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뉴스 MHN 양미르 기자] "항변도 했지만, 우리가 나쁜 것이 아니라 옳지 않은 것을 지적하려 했다. 집회 당시에 우리의 의견에 반대한 분들이 있어서 가슴도 아팠다. 이런 일이 생기는 것이 이해할 수 없었다."

3년 전인 2014년, 본지는 박장렬 당시 서울연극협회장을 만나 '서울연극제 대관 탈락'과 관련한 여러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연극인들에게 이 사태가 우리의 위치가 어디인지,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 어떻게 말하고 해야 할지를 각인시켜주는 사태라고 생각한다"고 말한 박장렬 회장의 이야기는 고스란히 투쟁으로 이어졌다.

▶ [문화 人] 박장렬 서울연극협회장, "35년 전통의 서울연극제가 한순간에…아직도 우리는 주인이 아니다"      

2015년 사태가 일단락되고, 서울연극제는 정상운영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 폐쇄조치로 갈등의 골은 깊어져 갔다. 박장렬 전 회장을 비롯한 연극인들이 대극장 앞에서 삭발 퍼포먼스를 진행하기도 했다. 그리고 2016년, '문화계 블랙리스트'에 서울연극협회에 대한 지원을 중단하라는 내용이 실린 것이 확인됐다. 당시 서울연극협회의 수장으로 활동한 박장렬 회장은 당시를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까? 그리고 앞으로 나가야 할 연극계 과제는 무엇일까?

지난 24일, 대학로 아르코예술극장 앞에서 박장렬 연출을 만나 다양한 이야기를 나눴다. '서울연극제 사태'와 '블랙리스트 사태'와 관련한 이야기, 연극 교육이 중요한 이유, 공연예술인노동조합을 만들면서 느낀 다양한 '연극계 적폐'들, 5월 공연을 앞둔 '군 의문사' 연극 '이등병의 엄마' 연출 소감 등을 들어볼 수 있었다.
 

 

서울연극협회 회장 임기를 마친 후, 1년이 흘렀다. 현재 근황을 들려달라.
ㄴ 현재는 조그맣게 한국영상대학교, 세종대학교 평생교육원, 국민대학교 등에서 연극 시간강사를 하고 있다. '극장나무협동조합' 이사장으로 일하고 있고, '연극집단 반' 작품도 개발 준비를 하고 있다. '공연예술인노동조합' 준비를 위해 가장 바쁘게 움직인 것 같다.

2010년 1월부터 2016년 1월까지, 서울연극협회에서 6년의 임기를 보낸 소회를 밝힌다면?
ㄴ 올해까지 7년이 흘렀다. 7년 전에 협회장을 시작할 때와 지금 시기를 보며 대한민국이 역시 '액티브하다'는 걸 느꼈다. 7년 동안 국가, 연극계, 개인적 일까지 모두 '액티브'했다. 부임 초기 당시엔 연극계에서 20대 후반부터 40대까지 자기 목소리를 크게 내지 않았다. 협회장이 되고, 성명서를 내며, 문제에 대한 질문을 던지면서 소위 연극계가 말을 하는 조직으로 변하지 않았나 싶다. 국가적으로 어려운 일이 많았지만, 국정농단 사태를 통해서 연극계가 사회적인 목소리를 내는데 많이 능동화됐다.

7년 전엔 '대학로 X포럼'도 없어서, 그런 흐름이 없었다. 어찌 본다면 약간의 학습효과라고 생각한다. 이명박 정권 시절 때도 문제가 있었지만, 조용히 하길 바랐다. 그 부조리를 계속 이야기했고, 지치지 않고 가다 보니 저런 이야기를 계속해도 되는구나는 생각이 들게 됐다. 결론적으로 연극계 수많은 부조리가 있었지만, 연극계 내부 문제였지 사회 문제로 이슈화되지 않은 상황에서, 블랙리스트 사건을 통해 사회 곳곳에 쌓여있는 적폐가 드러나게 됐다.

온 국민이 그 적폐를 알게 됐고, 문화예술인, 연극인들이 목소리를 내고 행동하는 것이 7년 전보다 많이 바뀐 것 같다. 그 적폐에 대해 목소리를 내는 것은 당연한 주장이고, 권리라는 것을 알게 되고, 행동하면서 조직과 의식이 생겨 감회가 깊다.
 

▲ 2014년 12월 12일 '제36회 서울연극제 대관 탈락 사태 긴급 기자 회견'을 통해 서울연극협회가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산하 한국공연예술센터를 고소한다고 밝혔다. ⓒ 서울연극협회

가장 힘들었던 순간은 언제였나? 아무래도 '서울연극제'의 아르코예술극장 '대관 탈락'과 아르코예술극장 '임시 폐관'이 가장 컸을 것 같다.
ㄴ 2014년 서울연극제에서 대관 탈락했을 때, 사실 회장으로 그런 일이 생긴 것에 대해 곤혹스럽고 당혹스러웠다. 회원들에게 이 상황이 죄송스러웠다. 우리가 잘못한 게 아닌데, 이런 일을 당한 것에 대해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마로니에 집회나 시위 등 여러 가지를 보여줬고, 검찰 고소를 한국공연예술센터와 관계자를 대상으로 했지만, 기소가 되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정식재판을 가지 못하고 끝났다.

