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극단의 김광보 예술감독 헨리크 입센 원작 김미혜 번역 고연옥 각색 김광보 연출의 왕위주장자들

[글] 문화뉴스 박정기 (한국희곡창작워크숍 대표)
pjg5134@mhns.co.kr 한국을 대표하는 관록의 공연평론가이자 극작가·연출가.

[문화뉴스 MHN 박정기] 헨리크 요한 입센(Henrik Johan Ibsen, 1828~1906)은 노르웨이의 극작가이자 시인이다. 노르웨이를 대표하는 역사상 가장 중요한 극작가 중의 하나로, 근대 시민극 및 현대의 현실주의극을 세우는 데 공헌하였다. 따라서 그를 "현대극의 아버지"라고 부르기도 한다.

20세의 겨울 첫 작품 <카틸리나>를 썼다. 고대 로마의 혁명아 카틸리나에서 소재를 구한 시극(詩劇)으로서 1848년의 프랑스 혁명에 자극을 받았음은 확실하나 작품의 테마는 오히려 빛과 어둠을 상징하는 두 여성에게 동시에 마음이 끌리는 주인공의 내적 갈등이라고 하겠다.

같은 해에 쓴 1막물 <전사의 무덤>은 크리스티아니아에서 공연되었다. 의학에 뜻을 두고 크리스티아니아의 저명한 예비학교에 다녔으나 학업을 중도에서 포기하고 만다. 수도에서 입센은 갖가지 저널리스틱한 활동에 종사했으며 조합운동에도 관계하여 자칫하면 검거될 번 하기도 했다. 이후 입센은 정치적 실제 활동에는 참여하려고 하지 않았다.

1851년 가을, 서해안의 중심도시인 베르겐에서 새로 생겨난 국민극장의 무대감독 겸 극작가로 초빙되었다. 이 시기의 대표작으로 <외스트로트의 잉게르 부인(Fru Inger til Østeraad, 1854)> <솔하우그의 축제(Gildet paa Solhoug, 1855)> <헬게란의 용사들(Hærmændene paa Helgeland, 1857)>을 썼다. 1857년, 입센은 크리스티아니아의 노르웨이 극장으로 옮겨 <헬겔란트의 해적(1858)> <사랑의 희극(Kjærlighedens Komedie, 1862)>을 발표 공연했다.

1862년 노르웨이 극장은 경영난으로 폐쇄 당하였고 입센은 1864년 4월에 조국을 떠나 이탈리아로 향했다. 노르웨이를 떠나기 전에 쓴 <왕위주장자들(Kongs-Emnerne, 1863)>은 셰익스피어 적 수법이 엿보이는 역사극으로서 그때까지의 입센 작품 가운데 최고 걸작이다.

이탈리아에서의 입센의 생활은 이루 말할 수 없이 빈곤했다. 그러나 1965년에 써서 이듬해 덴마크에서 출판된 극시 <브랜드>는 덴마크-프로이센 전쟁에 즈음한 노르웨이 국민의 배신행위를 비난한 것이라 하여 청년층을 매혹시켜 순식간에 여러 판을 거듭했다. 이듬해 67년에 <브랜드>와 한 쌍을 이루는 <페르귄트>를 발표했다. 이 작품이야말로 노르웨이 문학의 최고작품으로 평가되고 있다.

69년에는 <청년동맹(靑年同盟)> 1877년에 <사회의 기둥(Samfundets Støtter, 1877>을 발표했다. <인형의 집(Et Dukkehjem, 1879)>, <유령(Gengangere, 1881)>, <민중의 적(En Folkefiende, 1882)>을 발표 공연했다. <물오리(Vildanden, 1884)> <로스메르스흘름>(1886) <바다의 부인(夫人)>(1888), <헤더 가블러>(1890)를 발표공연한 후 1891년에 입센은 오랜 외국생활을 청산하고 조국으로 돌아왔다. 귀향작 <건축가 솔네스>(1892)는 이미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노(老)예술가의 만년에 볼 수 있는 일련의 자기고백이다.

이후 입센은 <조그만 에이올프>(1894), <욘 가브리엘 보르크만>(1896), 그리고 마지막 작품인 <우리들 사자(死者)가 눈뜰 때>(1899)를 발표한다. 그리고 1906년 5월 23일, 입센은 세상을 떠났으며 그의 장례는 국장으로 치러졌다.

번역을 한 김미혜는 고려대학교영문학과를 졸업하고 Austria Vienna 대학교에서 연극학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한양대학교 예술대학 연극학과 교수를 역임했다. 주요저서로는 '대본분석', '20세기 위대한 연극인들'이 있으며 연극학의 유일한 학술지 한국연극학에 다수의 논문을 발표한 바 있다. 또한 많은 대학 연극학과에서 교재로 사용할 수 있는 외국의 연극 이론서들을 다수 번역하기도 하였다.

