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뉴스 MHN 양미르 기자] [문화 人] 박장렬 연출 "서울연극제 사태 과잉대응? 이해할 수 없었다" ① 에서 이어집니다.

지난겨울, 광화문에선 많은 연극인이 힘을 합쳤다. '블랙텐트'와 '광화문 캠핑촌' 등 광화문을 보며 어떤 생각이 들었나?
ㄴ 먼저 건강한 긴장이었다. 크게 두 갈래의 입장이 모였는데, 음과 양이 있듯이 그 존재를 부정할 수 없다. '블랙텐트' 역시 건강한 긴장을 위해 만들어졌다. 반대하는 사람이 있는 것도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예술은 정답이 없다고 가르친다. 정답이 없다는 것은 틀리다고 이야기할 수 없다. 다른 것을 인정하면서 대화가 시작될 수 있고, 테이블에 앉아 이야기할 수 있다.

틀렸다고 시작하면 좋아할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건강한 보수와 진보가 모두 필요하다. 그들이 다름을 인정하고, 의식을 확장하는 것을 예술이 해야 한다고 본다. 정치는 불가능하다. 상대를 인정하지 않고 시작하기 때문이다. 예술교육 역시 정답이 없다. 세상에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이 있고, 그 다름을 폭넓은 시각에서 이해시키고 맛보게 하는 것이 예술이다.

예술가들이 어떤 주제라도 무대 위에 올려 자유롭게 이야기하는 게 예술의 힘이라는 걸 정확히 보여준다. 그걸 억압한 블랙리스트가 이슈화된 것도 막연하지만 "이것은 옳지 않다"는 인식 덕분이었다. 이번에 확인이 된 사건이라 생각하고, 앞으로 우리가 잘 해야 한다. 이 세상에 왜 다른 것이 존재할 수밖에 없는지 작품으로 목소리를 내고, 예술가들이 끊임없이 생각을 내는 것이 예술의 사회적 목적이라고 본다.
 

 

최근 서울연극협회가 진행한 1차 시국 토론회에선 연극 교육의 중요성을 설명한 바 있다. 연극 교육이 필요한 이유는?
ㄴ 제도권 교육은 어쩔 수 없이 정답을 찾아가는 교육으로 진행된다. 예술교육은 정답이 아닌 모두가 맞을 수도, 틀릴 수도 있는, 답이 없는 교육이다. 삶에서 선택을 해야 할 때가 가장 어렵다. 인생을 살다 보면, 이것이 맞나, 저것이 맞나 하는 갈림길에 서게 된다. 그럴 때는 좋은 선택을 해야지 인생에 후회가 없다. 그런 힘을 길러주는 게 예술교육이다. 타자가 설정해 놓은 답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답을 찾는 주체적인 교육이 예술교육이라, 어릴 때부터 필요하다.

초등학교 때 나름 인성교육을 시키고 하지만, 중·고등학교에 들어가면 완전히 중단된다. 대학교에 가면 자유로울까? 졸업하면 직장에 가서 회사가 챙겨놓은 답을 찾아 쫓아간다. 누군가가 설정한 답을 찾아가는 것이 지금의 공교육이다. 그걸 양과 음이라고 치면, 반대의 음과 양이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더운 지방에서 비도 많이 오면 얼마나 습하고 살기 힘들겠는가? 사막 같은 곳은 비가 오지 않으니 그늘에 들어가면 살만하다. 그런 세상의 음과 양이 있으므로, 예술교육이 중요하다.