그 문제가 다시 블랙리스트를 통해 알려지게 되면서, 해당 단체들이 모두 연대해 고소 및 고발을 한 것으로 알고 있다. 미진하면 서울연극협회도 단독으로 고소할 생각이 있는 것 같다. 그땐 증거자료가 없는데, 지금은 너무나 정확하게 나왔으므로, 고소를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여기에 2015년 서울연극제 아르코예술극장 공연장 폐쇄에 따른 물질적, 양심적인 보상을 출연진이나 제작진에게 해줘야 한다.

한 예로, 나 같은 경우도 당시 '이혈'이라는 작품을 준비하고 있었다. 2014년 여름에 공연했고, 2015년에 재연을 하려 1달 대관을 빌렸다. 그런데 공연장 폐쇄를 하니, 어쩔 수 없이 내가 한 달 동안 대관한 극장을 서울연극제에 돌릴 수밖에 없었다. 극장이나 단원들은 '이혈' 반응이 좋아서 기대했지만, 펑크가 난 것이었다.

이제야 이야기하자면, 단원들의 실망이 컸다. 소규모 극단에서 공연 성과가 좋고, 앙코르를 하자고 해서 대관을 잡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서울연극제 사태 때문에 공연이 물거품 됐을 때, 단원들이 말을 하지 않아도 속상한 것이 보였다.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에서 공연하려던 단체들도, 다 폐쇄가 되면서 세트 등 모든 것을 바꿔야 했다. 그 고생과 스트레스는 말로 표현할 수 없다. 한이 맺을 지경인데, 그걸 겪었을 극단이나 개인에게는 피해 보상을 해줘야 한다고 본다.
 

▲ 2015년 4월, 김태수 서울연극제 집행위원회 감사, 박장렬 서울연극제 집행위원장, 공재민 서울연극제 집행위원회 사무처장이 삭발을 진행했다.

2015년 '임시 폐관' 당시 삭발 퍼포먼스까지 진행한 기억이 난다. 너무나 과잉 대응을 하지 않았느냐는 이야기도 흘러나왔다. 어떻게 생각하나?
ㄴ 가장 중요한 건 서울연극제 사태가 터졌을 때, "집행부에서 한국문화예술위원회와 각을 세워서 저렇게 된 것이다"라는 말이 있었다. 연극계에선 내가 대놓고 말을 하지 않았지만, 굉장한 잡음이 있었던 것으로 안다. 항변도 했지만, 우리가 나쁜 것이 아니라 옳지 않은 것을 지적하려 했다. 집회 당시에 우리의 의견에 반대한 분들이 있어서 가슴도 아팠다. 이런 일이 생기는 것이 이해할 수 없었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관계자들도 입을 닦았고, 오랜 세월을 본 사람조차도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한 것이 아니라 위로부터 온 느낌이 왔었다. 세월호 사건 이후로 마로니에 공원에서 집회하고, 토요일마다 광장에 나간 것 때문에 그런 거냐는 생각도 들었다. 그렇다고 해도 이건 너무 심한 게 아닌가 하는 답답함이 있었다.

블랙리스트가 터지고 소위 조직적으로 정부가 생각하는 진보 세력을 죽이기 위한 작전이었다는 것이 밝혀진 후 오해가 풀렸다. 만약 블랙리스트가 터지지 않았다면, 대관 탈락사태라는 일이 역사에 길이길이 남을 건데 그것이 마치 박장렬 집행부에서 어떤 실수나 대화 방법의 잘못이 된 것으로 남을 뻔했다. 그렇게 생각할 수 있어서, 일일이 찾아다니면서 오해를 푸는 방법밖에 없었다. 확 밝혀져서 나도 시원하다.
 

▲ 박장렬 연출을 비롯한 연극인들이 1인 시위를 진행했다. ⓒ 박장렬

해결되지 않은 문제들이 남아 있다. 1인시위도 진행하고 있는데, 앞으로 어떻게 할 예정인가?
ㄴ 결국 연극계에서도 어떤 생각을 할 수 있는 수많은 모임, 조직, 그룹이 생겨나야 한다고 생각한다. 서울연극협회도 있지만, 자기 입장에 서서 이야기할 수 있는 협동조합, 노동조합, 소그룹이 더 많이 생겨야 한다. 그런 조직이 자기 이야기를 하고 큰 사안에서 함께 연대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연극이 가진 사회성을 부인할 수 없다. 그 사회성의 확장이야말로 우리가 나아가야 할 길이다. 작품으로 만들 수 있지만, 연극이 가진 사회성을 이야기할 때 밖으로 나가야 할 때가 있다. 다 같이 할 수 있겠지만, 자기 생각을 이야기할 수 있는 모임이나 그룹, 조직이 더 많이 생기길 바란다. 그것이 우리 사회를 건강하게 만들고, 연극계를 건강하게 만들 것이다. 하나의 커다란 조직만 건강한 것은 불가능하다. 다들 입장이 다르기 때문이다. 촛불 역시 개인의 생각이 모여 광장이 됐다.

[문화 人] 박장렬 연출 "5,000원 받는 배우들 보며 '공연예술인노조' 만들었다" ② 에서 계속됩니다.

mir@mhns.co.kr

주요기사
관련기사

 
저작권자 © 문화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