니가 집으로 와 두 형제에게 시내에 나가보라고 한다. 이에 합류하게 된 두 형제 중 김주열이 돌아오지 않은 채 행방불명으로 처리되었다.

아들의 행방불명 소식을 들은 어머니 권 씨는 마산으로 달려가 아들을 계속 찾아 헤맸으나, 끝내 아들을 찾지 못하고 4월 11일 남원으로 돌아온다. 그런데 그날 11시 경, 마산의 중앙부두에 미국제 최루탄이 눈에 박힌 시신이 떠오르고, 이 주검이 김주열로 확인되자 용공 분자의 난동, 좌익 폭등으로 내몰린 마산 시민들의 울분이 다시 터져 올랐다. 이는 곧 4.19 혁명으로 이어졌다.

무대는 배경 가까운 상수 쪽에 연주석을 마련하고, 타악기와 현악기 그리고 건반악기를 극 분위기에 맞춰 연주한다. 하수 쪽에는 계단으로 올라가는 높은 단을 마련해, 당시 이승만 대통령의 경무대(景武臺)의 일실로 설정을 했다. 중앙에 사각의 움푹 들어간 공간을 마련해 연못으로 설정을 하고, 조명이 비추어진 공간에 따라, 장소, 지역, 시위대의 무대로 연출된다.

연극은 도입에 건반악기의 비장 침울한 연주음이 들리면서 나이든 여인이 등장해 1960년대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장면에서 시작된다. 이승만과 이기붕 그리고 이기붕의 부인 박 마리아가 등장을 하고, 당시 내무장관이었던 최인규가 등장을 한다. 이기붕과 최인규는 부정선거를 해서라도 장기집권을 하겠다는 의지를 보인다. 그리고 그 부정투표방법까지 제시하는 과정이 소개가 된다. 김주열과 그의 형, 모친, 이모할머니가 등장을 하면서 당시의 민심이 묘사된다.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은 각가지 부정투표와 개표조작으로 대통령에 이승만 부통령에 이기붕이 당선된다. 그러자 국민의 동요가 파도처럼 일어나고, 학생들의 시위가 방방곡곡에서 해일처럼 치솟는다. 그러던 중 김주열의 실종사건이 발생하고, 실종 27일 만에 마산 중앙부두에 눈에 알루미늄 최루탄이 박혀 떠오른 시신이 발견된다. 부산일보에 이 사실이 보도되자, 시위는 전국으로 확산되고, 중고등 학생 뿐 아니라 대학생과 교수를 포함한 4 19라는 혁명적 의거가 핵폭탄처럼 폭발한다. 결국 이승만 정권을 붕괴된다. 그리고 김주열의 애국정신은 민주화의 역정에 길이 남게 된다.

 

송정바우가 이승만, 유준원이 이기붕, 문경민이 최인규, 이미애가 박 마리아, 현대철이 박종표, 강운이 임화수, 선종남의 국화의원, 이선주가 이모 할머니, 류지애가 김주열의 모친 권찬주, 서민균이 김주열의 형, 백효성이 김주열, 하덕성이 학교선생, 박시화가 기자, 그리고 이원재, 함수연, 양신우, 공주성, 홍하영, 주선옥, 김용운, 송민석, 송은석, 최영미, 김송이, 나현준, 류영주, 승리배, 조승민 등 출연자들의 성격창출과 호연 그리고 열연은 관객의 우레와 같은 갈채를 받는다.

무대 서정인, 조명 김용주, 작곡 음악감독 신사빈, 연주진 신사빈 채수경 정현유 권미림 김비오, 의상 홍정희 이원영, 움직임 이성철, 안무 박무영, 영상 김균열, 음향 이강욱, 조연출 최지수, 오퍼 오출근 박솔 등 스텝진의 열정과 노력이 일치되어, 제2회 대한민국연극제 서울예선 강북지구 극단 삼각산의 장미자 예술감독, 김나정 작, 문선주 연출, 채동훈 협력연출의 <화>를 관객의 기억에 길이 남을 공연으로 창출시켰다.

※ 본 칼럼은 아띠에터의 기고로 이뤄져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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