그녀는 제4회 대산문학상 번역부분에서 수상하였고 어려운 외국의 대작 연극의 프로덕션에서 드라마 투르그로 활약하기도 하였다. 국제극예술협회 사무국장, 한국문화예술진흥원 전문위원, 한국연극학회 회장 등을 역임하였고 현재 <한국연극> 편집주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책임심의관, 국립극장 운영, 자문, 심의, 평가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각색을 한 고연옥(1971~)은 동아대학교 식품영양학과를 졸업하고, 1994년 부산MBC아동문학대상 소년소설 부문에 당선되어 동화작가로 활동하였으며, 1996년 부산일보 신춘문예에 희곡 <꿈이라면 좋았겠지>가 당선되어 희곡작가로 첫 발을 내딛었다.

시사월간지의 기자로, 방송국 시사프로 구성작가로 일했다. 2000년 결혼 후 서울로 이사하였고, 2001년 청송보호감호소의 수형자들의 이야기를 통해 인간의 자유의지에 대해 다룬 <인류 최초의 키스>가 극단 청우 김광보 연출로 공연되어 올해의 연극 베스트 3, 올해의 우수희곡에 선정되었다.2003년, 한 독거노인의 죽음을 통해 물질만능시대의 단면과 죽음의 의미를 짚은 <웃어라 무덤아>가 역시 극단 청우 김광보 연출로 공연되어 올해의 예술상 연극부문 우수상을 수상했으며, 2003 대산창작기금 희곡부문에 선정되었다.

2006년에는 극단 배우세상, 박근형 연출로, 제도권에서 일탈해 있다는 이유로 강간치사사건의 주범이 된 소년들의 이야기 <일주일>이, 극단 제이티컬쳐, 문삼화 연출로 한 하급장교를 통해 계급과 구조 속에 자아를 상실해 가는 군대 구성원들에 대한 <백중사 이야기>가 공연되었다. 그리하여 <인류 최초의 키스>, <일주일>, <백중사 이야기> 세 작품에 대해 '사회극 삼부작', 혹은 '남성 삼부작'이라고 회자되었다.

2007년, 현대사회 공간의 이질성과 위험성을 다룬 <발자국 안에서>가 극단 청우, 김광보 연출로 서울연극제에 출품되어 대상, 연출상, 희곡상을 수상하였고, 그 해 고연옥의 첫 희곡집 <인류 최초의 키스>(연극과 인간)가 출판되었다.

 

연출가 김광보는 서울시극단 단장이자 예술감독이다. 그가 연극을 만드는 방식이란 희곡을 성실하게 섬기면서 그 의미를 무대에 드러내는 것에 최종적인 목적을 두고 있다. 그는 텍스트를 꼼꼼히 읽으며 그 안의 인간들의 생각과 행위를 좇아 삶의 모습을 그려내는 데에 초점을 맞춘다. 그러기에 그의 무대에는 언제나 배우가 중심에 있어 왔다.

희곡 텍스트에 대한 의미 부여와 작품에 따라 자유자재로 변모하는 전업 연출가의 자유로움이 그의 연출 방식을 일괄할 수 있는 설명인 것 같다. 그래서 그는 사실 비슷한 연배의 어느 연출가보다도 부피감 있는 굵직한 많은 작품들을 만나왔고 끊임없는 변화를 이어가고 있다.

흔히들 세간의 평들은 김광보의 무대에서 상업성과 예술성을 동시에 확인한다. 그의 무대는 정련된 배우들에게서 발산되는 집중된 에너지를 토대로 하며 연기와 조명을 철저히 통제하고 조정하며 자신의 의도대로 무대를 만들어 간다. 거기에 관객을 넘겨보며 그들마저도 자신의 의도로 끌어당길 수 있는 시야까지 갖춘 상태이다. 그의 이러한 태도는 희곡을 진지하게 섬기되 거기에 결박당하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명으로 읽힌다. 14여 년의 연출 경력이 만들어낸 희곡의 의미와 관객의 재미를 동시에 쫓는 그만의 전략이다.

1996 한국연극협회 선정 96년을 이끌어갈 젊은 연극인 연출 분야 1위, 1996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문화체육부), 1998 한국연극협회 '올해의 연극 베스트5' 신인 연출상 <뙤약볕>, 1999 한국일보사 백상예술대상 신인 연출상 <뙤약볕>, 2000 한국연극협회 '올해의 연극 베스트5' <오이디푸스, 그것은 인간>, 2001 연극평론가협회 '올해의 연극 베스트3' <인류 최초의 키스>, 2004 포항 바다국제연극제 작품상, 연출상 <웃어라 무덤아>, 2004 한국문화예술진흥원 '올해의 예술상' - 연극부문 우수상 <웃어라 무덤아>, 2007 일본 삿포로 씨어터 페스티벌 비경연부문 심사위원 특별상 <발자국 안에서>, 2007 서울연극제 대상, 연출상 <발자국 안에서>, 2007 삿포로씨어터페스티벌 심사위원 특별상 수상 (발자국 안에서), 2008 일본 타이니 알리스 페스티벌 특별상 <발자국 안에서>, 2009 일본 삿포로 씨어터 페스티벌 연출상 <게와 무언가>, 2011 월간 한국연극 '올해의 연극 베스트7' <주인이 오셨다>, 2011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표창, 2012 제 49회 동아연극상 - 작품상, 연출상 <그게 아닌데>, 2012 대한민국연극대상 - 대상, 연출상 <그게 아닌데>, 2012 연극평론가협회 - 올해의 연극 베스트3 <그게 아닌데>, 2012 히서 연극상 - 올해의 연극인상, 2012 월간 한국연극 '올해의 연극 베스트7' <그게 아닌데>, 2014 PAF 예술상 - 연극연출상 <사회의 기둥들>, 2014 제 51회 동아연극상 - 작품상, 연출상 <줄리어스 시저>, 2016 이해랑 연극상 등을 수상한 한국연극의 주춧돌이다.