결국, 답이 없다는 것은 답을 찾기 위해 대화를 해야 하는 것을 의미한다. 학교에서 선생과 학생의 대화가 필요 없어진 것은 답이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대화를 해야 하는 것이 민주주의의 기본이다. 나와 생각이 다르다는걸 깨닫는 게 해주는 것이 민주주의 교육 같다. 세상의 갈림길에서 자기가 주체적으로 삶을 살 수 있도록 해주는 가장 기본적인 베이스를 예술이 가르치고 있다. 어린 시절 예술을 배우는 것이 나중 인생에서 도움이 되는지 알고 있는데 안 할 뿐이다. 스티브 잡스, 마크 저커버그와 같은 사람들의 자유로운 영혼과 사고는 정답을 쫓아갔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 공연예술인노동조합 창립식 후 참석한 연극인들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 공연예술인노조

공연예술인노조는 어떻게 준비를 하게 됐나?
ㄴ 공연예술인노동조합에 대한 생각은 2014년 봄부터 있었다. 서울연극협회장으로 관계자를 만나면서 느낀 점들이 많았다. 대학로의 현장에서 일하는 연극인들의 80% 이상이 힘들게 살고 있다. 그들과 회원들을 위한 주체적인 일을 하는 것이 서울연극협회가 해야 할 일 같았다. 막말로 생활비를 벌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하는데, 아르바이트하지 않도록 하고 싶었다. 그런데 구체적인 소득이 없었다. 내가 노동자라면, 내 삶의 기본 소득인 최저임금을 이야기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노동조합이 필요했다.

좀 더 구체적인 이유로, 지금 수많은 아이가 대학에서 졸업한 후에 현장에 뛰어든다. 학교에서 그들에게 "현장에 나가면 얼마를 받아야 해"라고 말을 못한다. 최저임금이 정해져 있지 않기 때문이다. 시간당 얼마를 받고, 한 달에 얼마를 받는다는 것이 정해져 있지 않아서 교육을 하지 못한다. 애들은 '열정페이'든 뭐가 됐든 간에 착취의 대상이 된다. 그래서 "예술로 버는 돈 따로, 아르바이트로 버는 돈이 따로"가 되고 있다. 아르바이트는 시간당 얼마를 받는지 국가에서 최저시급을 정해줬지만, 예술가로 연극쟁이로 현장에 가서 자기가 얼마를 받아야 하는 지 몰라서 안타까웠다.

2014년쯤에 모 후배한테 이야기를 들었다. 회당 5,000원을 받고 공연한다는 내용이었다. 두 달이 지나고 나면 15,000원을 받는다고 했다. 시간당 5,000원도 아니고, 회당 5,000원이어서 충격을 받았다. 문제는 이게 옳지 않다고 이야기할 법적 근거도 없었다. 정해져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배우들이 상업극을 계약할 때, 노동자가 아니라 프리랜서 개념의 사업자로 계약한다. 물론 자본주의 사회에서 어떤 물건을 1원에 주고 1,000억원에 팔 수도 있다. 그러나 배우들이 회당 5,000원을 받는 것은 충격이었고, 그걸 받아들이고 있는 것도 충격이었다. 배우의 기본 생태계가 위험해 보였다.

그렇다고 서울연극협회에서 나서서 "당신 왜 5,000원만 주느냐"고 할 수도 없다. 수익구조도 오픈이 되지 않은 상황이라 잘 모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노조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서울연극제 사태가 터지는 바람에 하질 못했다. 그러다 서울연극협회장 임기를 마치고, 광화문의 상황을 보면서 다시 생각이 떠올랐다. 이런 블랙리스트 건이 터졌는데, 왜 우리는 대학로에서 하루 정도 파업도 하지 못할까였다. 왜 이 문제 역시 이슈화시키지 못했느냐는 자괴감도 들었다. 모든 국민이 명확하게 인지하고 있는 사태조차 우리는 우리 문제로 목소리를 내지 못했다. 그래서 노조를 만들게 됐다.
 

 

'기초공연예술진흥법'이 제정되어야 한다고 말한 이유도 그 맥락에서 풀이할 수 있을까?
ㄴ 사실 한국연극인복지재단도 최근 들어서야 고백했지만, 검열에 순응했다. 노조였다면 그게 가능했을까? 어용노조가 아닌 이상 절대 불가능한 일이다. 한국예술인복지재단은 안 그랬을까? 정부가 예술가라고 증명을 해줬지만, 서류를 내라고 한 후에 심사한다. 누구는 되는데, 누구는 지원이 되지 않는다. 복지를 위해 만들어졌으면, 모든 예술인에게 복지를 해야지, 왜 선택적 복지를 하고 있는가? 만 65세 국민이 되면 주민등록상 인정을 받아 전철 패스를 주는 사업을 하면서, 예술인은 왜 불가능할까?
 

