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뉴스 MHN 석재현 기자] 어느덧 봄 내음이 만개하는 4월이 되었다. 얼음장 같던 날씨는 어느새 빗장을 풀었다. 평일 오전임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사람이 봄꽃 냄새를 맡으면서 서울 거리를 이곳저곳 누비고 있다. 이런 화사한 봄에 어울리는 여배우, 천우희의 새 영화 '어느날'이 지난 5일에 개봉했다.

'어느날'은 아내가 죽은 후 삶의 희망을 잃고 살아가던 보험회사 과장 '강수(김남길)'가 교통사고로 혼수상태에 빠진 '미소(천우희)'의 사건을 맡았는데, '강수' 눈에만 '미소'의 영혼이 보이면서 두 사람의 공유가 시작되는 이야기다.

사실 그동안 천우희가 전작들에서 대부분 보여주었던 강렬하고 어두운 이미지를 실제 모습으로 인식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그래서 전작들과 달리 비교적 밝고 긍정적인 '미소' 역을 맡는 것을 보고 이제야 안심하는 반응과 '곡성'에 이어 "또 귀신 역할이냐"며 걱정하는 반응으로 나뉘고 있다. 천우희가 들려주는 '어느날', 그리고 영화에서 비친 모습과 다른 그의 실제 모습을 끄집어내려 한다.

'곡성'에 이어 이번에도 또 영혼 역할을 맡았는데?
ㄴ지난해 '어느날'을 촬영하던 와중에 '곡성'이 개봉했다. 그래서 '어느날' 촬영현장에서도 현장 스텝들이 나에게 "귀신이다!"라고 놀리기도 했다. (웃음) 그래도 '어느날'에서는 '곡성' 때와는 다르다.

'어느날'의 영화 제목이 원래 '마이엔젤'이었는데, 바뀌게 된 계기는?
ㄴ영화를 접한 분들이라면 '마이엔젤'이라는 제목이 적합하다는 것을 공감할 것이고, 나 또한 촬영 내내 '마이엔젤'이라는 이름으로 불렀기에 이게 더 익숙한 게 사실이다. 하지만 촬영 후반부에 '마이엔젤'이라는 제목이 주는 느낌이 뭔가 직역한 듯한 느낌을 주는 것 같았고, 나의 주변 반응 또한 '마이엔젤'이라는 제목이 크게 와 닿지 않았다고 말했고 '마이엔젤'이라는 제목에 대한 낯간지러움이 있어 감독님께 이 제목으로 갈 것인지 계속 물어보기도 했다. 그래서 어울리는 제목을 선정하기 위해 여러 가지 의견들이 오고 간 결과, '어느날'로 결정되었다. 와 닿는 느낌이 '마이엔젤'에 비해 떨어질 수도 있지만, 일단 주변 반응은 '어느날'이라는 제목이 훨씬 더 낫다고 말해주었다.

'어느날'을 처음에 거절했다가 다시 하겠다고 밝힌 바 있는데, 구체적으로 알려줄 수 있는가?
ㄴ작품을 고를 때, 처음 읽었을 당시 나에게 전해지는 느낌을 가장 중요시하게 여긴다. 전작들과 달리, 이번 '어느날'은 사실 조금 겁도 났었고, 명확하게 뭔가 와 닿지 않고 캐릭터에 대한 이미지가 정형화된 느낌이 있었다. 그래서 조금 불안함과 함께 주저하기도 했었는데, 감독님과 남길 오빠를 만나 영화에 관해 이야기하면서 어느 정도 해소되었다. 감독님과 남길 오빠와 같이 만들어가면 좀 더 나은 결과를 만들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윤기 감독과 김남길이 어떤 이야기를 해주었길래?
ㄴ일단 감독님과 만나 이야기한 후, 돌아가서 결정하려고 했다. 그런데 감독님은 당연하게 "그냥 하는 거지?" 라고 이미 결정하신 듯했다. 반면, 남길 오빠는 우리나라의 영화 현실을 이야기 꺼내면서 빠져나가지 못하게 했다. 그중 중간다리 역할을 해야 하는 '허리 영화'가 요즘 없다며 한탄하는 모습이 내 의지와 사명감을 불타오르게 했다. 두 사람 말만 듣고 정한 건 아니었다. 이 영화를 하고 싶은 마음도 컸고, '미소'라는 캐릭터를 좀 더 나에게 맞게 바꿔보자는 생각도 있어서 결정했다.

'허리 영화'를 해본 소감은 어떤가? '어느날'은 개봉하기도 전에 예매율 1위도 달성한 소감은?
ㄴ참 다행이다. 그러면서도 항상 고민한다. 배우로서 좋은 작품을 연기하고 싶으면서, 한편으로는 대중예술을 이끄는 사람으로서 다양한 작품을 보여줘야 한다는 생각도 하게 된다. 그래서 완성도를 우선시한다는 신념을 지켜야 할지, 아니면 조금 부족한 면은 있지만, 대중들에게 좋아해 달라 혹은 관심 가져달라고 어필해야 하는 고민이 항상 있다. 나뿐만 아니라 모든 배우가 작품 결정이나 연기할 때 갖는 고충일 것이다.

