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좌측부터 민경은, 김형규, 이형훈, 이남희, 박용우, 손진환, 예수정, 이승주, 이문수, 이화정, 최주연

[문화뉴스 MHN 서정준 기자] 연극 '세일즈맨의 죽음'이 지난 11일 오후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에서 프레스콜을 갖고 1년 만에 돌아왔다.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에서 12일부터 30일까지 공연되는 연극 '세일즈맨의 죽음'은 1949년 세계 초연된 아서 밀러의 유명 희곡을 원작으로 평생 세일즈맨으로 살아오다 자존심과 허세만 남은 가장 윌리 로먼의 분열 증세를 중심으로 아내 린다, 무기력한 큰아들 비프, 늘 진실을 덮어두려 하는 작은아들 해피까지 로먼가의 사람들이 서로에게 쌓이는 오해와 일방적인 소통으로 무너지는 과정을 그린 작품이다.

이 작품의 배경인 대공황과 2차대전 후 미국의 현실은 70여 년이 지난 한국의 배경과 꼭 맞아떨어진다. 과거를 지탱하던 가치들은 점차 사라지고 세대 간의 갈등이 격해진다. 누군가는 더 많은 돈을 벌지만, 누군가는 점점 더 가난해진다. 로먼가 역시 중산층이던 윌리가 구시대적인 세일즈로는 더 많은 돈을 벌지 못하게 되며 점점 가난해지는데 이것 역시 가족의 분열을 야기한다.

   
 

이번 재연은 2016년 초연에서 윌리의 불안과 분열 자체에 집중했던 것에서 넘어가 현실의 벽 앞에서 좌절하는 아들에게 초점을 맞춰 젊은 관객층의 공감을 끌어낸다.

예술의전당 기획 공연인 SAC CUBE로 2016년 초연을 올린 이 작품은 한태숙 연출, 강태경 드라마터그를 비롯해 박동우 무대 디자이너, 윤색을 맡은 고연옥 작가 등 초연의 제작진과 함께 윌리 역의 손진환, 린다 역의 예수정, 비프 역의 이승주, 해피 역의 박용우와 이문수, 이남희, 민경은, 이화정, 이형훈, 최주연이 출연한다. 또 젊은 사장 하워드 역으로 배우 김형규가 합류해 신선함을 더한다.

프레스콜은 2시간40분 가량의 전막 시연과 함께 기자간담회로 이어졌다.

   
 ▲ 좌측부터 강태규 드라마터그, 한태숙 연출, 배우 손진환, 예수정, 이승주,박용우

아들에게 집중했다는 점과 맞닿아 보인다. 불안을 상징하던 오브제가 사라졌는데.

ㄴ 한태숙 연출: 감정을 강요하는 것 같다는 이야기가 많았고 오브제가 떨어질 때가 공중에 매달릴 때보다 더 인상 깊어야 하는데 그런 점을 발전시키지 못해 포기했다. 허상을 보는 것을 연기로 커버하면 더 좋겠다고 생각했다.

   
 

극을 보며 전혀 낯설지 않다는 느낌을 받았다. '고전'이 매번 변하고 신선함을 주기 쉽지 않은데 이 시대에 어떤 점을 이야기하고 싶었고, 연기하며 어떤 것에 신경을 썼는지.

ㄴ 손진환: 작년보다 생각이 많아진 것 같다. 윌리라는 인물은 그렇게 대단한 인물이 아니다. 대사에도 있지만 큰돈을 벌지도, 신문에 난 적도 없다. 냉철한 이성으로 문제를 해결하지도 못하고 독선적이고 고집 세고, 정의롭지 않은 인물이다. 어떤 단면만 보면 우리의 가족 중에도 겹치는 부분이 있는 사람이다. 저는 윌리가 자기만의 방식으로 가족을 지키려고 하고 끊임없이 노력하는데 그런 모습이 보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ㄴ 예수정: 낯설지 않았다는 말처럼 저도 대본 연습하면서 그랬다. 한 사람이 어떤 공동체에 속해서 그 공동체를 위해 모든 것을 걸고 생명까지 거는 게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우리의 아버지들. 평생 성실하게 일했는데도 생명까지 팔아야 하는 사회적인 여건. 그런 것들이 낯설지 않고 우리에게 익숙한 환경 같다. 그래서 그런 점을 잘 따라가려고 했다.

ㄴ 이승주: 제 개인적으론 아서 밀러가 가족의 분열을 통해 사회 전체를 비판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말씀하신 대로 사회의 모순도 작품에서 볼 수 있고, 인물의 뒤틀린 감정 등을 통해 큰 사회의 문제를 드러내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것들이 선명하고 극명하게 드러나려면 저희는 각각 맡은 인물로서 살아 있게 연기하려고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 믿고 있다.

ㄴ 박용우: 작품의 여성관 이런 것이 지금 시대와 안 맞는 부분도 많이 있긴 한데 근본적인 면에선 많이 달라지지 않은 것 같다. 가족들끼리 서로에게 진실을 보이려 하지 않고 덮고, 무관심하고, 폭력적이기까지 하다. 이런 가족의 모습이 나오는데 이게 사람들이 나쁜 게 아니라 이렇게 될 수밖에 없게 만든 사회가 여전히 유효하지 않나 싶다. 그렇기에 우리가 작업하면서도 먼저 이야기에 공감이 되더라.

