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학로극장의 상여 퍼포먼스가 11일 대학로 일대에서 진행됐다. 이화사거리에 있는 대학로극장에서 출발한 꽃상여가 마로니에 공원에 도착했다.

[문화가 있는 날·예술이 있는 삶을 빛냅니다…문화뉴스] "서울시의 대표적 문화 아이콘인 대학로를 문화지구로 지정했지만, 문화·예술인은 오히려 대학로에서 쫓겨나고 있다."

11일 오후 서울시 종로구 대학로 이화사거리 옆에 있는 대학로극장 앞이 인파들로 떠들썩해졌다. 대학로극장이 임대료를 낼 수 없어서, 운영할 수 없는 상황에 부닥쳐 항의 퍼포먼스를 열었기 때문이다. 꽃상여와 150여 명의 연출가, 배우, 원로 연극인을 포함한 연극 관계자들이 대학로의 입구에서 중심인 마로니에 공원을 향해 움직였다.

저마다 "아이고"를 외치며 이동했으며, 일부는 집회 관리를 하던 경찰 관계자들과 작은 마찰을 일으키기도 했다. 바람이 많이 불면서 상여 이동이 지체된 부분도 있었지만, 약 한 시간 동안 진행된 퍼포먼스는 큰 다툼없이 마무리됐다.

1984년 샘터파랑새극장, 1987년 연우소극장에 이어 대학로에 세 번째로 1987년에 세워진 소극장인 대학로극장. 1994년에 서울 정도 600주년 기념 '타임캡슐' 사업으로 영화 '서편제'와 더불어 대학로극장의 작품인 연극 '불 좀 꺼주세요'가 남산 한옥마을에 보관되어 있다. 여기에 채시라, 조재현, 오광록, 오달수 등 여러 스타 배우들의 등용문이기도 했다.

이렇게 28년 역사를 자랑하는 대학로극장이 사라질 위기에 처한 이유는 표면적으론 건물주의 임대료 상승 요구로 인해 월세를 내지 못해서다. 정재진 대학로극장 대표는 "2년 전부터 건물주가 한 달에 340만 원에서 440만 원 이상을 받아야 되니 그런 돈을 줄 사람을 물색해보라고 이야기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대학로극장은 건물주에 대한 항의가 아닌 서울시의 문화지구 철회를 요구하기 위해 퍼포먼스를 계획했다. "이렇게 집주인과 투쟁의 원인으로 결국은 정부의 책임이 크다"는 뜻이었다.

   
▲ 정재진 대학로극장 대표가 상여 위에 올라 퍼포먼스를 진행하고 있다.

문화지구는 '문화예술진흥법'에 의한 역사문화자원의 관리 보호, 문화환경 조성을 위해 광역자치단체의 장인 특별시장·광역시장 또는 도지사가 조례에 의해 지정한다. 지난 2002년 인사동을 비롯해 2004년 대학로, 2009년 경기도 파주 헤이리, 2010년 인천 개항장이 문화지구로 조성된 바 있다. 문화지구로 지정된 지역에선 설치와 운영을 권장하는 문화시설과 영업시설에 대한 조세와 부담금이 감면된다.

그러나 정재진 대학로극장 대표는 "문화지구에 대한 세금 감면은 건물주가 받는데 그 지원금도 상당히 미비한 수준이다. 그러다 보니 전체적인 땅값은 올라가는 상황에 건물주도 그만큼의 집세를 올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정대경 한국소극장협회 이사장도 "문화지구 혜택은 건물주의 부동산 조세 감면, 건물에 따른 용적률 혜택과 주차 면적 혜택, 융자지원이 유일하다. 결국, 말로만 문화지구라는 혜택이 이뤄지고 문화·예술인에 대한 지원은 없는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정재진 대표와 정대경 이사장을 비롯한 연극인들은 지난 2004년 문화지구 형성으로 인해 오른 땅값 형성이 결국 전체 공연계를 망가뜨렸다고 주장했다. 정재진 대학로극장 대표는 "문화지구가 처음 발표될 땐 잘 될 줄 알았다. 이제는 뭔가 되나 보다는 반응에 모두 환호를 했다. 그러나 발표 후, 땅값이 4배 정도 올랐고, 아무런 혜택을 연극인들은 받을 수 없었다. 지가가 올랐기 때문에, 건물을 사서 들어오는 건물주는 많은 투자를 했으니 그만큼의 돈을 요구할 수밖에 없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또한, 정재진 대표는 "그러다 보니 연극 단체들은 대관료 혹은 임대료를 맞추기 위해 관객들을 끌어모을 수밖에 없는 공연을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는 최근 대학로 공연의 비중이 실험 정신이 요구되는 연극과 정통연극보단 뮤지컬이나 코미디, 멜로물에 한정된 현상도 돈을 벌어야 하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관객들이 그런 장르에만 길들다 보니 젊은 층만 대학로에 오고, 나이가 든 사람들은 한두 번 정도 보면 질려서 결국 오지 않게 된다"고 주장했다.