누군가는 되고, 누군가는 안 되는 이야기를 한국예술인복지재단이 하고 있다. 복지 대상 예술가라고 인정한다면, 인정한 예술가를 줄 세우는 것이 아니라 정확하게 보편적 복지를 해줘야 한다. 나이가 든 것도, 돈이 없는 것도 서러운데, "네가 얼마나 곤란한지 증명하라"고 한 후에 증명했어도, 너는 되고 너는 안 된다고 심사한다. 비슷한 예시로, 저소득층 청소년 생리대 지원 사업이 있다. 사람들의 모멸감을 주고 있는데, 그래서 보편적 복지를 해야 한다. 그렇게 바뀌어야 한다. 쓸데없는 공연 지원 사업이 먼저가 아니다. 평생 예술을 한 원로인 분들에겐 그냥 생활비를 주면 된다.

지금 사람들을 범죄자로 만들고 있는 현실이다. 예술인들에게 3,000만원을 주고 공연을 만들라고 한다. 공연을 한 편 만들려면 인건비 제대로 주면, 최소 6,000만원이 나온다. 나머지 돈은 울며 겨자 먹기로 신청한 후에 돌려막기를 할 수밖에 없다. 그런 현실을 만들고 있는 것은 보기 좋지 않다. 앞서 말한 최저임금제의 경우는 시급 6,470원이 정해져 있지만, 졸업한 애들부터 최저임금을 받는다고 가정해보자. 배우는 1년에 연극 많이 하면 4작품 정도 한다. 연습시간까지 최저임금을 적용해도 1,800만원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그렇게 못하는 사람들이 더 많다.
 

 

'기초공연예술진흥법'으로 돌아가 보면, 한국콘텐츠진흥원이 뮤지컬, 애니메이션, 영화 등을 산업으로 보고 엄청난 지원을 하고 있다. 연극도 상업극처럼 큰 작품은 아니어도, 2달 이상 정도는 해야 흑자가 나올 수 있다. 그 이하로 열리는 공연은 빚만 지지 않겠다는 목적으로 하는 것이다. 국가가 예술을 인정하고, 국가적인 아젠다로 비전을 만드는 것은 분명하다. 그렇다면 예술의 기초가 되는 기초공연예술을 진흥하는 법을 만들어야 한다. 기초인문학과 마찬가지다.

한국콘텐츠진흥원도 법 제정으로 만들어졌고, 한국영화아카데미 역시 영화진흥법을 통해 만들어졌는데, '기초공연예술진흥법' 입법을 통해 지원책과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기초가 사라지고, 전체 문화예술이 잘 될 수 없다. 어렸을 때, 잘 먹고 잘 배워야 하듯이 기초가 들어가고, 소위 말하는 예술가가 대우를 받아야 한다. 물론 뮤지컬이 나쁘다는 게 아니다. 뮤지컬의 장점도 있고 대사 연극의 장점도 다 있다. 우리가 노래만 하거나, 말만 하고 살 순 없지 않은가?

우리가 맛있다고 해도 만날 아이스크림이나 고기를 먹을 수 없는 것과 같다. 지금 대학로엔 연극인을 위한 제대로 된 아카데미나 휴게실도 없다. 연극인들이 저렴하게 밥을 먹을 수 있는 식당조차 없다. 그런 전반적인 것을 담아서 진흥하고 케어할 수 있는 법이 필요하다. 이번 국정농단을 통해서 한국문화예술위원회는 믿을 수 없는 곳이 됐고, 그들에게 기초공연예술을 맡길 순 없다.

[문화 人] 박장렬 연출 "군 의문사 연극, '이등병의 엄마' 대본 보고 먹먹했다" ③ 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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