   
▲ '어느날' 스틸컷

첫 시각장애인 역이었고, 게다가 보이기까지 하는 1인 2역이다보니 감정표현이 쉽지 않았을텐데 어떻게 준비했나?
ㄴ시각장애라는 게 물론 조심스럽게 표현한 부분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이 특징에 크게 의미부여를 하고 싶진 않았다. 그게 오히려 차별로 보일 수도 있고, 연기를 통해 흉내 낸다는 생각이 들고 싶게 하지 않기 위해 열심히 분석하고 준비했다. 연기를 준비하는 데 도움 주셨던 분과 많은 이야기를 하면서 느낀 건, 시각장애인이 남들과 달리 신체적 특징은 있어도 성격적인 면에서 일반인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다만, 내가 생각했던 건 시각장애인이었다가 세상을 봤을 때 느낌을 그 영화 속에 담아보고 싶었으나 쉽지 않았다. 시나리오에 뒤져봐도 구체적으로 언급되지 않았고, 흘러가야만 했던 부분도 있으며, 해당 컷 안에서 조금 더 얹으려고 하기엔 주어진 시간이 짧아서 과감하게 생략했던 것도 있다. 그래서 세부묘사에 아쉬움도 남아있다. '미소'가 자신의 두 눈으로 세상을 봤을 때 첫 느낌이나 외출했을 때 모습이 '미소'의 시각이나 묘사가 한 컷이라도 좀 더 들어가면 좋지 않았을까 싶었다.

'미소'가 천우희가 맡았던 다른 캐릭터에 비해 해맑았지만, 한편으로는 어두움 또한 존재했다. '미소'같이 입체적인 캐릭터에 더 끌리는 건지?
ㄴ꼭 그런 건 아니다. 다만, 내면적인 고뇌나 아픔이 있는 역할이 많이 들어오는 것 같다. 그동안 내가 맡아왔던 모든 인물이 입체적이었고, 마냥 밝거나 어두운 면 단편적으로 보여줬던 건 아니었다. 여태껏 맡아왔던 역할들이 여러 가지 모습들이 있다 보니 "이번에도 밝은 역할을 하면서도 밝지 않잖아!"라고 하시는 분들이 꽤 있다. (웃음)

   
▲ '어느날' 스틸컷

영화 속 등장하는 의상(하늘색 니트 원피스 의상)이 상당히 잘 어울렸다. 누구 아이디어인가?
ㄴ의상 선정에 고민이 꽤 많았다. 영혼인 '미소'가 계속 같은 모습을 보여주어야 했는데, 환자복을 입을 것인지 아니면 사고 당시의 옷을 입을지 선택하는 데에도 꽤 오래 걸렸다. 감독님은 '미소'가 영혼인데, 밖에 외출했을 때 사람들로부터 이질감이 없길 원하셨다. 만약 '미소'가 환자복을 입고 있었다면 누가 봐도 동떨어진 세계의 인물처럼 보이니까 최종적으로 결정된 게 지금 의상이었다. 환자복도 나쁘진 않겠지만, '미소'의 느낌을 표현하는 데 지금 의상이 가장 적합하지 않았나 싶다.

'미소'가 실제 본인 모습과 비슷한 점이 있다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모습이었는지?
ㄴ구체적으로 이야기한다면, 내가 평소에 한 반응들이 '미소'에 녹아있어서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이전에 보여줬던 캐릭터들은 어떤 목적이 있거나 이 이야기를 전달하는 사람으로서 꼭 보여야 하는 감정들을 전달해야 하기 때문에 내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반면, 이번에는 조금 더 편한 면도 있었다. 예를 들면 '강수'와 만나는 부분에서 드러났던 리액션 등에서 애드립도 많았기에 나의 실제 모습이 많이 반영되었다. '강수'와 차 안에서 결혼식 가던 장면이나 수족관, 병원 안에서도 좀 더 자유롭게 연기했기에 실제 모습이 나왔던 것 같다.

   
 

그래서 그런지 극 중 유머코드가 자연스럽게 들어있던 것 같다.
ㄴ관객들에게 공개될 때에는 어느 정도 수위 조절이 된 상태였다. 처음 크랭크인 한 날이 차 안에서 있는 장면을 찍었는데, 대본 없이 전부 애드립이었고 감독님이 알아서 하라고 하셨다. 애드립으로 촬영하다 보니 말도 안 되게 웃긴 것도 있었고, 촬영이 지속될수록 누가 이기나 하듯이 촬영했다. 촬영 중에 장난도 쳤지만 '미소' 캐릭터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촬영본을 보시더니 감독님이 "이거 이래도 되나"고 고민하기도 하셨다.

[문화 人] '어느날' 천우희 "'믿고 보는 배우' 타이틀에 대해…" ② 에서 계속 이어집니다.

syrano@mhns.co.kr 사진=천우희ⓒ문화뉴스 MHN 권혁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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