여기에 문화지구 지정으로 인해 자본력을 가진 대기업의 중대형 극장들이 대학로에 등장하면서 소극장이 설 자리가 더 줄었다는 주장도 이어졌다. 대학로극장의 최근 막을 올린 연극 '관객모독'을 연기한 기주봉 배우는 "정책을 자체를 바꿔야 한다. 연극인들이 살 수 있는 동네를 만들어야 한다. 대학교와 대형 기업들이 문어발처럼 대학로로 들어오고 있다. 이러다 보니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진행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 정대경 한국소극장협회 이사장이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정대경 이사장은 "요즘 대학로에 기업들이 하는 극장이 많고 중·대형화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사람들이 뮤지컬이나 스타 마케팅 연극에 쏠리게 된다. 예술성과 전통을 기반으로 한 소극장은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어려움이 누적되다 보니 상가 임대차 분쟁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 집주인은 내 재산이고 법대로 하겠다는데 뭐가 문제냐고 이야기할 수 있다. 한평생을 극장에서 젊음을 바쳐 살아온 이들은 경제논리로 나가라는 것이 안타깝다"고 개탄했다.

상여 퍼포먼스를 지켜본 김용선 배우는 "대학로는 연극인들로 인해 형성된 거리다. 그런데 정작 땅값, 집값을 올려놓으니 연극인들을 내쫓는 상황이 됐다. 연극을 한 지 30년이 되어 간다. 선배들이 이룩해 놓은 이런 소극장들이 이런 식으로 한둘씩 무너져 나가면 우리는 후배한테 무엇을 물려줄까 생각하니, 이런 극장들을 지키지 못해 매우 미안하다"고 밝혔다.

김용선은 "하지만 연극인들은 죽지 않는다. 대학로를 30년 동안 만들었듯이, 여기서 몰아낸다면 연극인들은 어느 곳에 이동해 30년이 걸리든, 50년이 걸리든 또 만들어 낼 것이다. 그런 거리를 만들어내면 대학로는 죽는다. 그런 상황이 오기 전에 건물주분들은 우리가 모두 공생할 수 있도록 자중하기 바란다"고 토로했다.

이번 퍼포먼스 현장엔 소극장 상상아트홀을 운영했던 박정재 대표도 참석했다. 그는 지난 1월 4일 상상아트홀을 닫을 수밖에 없었다. 그는 "법적으로 알아봤지만, 방법이 없었다. 새로온 건물주가 재건축을 하겠다며 건물을 부쉈다"고 밝혔다.

   
▲ 대학로극장을 설립한 현대극장 김의경(왼쪽) 대표는 "우리 국민들이 연극을 보고 즐거워할 수 있는 시대가 진정한 문화융성"이라고 밝혔다.

최근까지 '품바' 공연을 진행했던 상상아트홀의 마지막 공연 당시 소감을 묻자 그는 "착잡했다. 그 이전부터 건물이 1년 전에 건물주가 바뀌었다. 그때 당시 재건축을 할 수 있지만, 준비 기간도 있어서 재건축이 확정되면 말없이 나가겠다는 각서를 썼었다"고 밝혔다. 극단 가가의회 대표이기도 한 박정재는 "공연장 운영을 할 수 없으니 현재 소속 배우들은 전국 순회나 해외 공연 쪽으로 스케쥴을 잡고 있다"고 말했다.

정재진 대표는 대학로 소극장들의 이런 모습을 알리기 위해 이번 퍼포먼스를 준비했다고 말했다. 그리고 정대경 이사장은 대학로에 이러한 민간 소극장이 142개가 있고, 현재 반 이상이 운영의 의지가 없는 것으로 파악됐다고 밝혔다. 이번 퍼포먼스는 어느 한 소극장의 이야기일 수도 있겠지만, 전체적인 대학로 소극장의 현실을 대변해준 것이었다.

문화뉴스 양미르 기자 mir@mhn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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