ㄴ 한태숙 연출: 작년에 이어 올해에도 현실을 이야기하기도 하지만 영혼을 사로잡히지 않으려고 몸부림치는 그것이 인생에 대한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저항하려고 윌리도 사투를 벌이지만 결국 자신의 영혼을 사로잡히는 비극이 상당히 절실하게 왔고, 그게 지금 시대에 잘 맞는다고 생각이 들었다. 도시의 공실률을 보면 뭐랄까 흠칫하기도 하다. 그게 바로 우리에게 닥친 현실인데 저는 이 작품을 보고 나서 더 비극에 대한 정서가 깊어진다 해도 내가 거기까지 가지 않았다고 하는 위안을 얻는 그런 작품이었으면 한다.

ㄴ 강태경 드라마터그: 원래 원작이 발표된 시기가 미국에선 오히려 물질적인 풍요, 정신적인 안락 등이 전후 미국 사회의 융성한 흐름 속에서 발표됐다. 사람들은 모두 소위 '해피엔딩'을 꿈꾸는 시대에 아서 밀러라는 사회의 양심을 꿰뚫어 보는 작가가 암울한 사회의 단면을 제시해서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우리는 조금 다른 것 같다. 우리 사회가 가고 있는 길이 뭔가 그늘지고 어두운 그런 느낌이 팽배한 시기에 연출 선생님 말씀대로 그렇다고 해서 하나의 도피처럼 예술, 문화를 통해 현실을 외면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런 현실의 깊은 어둠을 투시하자. 통찰하자. 그런 차원에서 작년 이 작품이 처음 기획됐을 때도 이런 마음으로 준비했다.

   
 

지금의 현실이 이 작품에 너무 맞아 떨어지는 상황인데 이를 통해 관객에게 희망적이거나 긍정적인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했는지 궁금하다.

ㄴ 한태숙 연출: 그렇게 위로하려는 건 아니고 오히려 피하고 싶었고, 깊은 상실감을 느끼고 끝까지 아프고 바닥까지 훑어내리는 잔인함. 그렇지만 자기가 처한 현실, 가족의 따듯함을 느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객석에선 울지 않더라도 극장을 나와서 한 정거장 걸어서 차를 타고 가셨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생각이 다른 부분이 있겠지만, 그런 의도로 작업도, 시청각적 효과도 하나의 톤으로 만들려고 했다.

   
 

마지막 장면에서 '린다'가 어떤 해방감을 느꼈을지 궁금하다.

ㄴ 예수정: 그것이 해방감이라… 진정한 해방감이 아니라 누구나 빚을 지고 살지 않나. 그런데 빚을 다 갚은 해방감을 남편에게 꼭 전하고 싶었다. 죽은 남편에게. 평생 해방감을 못 느끼고 산 남편. 그렇게 힘들게 평생 빚을 갚느라 산다. 그런 마음이 내심 있었다. 남편을 향한 러브레터였다(웃음).

   
 

윌리의 분열이 아닌 아들에게 집중했다고 밝혔는데 극을 보니 비프가 예민해졌다는 느낌이 들었다. 씬이나 대사에서 다듬어진 면이 있는지. 서로를 보는 시각에서 인식이나 변화가 있었는지.

ㄴ 이승주: 관계를 중시한 해석으로 초연에 접근을 많이 했다. 아버지와의 관계. 그 속에서 답을 찾으려고 애썼다. 그런데 이번 작품은 비프 개인으로서, 한 젊은 청춘. 이 무너지고 좌절하고 고통받는 청춘이 가진 사고와 생각에 대해 깊게 들어가려고 노력했다. 그게 어느 씬에선 좀 더 날카롭거나 시니컬하게 보일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그러나 없던 것을 굳이 만들려고 하진 않았다. 한(태숙) 선생님이 제게 말씀해주신 건 좀 더 진실하고 처절하게 호흡하고 연기해주면 좋겠다고 하셨다. 직접 이렇게 말씀하신 건 아니지만, 그 인물의 고통과 좌절 이런 것들이 좀 더 선명하게 드러나지 않을까 생각했다.

ㄴ 박용우: 이게 저희가 원작을 해체해서 아들을 주인공으로 만들고 그런 작품은 아니고 위대한 세일즈맨의 죽음이고 저희는 아들들인데 원하시는 답변일지 모르겠지만, 저는 하면서 한태숙 선생님이랑 이야기하면서 달랐다고 생각한 건 초연 때는 지금보다 좀 더 가족들 안에서 분위기 좋게 만들려고 하고 밝게 했는데 이번엔 뒤에서 상황을 지켜보고 시니컬하고, 야비하고 현실적이고. 그런 식으로 방향을 잡았다. 속으로 형 우습게 알고 그런 와중에 형에 대한 컴플렉스나 어릴 때 사랑받지 못한 결핍 같은 게 좀 더 같이 들어가려면 제가 앞에 나서서 밝고 까불대는 것보다 해피의 소외감이 드러나지 않을까 하고 연기했다.

ㄴ 한태숙 연출: 대사를 첨가하거나 삭제한 부분은 없다. 오히려 비프에겐 작년에 편안하게 지나갔던 대사들을 소외의 감정을 더 싣게 하고 그게 아버지랑 부딪혀 육탄전까지 이르게 하는 감정의 고양. 그런 부분들이 비프로서 어떤 표면화시켰고 해피는 작년보다 어떤 의미로 인간적인 느낌. 많이 볼 수 있는 지금의 젊은이가 아닌가 싶게 다가갔다. 뭐를 더 집어넣는 것보다 정서가 좋게 돼서 날이 섰다는 부분이 관객들에게 다가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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