무대는 천정에 커다란 나무를 뿌리 채 뽑아 매단 형태의 조형물이 자리를 잡았다. 무대는 성곽 안으로 설정이 되고, 삼면 벽에 여러 개의 등퇴장 로를 만들어 놓았다. 출연자 전원이 등퇴장 로의 문을 열고 닫으며 출입을 하도록 연출이 되고, 환자이동의자나, 장검 어린이 인형이 대소도구로 사용이 된다. 성가곡이라든가 군중들의 함성은 음향효과로 처리된다. 커다란 나무뿌리에 비춘 조명의 변화로 극 분위기를 100% 상승시키는 효과를 발휘한다.

연극은 도입에 출연자들이 떼 지어 무대를 겹겹이 가로로 보행하는 장면에서 시작된다. 중세 13세기가 시대적 배경이지만, 의상은 현대로 설정이 되기에 마치 현재 놀웨이가 아닌 어느 특정국가에서 벌어진 정권다툼처럼 느껴진다. 가톨릭을 신봉하는 국가라서 주교가 등장하지만, 의상이나 분장은 대주교 차림이다.

서로 왕통을 잇는 핏줄을 계승 했노라며, 젊은 왕과 왕좌를 노리는 나이든 대신, 그리고 주교까지 적통임을 강조하고, 왕권의 상징인 옥새가 등장을 한다. 반목과 갈등 그리고 왕권다툼을 해소하기 위해, 젊은 왕은 나이든 대신의 딸을 왕비로 맞이한다. 그러나 왕권탈취를 위한 야욕은 나이가 들수록 더욱 치열해지고, 주교까지 합세해 탈취를 부추긴다.

하지만 나이든 대신은 왕통을 이을 아들이 없기에 본격적인 행보를 펼치지 못하지만, 극의 후반에 첫사랑의 여인에게서 태어난 장성한 아들이 등장함으로써 대신은 왕권 탈취를 향한 본격적인 행보를 펼치게 된다. 무대는 젊은 왕과 나이든 대신의 병사들이 대결하는 장면이 관객의 시선을 끌어들이고, 모든 출연자들의 보행은 물결을 이루고 파도를 형성하고 또 그 파고가 높아진다.

초반부에는 왕권을 향한 이해관계자들끼리만 합세 하는 듯하더니, 차츰 민중들의 봉기로 이어지고, 급기야 민중들의 편을 나눈 전투가 벌어진다. 나이든 대신의 아들이 등장한 후에는 무모하다시피 용맹한 대신의 아들에 의해 전쟁이 대신의 승리의 길로 방향을 잡은 듯 보이기도 하지만, 그러나 주교의 영면이후 민심의 동향이 대신에게서 떠나고 있음을 어쩌랴? 대단원에서 전세는 젊은 왕의 승리로 끝이 나면서 대신과 그의 아들은 죽음의 길을 선택하는 장면에서 연극은 끝이 난다.

 

이창직, 강신구, 최나라, 이지연, 유연수, 김 현, 유성주, 문호진, 최우성, 김주헌, 이정주, 박진호, 호효훈, 장석환, 정유진, 유원준, 한정훈, 박 현, 송종현, 강주희, 정대곤, 신정웅, 김유민 등 출연자 전원의 성격창출이 여느 극보다 출중하고, 호연과 열연이 관객을 극에 몰입시키는 역할을 하고 관객으로부터 우레와 같은 갈채를 이끌어 낸다.

무대미술 박동우, 무대제작 소앤아트, 조명디자인 김학철, 조명감독 설정식, 음악 장한솔, 의상디자인 홍문기, 분장디자인 이동민, 소품디자인 정윤정, 안무 금배섭, 무술 이국호, 음향디자인 김경민, 무대감독 장연희, 조연출 김하늬 이지윤, 제작감독 이재진, 기획 최상윤, 홍보 행정 김수진, 그래픽 디자인 원승락 방정인, 사진 윤문성, 홍보스팟 박영민, 후원 노르웨이 대사관 등 제작진과 스텝진 그리고 후원진의 열정과 노력이 일치되어, 서울시극단의 김광보 예술감독, 헨리크 입센(Henrik Ibsen) 원작, 김미혜 번역, 고연옥 각색, 김광보 연출의 <왕위주장자들(Kongs Emnerne)>을 연출가와 출연자의 기량이 잘 드러나, 남녀노소 누구나 보아도 좋을 걸작연극으로 탄생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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